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철의 부동산테크 필승전략 12

미분양 아파트 잘 고르면 ‘흙속의 진주’


주택시장을 비롯한 부동산 시장이 회복조짐을 보이면서 모처럼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아파트 분양시장의 경우 미분양의 약진이 눈에 띈다. 건설사도 분위기가 좋을 때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 층이나 전망이 좋은 곳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잘 고른다면 흙속의 진주를 고를 수 있다. 다만 투자자나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혜택을 보기보다는 향후 미래가치가 있는 상품을 고르는 지혜가 요구되므로 미분양이 된 원인을 꼭 파악한 후 투자에 임해야 한다.

유명 단지도 알고 보면 입주 당시는 ‘미분양’
미분양 3대 키워드 ‘대단지’ ‘교통’ ‘택지지구’

‘흙속의 진주’라는 말이 있다. 미분양 아파트에 어울리는 말이다. 삼성동 아이파크,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 반포 자이, 타워팰리스 등은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단지들이다.
하지만 이 아파트들이 처음 분양 당시부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파트로 대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입주 전만 해도 계약자들을 속 썩였던 미분양 단지에 불과했다. 분양 및 입주와 맞물려 몰아닥친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계약 해지 물량이 늘어나는 등의 곤욕을 치렀다.

대단지 아파트 입주
이후 인기도 높아져

한 부동산 정보업체에 따르면 분양당시 순위 내에서 3가구가 미달했던 반포자이 297㎡(공급면적, 90평)의 평균 시세는 30억5000만원이다. 이는 분양가 28억3000만∼29억8000만원대보다 최고 2억2000만원이 더 오른 것이다. 미계약분이 몰렸던 4층 이하 중소형 평형대의 가격도 껑충 뛰었다. 분양가가 7억원대이었던 84㎡(25평)의 현재 매매가는 평균 8억4500만원을 기록중이다. 현재 평균 14억2500만원의 시세를 형성중인 116㎡(35평)의 분양가는 10억6000만∼11억7000만원대였다.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 역시 비슷하다. 87.46㎡(26평형)는 6억9000만∼7억7000만원대에 분양됐지만 최근에는 9억5000만원대에 매물을 구할 수 있다. 반포동의 대표 랜드마크 단지인 이들 아파트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반포동의 지위도 달라졌다. 지난 20여 년간 강남구 압구정동과 대치동, 도곡동이 차지하던 강남 부촌의 지위를 넘겨받은 신흥 부촌이란 평가가 많아진 것이다.

분양 당시 ‘강남 쪽방’이란 굴욕을 받으며 3순위까지 대거 미달 사태를 빚었던 잠실 ‘리센츠’39㎡(12평)도 애물단지에서 값비싼 진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2005년 1억9500만원대에 분양한 이 아파트는 현재 3억7000만∼4억원대에 거래된다. 5년여 사이 시세가 분양가의 2배가 된 셈이다. 리센츠 초소형평형은 지난 2003년 정부가 전체 물량 중 20%를 60㎡(18평)이하 규모로 짓도록 한 ‘소형평형의무비율’시행에 따라 등장한 것이다.

흙속의 진주는 서울 강남권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주상복합아파트 ‘광화문스페이스본’1단지 역시 2004년 분양 시 대형평형이 대거 미달 났던 곳이지만 지금은 강북의 대표 부촌 아파트로 평가받는다. 175㎡(53평)는 일반 분양가가 9억3000만원대였지만 현재 평균 매매값은 11억7500만원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미분양 아파트는 동과 호수를 선택할 수 있는 선착순 분양인데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으며 재당첨 금지 규정도 적용받지 않는 등 이점이 많다”며 “이런 점을 활용해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받아 적지 않는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좋은 아파트를 고를 때도 일정한 법칙은 존재한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바로 대단지 아파트를 노리라는 것이다. 이유는 입주 후 인구가 한 곳에 밀집돼 학교, 생활편의시설 등이 잘 갖춰지기 때문이다. 또 교통이 불편한 일부 단지의 경우 버스노선이 바뀌거나 새롭게 역이 신설되는 등 개발호재가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STX건설은 수원 장안구 이목동에 ‘수원 장안 STX KAN’을 분양중이다. 전용면적 59∼124㎡ 총 947가구로 이뤄진 대단지 아파트이다. 사업지는 강남과 18㎞거리에 위치해 있어 강남권까지 30분대 진입이 가능하다. 계약금은 10%, 중도금은 이자후불제이다. (031)246-2200

