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이른바 4대악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대통령도 '4대악 척결'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4대악을 뿌리 뽑겠다'는 단순 구호로는 안 된다. 민관합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팔을 걷어부친 사람이 있다. 조태임 한국부인회총본부 회장이다. <일요시사>가 그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거리에서는 물론 집에서조차 안심하고 편히 쉴 수가 없습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해칠지 몰라 불안합니다. 특히 여성들, 아이들, 사회적 약자들은 더 불안합니다. 남성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조태임 한국부인회총본부 회장의 말이다. 박근혜정부는 4대악 척결을 기치로 세웠다. 척결대상은 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각종 정책을 발표하고 사정기관들은 전담반을 편성하는 각 지역사회와 협약을 체결하는 등 발 빠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민관 힘 합쳐야" 하지만 따로 맴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경찰은 경찰대로, 지역사회는 지역사회대로,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4대악 척결에 칼을 빼들었지만 국민들은 아직도 4대악이 생소하기만 하다. '연합'이
[일요시사=사회팀] 컴퓨터가 없던 시절, 한석봉은 '글 잘 쓰는 재주'로 천하가 알아주는 명인이 됐다. 하지만 16세기의 한석봉이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다면 한석봉은 아마 어머니와 함께 떡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학천 이상명 선생은 21세기인 지금도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서예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자 후세에 남겨야 할 보물이다. 흔히 양반(兩班)이라 하면 책상 앞에 앉아 '공자왈 맹자왈'하는 문약한 선비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학천(鶴天) 이상명 선생은 문인(文人)보다는 무인(武人)에 가까운 풍모를 갖고 있었다. "소싯적엔 맨손으로 흉악범을 제압해 경찰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는 그는 태권도와 관련한 일화로 먼저 말문을 열었다. 문무 겸비 "제가 지금은 체격이 좀 있지만 어릴 때는 몸도 약하고 체구도 작아서 친구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그런데 우리 형님 중에서 태권도를 하신 분이 있었어요. 그 형님께 태권도를 처음 배운 게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됐을 거예요. 그때 배우기 시작해서 3년 뒤에는 단증을 땄고요." "중학교 때부터는 시골에
[일요시사=사회팀] 미술품 시장이 불황을 맞았다고는 하지만 갤러리에는 여전히 사람이 넘친다. 갤러리의 꽃인 '큐레이터'도 마찬가지. 유학파 일색인 큐레이터 업계에서 국내파 출신으로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알리고 있는 신진 큐레이터가 있다. 바로 박혜림씨. 크림처럼 달달하면서도 때론 맥주처럼 시원한 구석이 있는 매력적인 큐레이터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759개 직업 중 큐레이터의 직업 만족도는 6위다. 이는 전체 7위를 기록한 대학교수보다 높은 순위며, 예술 계통 직업군 가운데서는 두 번째다. 지난 1999년 서울 인사동에 개관한 '갤러리룩스'는 10여년 동안 '사진전문갤러리'로서의 입지를 차곡차곡 다져왔다. 큐레이터 4년차를 맞고 있는 박혜림씨도 마찬가지. 갤러리룩스 큐레이터로서 박씨는 큰 자부심과 함께 자신의 목표를 하나 둘 이뤄가고 있었다. 남들이 모두 선망하는 직업 "성격이 그래서인지 힘든 걸 잘 모르겠더라고요. 관장님이 휴가도 많이 주시고(웃음). 누가 보면 내숭이라고 하지만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재밌어요. 아직 업계 선배에게 배워야 할 부분도 많고 다뤄보고 싶은 전시도 많은데 사실 직업의 어려움보다는 배움에 대한
