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는?’ 청와대 조직 대해부

말 많은 권력요직 “국민도 잘 모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어지러운 가운데 민정수석실, 부속실 등의 청와대 비서실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청와대 비서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일요시사>에서 한창 말 많은 청와대 비서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최순실 비선 실세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의 수석 비서관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했다. 사표 제출을 지시받은 수석 비서관은 정책조정·정무·민정·외교안보·홍보·경제·미래전략·교육문화·고용복지·인사 등의 10개 조직이다. 

10개의 조직
수석 비서관

2013년 초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던 당시 청와대에는 총 9명의 수석 비서관이 있었다. 전임 이명박정부서 9명의 수석과 이에 준하는 6명의 기획관이 존재하던 것을 ‘슬림화’하겠다는 목적으로 개편했다. 하지만 임기를 거치면서 박근혜정부의 조직도 조금씩 몸집이 커졌다.

잇단 인사 실패가 발생하자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며 인사수석실을 신설했고 임기 3년 차에 들어선 2015년에는 국정기획수석을 정책조정수석으로 개편했다. 한때 대통령을 특별 보좌하는 특보단이 신설됐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의 비서와 기타 특명을 받은 기밀사항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며, 실장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실무를 장리하며 소속공무원을 지휘, 감독한다. 대통령의 비전과 철학과 가치를 담는 유일한 제도적 기제이기도 하다.


청와대 비서실 조직을 보면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중요시 하는 정책영역이 무엇이며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만큼 비서실 조직은 아주 중요하다.

청와대 비서실 조직은 5가지 기능적 이슈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범정부 및 조정 이슈를 담당하는 조직은 비서실장, 국가 안보실장, 인사위원회, 연설 기록 비서관이 있다. 정책적 이슈를 다루는 조직은 국정기획수석, 경제수석, 미래전략수석, 교육문화수석, 고용복지수석, 외교 안보수석 등이 있다.
 

운영 이슈는 민정수석, 총무 비서관, 의전 비서관, 경호실이 담당하며 외부 관계는 정무수석이, 커뮤니케이션 영역은 홍보수석이 담당한다. 장관 내지 차관급의 별정직 공무원이 역임하는 수석비서관은 역대 정권에 따라 명칭 변동이 있었으나 공통적으로 대통령의 정책 입안과 결정을 실질적으로 보좌하는 책무를 맡아왔다.

▲특별감찰관 = 2014년부터 시행된 특별감찰관 제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다. 전임 대통령들이 친인척 및 가족 비리로 나라를 시끄럽게 하자 재발 방지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독립된 지위를 가지는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4촌 이내 친족, 비서실 내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들의 비위행위(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상시 감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공약으로 탄생한 특별감찰관 제도는 출범 2년도 채우지 못한 채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대 특별감찰관으로 취임한 이석수 전 감찰관이 미르·K스포츠재단 및 우병우 민정수석과 관련 내사 중 사임했기 때문이다. 한편 우병우 비서관이 있는 민정수석실도 고위 공무원에 대한 감찰 사안이 있을 때 특별감찰반을 꾸려 운영할 수 있다.

때문에 특별감찰관 제도가 만들어질 당시 기존 민정수석실의 특별감찰반과 업무가 중복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민정수석실의 특별감찰반은 한시적 운영, 특별감찰관은 상시적 운영이라는 것이다.

비리 재발 방지 대책으로 특별감찰관 공약
출범 2년 채우지 못한채 사실상 마비 상태


▲비서실장 =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대통령 직속 기관인 비서실을 총괄하는 자리다.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따르면 대통령의 명을 받아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되어 있다.

직제상으로는 장관급이지만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기 때문에 국무총리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다. 이명박정부 때는 대통령비서실과 경호실이 통합된 ‘대통령실’을 운영했으나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며 비서실과 경호실이 다시 분리됐다. 역대 박근혜정부 비서실장 중 가장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던 건 김기춘 전 실장이다.

78세 고령으로 비서실장에 오른 김 전 실장은 참모진 인사 등에 깊숙이 관여하며 ‘기춘대원군’이라 불렸다. 김기춘을 비롯해 허태열, 이병기 전 비서실장은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올해 임명된 이원종 전 실장은 취임 5개월 15일 만에 사표를 제출했다. 최순실의 연설문 수정 의혹에 대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시국과 동떨어진 발언을 한 이 전 실장은 실제로 아무 것도 모르는 ‘허수아비’ 대통령 비서실장이 아니었느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후 김대중정부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한광옥 의원을 신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비서실장 직속으로는 총무비서관과 제1·제2부속비서관, 의전비서관, 연설기록비서관 등 5명의 비서관이 있다.

정책 입안과 결정
실질적으로 보좌

▲총무비서관 = 총무비서관은 비서실의 인사관리와 재무·행정 업무, 국유재산과 시설·물품 관리, 경내 행사 등을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 특히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은 청와대의 내부 사이버 보안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때문에 이 전 비서관의 승인이나 묵인 없이는 연설문을 포함한 청와대 문서 유출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부속비서관 = 부속비서관은 총 2명이다. 제1부속비서관은 청와대의 내부 일정을, 제2부속비서관은 본래 대통령 부인의 일정을 담당하는 역할이지만, 현 정부에선 1·2부속비서관이 통합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맡고 있는 탓에 ‘비서실 안의 비서실’이라 불릴 만큼 요직이나 그만큼 부패하기 쉬운 조직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봐야 하는 문서나 자료도 통상 부속비서관을 거쳐 전달된다. 보고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도 부속비서관의 몫이다.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최순실에게 매일 30㎝ 두께의 대통령 보고서를 전달했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의전비서관 = 대통령의 일정 관리와 접견 및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 등을 담당한다. 일정 관리에 있어 부속실과 차별되는 점은 부속실의 경우 청와대 내부 일정을, 의전실의 경우 공식·대외 일정을 담당하는 것이다. 국빈급 오·만찬도 의전비서관이 챙긴다.


