‘축제공화국’ 대한민국 ‘내실’ 따져보니…

억!소리 나는 페스티벌…만족도는 헉?

[일요시사=이보배 기자]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매년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도 단위의 축제는 물론 시·군 등 소지역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축제를 열고 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수많은 축제는 공식 통계만 800여개에 이르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전국 축제라고 검색하면 1100개에 이르는 축제가 검색된다. 1년 열두 달 가운데 축제 없는 달을 꼽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주제의 축제가 열리는 것은 시민, 나아가 국민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다. 각 지역별로 특색 있는 축제를 찾아보기 힘든데다 우리도 해보자는 안일한 생각으로 축제를 진행, 예산만 쏟아 붓고 내실을 챙기지 못하는 일이 허다한 것. 대한민국 축제의 내실을 따져봤다.


연간 전국 축제 800개 넘어 1년 내내 축제장
축제 풍년 속 정말 가볼만한 곳은 몇 군데?

전국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였던 벚꽃축제가 막을 내리고 철쭉을 비롯한 봄꽃축제가 지역별로 상춘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각 지자체별로 축제를 무분별하게 계획하면서 중첩되거나 지역과 무관한 축제들이 남발되고 있어 예상낭비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5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공개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적으로 열린 지역축제는 813개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2009년 921개에서 다소 줄었지만 지역축제가 전시행정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맞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광역자치단체와 기초단체별로 실시된 지역축제 현황을 보면 전국적으로 813개가 열렸고, 경상남도가 112개의 축제를 열어 가장 많은 수치를 차지했으며, 광주광역시는 13개로 가장 적었다.

특색 없는 축제
예산만 낭비?

서울시의 경우 2009년 119개에서 지난해 69개로 대폭 감소했지만 여기에는 가장 규모가 큰 하이서울페스티벌이 빠져 있어 지원 예산에 책정되지 않았다.

포화상태의 축제가 매년 진행되면서 지역별로 성격이 유사한 축제는 통합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반발로 지자체 별도예산까지 들여가며 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지역축제가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축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도 한 번 해보자는 식의 축제 진행은 관광객들에게 오히려 실망감만 전해줄 뿐이다.

지역입장에서도 무리해서 진행한 축제가 성공리에 마무리 되지 못하면 예산은 물론 축제를 통한 기대수익마저 맨땅에 버린 격이 되고 만다. 전시행정으로 인한 예상낭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11월 이후 발생한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는 올해 전국 축제 판도를 바꿔놓았다. 지난 3월까지 전국의 53개 축제가 취소된 것으로 나타난 것. 예산 규모는 145억4200만원이며, 특히 구제역 피해 농가에 이어 관광 수익을 날린 지역은 심각한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겨울관광지로 유명한 강원도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화천군 산천어축제를 비롯해 인제 빙어축제 등 주로 겨울레저나 연말연시 해맞이축제 등이 줄줄이 취소된 것.

상황 따라 취소도 빈번
국민도 지역도 실망감만

이 중 가장 많은 예산인 45억3400만원을 들인 화천 산천어축제는 준비에 40여억원 이상을 사용한 데다 파생되던 기대수익 532억원을 고스란히 포기해야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최우수 지역축제로 선정될 만큼 인기축제였던 산천어축제가 취소됨으로써 화천군의 지역경제는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1년에 한번 있는 산천어축제로 관광수입을 기대했던 화천주민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화천군은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발 빠른 다른 행사기획으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인 것. 연초 산천어축제가 취소되자 화천군은 국민의 성원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산천어 루어낚시 이벤트 행사를 진행했다. 3월5일 시작해 20일 종료된 이 행사에는 2만3000여명의 관광객이 참여한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

이 기간 동안 350명 규모로 조성된 낚시터에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대거 몰리면서 주말 연휴에는 매시간 200여명씩 입장 대기하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으며, 전시 판매장은 51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려, 하루 평균 300만원 이상의 지역특산품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 따라 취소되는 축제 속출, 예산낭비 우려
하이서울 페스티벌 예산 줄이고 내실 따져 눈길