[일요시사=사회팀]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사진을 배운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음직한 구절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 이미지의 홍수 속에 이야기는 점차 유실되고 있다. 사진작가 허원은 "사진 하나로 레포트 3장은 쓸 수 있어야 한다. 사진 찍을 때 왜 찍는가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사진에 대한 작가로서의 예의라면서. 수십 년 넘게 셔터를 눌러온 노장이 있다. 소담(笑談) 허원은 한국사진작가협회 정식 회원으로 등재된 인물이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낯설다. 일흔을 앞둔 그는 "아직 어린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며 자신을 낮췄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 뒤에 '선생'이나 '회장'과 같은 명칭 붙이는 걸 좋아하지만 전 그런 게 싫더라고요. 나서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서 저는 그냥 사진 찍고, 찾아오는 후배들 가르치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묵묵히 후배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소박한 노장 2000년 무렵부터 유난히 증가한 사진 인구. 수많은 사진동호회가 생겨나고, 전문가를 자처한 이들도 우후죽순처럼 번졌다. 하
[일요시사=사회팀] 박영길 화백은 상대의 목소리만 듣고도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인물화의 대가'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물화는 그가 가진 재능의 일부일 뿐. 사군자부터 정물화까지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의 붓은 막힘없이 늘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산(芝山)이 붓을 들자 그곳의 시간이 멈춘 듯 했다. 하얀 종이는 이내 푸른 대나무 숲으로 바뀌었고, 바위틈에는 어느 샌가 분홍빛 난이 봉우리를 틔우고 있었다. 서양화가로 이름 높은 지산 박영길 화백은 섬세한 붓놀림으로 마주 본 이를 매료시키는 묘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화려한 경력 "저는 그림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껴요. 자식을 바라볼 때 느끼는 그런 감정 있잖아요. 어려움이 없었냐고요? (그림을 그리려고) 산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무릎이 깨지고, 무릎 맡에 있던 그림이 바람에 날아가고…. 이런 것들은 아주 사소한 건데 어려움이라 보긴 어렵죠." "어쩔 때는요. 내 그림을 보면 조금 창피해요. 제 벌거벗은 자태나 마찬가지거든요. 보통 분신이라고들 하죠. 내 분신인 아이를 잉태하면 몇 달 동안 애지중지하듯 그림에도 그렇게 정성을 들인답니다. 그게
[일요시사=사회팀] 4차원 팝 아티스트 낸시랭이 강남으로 컴백했다. 그는 지난해 말 역대 대통령을 비롯, 대선후보를 유화 팝아트로 묘사해 개인전 <내정간섭>을 열었다. 이후 만 3개월도 안 돼 그는 동일한 묘사법으로 <낸시랭과 강남친구들>이라는 타이틀의 개인전을 열었다. 세계 거물들과 함께 강남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낸시랭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봤다. ‘걸어 다니는 팝아트’라고도 불리는 낸시랭. 그는 지난해 말 <내정간섭>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당시 낸시랭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인물 팝아트를 유화로 표현해 미술계에서는 이른바 “고정관념을 깼다”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내정간섭>에 등장한 인물들은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제18대 대선후보들이었기 때문에 민감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8∼9년 동안 함께한 코코샤넬 고양이를 각 정계인물과 합성시켜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했기 때문. 이번 개인전 또한 세계 거물들을 등장시켜 뉴욕 맨하탄 유명 방송을 비롯한 영국 BBC, 프랑스 유명 매체 등에서 깊은 관심을 보여 절반 이상은 성공한 개인전이라고 회자되고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규당 김인기 화백은 파란 산자락 밑에 작고 아담한 단층집을 마련했다. 밤이면 하얀 별이 하늘을 수놓고 낮이면 마당 앞의 초록 새싹이 말을 건네는 곳. "시골스러운 게 더 좋다"는 김 화백은 그곳에서 자연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규당(閨堂)의 도록을 펼치자 그 안에 새로운 경관이 펼쳐졌다. 샛노란 꽃들이 전해오는 향내음과 푸른 나무 그늘의 서늘함, 굽이진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하얀 하늘과 맞닿아 보드라웠다. 추수를 앞둔 너른 들녘처럼 김인기 화백은 넓은 품으로 손님을 맞았다. 슬럼프 없는 활동 "전 그림에 관해서는 질투와 시기가 없어요. 꼭 유명해져야겠다는 욕심도 없고요. 라이벌은 더더군다나 없어요. 누구보다 잘 하려고 경쟁하듯이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니까…. 그림은 창작이잖아요.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작가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면 그걸로 된 거죠." 김 화백의 그림에는 먹과 멋이 있다. 먹의 올곧은 기운과 여유로운 멋의 조화가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김 화백은 "그림 안에는 반드시 작가의 생각이 들어간다"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림이
