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박근혜 탄핵 & 하야 시나리오

'식물대통령' 하야가 답이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최순실 비선 실세’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짤막한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국정농단 논란은 쉽사리 식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역풍 우려가 있어 금기어로 통했던 ‘탄핵’과 ‘하야’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박근혜정부는 이른바 그로기 상태에 빠진 모양새다.

국민들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진 ‘최순실 게이트’에 분노와 실망감을 넘어 허탈감과 좌절을 느끼고 있다. 말로만 듣던 ‘비선 실세’의 실체가 또렷해지자 박근혜정부의 존립도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 모르쇠로 일관하던 박 대통령이 부랴부랴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사상초유의 ‘비선실세’ 사태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뿔난 민심
성토글 봇물

최순실 비선 실세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박근혜정부는 붕괴 직전에 이르고 있다. 지난 24일 <JTBC뉴스룸>은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봤다고 보도했다. 의혹과 설만 난무했던 상황에서 이른바 ‘물증’을 제시하자 그제야 박 대통령은 꼬리를 내렸다. 보도 이후 20시간이 지난 시점에 박 대통령은 1분40초 분량의 대국민사과를 발표했다.

보좌진이 채 구성되기 전 최순실씨에 연설문 및 홍보 관련 도움을 받았다 내용이었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SNS에 “(박 대통령은) 석고대죄하고 하야해야 한다고 본다”며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썼다. 더민주 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하야 주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앞서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성남시장도 강한 어조로 박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 대국민 사과 다음날인 지난 26일, 이 시장은 “(박 대통령이) 하야하고 거국 중립 내각을 구성해서 국가 권력을 모두 넘기는 맞다”며 “어떻게 국민이 맡긴 통치 권력을 근본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넘기다시피 했느냐. 결국 국정 농단, 헌정 파괴 수준”이라고 일갈했다.


대형 포털사이트의 검색어도 박근혜 대통령에 성난 민심을 반영했다. 지난 26일 국내 양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에서는 ‘하야’ ‘탄핵’ 등의 검색어가 순위에 올랐다. 다음에선 한때 1위가 ‘하야’, 2위가 ‘탄핵’이었고 ‘박근혜 탄핵’이 4위였다. 네이버에선 ‘시국선언’ 또는 ‘이재명’이 1위, ‘하야’가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정치권 외부서도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학생들은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26일,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드러난 적나라한 박근혜 선배님의 비참한 현실에 모든 국민과 서강인은 충격을 금할 길이 없다”며 “선배님께서는 더 이상 서강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십시오”라고 밝혔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며 국민적 불신을 자초할 것이 아니라 직접 국민 앞에 사과하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국민이 대통령으로 납득할 수 없다면 대통령 자리서 물러나야 할 것”이라면서 진상규명과 이에 따른 책임을 요구했다.

서강대 뿐만 아니라 대학가 곳곳서 ‘대통령 비선 실세’ 사태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쏟아지고 있다. 이화여대는 지난 26일, 이대 정문 앞에서 “대한민국, 최순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까”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발표하고 시국선언을 했다.

이대 최은혜 총학생회장은 “대통령 연설문을 포함해 외교, 안보, 심지어는 해외 정상과의 통화 내용까지 모두 최순실씨에게 보고됐다”며 “명백한 국정 농단이고 국기문란”이라고 비판했다.

부산대학교 총학생회도 같은 날 오후 12시 부산대 정문서 시국선언을 열고 “국민의 손으로 뽑은 국가원수 위에 실세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실세에 의한 비리가 정·재계를 비롯한 이나라 곳곳에 만연해있다는 사실이 통탄스럽다”고 규탄했다.

못믿을 청와대
탄핵 절차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박 대통령의 하야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이후 청와대의 행보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다음날, 청와대는 연설문 유출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라는 지적에 대해 “언론들이 분석해 놓은 것을 봤는데 대부분이 (법 위반이) 아닌 쪽으로 해석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연설문) 유출 부분도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것도 있고, 또 (수사에) 포함될 부분도 있을 테니까 검찰 수사를 지켜보도록 하자”고 말했다. 자체 감사는 언급하지 않은 채 검찰에 공을 넘긴 것이다.
 

26일 국회 운영위원회의에 출석한 이원종 비서실장은 비선 실세가 있는줄 몰랐다는 취지로 “국민들에게 많은 아픔을 줬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를 입고 마음이 아픈 분이 대통령”이라며 박 대통령을 피해자로 규정하며 감쌌다.

이처럼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청와대 내부에선 박 대통령을 비호하는 세력이 건재해 대통령의 하야는 어려운 모양새다.

문서유출이 법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의 청와대 답변은 지난 2014년 박관천 경정의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 당시 청와대 반응과 모순된다. 당시 박 대통령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며 일벌백계를 주문했다. 그 결과 박관천 전 경정은 구속 기소돼 1심서 징역 7년과 추징금 4340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난 4월 항소심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석방됐다.

안 먹히는 개헌카드…최순실 사태 일파만파
자고 일어나면 펑펑…계속 샘솟는 의혹들

문건 한 개 유출을 놓고 일벌백계를 주문했던 청와대가 국정 전반에 이르는 문서 유출에 대해서는 법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또한 박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및 공무상 비밀누설죄를 위반했을 소지가 크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 청와대의 거수기 역할을 자처했던 검찰의 모습에서 살아있는 권력에 손을 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통령은 재직 중에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조항도 박 대통령의 자리 보존에 힘을 실어준다.

