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도시풍경 대가' 신정무 화백

멋스러운 삶, 그리고 멋스러운 그림

[일요시사=사회팀] 부자와 가난한 자, 역동성과 서정성,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도시의 풍경. 신정무 화백은 이 도시에 매료돼 순간순간을 종이에 담았다. 멋스러웠던 그의 삶처럼 그림도 그의 삶을 닮았다. 

신정무 화백은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 1970년대 동양방송(TBC)에 입사한 신 화백은 <일간스포츠>와 <스포츠서울>을 거쳐 <문화일보>에서 국장을 역임했다. 젊은 시절 아름다운 소프라노와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던 그는 아내와 결혼에 골인, 슬하의 형제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성공한 삶

한 평생을 언론사에 종사했지만 그의 전공은 '미술'이다. <문화일보>에서 상무이사로 정년을 마감한 신 화백은 화가로 전직해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경기 용인에 마련된 그의 작업실에는 색색의 화려한 그림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우아한 클래식이 흐르는 그곳. 마주 본 소파에 앉아 한동안 골몰히 생각하던 신 화백은 기자에게 지난 얘기를 풀어냈다.

"2000년에 정년을 마치고 '내 남은 인생은 그림을 그려야 겠다.' 그렇게 생각했지요.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제가 언론사 임원을 하면서 지면에 많은 작가들도 소개해주고 그랬는데 조금은 텃세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곧 미술계에서 몇몇 분들이 먼저 알아주셨고, 수채화협회에서도 활동하게 됐죠. 그러다보니 한국미술협회에서 수채화분과도 만들게 됐고, 국전 규모 대회의 심사위원장도 하게 됐고. 협회에서 고문이나 자문위원 역할도 하고. 이 정도면 미술계에서도 자리를 잡은 거겠죠?"


신 화백은 개인전만 16차례에 이를 정도로 매년 부지런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의 인정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도 붓을 놓아본 적이 없다. 회사 업무로 바쁠 때에도 스케치북만은 꼭 곁에 뒀다.

해외로 출장을 가거나 교외로 나갈 때는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빠짐없이 그려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스케치노트는 신 화백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려왔는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도시풍경을 많이 그렸어요. 제가 도시를 좋아하거든요. 도시라는 아주 역동적인 구도(Composition). 화판이라는 공간에 도시의 선과 면과 색을 입히는 작업이 저를 기쁘게 합니다. 참 그리고 골프도 좋아해요. PGA 투어도 몇 번 보고 왔는데…. 아마 화단에서 골프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화가는 제가 최초가 아닐까(웃음). 골프의 메커니즘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그리기 좋죠."

불혹에 찾은 '화가의 꿈'
도시·골프·종교가 주제
갇혀있지 않은 자유 화법

골프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신 화백은 20여년 전 한 골프대회에 참가해 홀인원의 짜릿함을 맛보기도 했다. 그때 당시 함께 라운딩에 나섰던 정몽준 의원과의 기념사진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제 아내는 모태신앙인데 저는 뒤늦게 종교와 인연을 맺었어요. 그때 영세를 줬던 신부와는 동갑이라 마음도 많이 통했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제가 아주 열성적인 신앙인은 아니에요. 다만 성당을 위해 또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제 직업이 화가잖아요. 그래서 성화를 좀 그려보면 어떨까 싶어 주위에 카톨릭을 종교로 가진 화가들을 모았죠. 그리고 각자 성서를 모티브로 해서 그림을 그리기로 했죠. 저는 구약의 아가서를 선택했습니다. 앞서 프랑스의 샤갈도 아가서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는데…. 하느님의 사랑이 메인 테마였죠."



무릇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성격이 드러나기 마련. 신 작가의 작품은 활달하면서도 무언가에 갇혀있지 않은 자유로운 느낌을 줬다. 마치 먼 이방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기분. 몇몇 컬렉터들은 그의 그림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며 신 화백에게 직접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사실 그림 자랑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그림은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거지. 강요할 수 없거든요. 다만 많은 사람들이 노후를 설계할 때 너무 부정적으로만 너무 획일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신정무 같은 사람도 있다. 제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이런 노년을 살 수 있구나. 나이 들어서도 원래 자신이 꿈꿨던 일을 할 수 있구나. 제가 하고 있잖아요."

노년의 행복

인터뷰 말미 신 화백은 자신의 그림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그림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상세히 소개했다. 단순히 명성을 얻고자 미술계에 뛰어든 그런 류의 작가는 아닌 듯 보였다. 가장 중요한 건 신 화백 자신이 작가로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남을 의식하지 않아 더욱 당당하고, 나이를 의식하지 않아 더욱 세련된 그의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신정무 화백은?]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채화분과 운영위원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채화분과 심사위원장
▲한국미술협회 고문
▲경기 수채화협회 고문
▲대한민국 수채화작가협회 고문
▲한국수채화협회 자문위원
▲신정무수채화전 외 개인전 16회
▲중앙현대미술대전(시립미술관) 외 단체전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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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