현대산업개발은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주공2단지를 재건축한 ‘안양 석수 아이파크’를 분양중이다. 전용면적은 84∼137㎡이며 총 1134가구 중 204가구가 일반 공급 분이다. 단지 인근으로 노후주택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앞으로 신 주거지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업체 측은 전했다. (031)474-2800
역세권이나 교통호재가 있는 단지들도 끊임없이 관심을 받아오는 곳이다. 교통이 뛰어난 곳은 불황기에도 강한 아파트인데다 임대수요도 풍부하다. 게다가 신규개설되는 도로나 역이 근처에 있으면 향후 시세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

동아건설은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41-1번지 일대에 ‘용산 더 프라임’559가구를 특별 분양중이다. ‘용산 더 프라임’은 지하철 1호선 남영역(2분)과 삼각지역(10분), 효창공원역(15분)을 이용할 수 있는 트리플역세권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KTX 승차역인 용산역, 서울역이 가깝다. 계약금은 분양금액의 5%이며, 2013년 준공 예정이다. (02)797-1139

대성산업 건설부문은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 ‘대성 유니드’아파트를 선착순 동·호수 지정계약 조건으로 분양중이다. 대성유니드는 전세대 중소형 인기평형으로 구성돼 있다. 1호선 신이문역이 도보 3분 거리에 있고 7호선 중화역이 도보 8분 거리에 인접한 2개 노선 더블역세권으로 지하철 이용이 매우 편리하며 중랑천 조망이 가능하다. 중랑천 체육공원을 내 집 앞 정원처럼 누릴 수 있는 웰빙 아파트이다. (02)962-5585

대우건설은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주상복합 아파트 ‘푸르지오 월드마크’를 분양중이다. 이 단지는 성내역과 도보 4분 거리, 잠실역과 5분 거리에 있는 트리플 역세권 아파트로 9호선 연장구간인 석촌역이 가까워 가격상승여력이 높다. 최대 1억8000만원에 파격적인 할인 분양을 하고 있으며, 특히 제2롯데월드 착공이 확정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02)3446-1377

할인, 금융지원 등
다양한 혜택 제공

신도시나 택지지구에 들어서는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편리한 생활환경과 교육여건, 대단지라는 장점을 고루 반영한 곳이 많다. 이는 민간 개발사업은 학교나 단지 내 상가, 노인정 같은 기본적인 부대시설만 만드는 한계가 있지만 택지지구는 교육여건과 대형상업시설 등이 갖춰지고 다른 지역과 연계하는 도로망이나 전철까지 갖춰져 입주 후 투자가치가 급속히 올라가는 특징이 있다.

삼성물산은 한강신도시 Ac-15블록에 ‘Ac-15블록 래미안’을 선보이고 있다. 전용면적은 101.125㎡ 총 579가구로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3.3㎡ 1020만∼1080만원 선이며, 중도금은 이자후불제가 적용된다. 2011년 1월12일 이후 전매가능하며, 입주예정일은 2012년 2월이다. 이 단지는 한강과 연결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로도시로 쾌적한 주거환경을 자랑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031)985-3633

이지건설은 부산 정관신도시 A-3블록에서 ‘정관신도시 이지더원 1차’를 내놓는다. 정관신도시를 가로지르는 정관로와 접하고 있어 부산과 양산, 울산 등 주변 지역으로 이동이 편리하며, 초등학교 2곳과 중·고등학교가 들어설 예정이다. 계약금은 10%다. (051)728-6003

대광이엔씨도 수원 광교신도시 A1블록에서 ‘광교 대광로제비앙’을 분양중이다. 광교신도시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남측으로는 북수원∼상현도로,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고 용인~서울간 고속도로 이용도 쉬운 편이다. 1566-8431


미분양 아파트는 다양한 혜택도 있다. 잘 고른다면 흙속의 진주를 고를 수 있다. 다음은 각종 혜택이다.

▲불황에 돋보이는 ‘분양가 할인’=미분양 마케팅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분양가 할인이다. 경기침체 속에 수요자들이 어느 때보다 가격에 민감해서다. 기존계약자도 단지 활성화를 위해 분양가 할인을 대체로 수용한다는 게 건설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매달 이자에서 해방 ‘금융지원’=금융지원은 이자부담을 덜어준다. 다만 이자후불제는 금리 인상이 되면 ‘족쇄’가 될 수 있고 중도금 무이자도 일부 분양가에 반영될 수 있다. 이율도 업체마다 다르다. 한 대형업체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이율 적용 시 건설사의 신용등급이 반영돼 대형업체가 가산금리가 더 낮다”고 말했다.

