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철의 부동산테크 필승전략 <21> 3·22 부동산대책 허실

툭하면 주택정책…부자만 신났다


한 달 간격으로 부동산 정책이 나오고 있어 많은 혼선을 주고 있다. 이번 3·22 부동산 대책은 3월 말로 DTI 규제가 다시 부활된다는 점에서 나온 정책이다. DTI를 부활하는 대신에 취득세 완화 등 세금 감면 쪽으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

‘DTI 완화 종료’거래위축 최소화 주안점
금융건전성+주택시장 살리기 ‘정책조합’

‘주택거래 활성화 방안’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를 예정대로 종료시키는 데 따른 거래 위축을 최소화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즉 가계부채 증가를 막기 위해 대출 규제를 정상화하는 대신 취득세를 낮춰 거래 비용을 줄이고,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해 민간 부문의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금융건전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차갑게 식은 주택시장도 함께 살리는 ‘정책조합(policy mix)’을 선택한 셈이다.

‘금리인상, 유가상승…’
여전히 매매심리 위축

정부는 DTI 규제를 작년 ‘8·29 대책 이전’수준으로 조정했다. 부동산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DTI를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정작 DTI를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 활성화에 큰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8·29 대책 이후 신규 주택담보대출은 50조원가량 늘었다. 그러나 순수하게 DTI 자율 적용을 받아서 늘어난 대출액은 7000억원으로 전체 담보대출 증가액의 1.4%에 불과했다. 따라서 DTI 규제 대신 주택 거래세, 즉 취득세(2011년부터 취·등록세 통합)를 더 낮췄다. 취득세를 낮추면 주택 수요자에게 실질 혜택이 돌아가 수요를 촉진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취득세는 지방세로 지방자치단체에 중요한 세원이다.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적지 않은 반발도 예상된다.

3·22 부동산 대책에 따라 아파트 분양 전매 제한도 폐지된다. 이번 대책 중에서 가장 파괴력 있는 대목은 ‘분양가 상한제 일부 폐지’다. 강남3구 투기지역을 제외하고 민간택지에 짓는 아파트는 분양가 상한제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재개발, 재건축단지와 뉴타운 지구 등도 대부분 민간택지에 포함된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는 의외로 폭발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 상한제와 함께 연동해 운영되는 분양권 전매 제한 제도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현재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의 민간택지에서 공급하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은 일정 기간(1∼3년) 분양권을 팔지 못하는 전매 제한을 받고 있다. 민간택지의 경우 상한제가 폐지되면 계약과 동시에 전매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재당첨금지조항도 자동 폐지돼 당첨 후에도 또다시 청약이 가능해진다.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되면 재개발과 재건축 아파트의 일반분양분 분양가 역시 다소 오를 전망이다. 분양가를 높이면 수익성이 좋아지는 만큼 이들 사업 활성화와 함께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택시장이 살아날지 여부다. 정부가 주택거래 활성화를 위해 분양가 상한제 폐지, 취득세 감면과 같은 비중 있는 규제 완화책을 내놓았지만, 주택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 실시 여부가 여전히 불확실한 데다 DTI 규제의 부활이 금리 인상, 유가 상승 등 국내외 여러 악재와 맞물려 매매심리를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3·22 부동산 대책’에서 서울 강남3구 등 투기지역을 제외한 민간택지에 짓는 아파트의 분양가 상한제를 없애겠다고 했다. 상한제가 없어지면 건설사가 분양가를 주변 아파트 시세 또는 그 이상으로 높게 책정할 수 있어 주변 집값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다. 결국 상한제 폐지는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를 부추겨 주택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 그동안 사업성 부족 등으로 진척이 없었던 재개발·재건축 단지와 뉴타운지구 등 대부분의 민간택지 사업이 활성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부산을 중심으로 최근 ‘청약 열풍’이 부는 지방 분양시장의 경우 아파트 공급 증가와 함께 분양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경기도 과천시, 서울 강동구 등 재건축단지와 서울 용산·성동구 등지의 재개발 사업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시장 분위기는 이외로 차분하다. 국내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DTI 규제가 부각되다 보니 투자자들이 상한제 폐지를 호재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취득세 감면도 (DTI 규제 부활로) 자금력이 있는 수요자에게만 해당돼서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미분양 해소 악영향”
지자체 ‘세원 비상’

앞으로 서울에 신규 공급되는 아파트 대부분이 재개발·재건축 물량이라는 점에서 조합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분양가를 높게 책정할 가능성도 크다. 당초 이달로 예정됐던 성동구 왕십리뉴타운 사업의 일반분양 일정이 늦춰진 것도 분양가를 높이려는 조합과 이를 낮추려는 건설사 간의 이견 때문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최근 분양가에 웃돈이 붙을 정도로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는 지방에서 분양가 상승이 우려된다”며 “공공택지에 짓는 수도권 미분양 주택을 해소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4월부터 DTI 환원으로 서울 강남3구 투기지역을 제외한 서울 지역에서 ‘총소득에서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50%, 인천·경기는 60%를 적용받게 된다. 투기지역인 강남 3구에선 현행처럼 DTI 비율 40%가 그대로 적용된다.