[일요시사=사회팀] "침묵이 금인 시대는 갔다." 목아(木芽) 박찬수 선생은 '부처가 입을 열다'라는 작품을 통해 이렇게 선언했다. 늘 닫혀있던 부처의 입을 연 건 그만큼 우리 시대에 해야 할 말이 많아서다. 여기 금보다 더 값진 게 있다. 그건 바로 전통. 이 전통을 말하기 위해 박찬수 선생이 직접 입을 열었다. 경기도 여주에 자리 잡은 목아불교박물관은 평일임에도 견학 온 중학생들로 북적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인 박찬수 목조각장은 지난 1993년 사비를 털어 이 목아불교박물관을 개관했다. 민족혼 전수가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는 이 장인은 "박물관을 지키는 게 민족혼을 지키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민족혼 지킴이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박물관만큼 그 나라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주는 곳은 없어요. 예를 들면 불란서의 루브르 박물관이 대표적이죠. 이렇게 다른 나라들은 박물관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들의 전통을 보존-계승하는데 우리나라는 전통에 관심이 없어요. 세계화에 이어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우리 현실에서 이대로 가다간 한민족의 전통과 고유의 주체성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물관은 그래서 중
[일요시사=사회팀] 하윤지는 미국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뮤지컬에 도전했다. 그는 자신을 '국내 최초'라고 소개했다. 성악을 하다가 뮤지컬로 전향한 배우는 많지만 뮤지컬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오페라 가수라고 규정짓는 아티스트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하윤지는 '국내 최초'란 말에 제법 근접했다. 하윤지는 정통 성악가 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뮤지컬 배우 겸업이라는 이력을 쌓아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모차르트 락'이라는 프랑스 원작 뮤지컬로 국내 무대에 섰다.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그는 성악을 할 때는 성악가로, 뮤지컬을 할 때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며 남다른 의욕을 드러냈다. 도전, 또 도전 "많은 분들이 신기해하시는데 어릴 때는 꿈이 원래 가수였어요. 그런데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거든요. 하지만 저는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계속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노래하게 해달라고. 그랬더니 부모님께서 '정 그렇다면 정통 음악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고…. 한국에서 클래식을 전공한 뒤 유학을 다녀왔어요. 그런데 돌아와 보니 한국의 문화 시장이 많이 달라져있었죠. 뭔가 새롭게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뮤지컬
[일요시사=사회팀] 그림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 아파트라는 독특한 주제. '소통의 단절'이 곧바로 떠올랐다. 심봉민 작가는 "그 부분까지 생각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그림을 통해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고 설명했다. 그의 그림은 사람의 기억을 자극하는 매개였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심봉민 작가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5명 중에 1명이다. 그의 말처럼 미술을 전공한 뒤 미술판에 남아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미술은 길게 봐야 "30명 중에 많아야 5명?" "그림만 그려서는 먹고 살기 힘들잖아요. 갤러리에 그림 한 번 걸고 유명해진다? 그런 지름길은 없어요. 저는 앞으로도 이 길이 힘들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또 조급하진 않아요. 화가는 70대가 돼서도 팔만 움직이면 일할 수 있거든요. 누가 제 작업을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천천히 조금씩 쌓아 가면 되는 거죠. 미술은 길게 봐야합니다." 심 작가는 다른 신진 작가들처럼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림들한테 미안했어요. 제 자신에게도 미안했고. '난 꿈과 멀어지는 걸까?
