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최현목·박창민 기자 = 사무실이 없다. 직원도 없다.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다. 보통 이런 회사를 ‘페이퍼컴퍼니’라고 한다. 이른바 유령회사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청와대가 이런 수상한 회사와 거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청와대가 정부 부처에 이 업체와 거래하라고 지시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A사는 그 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영빈관서 치러진 수많은 행사를 도맡은 행사 대행 용역회사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2015년 교육정보화종합시상식 행사 운영의 수의계약 사유서’에 따르면 “VIP(박 대통령) 행사 경험이 풍부한 본 업체(A사)와 수의 계약을 진행하게 됨”이라며 “실적이 우수하며, 정부부처 VIP행사 관련 다수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교육부 산하 준정부기관이다.
청와대 행사 싹쓸이
부러움의 대상
실제로 <일요시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A사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청와대 영빈관서 있었던 ‘어린이날 청와대 초청행사’(2015년 5월5일 청와대) ‘제3차 규제개혁 관계 장관 회의’(2015년 5월6일 청와대 주최) ‘제9회 장애인기능올림픽 선수단 축하 오찬’(2016년 4월19일 장애인고용공단) ‘바이오 산업생태계, 탄소자원화 발전전략 보고회’(2016년 4월21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등의 행사를 도맡았다.
A사는 이외 다수의 청와대 관련 행사를 진행한 것으로 보여진다.
A사가 진행한 행사는 모두 수의계약으로 이루어졌다. 국가·지방자치단체 등이 체결하는 모든 계약은 경쟁입찰이 원칙이다. 하지만 예외 조항이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26조(수의계약에 의할 수 있는 경우)에 따르면 5000만원 이하인 물품의 제조·구매·용역 그 밖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A사가 청와대와 각 부처에서 수주한 금액은 1000만원서 1600만원 사이기 때문에 수의계약 요건에 해당된다.
업계에선 A사가 부러움의 대상이다. 고정적으로 청와대와 각 부처에서 일감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행사 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일감을 고정적으로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청와대 일을 많이 한 업체는 보기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 역시 수의계약으로 한 업체에게 이렇게 많은 일감을 주는 것은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의계약으로 특정 업체만 쓰는 것은 특혜라고 의심하기 딱 좋다. 이 때문에 청와대 수의계약을 하는 담당자가 이런 의심을 안 받으려고 서로서로가 조심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어떻게 맡았나?
누가 밀어줬나?
그런데 A사가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다. 인터넷에는 A사와 관련된 정보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이외에도 A사의 견적서에 나와 있는 주소와 세금 계산서에 나온 주소도 일치하지 않다. 직원도 없다. 이쯤 되면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로 의심해볼 만하다는 게 중론이다.
먼저 <일요시사>가 입수한 A사의 견적서에 따르면 회사 대표로 P씨가 등재돼 있다. 그런데 회사 주소지는 A사의 이사로 등재돼 있는 Y씨의 집. 견적서에 나온 A사의 주소는 경기 김포시 김포대로 355-1 번지로 돼 있다.
하지만 이 주소에는 허름한 주택만 있을 뿐 사무실로 보일만한 곳은 없었다. 등기부등록부에 따르면 지목은 임야로 돼 있는데, 사실상 적절치 않은 곳에 회사 주소가 등록돼 있는 셈이다.
석연치 않은 점은 또 있다. 견적서에 기재돼 있는 A사의 사업자 번호 141-00-00000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애견 쇼핑몰 O사가 등장한다. 홈페이지의 O사 주소지는 경기도 파주시 상지석동 745-7번지로 돼 있다.
같은 A사 사업자 번호에 두 개의 회사 주소가 존재하는 셈이다. 혹시나 다른 회사가 아닐까 확인했지만, 홈페이지 하단에 에 있는 회사 대표자에 P씨의 이름이 있다. 핸드폰 번호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진짜 주소는 어딜까. A사의 사업자등록증에 따르면 회사 소재지는 경기도 파주시 운정역길 35-31(상지석동 745-7번지)이다. 그런데 이 주소에는 사무실이라고 보기 어려운 2층 주택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 주택의 소유주는 P씨이며, 그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직원 없고 홈페이지도 없어
수상한 회사와 이상한 거래
부처에 거래 지시한 의혹도
결국 청와대 일감을 받고 있는 업체가 사무실 하나 없는 셈이다. A사의 직원은 대표이사인 P씨와 이사인 Y씨 말고는 없다. 이쯤 되면 사실상 페이퍼컴퍼니라고 봐도 무방하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청와대 행사 정도 수의 계약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가 될 텐데. 수상한 회사”라고 말했다.
그런데 A사는 견적서를 과도하게 부풀린 의혹도 있다. A사는 주로 행사 제작물 총괄 기획 및 관리를 담당한다. 실내현수막 제작, (실내 현수막) 수정 작업, 현장설치 및 철수, 행사 좌석배치도, 참가자 네임텍(비표)제작, 참석자 명패 제작 및 출력, 회의용 펜접시 세팅, 좌석라벨지 출력 및 소모성 문구류 등을 행사 전반에 필요한 물품 제작 및 보급한다. 회의용 디지털 음향장비 대여 및 철수도 한다.
이중 특히 과다하게 견적서를 부풀린 것으로 보이는 항목은 실내 현수막 제작과 (실내 현수막) 디자인 및 수정 작업, 회의용 음향장비 대여다. 올해 4월21일 청와대 영빈관서 박 대통령이 참석한 ‘바이오 산업생태계, 탄소자원화 발전전략 보고회’(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주제)도 A사가 행사 대행을 맡았다.