취득세 50%로 낮춰 ‘거래 비용↓’
분양가 상한제 폐지 ‘주택 공급↑’

정부는 DTI를 환원하되 실수요 주택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비거치식’대출에 대해서는 규제를 사실상 완화해 주기로 했다. 기존 DTI 규제에선 분할상환은 5%P, 고정금리/분할상환은 10%P DTI 비율을 확대해주는 가산항목이 있었다.

정부는 여기에 비거치식을 추가로 우대해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엔 10%P까지, 비거치식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엔 15%P까지 DTI 비율을 확대해 주기로 했다. 예를 들어 연소득 5000만원인 사람이 서울 목동에서 주택을 구입하면서 비거치식 고정금리/분할상환(만기 20년, 금리 연 6% 기준) 방식으로 돈을 빌리면 DTI 비율 65%가 적용돼 3억80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게 된다. 변동금리 일시상환 대출을 받을 때 (DTI 비율 50% 적용, 대출가능액 2억9000만원)보다 9000만원이 더 많다.

또 연봉 1억원인 사람이 투기지역 이외의 서울지역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비거치식 고정금리/분할상환 방식으로 대출을 받으면 변동금리 일시상환 방식보다 3억원 더 많은 8억8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 이 같은 우대조치는 이달 중 금융회사 내규를 개정해 4월 이후 신규 취급하는 주택담보대출부터 적용된다.

정부는 DTI 환원과 비거치식 대출에 대한 우대조치를 통해 상환 능력을 벗어난 과도한 대출을 억제하고 건전한 대출 관행을 정착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은 별도로 적용되기 때문에 DTI를 기준으로 한 대출 한도가 늘어나더라도 LTV 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을 빌릴 수는 없다. 정부는 아울러 저소득층의 주택담보대출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DTI 면제 대상인 소액대출 한도를 5000만원에서 1억원까지 확대하는 조치는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정부는 DTI 규제 정상화에 맞춰 취득세(취득세와 등록세가 올해부터 주택 취득세로 통합) 부담을 절반으로 낮춰주기로 했다. 고가주택 취득세 부담이 커 거래가 끊기는 부작용이 심각했다는 비판을 받아들인 것이다. 작년 말과 올해 초 사이에 취득세 부담이 수천만원씩 늘어나면서 거래가 끊겨 ‘주택거래 활성화’라는 부동산 세제 기본 방향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지방세인 취득세 세율 감면에 따른 지방세수 부족분에 대해서는 전액 재원을 보전해주기로 했다. 구체적인 지원 기준과 규모에 대해서는 추후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에서 협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참고로 주택 취득세는 전체 취득세의 7.7%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난해 서울에서만 5000억원 정도가 걷혔다.

10억원 아파트 사면
2300만원 내면 된다

집을 살 때 내는 세금(거래세)은 거래가격이 9억원 이하인 1주택자는 거래가액의 2%, 9억원 초과 1주택자나 다주택자(2주택 이상)는 4%를 각각 세금으로 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지방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고가주택 보유자와 다주택자의 취득세율을 4%로 인상했다. 이로 인해 주택거래가 부진해지자 정부는 취득세 부담을 올해 1년간 한시적으로 절반씩 줄여주기로 했다.

당정은 9억원 이하 주택은 1%, 9억원 초과 및 다주택자는 2%의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 심의를 거쳐 시행할 예정이다. 대책이 발표된 다음 날인 3월23일부터 또는 개정안 발효일부터 낮춰진 세율을 적용할 방침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 있는 10억원짜리 중대형(전용 85㎡ 초과) 아파트를 구입했을 때 지금은 취득세로 4600만원(지방교육·농특세 포함)을 내야 했다. 하지만 올해 말까지는 이 금액의 절반인 2300만원만 내면 된다.

1주택자이든 다주택자이든 똑같다. 만약 5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했다면 다주택자는 세금이 현행 2300만원에서 1150만원으로, 1주택자는 1350만원에서 675만원으로 각각 줄어들게 된다. 이때 1주택자는 본인 명의의 주택이 1채인 경우(1인 1주택)를 뜻한다. 1세대를 구성하는 가족이 여러 채의 주택을 보유한 경우라도 신규 주택 매입으로 본인 명의의 주택이 1채라면 올해 말까지는 취득세율 1%를 적용받게 된다.

집을 새로 사 본인 명의의 주택이 2주택 이상이 될 경우에는 2%의 세율이 적용된다. 9억원 이하 주택가액을 산정할 때는 신고가격(실거래가)을 기준으로 세율이 적용된다.

다만 신고가격이 9억원 이하라도 국토부 장관이 고시하는 개별주택가격이나 시장·군수가 산정한 개별 및 공동주택 시가표준액이 9억원을 초과하면 2%의 세율이 적용된다. 취득세 납부기한은 주택취득 후 30일 안에 등기하면 등기 때 납부세금의 50%를 선납하고 나머지는 취득 후 60일 안에만 내면 된다.

장경철은?

- 스피드뱅크, 조인스랜드, 닥터아파트 부동산칼럼니스트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부동산 기사 제공
- 프라임경제 객원기자
- 상가114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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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