[일요시사=사회팀] 전통 도자기를 만든다고 하면 왠지 고집스런 장인의 느낌이 든다. 검게 그을린 얼굴, 땀에 젖은 한복.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전통 도예를 오해하고 있는 사이, 선조가 남긴 ‘우리의 것’은 모두 바다 건너 일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무형문화재 박상진 도공은 “어쩔 땐 일본인 수집가에게 더 환대를 받았었다”며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완만한 곡선의 도자기는 붉은 빛의 차(茶)가 담기자 그 맵시를 더했다. 박상진 도공과 마주 앉은 평상에는 형형색색의 다과가 올려졌다. 다도에 정통한 박 도공은 "색(色)과 향(香)과 미(美)가 한데 어우러져야 다도가 완성된다"며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박 도공이 직접 빚은 찻잔을 보고 있자니 그 안에 술(酒)이 담긴다면 또 어떤 모습으로 멋을 더할지 무척 궁금해졌다. "시대흐름 따라야" "너무 딱 떨어지는 건 재미없잖아. 요즘 나오는 찻잔들은 완벽한 좌우대칭이에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걸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겁니다. 재미가 없거든. 멋이 없어. 그리고 그런 건 공장에서 더 잘 만들고. 우리랑은 길이 전혀 다른 거죠." 박 도공은 40여년을 도자기 만드는 일에 매진해왔다. 1971년 고려도요로 입문해 2011
[일요시사=사회팀] 박진화 화백은 한때 모든 그림을 불태운 적이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고등학교 미술교사였던 그는 '그림'을 그렸다가 동료와 함께 구속됐다. 1980년대. 그렇게 모든 것을 잃었어도 그에게 '그림'만은 남았다. 지친 몸을 일으켜 그가 향한 곳은 바로 강화였다. 인천 강화군 대산리에는 '박진화미술관'이 있다. 1991년 한 무명작가는 가족과 함께 서울을 떠나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그곳은 '박진화미술관'이 됐다. 분단 주제로 작품 국내 진보미술의 바통을 이어받은 박진화 화백은 최근 민족미술인협회(이하 민미협) 회장에 당선됐다. 바쁜 일정 속에 만났지만 소박한 그의 웃음은 너무나도 여유롭고, 또 아름다워 보였다. "회장에 취임하고 나서 딱 한 마디만 했어요. 민미협의 자존심을 지키겠습니다." 민미협은 800여 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국내 최대의 진보미술가 단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회원수는 1500여 명에 달해 그 위세가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박 화백은 "1995년을 기점으로 많은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입을 열었다. "꼭 진보미술가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살기 어려워진 것 같아요. 물질적으로도 그
[일요시사=사회팀] 화가 김지희는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갖고 있다. 그가 어릴 때 생각했던 화가는 멋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왠지 가난할 것 같고, 불행하게 살다 병들어 죽을 것만 같은 느낌. 그러나 그림이 가진 '불멸의 가치'에 매료된 '소녀'는 화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 만 스물아홉. 화가 김지희 작가는 국내 신진 여류화가 중 단연 돋보이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뉴욕, 도쿄, 런던, 베이징 등을 포함한 국내외 전시회만 모두 100여 차례. 마이애미 아트아시아아트페어, 뉴욕 레드닷아트페어 등 명망 높은 국제 아트페어에도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화장품 브랜드 미샤(MISSHA)와의 콜라보(MISSHA with Kim Jihee), 걸그룹 '소녀시대'와의 콜라보(GG X Kim Jihee) 등으로 자신의 활동 영역 또한 넓히고 있다. 소녀시대와 협업 2007년 일본 전일전 예술상을 통해 가능성을 알린 김 작가가 본격적인 미술 작업을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이다. 20대 대부분을 국내와 해외를 오고가며 숨 가쁘게 살았던 그였기에 조금은 휴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김 작가는 다음 작업에 대한 고민에 한창이었다. "생각해보면 늘 바빴어요. 고등학교 때도
[일요시사=사회팀] 국내 최초로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 감별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미숙(49) 마리아아카데미 대표. 그는 많은 한국의 소비자들이 질 낮은 커피를 마시고 있다고 지적했다. 커피에 대한 열정으로 20년 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 온 그와의 인터뷰는 ‘진짜 에스프레소’처럼 깊은 여운을 남겼다. "에스프레소 감별사는 와인의 소믈리에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국인 최초로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 감별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미숙 마리아아카데미 대표. 