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속기사 학원 문제가 제기됐다. 속기사 학원은 학생들에게 처음에는 수백만원에 달하는 키보드 구입을 권유하며 철저히 관리해주겠다는 약속으로 유혹한다. 하지만 구입하고 나면 학생 관리는 나몰라라 한다. 구입 후 수업을 듣는 데까지 수개월의 공백기간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속기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근심은 더욱 늘어만 가고 있다.
속기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의사표시를 속기전용 문자로 빠르고 정확하게 필기해 이것을 일반문자로 번문하는 활동을 말한다. 예전에는 기계속기라고 해서 손으로 직접 쓰는 수필속기와 녹음기나 타자기를 이용했으나 1990년대를 기점으로 컴퓨터 속기가 급속하게 보급, 현재 디지털영상속기가 가장 크게 자리잡은 상태다.
관리 부실
이런 흐름을 타고 대전에 거주하는 A씨는 속기사 시험을 준비 중이다. 지난 2014년, A씨는 속기사가 되려고 속기사 학원을 찾았다. 학원 측은 “어떤 사람은 속기사 자격증을 따고 월수입이 500만원”이라는 등의 말들로 회원 가입을 유도했다.
속기사 협회의 회원이 되려면 속기 키보드를 구입해야만 했다. 속기 키보드 값은 300만원가량. 학원 측은 중고 키보드를 구입할 경우 회원 등록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회원 등록이 돼야 채용공고에 추천을 해주고 추후 관리도 받을 수 있다고 학원 측 관계자는 덧붙였다.
하지만 문제는 키보드 구입 후 발생했다. 키보드를 구입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해줄 것 같이 하던 학원이 슬슬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A씨는 키보드를 구입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수업을 들으려 했지만 학원 측에서는 “한 달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상담 때 전혀 듣지 못한 내용이었다. A씨는 “1분1초가 아쉬운 취업 준비생에게는 너무도 긴 기간”이라고 푸념했다.
수업도 문제였다. A씨는 1년 동안 준비해 3급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3급 자격증 소유자는 실무교육을 받을 수 없다. 1급이나 2급 자격증 소유자를 우선으로 채용하기 때문에 3급 자격증 소유자에게는 차례가 돌아오지않는다는 게 학원 측의 설명이었다.
키보드값 300만원…새것 사야 회원 가입
단체문자만 달랑…수업 들으려 허송세월
A씨는 “3급 자격증은 자격증 취급도 해주지 않는다”며 “그럴 거면 3급 자격증은 왜 만들어 놓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학원의 수업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오프라인 강의실의 부족으로 인해 수강생들은 화상강의를 들어야만 했다. 그것도 1대1 강의가 아닌 1대 다수의 강의로 진행돼 교육 효율성은 현저히 떨어졌다.
학원 측의 관리라는 명목도 허술했다. 단체문자로 ‘~에서 구인광고 뜸’이라는 성의 없는 문자만을 보내주는 실정이다.
A씨는 “그 정도는 인터넷 관련 카페에만 가입해도 알 수 있는 정보”라며 “그걸 관리라고 생각하고 얘기해주는 거 자체에 헛웃음이 나온다”고 망연자실했다.
이런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시험 횟수를 증가시킨다는 소문이 업계에 돌아 속기사를 꿈꾸는 사람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금 속기사 자격증 시험은 1년에 2번으로 정해져 있다. 그걸 1년에 4번으로 늘린다는 내용이었다.
속기사의 경우, 자격증 소지자에 비해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1·2급 자격증을 딴 사람들도 일자리가 없어서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그 와중에 시험 횟수를 늘리면 합격자 수가 늘어나 일자리는 부족하지만 경쟁자는 늘어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소문에 노동청과 상공회의소에는 속기사 준비생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시험 횟수 증가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이 진행되기까지 했다.
속기사 전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속기사는 공무원직과 방송매체서 활동하는 자막방송요원, 민간 속기사무소에 속기업무 전반적인 업무를 맡는 취업자 등 3가지 진로가 있다.
속기사 공무원의 경우, 수요가 한정돼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매해 각 부처와 기관을 통해 지속적으로 속기사 신규 채용 시 어려운 공무원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7∼9급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어 속기사 시험을 보는 수요는 높은 편이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속기사라는 직업은 속기 공무원을 목표로 하지 않는 이상 별로 좋지 않다”며 “국회 속기사 같은 정식 공무원이 되면 좋지만 1년에 뽑는 인원이 많지 않아서 들어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망 있나
그는 또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선 정식 공무원보다는 속기 및 사무보조 형식의 계약직 형태로 고용하는데 월급도 낮고 신분도 불안하다. 프리로 뛴다고 해도 일감이 많지 않아 고소득은 매우 힘들다”고 귀띔했다. 이어 “‘고소득’ ‘밝은 전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속기기계를 팔거나 학원을 다니게 할 목적으로 과장광고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