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는?’ 청와대 조직 대해부

말 많은 권력요직 “국민도 잘 모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어지러운 가운데 민정수석실, 부속실 등의 청와대 비서실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청와대 비서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일요시사>에서 한창 말 많은 청와대 비서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최순실 비선 실세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의 수석 비서관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했다. 사표 제출을 지시받은 수석 비서관은 정책조정·정무·민정·외교안보·홍보·경제·미래전략·교육문화·고용복지·인사 등의 10개 조직이다. 

10개의 조직
수석 비서관

2013년 초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던 당시 청와대에는 총 9명의 수석 비서관이 있었다. 전임 이명박정부서 9명의 수석과 이에 준하는 6명의 기획관이 존재하던 것을 ‘슬림화’하겠다는 목적으로 개편했다. 하지만 임기를 거치면서 박근혜정부의 조직도 조금씩 몸집이 커졌다.

잇단 인사 실패가 발생하자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며 인사수석실을 신설했고 임기 3년 차에 들어선 2015년에는 국정기획수석을 정책조정수석으로 개편했다. 한때 대통령을 특별 보좌하는 특보단이 신설됐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의 비서와 기타 특명을 받은 기밀사항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며, 실장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실무를 장리하며 소속공무원을 지휘, 감독한다. 대통령의 비전과 철학과 가치를 담는 유일한 제도적 기제이기도 하다.


청와대 비서실 조직을 보면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중요시 하는 정책영역이 무엇이며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만큼 비서실 조직은 아주 중요하다.

청와대 비서실 조직은 5가지 기능적 이슈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범정부 및 조정 이슈를 담당하는 조직은 비서실장, 국가 안보실장, 인사위원회, 연설 기록 비서관이 있다. 정책적 이슈를 다루는 조직은 국정기획수석, 경제수석, 미래전략수석, 교육문화수석, 고용복지수석, 외교 안보수석 등이 있다.
 

운영 이슈는 민정수석, 총무 비서관, 의전 비서관, 경호실이 담당하며 외부 관계는 정무수석이, 커뮤니케이션 영역은 홍보수석이 담당한다. 장관 내지 차관급의 별정직 공무원이 역임하는 수석비서관은 역대 정권에 따라 명칭 변동이 있었으나 공통적으로 대통령의 정책 입안과 결정을 실질적으로 보좌하는 책무를 맡아왔다.

▲특별감찰관 = 2014년부터 시행된 특별감찰관 제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다. 전임 대통령들이 친인척 및 가족 비리로 나라를 시끄럽게 하자 재발 방지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독립된 지위를 가지는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4촌 이내 친족, 비서실 내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들의 비위행위(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상시 감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공약으로 탄생한 특별감찰관 제도는 출범 2년도 채우지 못한 채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대 특별감찰관으로 취임한 이석수 전 감찰관이 미르·K스포츠재단 및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 내사 중 사임했기 때문이다. 한편 우병우 비서관이 있는 민정수석실도 고위 공무원에 대한 감찰 사안이 있을 때 특별감찰반을 꾸려 운영할 수 있다.

때문에 특별감찰관 제도가 만들어질 당시 기존 민정수석실의 특별감찰반과 업무가 중복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민정수석실의 특별감찰반은 한시적 운영, 특별감찰관은 상시적 운영이라는 것이다.

비리 재발 방지 대책으로 특별감찰관 공약
출범 2년 채우지 못한채 사실상 마비 상태


▲비서실장 =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대통령 직속 기관인 비서실을 총괄하는 자리다.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따르면 대통령의 명을 받아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되어 있다.

직제상으로는 장관급이지만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기 때문에 국무총리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다. 이명박정부 때는 대통령비서실과 경호실이 통합된 ‘대통령실’을 운영했으나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며 비서실과 경호실이 다시 분리됐다. 역대 박근혜정부 비서실장 중 가장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던 건 김기춘 전 실장이다.

78세 고령으로 비서실장에 오른 김 전 실장은 참모진 인사 등에 깊숙이 관여하며 ‘기춘대원군’이라 불렸다. 김기춘을 비롯해 허태열, 이병기 전 비서실장은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올해 임명된 이원종 전 실장은 취임 5개월 15일 만에 사표를 제출했다. 최순실의 연설문 수정 의혹에 대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시국과 동떨어진 발언을 한 이 전 실장은 실제로 아무 것도 모르는 ‘허수아비’ 대통령 비서실장이 아니었느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후 김대중정부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한광옥 의원을 신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비서실장 직속으로는 총무비서관과 제1·제2부속비서관, 의전비서관, 연설기록비서관 등 5명의 비서관이 있다.

정책 입안과 결정
실질적으로 보좌

▲총무비서관 = 총무비서관은 비서실의 인사관리와 재무·행정 업무, 국유재산과 시설·물품 관리, 경내 행사 등을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 특히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은 청와대의 내부 사이버 보안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때문에 이 전 비서관의 승인이나 묵인 없이는 연설문을 포함한 청와대 문서 유출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부속비서관 = 부속비서관은 총 2명이다. 제1부속비서관은 청와대의 내부 일정을, 제2부속비서관은 본래 대통령 부인의 일정을 담당하는 역할이지만, 현 정부에선 1·2부속비서관이 통합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맡고 있는 탓에 ‘비서실 안의 비서실’이라 불릴 만큼 요직이나 그만큼 부패하기 쉬운 조직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봐야 하는 문서나 자료도 통상 부속비서관을 거쳐 전달된다. 보고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도 부속비서관의 몫이다.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최순실에게 매일 30㎝ 두께의 대통령 보고서를 전달했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의전비서관 = 대통령의 일정 관리와 접견 및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 등을 담당한다. 일정 관리에 있어 부속실과 차별되는 점은 부속실의 경우 청와대 내부 일정을, 의전실의 경우 공식·대외 일정을 담당하는 것이다. 국빈급 오·만찬도 의전비서관이 챙긴다.