그는 IIAC(커피감정국제연구소)이 인증하는 '에스프레소 감별사' 자격증과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전문가'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 10년에 걸친 시간 동안 통역 없이 이탈리아어를 배우며 커피의 A부터 Z를 알아간 이 대표는 지금도 이탈리아로 날아간 그때의 열정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서 공부 "국내에 원두커피가 1989년 처음 들어왔어요. 저는 1992년부터 커피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고요. 1998년에는 에스프레소 전문점을 전국 10군데에 오픈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인 1999년. '스타벅스'가 우리나라에 처음 진출했는데 때마침 저도 미국 시애틀에 가서 에스프레소에 대해 배우던 참이
[일요시사=정치팀]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한 민주통합당 소속의 박병석 국회부의장은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대전 서구 갑에 당선되면서 헌정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후 내리 3번을 같은 지역에서 당선된 박 부의장은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대선에 패배한 민주통합당과 차기정부의 가교역할을 해야 하는 위치에 놓였다. 박 부의장이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해 당심을 추스르고, 차기 정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가 ‘상생의 정치’를 펼칠 수 있을지. <일요시사>가 민족의 명절 설날을 맞아 정국의 연결고리가 될 그의 속내를 들어보았다. 박병석 국회부의장은 한결같았다. 인터뷰 내내 편안한 미소를 잃지 않은 것도 그렇고, 질문 하나하나 신중하게 답하는 모습도 그랬다. 인터뷰에 앞서 부의장실 문 앞까지 마중 나왔던 것처럼, 인터뷰를 마치고도 그는 친히 취재기자를 배웅했다. 어디에서도 입법부 2인자로서의 권위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참으로 소탈한 인상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익히 들은 바대로 박 부의장의 ‘빈틈없고 강단 있는’ 모습 또한 분명히 엿볼 수 있었다. 괜
[일요시사=사회팀] 시사만화가로 알려진 유기송 화백은 인생의 대부분을 그림과 함께 살았다. 서양화를 배우며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림을 그렸고 이중 절반이 넘는 37년을 시사만화가로 활동했다. "모든 그림에는 작가의 생각이 들어간다. 사람의 생각이 매번 바뀌는 것처럼 그림도 항상 다른 의미로 새롭게 다가온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거장'만이 가진 아우라를 느꼈다. 1940년 인천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유기송 화백은 1968년 <서울신문> 미술부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그는 "만화에 재미를 느껴서 시사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 화백이 본격적인 시사만화가로서 활동한 것은 1989년 <세계일보>로 스카우트되면서부터다. "그때는 배가 고파가지고…. 어디 취직하느냐가 문제였는데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마침 기회가 닿은 <서울신문>에 들어갔지. 그리고 만화를 즐기면서 그리다보니 <세계일보>에 스카우트 된 거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시작 지면신문의 파급력이 막강하던 1970∼80년대. 시사만화가는 그 날의 그림 한 컷으로 '천당과 지옥'을 왔다
[일요시사=사회팀] 글로벌 시대가 도래하면서 의료, 교육, 관광, 금융 등 수많은 계통에서도 서비스라는 수식어는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닌다. 그중 고객만족서비스는 개인 혹은 기업, 나아가서는 한 나라의 이미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미선 코리아매너스쿨 원장은 가급적 많은 이들에게 고객만족서비스교육을 실시해 경제효과를 증대시키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일요시사>가 CS(고객만족서비스)교육의 창시자 이 원장을 만났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이 있다. 생각 없이 던진 말과 행동이 때로는 타인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전직 대한항공 승무원 출신인 이미선 코리아매너스쿨 원장은 이처럼 의도치 않은 언행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례를 방지하고자 기본 에티켓을 제반으로 한 고객만족서비스교육을 실시해 경제효과를 증대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매너가 곧 경쟁력 서울시립대학교 영문학을 전공한 이 원장은 대한항공에서 8년간 승무원과 사장 및 VIP 의전담당을 했고, 대한항공에서 국내 최초로 서비스아카데미 교육원이 창설되면서 초대강사로 활동했다. 그는 사내 임직원을 상대로 기본 에티켓과 고객만족서비
