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호 시몬스 사장 농지 불법전용 의혹

회사일도 바쁜데 주말마다 농사?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농지를 허가 없이 다른 용도로 사용한 기업 사장이 포착됐다. 몇 해 전 비슷한 사건으로 구설에 올랐던 전력이 있건만 별다른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일전에 논란이 됐던 곳과 행정구역을 공유한다. 매일 출퇴근하는 건물의 옥상에서 훤히 보이는 문제의 땅을 볼 때마다 당사자는 어떤 생각에 잠길지 궁금할 따름이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모토로 내건 시몬스는 국내 2위 침대제조업체로 잘 알려져 있다. 1992년 설립 이래 착실한 성장을 거듭한 끝에 국내에서 손꼽히는 침대회사로 입지를 공고히 한 상태. 과거 사치품 혹은 악세서리 정도로 비춰지던 침대가 오늘날 필수 생활 도구로 자리 잡는 데 공헌했다는 점은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

또 불거진
농지 구설

수치로 드러나는 실적 추이는 시몬스의 최근 상승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몬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1418억원으로 1271억원이던 2014년에 비해 10% 가까이 뛰어 올랐다. 단순히 매출만 오른 게 아니다. 256억원의 영업이익은 132억원이던 전년과 비교해 두배 가까이 급증했고 순이익은 109억원에서 166억원으로 치솟았다. 모든 실적 지표가 상승곡선을 그렸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업계에서는 시몬스의 고공행진을 안정호 사장의 젊은 리더십과 연결 짓는다. 2001년 4월 시몬스 최고경영자로 취임한 안 사장은 시몬스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공헌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단순히 경영만 잘 하는 게 아니다. 시몬스 본사가 위치한 경기도 이천시에서 안 사장은 솔선수범을 멈추지 않는다.

지난 2월에는 설 명절을 맞이해 관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해 달라며 약 4000만원 상당의 이천쌀을 이천시에 기탁했다. 모가면 신갈1리 마을회관 건립비용으로 전체 사업비 3억2000만원 가운데 2억2000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상생기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안 사장에게도 낙인처럼 뒤따르는 지우고 싶은 흔적이 존재한다. 안 사장이 직접 나서 지역 사랑을 실천하던 이천시에서 촉발된 논란이었다는 점에서 낯설게 받아들여질 뿐이다.

2014년 안 사장은 불법 농지 매입 의혹에 휘말렸다. 이천시 모가면 일대 약 3만7890㎡의 농지를 2011년 매입해 농업용도로 사용하지 않은 채 가지고 있다가 적발된 혐의다. 농지 취득을 위해서는 소재지 관할 자치단체에서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천 모가면 일대 농업용도 적발
감사원 감사 시작되자 급히 처분

2014년 9월 초 감사원이 본격적인 감사에 들어간 상황에서 안 사장이 문제의 토지를 판매한 시점은 10여일이 지난 후였다. 시기가 맞아 떨어지자 안 사장이 서둘러 농지를 처분했을 가능성에 대한 추측이 무성했다. 
 

모가면 일대의 토지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구설에 올랐다면 비슷한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게 정상이건만 안 사장은 사뭇 달랐다. 취재 결과 안 사장의 불법 농지 획득 및 전용의 증거로 의심되는 사안이 이천시의 다른 곳에서도 드러났다. 모가면 신갈리에서 장소가 대월면 장평리로 바뀌었을 뿐이다.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확인한 결과 안 사장은 대월면 장평리 일대에 10만㎡ 이상의 토지를 보유한 상태다. 지번에 따라 낱개로 쪼개면 약 20곳의 필지에 이른다. 모두 안 사장 명의로 된 토지다.

흥미로운 사실은 안 사장이 보유한 토지 상당수가 에이스침대 제3공장을 둘러싼 형세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몬스의 본사는 이 곳에서 2∼3km 떨어진 대월면 대평로 590(장평리 232번지)에 위치한다. 두 회사는 형제가 각각 독립 경영하는 체제다. 침대시장 1위인 에이스침대를 장남인 안성호 사장이, 2위인 시몬스는 차남인 안정호 사장이 안유수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이 지역에 위치한 안 사장의 거의 모든 토지는 지목이 농지와 산지로 이뤄졌고 일부 과수원 부지를 포함한다. 상당수는 ‘농업진흥구역’으로 묶여 있다.

의심 부르는
이상한 흔적들

농업진흥구역은 농지가 집단화되어 농업 목적으로 이용해야만 하는 땅을 일컫는다. 농업진흥구역 안에서는 농업 생산 또는 농지개량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토지 이용행위가 엄격히 금지된다. 즉, 농사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은 법에 위반됨을 뜻한다. 

따라서 농지전용을 하고자 할 때는 대상농지의 소재지 관할 농지관리위원회의 확인을 거친 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한마디로 복잡한 행정 절차가 뒤따르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농지를 원래 용도로 사용하는 건 아니다. 농지 전용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용도로 사용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포착되곤 한다. 안 사장의 사례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특히 논란이 될 법한 필지는 ‘장평리 7-1번지’ 일대, ‘장평리 2-2번지’ 일대로 귀결된다.

