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공화국’ 대한민국 ‘내실’ 따져보니…

억!소리 나는 페스티벌…만족도는 헉?

[일요시사=이보배 기자]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매년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도 단위의 축제는 물론 시·군 등 소지역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축제를 열고 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수많은 축제는 공식 통계만 800여개에 이르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전국 축제라고 검색하면 1100개에 이르는 축제가 검색된다. 1년 열두 달 가운데 축제 없는 달을 꼽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주제의 축제가 열리는 것은 시민, 나아가 국민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다. 각 지역별로 특색 있는 축제를 찾아보기 힘든데다 우리도 해보자는 안일한 생각으로 축제를 진행, 예산만 쏟아 붓고 내실을 챙기지 못하는 일이 허다한 것. 대한민국 축제의 내실을 따져봤다.


연간 전국 축제 800개 넘어 1년 내내 축제장
축제 풍년 속 정말 가볼만한 곳은 몇 군데?

전국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였던 벚꽃축제가 막을 내리고 철쭉을 비롯한 봄꽃축제가 지역별로 상춘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각 지자체별로 축제를 무분별하게 계획하면서 중첩되거나 지역과 무관한 축제들이 남발되고 있어 예상낭비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5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공개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적으로 열린 지역축제는 813개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2009년 921개에서 다소 줄었지만 지역축제가 전시행정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맞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광역자치단체와 기초단체별로 실시된 지역축제 현황을 보면 전국적으로 813개가 열렸고, 경상남도가 112개의 축제를 열어 가장 많은 수치를 차지했으며, 광주광역시는 13개로 가장 적었다.

특색 없는 축제
예산만 낭비?

서울시의 경우 2009년 119개에서 지난해 69개로 대폭 감소했지만 여기에는 가장 규모가 큰 하이서울페스티벌이 빠져 있어 지원 예산에 책정되지 않았다.

포화상태의 축제가 매년 진행되면서 지역별로 성격이 유사한 축제는 통합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반발로 지자체 별도예산까지 들여가며 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지역축제가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축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도 한 번 해보자는 식의 축제 진행은 관광객들에게 오히려 실망감만 전해줄 뿐이다.

지역입장에서도 무리해서 진행한 축제가 성공리에 마무리 되지 못하면 예산은 물론 축제를 통한 기대수익마저 맨땅에 버린 격이 되고 만다. 전시행정으로 인한 예상낭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11월 이후 발생한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는 올해 전국 축제 판도를 바꿔놓았다. 지난 3월까지 전국의 53개 축제가 취소된 것으로 나타난 것. 예산 규모는 145억4200만원이며, 특히 구제역 피해 농가에 이어 관광 수익을 날린 지역은 심각한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겨울관광지로 유명한 강원도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화천군 산천어축제를 비롯해 인제 빙어축제 등 주로 겨울레저나 연말연시 해맞이축제 등이 줄줄이 취소된 것.

상황 따라 취소도 빈번
국민도 지역도 실망감만

이 중 가장 많은 예산인 45억3400만원을 들인 화천 산천어축제는 준비에 40여억원 이상을 사용한 데다 파생되던 기대수익 532억원을 고스란히 포기해야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최우수 지역축제로 선정될 만큼 인기축제였던 산천어축제가 취소됨으로써 화천군의 지역경제는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1년에 한번 있는 산천어축제로 관광수입을 기대했던 화천주민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화천군은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발 빠른 다른 행사기획으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인 것. 연초 산천어축제가 취소되자 화천군은 국민의 성원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산천어 루어낚시 이벤트 행사를 진행했다. 3월5일 시작해 20일 종료된 이 행사에는 2만3000여명의 관광객이 참여한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

이 기간 동안 350명 규모로 조성된 낚시터에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대거 몰리면서 주말 연휴에는 매시간 200여명씩 입장 대기하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으며, 전시 판매장은 51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려, 하루 평균 300만원 이상의 지역특산품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 따라 취소되는 축제 속출, 예산낭비 우려
하이서울 페스티벌 예산 줄이고 내실 따져 눈길