▲연설기록비서관 = 대통령이 발표하는 연설문 작성을 담당한다. 연설문은 연설기록비서관이 작성한 뒤 통상 부속실로 넘어간다. 박근혜정부에선 출범 때부터 조인근 전 연설기록비서관이 ‘대통령의 펜’ 역할을 해왔다.

명칭 바뀌어도
업무는 비슷

여담으로 조 전 비서관의 글쓰기 실력은 정치권 안팎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를 영입하려 애썼다고 한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최순실의 연설문 수정 의혹이 나온 뒤 돌연 사표를 내고 사흘간 잠적했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 = 정책조정수석은 2015년 대대적인 청와대 조직 개편과 함께 생겨났다. 이전에는 국정기획수석이라 불리던 직책이 정책조정수석으로 바뀌었다. 사실 국정기획수석은 이명박정부 때 신설된 자리다.

4대강, 세종시 등 굵직굵직한 정부의 중점 사업을 관리하면서 수석 중에서도 파워가 가장 센 ‘왕수석’으로 통했다. 박근혜정부 역시 출범 때부터 핵심과제를 반드시 챙기겠다는 의지로 국정기획수석 자리를 정책조정수석으로 부활시켰다.
 

명칭은 바뀌었지만 담당하는 업무는 비슷하다. 국정과제의 기획과 관리가 주 업무이다. 박 대통령이 안종범 전 수석을 정책조정수석에 임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책조정수석이 되기 전 경제수석이던 그는 기초연금, 생애주기별 복지 등 박근혜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을 기획한 ‘정책 브레인’으로 꼽힌다.


▲정무수석비서관 = 정무수석의 ‘정무’란 정치나 국가 행정에 관계되는 사무를 뜻한다. 대 국회·정당 업무 및 행정과 치안에 관련된 사안을 챙기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유능한 정무수석은 여야 의원들을 넘나들며 ‘정부-국회-국민’의 가교 역할을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뭐 하는 사람이냐”는 핀잔을 듣는 경우가 이전에도 왕왕 있었다.

‘박근혜의 여자’라 불렸던 조윤선 전 정무수석도 재임하는 11개월 동안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증언하며 ‘역대급 무능한 정무수석’이란 비난을 들었다.

실제로 정부와 국회의 훌륭한 가교가 되기 위해서는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소통하며 그의 국정철학을 충분히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최순실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재원 전 정무수석은 출입기자들에게 “외롭고 슬픈 박 대통령을 도와달라”고 말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모든 고급 비밀정보가 집중”
국가 권력 최정점 민정수석

▲민정수석비서관 = 민정수석의 ‘민정’은 백성의 뜻을 살핀다는 뜻이다. ‘민정을 살핀다’는 건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된 말인데 말 그대로 국민 여론 및 민심 동향을 파악하는 일을 일컫는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1960년대 박정희정권 때 신설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민심을 살필 뿐 아니라 국정원·경찰·검찰·국세청·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의 업무도 총괄, 검찰과 법무부에 대한 인사검증 권한도 갖고 있다. 때문에 이들 기관에서 나오는 정보는 모두 민정수석실로 모여든다.
 

사실상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인사에 대해 ‘민정이 손썼다’는 얘기가 과거 정부서도 종종 나왔다. 얼마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검찰에 출석할 때 보인 ‘당당한’ 태도도 괜한 것이 아닌 셈이다.

▲공직기강비서관 = 민정수석실에 소속된 공직기강비서관은 1995년 김영삼정부 때 신설된 직제다. 기존 민정수석실 내 사정1비서관이 맡던 업무였던 주요인사들의 인사정보 관리를 전담하기 위해 생겨났다.

민정수석실 내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이 특별히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건, 박근혜정부의 첫 담당자였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때문이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2014년 최순실의 전 남편인 정윤회씨가 연루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사표를 제출한 바 있다.

현행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따르면 청와대 비서실서 근무할 수 있는 인원은 총 443명이다. 이 중에는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10명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400여명의 직원을 이끄는 수장이기도 하지만, 국민에게 권력을 이양받아 나랏일을 돌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물밑 파워게임
부서간 완력도

이밖에 경제수석비서관은 재정경제, 금융, 산업통상자원, 중소기업, 건설교통 및 농림해양수산 업무를,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통일, 외교, 안보, 국방 및 교민 업무를,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은 교육, 문화체육과 관광진흥에 관련한 업무를 담당한다.

고용복지수석비서관은 보건복지와 여성가족, 노사관계, 고용노동에 관련한 업무를, 홍보수석비서관은 청와대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홍보기획과 국정홍보 관련한 업무를, 인사수석비서관은 청와대 및 국정에 인사배치 및 임명과 관련한 업무를, 미래전략수석비서관은 과학기술, 정보방송통신, 기후환경 등에 관련한 업무를 보좌한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