7709㎡에 달하는 장평리 7-1번지 일대의 농지는 가장 논란이 될 만한 지역이다. 지목이 논으로 돼 있는 이곳은 농사를 위한 준비가 착실히 이행된 상태다. 그렇다면 이곳의 소유주인 안 사장이 땅을 고르고 농사를 짓기 위해 기반을 닦았다고 봐야 할까.

시몬스라는 2등 침대기업을 경영하는 것만 해도 바쁜 판국에 안 사장이 직접 농사를 짓는다고 보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차라리 이 땅을 안 사장이 아닌 누군가 대신 경작한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문제는 7-1번지 일대의 농지는 농지법 23조에서 말하는 위탁경영이 금지 구역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이다.

농지법 6조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농지를 소유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물론 몇 가지 예외규정을 두고 있지만 7-1번지의 경우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을 통한 토지 이용은 금지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 사안에 대해 시몬스 측은 “안 사장이 주말을 이용해 틈틈이 손을 댄 땅이 맞다”는 답변을 전해 왔다. 즉, 7-1번지에서 안 사장이 직접 땅을 일구고 농사일을 한 만큼 위법 사항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다른 토지 확인…대월면 10만㎡ 이상 보유
농업진흥구역에…이 부지 역시 논란

장평리 2-2번지(3494㎡) 일대 역시 농지 불법 전용이 의심되긴 마찬가지다. 지목이 논으로 돼 있는 이곳은 원래대로면 경작이 이뤄져야 하는 토지이지만 농지로 보기에는 많은 의문이 따른다.

일단 임의적으로 필지 중간에 전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길이 만들어져 있다. 인공적인 성토절토 과정을 떠올려 봄직하다. 양쪽으로는 물웅덩이가 만들어져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일종의 양어장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사실상 경작이 가능한 토지는 아니라는 뜻이다. 주변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도록 울타리가 쳐져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농업진흥구역에서는 농업 이외의 행위는 법으로 엄격히 금지된다. 농업과 상관 없는 용도로 불법 전용됐을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행정당국에서 농업진흥구역 안에서의 땅을 전용하도록 허가를 쉽사리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지법 32조는 농업진흥구역에서는 농업 생산 또는 농지 개량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아니한 토지이용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해석에 따라 농지법 32조 이외에도 농지법 6/8/9/23조와 국계법 56조에 의율(법적인 조건이 갖춰진 사실이나 행위에 대해 법원이 죄의 경중에 따라 법을 적용함)될 수도있는 사안이다.

시몬스 측은 “무단 전용이 아니라 원래 이곳은 농업용 저수지로 되어 있던 곳이었다”며 ”중간에 변경이 있긴 했지만 원래대로 복원한 게 지금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외부인 출입금지
양쪽엔 물웅덩이

장평리 산 3-5번지 일대 역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따르면 장평리 산 3-5번지 일대는 지번이 임야로 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산 3-5번지 하나의 면적만 따져도 2만5119㎡에 달한다. 하지만 현장 확인 결과 준보존산지인 이곳은 넓은 대지에 성토 절토 과정을 거쳐 잔디를 심은 정원 쯤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다만 장평리 산 3-5번지 인근에는 한눈에 봐도 고가로 보이는 소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다. 시몬스 측은 이를 토대로 이 구역을 소나무 가식장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지목인 임야에 맞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당정국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을까. 확인 결과 이 구역은 이천시에서도 산지관리법을 위반한 채 임의로 전용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곳이었다. 다만 이천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원상복구 명령만 명한 상태였음을 알 수 있었다. 지번이 임야로 된 곳은 산지관리법에 의거 전용하거면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현행 산지관리법 14조는 산지전용을 하려는 자는 그 용도를 정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산지의 종류 및 면적 등의 구분에 따라 산림청장 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결국 이런 과정을 생략했던 시몬스에게 행정당국이 약소하게나마 행정처분을 내렸다고 해석 가능하다.

시몬스 측 관계자는 “지목에 맞게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 용도에 맞게 사용된다고 볼 수 있다”며 “행정처분에 따라 복구의 필요성을 알고 있고 지금은 이를 따르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스가 복구의 의지를 뚜렷이 표출했다고 보기엔 미심쩍다. 이천시 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06년부터 지난 2월19일까지 이 지역은 별다른 외형 변화 없이 현 상태가 유지된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장평리 장평리 7-1번지, 장평리 2-2번지, 산 3-5번지 이외에도 안 사장이 장평리 일대에 소유한 필지 곳곳에서 불법 전용을 의심할만한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목이 과수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용도로 의심되는 구역(장평리 3-2번지, 장평리 3-3번지), 농지가 도로처럼 쓰이는 경우(장평리 3번지)도 해석에 따라 농지전용 의혹을 살 만한 구역이다.

농업 이외 금지
회사 “직접 농사”

한 토지 전문가는 “농지는 지목대로 사용되어야 함이 기본이지만 다른 용도로 불법사용된 정황이 간혹 드러날 때가 있다”며 “통상 이런 경우 농지법에서 말하는 농업경영과 무관한 행위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만약 당국의 허가가 뒷받침되지 않는 행위였다면 관련법에 의거해 책임을 묻는 게 정상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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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