이어 지난 2월에 열린 강원도 고성의 명태축제에는 풍어제를 올리며 명태잡이 어선의 만선을 기원했지만 수온상승으로 동해에서 명태가 자취를 감춰 축제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강원도 눈축제는 이 지역 지자체들이 앞다퉈 시행하면서 태백시와 평창군, 속초시까지 가담했고, 이에 속초시는 눈축제를 불축제를 바꾸고 호수변에 불을 밝히는 행사로 7억원을 지원했지만 예산이 삭감되면서 중단되기도 했다.

여러해 동안 무분별한 지역축제 진행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자 일부 지자체에서는 각각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스로 축제를 줄이거나 예산을 삭감하는 가운데 양질의 프로그램을 마련해 관광객을 유치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

당초 축제라면 경기도도 빠지지 않았다. 경기도는 지난 2009년 지자체 가운데 가장 많은 축제예산을 쏟아 부었다. 이로 인해 지난해 초 125개에 달했던 도내 축제를 93개로 대폭 줄이기로 결정했다. 매년 2억원씩 지원해온 여주·이천·광주 등 3개 시·군의 도자기축제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한편, 2년마다 열리는 세계도자비엔날레축제도 올해에는 지원예산을 83억원에서 40억원으로 절반 이상 줄이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수원, 성남, 부천, 고양 등 경기도 26개 시·군에서는 76개 축제를 개최, 전년보다 13개의 축제를 줄였고, 관련 예산도 삭감했다.

이 같은 자정노력은 하이서울페스티발에서도 보이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축제 중 하나인 하이서울페스티벌은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143여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2008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 네 번의 축제를 진행, 84여 억원의 예산이 들었고, 이 중 13억8000여만원은 기업의 지원을 받았다. 2009년에는 29여 억원의 예산이 집행 됐으며 이 중 기업 지원은 6억5000만원으로 집계됐고, 지난해 하이서울페스티벌 소요예산은 30여억원 정도였다.

과도한 예산집행으로 여러 번 도마에 오른 서울시는 올해 하이서울페스티벌 개최와 관련 파격적인 변신을 꾀했다. 예산을 절반으로 축소해, 축제기간을 줄이는 대신 내실 있는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의 만족감을 더하겠다고 선언한 것.

오는 5일(목)부터 10일(화)까지 6일간 여의도한강공원 및 도심광장에서 펼쳐지는 2011 하이서울페스티벌은 봄을 부르는 몸짓, 봄짓이라는 슬로건 아래, 언어·인종·세대의 장벽을 넘어 몸짓으로 소통하는 국제 넌버빌 공연예술축제를 표방하고 있다.

스스로 문제점 인식
축제 규모·예산 줄여

이와 관련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은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지난해 시의회를 통해 30억원에서 15억원으로 예산이 삭감, 개최기간 등 규모가 축소되는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 문화 참여 폭이 줄어들지 않도록 NGO 및 민간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축제의 내실을 기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축제에는 시민들은 물론 캐나다, 스페인, 호주, 중국 등 세계 11개국 41개 공연단체가 참여해 시민과 세계인이 축제의 주체로 함께 참여해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6일간의 축제기간 중 총 300여회의 국내외 넌버빌 퍼포먼스를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 시민들의 기대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안승일 서울시 문화관광기획관은 "하이서울페스티벌이 9년간의 경험을 통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즐기는 축제로 발전했다"면서 "소비성 축제가 아닌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생산적인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명실상부한 세계 속의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자체 스스로 계획하고 있는 축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고쳐보려는 노력을 통해 국민의 혈세를 사용하는 만큼 사업계획에 신중을 기한다면 적은 예산을 들여 큰 만족을 주는 제대로 된 축제로 국민들에게 갈채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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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