‘하야가 어렵다면 탄핵이라도 해야 되지 않느냐’는 여론이 득세하고 있어 박 대통령이 탄핵을 피해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야당 내부서도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탄핵’이라는 단어가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26일 국회서 열린 더민주 긴급 의총 직후 이재정 원내대변인은 “국민 여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며 “어제 포털 검색어 1,2위에 하야와 탄핵이 있었는데 의원들도 여론을 전달하는 과정에 자신의 의견을 섞어서 말한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원내대변인의 이 같은 발언으로 미뤄볼 때 의총서 탄핵을 주장한 의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 탄핵 가능성에 앞서 탄핵 절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 의원 과반 발의와 재적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탄핵소추의 의결이 있을 때에는 의장은 지체 없이 소추의결서의 정본을 법제사법위원장인 소추위원에게 송달한다. 소추의결서가 송달된 때에는 피소추자의 권한행사는 정지된다. 이를 헌법재판소가 180일 이내에 심리를 거쳐 탄핵의 최종여부를 결정한다. 헌법재판관 중 6인 이상의 인용의견이 있어야 탄핵이 통과된다.


노무현은 되고
박근혜 안된다?

과거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속 의원 159명의 서명을 받아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재적의원 270명 가운데 195명이 투표해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탄핵소추 결의안이 가결됐다. 소추의결서는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송달됐다.
 

당시 소추위원인 김 전 비서실장은 주장 요지에 “공무원의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모든' 행위가 탄핵대상이며 '중대한' 위반행위만이 탄핵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론분열을 조장하는 발언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및 독립성을 저해했고, 국민에게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 극심한 고통과 불행을 안겨줌으로써 헌법 제10조(국민의 행복추구권 보장의무)를 위반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사유는 ▲특정 정당을 지지한 행위 ▲헌법기관을 경시한 행위 ▲썬앤문 관련 불법정치자금 수수 ▲대선캠프 관련 불법정치자금 수수 ▲최모씨와 관련된 비리 ▲ 안모씨과 관련된 비리 등으로 적시됐다.

그러나 그해 5월14일 헌법재판소에서 '법률 위반은 일부 인정되지만 대통령을 그만두게 할 만큼 중대한 사유라고 할 수 없다'며 기각하며 마무리됐다.

박 대통령의 경우 탄핵소추까지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상황이다. 20대 국회의 정당별 의석수 전체 300석 가운데 야권의 3당의 의석수는 167석(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으로 절반을 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결을 위한 3분의2인 200석에는 37석이 부족한 상황이다.


만약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여기에 동참한다면 가결이 될 수도 있다.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다는 불가능하지만은 안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견해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라 탄핵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노무현 때와는 다르다?
현실적 탄핵소추 가능

하지만 ‘하야’ ‘탄핵’ 여부와 관계없이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16개월 동안 ‘식물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미 박 대통령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의혹은 해소된 게 없다.

최씨의 국정관여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표현했고, 드러난 사실과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에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대통령의 권위가 땅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누가 대통령의 명을 따르겠냐는 탄식도 나온다.

대통령의 무책임한 수습의지도 ‘식물대통령’ 우려를 강화시킨다. 각종 의혹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줬다. 최순실 및 비선 의혹 관련자를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지만 우 수석의 지휘 감독을 받는다는 점에서 수사에 신뢰를 주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새누리당 내부서도 박 대통령의 탈당과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26일,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는 국민들의 마음에 와 닿는 사과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모시던 사람들이 다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모습으로 보인다. 결국 그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새누리당은 비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야당의원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가 발생함과 동시에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당초 박 대통령은 4대부문 구조개혁을 마무리하고, 각종 경제활성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주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국정과제 해결을 요원해 보인다.

레임덕 넘어
식물대통령?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이 레임덕을 최소화하고 마지막 명예를 지키려면 최순실씨를 즉각 검찰에 소환시키고, 우 수석을 경질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박 대통령은 1년 4개월 남은 임기동안 레임덕을 넘어 식물대통령으로 남다 끝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통령 만약 물러난다면?

대한민국 헌법 제68조에는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돼 있다. 우선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면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된다. 총리가 권한대행 상태로 국정이 운영된다. 국정 전반을 운영하던 대통령의 공백으로 외교·안보 분야의 누수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야권의 한 의원은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 등 궐위 상태에서 북핵위기와 경제위기를 감당하기는 어렵다”면서 “비상시국회의에서 거국내각안을 만들어 대통령이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해 탄핵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기사 속 기사] 청와대 문건 누가 빼돌렸나?

<한겨레>보도에 따르면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30cm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최씨는 이 자료를 가지고 국정 전반을 논의하는 ‘비선 모임’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자료는 주로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한테 보고한 것들로 거의 매일 밤 청와대의 정호성 제1부속실장이 사무실로 들고 왔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문고리3인방’ 중 한명으로 불린다.

청와대 문건으로 기초로 한 비선모임에서는 최순실씨는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전 총장은 “최씨한테 다 물어보고 승인이 나야 가능한 거라고 보면 된다”며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도 사실 다들 최씨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사 속 기사> 박근혜 지지율 보니…

‘최순실 게이트’ 파문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국정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10%대로 급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4∼26일 전국의 성인 유권자 1528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정수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전체의 21.2%를 기록해 전주에 비해 7.3% 떨어졌다. 특히 26일 일간 조사에서는 긍정평가가 17.5%에 그쳐 취임 후 처음으로 10%개를 기록했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그동안 계속 30% 가량을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라고 했었는데 그 지지율이 절반가량으로, 지지층이 무너져 내렸다”면서 “고정 지지층이라고 읽혀졌던 영남권과 대전·충남 지역에서 모두 크게 하락하면서 지금은 ‘집토끼’라는 대구·경북 외에는 아무 지역이 남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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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