A사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견적서에 따르면 총 1233만원 행사 비용이 들어갔다. 복수의 행사 대행업체에 따르면 이 견적서가 과다하게 청구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행사 내부 현수막 제작비용과 현수막 디자인 및 수정 작업 비용이 소비자 단가보다 비싸다는 것.
견적서에 청구된 현수막 제작비용은 총 77만원이 들어갔다. 이 현수막은 3.4m(가로)X5.7m(세로)의 대형 현수막이다. 업계에선 현수막 제작 단가를 ‘1mX1m=1㎡=1만원’으로 산정한다. 이 계산법을 적용하면 3.4mX5.7mX1만원=19만3800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비싸게 잡아도 적정가격은 30만원을 못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A사가 현수막 비용을 과도하게 청구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사무실 주소
찾아보니 주택
현수막 디자인 작업 비용도 과다하게 청구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A사는 디자인 작업 비용으로 150만원을 청구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디자인은 질과 시간, 인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어떻게 작업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현수막 디자인에만 150만원이 들어간 것은 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디자인이라는 것은 산정하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행사에서 A사는 음향장비 대여로 500만원을 청구했다. 업계에선 이 부분도 과하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행사 대행 업계 관계자는 “예산을 아끼려 했다면 충분히 절감할 항목이다. 콘서트도 아니고, 클럽 음향 같이 값비싼 조명장비도 대당 50만원에 대여한다. 2대 만으로도 홀을 충분히 울리고 남는다. 회의에 그런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과하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박 대통령과 관련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각 부처와 해당 기관에 A사에 행사를 맡기라는 정황도 포착됐다. 특히 보수단체서 박 대통령 예방행사가 있을 당시 청와대 행정자치 비서관실에서 A사를 추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견적서 주소는 김포
사업자 주소는 파주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보수 단체가 주최하는 박 대통령 의전 청와대 지침에 따르면 ‘이벤트 업체 협의(청와대 추천)·기획·A사 010-0000-0000’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 단체는 청와대 지침대로 A사에 행사 용역을 맡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보수 단체 역시 청와대 지침이 내려가 A사에게 용역을 맡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럴 경우 해당 기관에선 청와대가 추천한 A사에 행사를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게 관계 부처의 설명이다.
그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청와대 의전실과 업무를 조율했던 한 관계자는 “청와대서 추천한 곳에서 안 했다가 밉보이기 십상이라 (청와대서)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마치 손님이 행사를 기획하는 꼴이다.
반면 A사에 행사 용역을 줬던 관계 부처들은 청와대 추천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관계자는 “작년에도 (A사가) 우리행사를 했었다. 알고 있던 업체기 때문에 선정했다. 청와대 행사 경험이 많은 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고용노동부가 추천해줬다. 청와대 오찬 행사 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과거의 업체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 관계자는 “오랫동안 행사를 꽤했던 업체다. 문제될 게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청와대 추천은 없었다”고 말했다.
견적서 부풀린
뻥튀기 의혹도
청와대 역시 해당 부처에 ‘추천한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행사는 해당 주무 부처에서 기획한다. 청와대가 관여할 이유가 없다”며 “하지만 주무부처가 경호 문제로 행사 선정이 어려울 경우가 있다. 이때는 몇 군대 업체를 소개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chm@ilyosisa.co.kr>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A사측 해명과 반박
A사는 청와대가 정부 부처에 행사 대행 일감을 몰아준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실체가 모호한 페이퍼컴퍼니 의혹도 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요시사>는 A사 관계자와 전화 통화를 통해 해명과 반박을 들어봤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A사가 청와대 관련 행사를 많이 했던데.
▲개인적으로 청와대 일을 한지 25년이 넘었다.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이 있다.
▲사업자 등록증에 보면 서비스, 영상촬영, 이벤트 대행 등 다 들어가 있다.
-견적서에 나온 주소랑 사업자 번호 주소와 다른데.
▲사업장 주소는 파주로 돼 있으며, 사무실은 김포로 돼 있다.
-사무실 같지는 않고 주택이던데.
▲맞다. 사무실로 겸용해서 쓰고 있다.
-사업자 번호를 검색하니 애견 용품 쇼핑몰이 나오던데.
▲사업자 번호를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냐?(애견 쇼핑몰은 P대표의 부인이 운영하고 있다. 부업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페이지도 없고, 청와대 행사를 많이 하는데 업체에 대한 정보가 없다.
▲꼭 홈페이지가 있어야 정상적인 회사 인가? 수십년 간 문제없이 이렇게 해왔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청와대 일감을 이렇게 많이 받았나?
▲우리는 청와대 행사 특성상 경호나 의전 때문에 매뉴얼이 까다롭다. 그런 매뉴얼들을 가급적으로 많이 해본 업체를 정부 부처에서 선호한다. 나는 부처에 있는 공무원들을 많이 알아서 일을 하는 것이다. 누구의 특혜를 받은 것은 아니다.
-청와대서 부처에 A사를 추천했다.
▲그런 일 없다. 우리는 청와대 추천으로 일한 사실이 없다. 업무 편의상 각 부처에서 내려보낸 것 같은데, 우리는 부처의 연락을 받고 일을 한 거다.
-그래도 청와대 일감을 고정적으로 받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우리 말고도 많다. 왜 우리한테만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업체보다 청와대 행사를 더 많이 하는 업체도 많다. 대부분 해당 부처와 유대 관계를 맺고 일을 한 거다.
-일각에선 견적서를 과다하게 청구했다고 하는데.
▲그 업체들은 청와대 행사를 한 적 없는 업체일 것이다. 디자인도 다 외주 업체에 주는 것이다.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