▲빌트인 냉장고에서 온돌까지 ‘옵션 및 무료시공’=건설사가 무료로 시공해주는 옵션은 사실상 분양가할인 효과가 있다. 분양가에 알게 모르게 포함됐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서초 방배동 ‘리첸시아 방배’는 무료 발코니 확장과 추가비용 없이 빌트인 냉장고, 매립형 에어컨 등을 제공한다. 울산 중구 유곡동 ‘푸르지오’아파트는 안방 붙박이장을 무료로 시공해주고 바닥에 온돌을 깔아주는 이색 마케팅을 하고 있다.

▲떨어지는 집값에 날개 다는 ‘가격보장제’=집값 하락 우려로 주택구입을 망설이는 수요자에게 ‘책임분양’을 하는 것이다. 분양가 아래로 시세가 떨어지면 건설사가 이를 보전해 준다. 단 층수, 평형 등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

▲빨리 내면 보상하는 ‘선납할인’=건설사가 정한 예정일보다 미리 내면 가격부담을 덜어주는 마케팅 전략이다. 회사는 미분양 속에 유동성을 높일 수 있어 선호한다. 하지만 잔금 선납할인의 경우 주택분양보증의 적용을 받지 못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리스크를 지는 대신 가격할인을 얻을지 선택해야 한다.

▲살아보고 결정하는 ‘전세전환’=‘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전세로 살다가 마음에 들면 매매로 전환할 수 있어 내 집 마련에 유예기간을 둘 수 있다. 전세만 살고 나올 때 처음상태와 똑같아야 한다는 조건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미분양 아파트는 다양한 혜택은 물론 청약통장이 필요없는 데다 동·호수도 직접 지정해 계약할 수 있어 주택 실수요자에게 선택폭이 넓은 편이다. 그러나 미분양으로 남은 단지의 단점을 확인한 뒤 매입해야 한다. 우선 미분양 원인을 찾는 게 중요하다. 또 아파트 브랜드나 입지 및 건축상 문제인지 혹은 침체된 부동산시장 영향인지 따져봐야 한다.

주변에 혐오시설이 있다든가 교통, 교육여건이 불편하다면 입주 후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예정돼 있던 도로나 대중교통 시설이 계획대로 들어설 것인지 알아보는 것도 필수다. 마케팅 직원의 전화 설명을 액면대로 듣기보다 직접 현장을 방문해 주변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해당 지역의 부동산중개업소를 여러 곳 찾아본 뒤 주변 시세와 비교해 분양가격 적정성을 따지는 자세도 요구된다.

특히 오랫동안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물건보다는 분양당첨자의 계약 취소로 생긴 미계약분이나 인기단지여서 분양 직후 잔여가구가 적은 미분양을 노리는 게 좋다. 입지조건이 좋은 택지지구나 대단지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택지지구나 대단지 미분양아파트의 경우 조금이라도 좋은 층과 방향을 잡으려면 너무 뜸을 들이지 않는 게 좋다. 경기 침체 등으로 분양 초기 일시적으로 미분양이 발생했을 때를 노려야 ‘돈 되는 아파트’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분양 잡기’도 시점이 중요한 것이다. 이 같은 점에서 입주 임박 단계까지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것은 메리트가 크지 않을 수 있다. 분양가와 주변 시세를 비교해보는 것도 필수다. 보금자리주택이나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가 주변에 있다면 분양가가 비싼 미분양 아파트는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미분양이 입주 즉시 팔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가격 메리트가 크지 않다. 눈앞의 시장을 보지 말고 2∼3년 후의 뒤를 보고 판단하는 것도 관건이다.

남아 있는 물건보다
계약 취소분 노려야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미분양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장이 좋아질 것으로 판단된다면 멀리보고 미분양을 계약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주택시장의 호황불황 패턴이 2~3년 주기로 짧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좋지 않지만 2∼3년 후 시장상황이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경철은?

- 스피드뱅크, 조인스랜드, 닥터아파트 부동산칼럼니스트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부동산 기사 제공
- 프라임경제 객원기자
-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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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