이어 지난 2월에 열린 강원도 고성의 명태축제에는 풍어제를 올리며 명태잡이 어선의 만선을 기원했지만 수온상승으로 동해에서 명태가 자취를 감춰 축제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강원도 눈축제는 이 지역 지자체들이 앞다퉈 시행하면서 태백시와 평창군, 속초시까지 가담했고, 이에 속초시는 눈축제를 불축제를 바꾸고 호수변에 불을 밝히는 행사로 7억원을 지원했지만 예산이 삭감되면서 중단되기도 했다.

여러해 동안 무분별한 지역축제 진행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자 일부 지자체에서는 각각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스로 축제를 줄이거나 예산을 삭감하는 가운데 양질의 프로그램을 마련해 관광객을 유치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

당초 축제라면 경기도도 빠지지 않았다. 경기도는 지난 2009년 지자체 가운데 가장 많은 축제예산을 쏟아 부었다. 이로 인해 지난해 초 125개에 달했던 도내 축제를 93개로 대폭 줄이기로 결정했다. 매년 2억원씩 지원해온 여주·이천·광주 등 3개 시·군의 도자기축제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한편, 2년마다 열리는 세계도자비엔날레축제도 올해에는 지원예산을 83억원에서 40억원으로 절반 이상 줄이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수원, 성남, 부천, 고양 등 경기도 26개 시·군에서는 76개 축제를 개최, 전년보다 13개의 축제를 줄였고, 관련 예산도 삭감했다.

이 같은 자정노력은 하이서울페스티발에서도 보이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축제 중 하나인 하이서울페스티벌은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143여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2008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 네 번의 축제를 진행, 84여 억원의 예산이 들었고, 이 중 13억8000여만원은 기업의 지원을 받았다. 2009년에는 29여 억원의 예산이 집행 됐으며 이 중 기업 지원은 6억5000만원으로 집계됐고, 지난해 하이서울페스티벌 소요예산은 30여억원 정도였다.

과도한 예산집행으로 여러 번 도마에 오른 서울시는 올해 하이서울페스티벌 개최와 관련 파격적인 변신을 꾀했다. 예산을 절반으로 축소해, 축제기간을 줄이는 대신 내실 있는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의 만족감을 더하겠다고 선언한 것.

오는 5일(목)부터 10일(화)까지 6일간 여의도한강공원 및 도심광장에서 펼쳐지는 2011 하이서울페스티벌은 봄을 부르는 몸짓, 봄짓이라는 슬로건 아래, 언어·인종·세대의 장벽을 넘어 몸짓으로 소통하는 국제 넌버빌 공연예술축제를 표방하고 있다.

스스로 문제점 인식
축제 규모·예산 줄여

이와 관련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은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지난해 시의회를 통해 30억원에서 15억원으로 예산이 삭감, 개최기간 등 규모가 축소되는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 문화 참여 폭이 줄어들지 않도록 NGO 및 민간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축제의 내실을 기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축제에는 시민들은 물론 캐나다, 스페인, 호주, 중국 등 세계 11개국 41개 공연단체가 참여해 시민과 세계인이 축제의 주체로 함께 참여해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6일간의 축제기간 중 총 300여회의 국내외 넌버빌 퍼포먼스를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 시민들의 기대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안승일 서울시 문화관광기획관은 "하이서울페스티벌이 9년간의 경험을 통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즐기는 축제로 발전했다"면서 "소비성 축제가 아닌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생산적인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명실상부한 세계 속의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자체 스스로 계획하고 있는 축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고쳐보려는 노력을 통해 국민의 혈세를 사용하는 만큼 사업계획에 신중을 기한다면 적은 예산을 들여 큰 만족을 주는 제대로 된 축제로 국민들에게 갈채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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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