▲연설기록비서관 = 대통령이 발표하는 연설문 작성을 담당한다. 연설문은 연설기록비서관이 작성한 뒤 통상 부속실로 넘어간다. 박근혜정부에선 출범 때부터 조인근 전 연설기록비서관이 ‘대통령의 펜’ 역할을 해왔다.

명칭 바뀌어도
업무는 비슷

여담으로 조 전 비서관의 글쓰기 실력은 정치권 안팎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를 영입하려 애썼다고 한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최순실의 연설문 수정 의혹이 나온 뒤 돌연 사표를 내고 사흘간 잠적했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 = 정책조정수석은 2015년 대대적인 청와대 조직 개편과 함께 생겨났다. 이전에는 국정기획수석이라 불리던 직책이 정책조정수석으로 바뀌었다. 사실 국정기획수석은 이명박정부 때 신설된 자리다.

4대강, 세종시 등 굵직굵직한 정부의 중점 사업을 관리하면서 수석 중에서도 파워가 가장 센 ‘왕수석’으로 통했다. 박근혜정부 역시 출범 때부터 핵심과제를 반드시 챙기겠다는 의지로 국정기획수석 자리를 정책조정수석으로 부활시켰다.
 

명칭은 바뀌었지만 담당하는 업무는 비슷하다. 국정과제의 기획과 관리가 주 업무이다. 박 대통령이 안종범 전 수석을 정책조정수석에 임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책조정수석이 되기 전 경제수석이던 그는 기초연금, 생애주기별 복지 등 박근혜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을 기획한 ‘정책 브레인’으로 꼽힌다.


▲정무수석비서관 = 정무수석의 ‘정무’란 정치나 국가 행정에 관계되는 사무를 뜻한다. 대 국회·정당 업무 및 행정과 치안에 관련된 사안을 챙기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유능한 정무수석은 여야 의원들을 넘나들며 ‘정부-국회-국민’의 가교 역할을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뭐 하는 사람이냐”는 핀잔을 듣는 경우가 이전에도 왕왕 있었다.

‘박근혜의 여자’라 불렸던 조윤선 전 정무수석도 재임하는 11개월 동안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증언하며 ‘역대급 무능한 정무수석’이란 비난을 들었다.

실제로 정부와 국회의 훌륭한 가교가 되기 위해서는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소통하며 그의 국정철학을 충분히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최순실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재원 전 정무수석은 출입기자들에게 “외롭고 슬픈 박 대통령을 도와달라”고 말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모든 고급 비밀정보가 집중”
국가 권력 최정점 민정수석

▲민정수석비서관 = 민정수석의 ‘민정’은 백성의 뜻을 살핀다는 뜻이다. ‘민정을 살핀다’는 건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된 말인데 말 그대로 국민 여론 및 민심 동향을 파악하는 일을 일컫는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1960년대 박정희정권 때 신설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민심을 살필 뿐 아니라 국정원·경찰·검찰·국세청·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의 업무도 총괄, 검찰과 법무부에 대한 인사검증 권한도 갖고 있다. 때문에 이들 기관에서 나오는 정보는 모두 민정수석실로 모여든다.
 

사실상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인사에 대해 ‘민정이 손썼다’는 얘기가 과거 정부서도 종종 나왔다. 얼마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검찰에 출석할 때 보인 ‘당당한’ 태도도 괜한 것이 아닌 셈이다.

▲공직기강비서관 = 민정수석실에 소속된 공직기강비서관은 1995년 김영삼정부 때 신설된 직제다. 기존 민정수석실 내 사정1비서관이 맡던 업무였던 주요인사들의 인사정보 관리를 전담하기 위해 생겨났다.

민정수석실 내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이 특별히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건, 박근혜정부의 첫 담당자였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때문이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2014년 최순실의 전 남편인 정윤회씨가 연루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사표를 제출한 바 있다.

현행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따르면 청와대 비서실서 근무할 수 있는 인원은 총 443명이다. 이 중에는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10명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400여명의 직원을 이끄는 수장이기도 하지만, 국민에게 권력을 이양받아 나랏일을 돌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물밑 파워게임
부서간 완력도

이밖에 경제수석비서관은 재정경제, 금융, 산업통상자원, 중소기업, 건설교통 및 농림해양수산 업무를,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통일, 외교, 안보, 국방 및 교민 업무를,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은 교육, 문화체육과 관광진흥에 관련한 업무를 담당한다.

고용복지수석비서관은 보건복지와 여성가족, 노사관계, 고용노동에 관련한 업무를, 홍보수석비서관은 청와대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홍보기획과 국정홍보 관련한 업무를, 인사수석비서관은 청와대 및 국정에 인사배치 및 임명과 관련한 업무를, 미래전략수석비서관은 과학기술, 정보방송통신, 기후환경 등에 관련한 업무를 보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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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