[일요시사=사회팀] '클래식은 어렵다?' 독일 유학파 출신 비올리스트 조아람(27)은 클래식이 대중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의 전당의 고고함보다는 일상으로 초대된 친근함을 말하는 그에게서 한국 클래식의 미래가 엿보였다. 독일 뒤셀도르프.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이곳에 한 한국인 비올리스트가 있었다. 귀국 후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비올리스트 조아람을 <일요시사>가 만났다. -먼저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 안녕하세요. 13살 때 처음 비올라를 시작해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는 비올리스트 조아람입니다. -13살이면 또래에 비해 늦게 음악을 시작하신 거죠. ▲ 네. 클래식은 보통 5∼7살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제 경우에는 사촌오빠가 비올라 전공인데 그 오빠에게 배우다가…. 이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원래 전공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욕심이 좀 생겼죠. -그럼 중학교 입학할 때 이미 비올라 전공을 선택하신 거네요. ▲ 안 그래도 부모님이 반대를 좀 하셨어요. 그냥 피아노를 치는 게 어떻겠냐고. 하지만 전 비올라가 더 좋았어요. 그때는 '예중에 가야지' 이런 생각보다 비올라를 연주하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 좋아서
[일요시사=경제1팀] 암과의 전쟁이다. 매년 7만명이 넘는 국민이 고통에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다. 7분에 한 명 꼴이다. 암 정복. 불가능한 것일까? 아니다. 암의 정복을 가능하게 하는 치료기가 있다.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조규면 유니드파트너스 대표가 '꿈의 암치료기' 도입에 앞장서고 있다. <일요시사>가 조 대표를 만났다. 매년 암과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약 25조원 규모. 암 환자수는 매년 약 20만명(2011년 기준)씩 급증하고 있으며 2015년에는 매년 8만명이 넘는 국민이 암으로 죽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소아암환자는 2만명을 넘는다. 지난 50년간 인류는 암과 싸워왔다. 하지만 항상 패배했다. 암이 '만병의 황제'라 불리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암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키고 암의 종말을 가능하게 하는 치료기의 국내 도입을 앞장서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조규면 유니드파트너스 대표이사다. 암 종말 가능하다 대부분의 회사가 종무식으로 정신없었을 지난달 31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유니드파트너스 본사를 찾았을 때 조 대표는 중입자 가속기 암치료 센터 조감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요시사=정치팀] 역대 대선에서 충청권의 표심은 언제나 승패를 좌우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다. 때문에 충청권의 대표도시인 대전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대전 동구)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비록 초선이지만 대전지역 최연소 자치단체장을 역임하는 등 화려한 이력으로 당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의원을 <일요시사>가 만나봤다.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은 충남 청양군 출신으로 지난 2006년 대전 동구청장에 당선되며 대전 지역 최연소 자치단체장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구청장 시절에는 동구청사 이전과 고속버스터미널 현대화 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그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비록 지난 총선과정에서는 임영호 전 선진통일당 의원에게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고발을 당하는 등 곤란도 겪었지만 최근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합당하면서는 오히려 양당 화합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지역구 표심 모으기에 한창인 이 의원. 그는 과연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인 충청권의 표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다음은 이 의원과의 일문일답. - 처음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이유는 무엇인가? ▲ 나는 충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