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대학로 동숭동 갤러리192에서 만난 김태수 화백은 겸손하면서도 유쾌한 언어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작품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따스한 웃음을 짓게 했다.
경기 파주 가시내 마을. 김태수 화백은 그곳에서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살고 있다. 김 화백은 몸소 작은 텃밭을 가꾸며 땅에서 자라난 작물을 거두고 그 땅에 생명을 심고 있다. 김 화백에게 그림은 그런 '생명'과도 같다. 그의 손길이 닿은 작품에는 갓 피어난 자연의 온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늘 자연과 함께
그가 돌보는 초록빛 채마밭의 따스함처럼 그의 그림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온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작가만한 그림이 또 없다고 했던가. 전시 중인 대학로 한 갤러리에서 만난 김 화백은 주체할 수 없는 온기를 캔버스 밖으로 드러냈다.
"제가 개를 좋아해요. 지금 제 그림이 있기까지는 기르던 개의 영향도 있죠. 특히 10여년 넘게 정들었던 아이(개)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그래서 제주도로 훌쩍 떠났던 적이 있었죠. 그런데 여행을 떠난 그곳에서 유기견과 또 만난 거예요. 사람과 개 사이에도 인연이라는 게 있구나…. 그런데 얼마 못 가서 그 개도 죽었죠. 발견 당시 몸이 많이 아픈 상태였거든요."
"잠깐이지만 그래도 주인이라고 꼬리도 흔들더니 마지막에는 죽는 모습 보여주지 않으려고 사라졌습니다. 제가 그걸 다시 찾아서 땅에 묻어주고 무덤까지 만들고 그랬죠. 사실 제주도 여행 이후로는 제 그림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아주 자연스럽게 생명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지금도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의 오래된 작업노트에는 '예술이란 단순한 공리적 역할로 전락되어서도 안 되고, 인간성의 주된 임무로부터 멀어져서도 안 된다'라는 말이 적혀있다. 그림을 그려가면서 작가 자신의 인격도 완성되어간다는 말일 것이다.
자연 친화적 작가 "일상이 예술"
기존재료에 새로운 표현기법 시도
구체적인 이미지 단순화·추상화
과거 그의 그림을 보면 사각의 평면 안에서 색과 도형이 충돌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단순화하고 추상화하는 형식적인 미가 돋보이는 것.
그는 화선지, 한지, 장지 등 관습적인 재료뿐 아니라 아크릴, 종이죽, 돌가구 등을 이용한 새로운 형식의 표현기법을 늘 시도했다. 김 화백의 말마따나 '독특한 양식의 틀로 이어내려는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제가 그림이 바뀌었다고 말씀드렸는데 최근의 작업은 신문지를 이용해 질감과 색감을 내고 있어요. 분위기도 한층 밝아졌죠. 저는 매일매일 작품을 만듭니다. 아침에는 텃밭도 돌보고, 상추도 따고 그러다가 그림도 그리고 또 부업도 하고. 제 부업에 대해 말씀 안 드렸는데 지금 보고 계신 전시가 바로 부업입니다. 조금 특수한 기획전인데요. 제가 평소에 소일거리로 나뭇가지들을 모아 뱀을 만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뱀들이 작업실에 갇혀 있기는 아깝다고. 전시하고 싶다고 또 연락이 온 거죠. 올해가 '뱀의 해'고 하니까 의미가 있지 않겠냐. 그래서 사람들을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 '5월의 꽃뱀'전을 준비했었죠."
손재주가 남다른 김 화백은 작품의 액자 하나하나까지 직접 만드는 꼼꼼함을 보였다. 그는 "돈이 없으니까 손이 고생한다"며 농담을 건넸지만 사각의 액자 안에 담긴 역동적이면서도 화려한 뱀을 보는 일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저는 어디에 갇혀있는 걸 싫어해요. 부자연스러운 것도 싫고요. 그런데 서울에 있으면 종종 갇혀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숨쉬기도 힘들고. 그런데 제가 있는 마을에는 아직 뱀도 있고, 개도 있고…. 그러고 보면 제가 참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오늘 너무 동물 얘기만 한 것 같은데요(웃음)."
풍성한 색색 배열
얼마 전 '김태수의 심경고백전'을 기획한 갤러리고도의 김순협 대표는 김 화백에 대해 "누구보다 느리게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왔고, 타고난 성품대로 항상 겸손했고,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을 보여주는 작가"라고 평했다.
김 화백의 부드러운 터치가 인상적인 그림 '계절여행' 앞에 섰다. 때때로 이런 그림들이 그립기도 했다. 세밀한 묘사보다는 여유로우면서도 풍성한 색색의 배열로 독자들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그림. 꽃과 나무가 살랑이고, 파랑새가 지저귀는 그의 작품을 본 뒤 먹먹한 여운에 미소 지었다. 오는 10월에 있을 그의 개인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김태수 화백은?]
▲한성대 회화과 졸업
▲1993년 아주갤러리(서울)
▲1995년 서경갤러리(서울)
▲2011년 갤러리 소항초대전(파주 헤이리)
▲2012년 갤러리 고도 기획(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