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서양화가 박병호

"예술도 자본주의?…돈보다 자유"

[일요시사=사회팀] 나이보다 훨씬 더 어려보이는 동안을 가진 노(老)화백. 서양화가 박병호 선생은 때론 천진한 아이처럼 때론 속 깊은 맏형처럼 인터뷰에 응했다. 일생을 자유롭게 살았을 것 같은 그지만 이면에는 남모를 고충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허물조차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 당당한 사내였다.




비좁은 작업실, 수북이 쌓인 그림을 보며 그에게 물었다.
"화가를 시작하고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으세요?"
서양화가 박병호 선생은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후회한 적 없어요. 그리고 싶은 그림 그리면서 자유롭게 살면 된 거지."

열악한 현실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그는 50여년을 붓과 함께 살았다. 부부도 몇 십 년을 함께 살면 질린다는데 그림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박 선생은 아픈 아내를 간병하는 중에도 틈틈이 화실에 들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림이 자신의 직업이자 삶이기 때문. 하지만 그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대가로 너무 많은 걸 포기하고 있다.

"한평생 그림만 그렸는데 지금도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이 안 되는 작가가 너무 많습니다.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심지어 미협(한국미술협회) 회원 중에서도 생활이 어려운 작가가 많습니다."

"이건 정말 비참한 거죠. 저는 작가들에 대한 정말 기본적인 정부의 생활 보조 정책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금전적으로 생계비를 보장해 주는 방안이 있고, 작품을 살 수 있는 컬렉터와 작가의 교류를 활발히 해주는 방안도 있고. 찾아보면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러나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는 게 안타깝습니다."


자본주의 논리가 깊숙이 침투한 우리 예술계. 박 선생은 "돈이 있으면 미술계에서 행세할 수 있다"며 몇몇 아마추어 화가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친족이나 남편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수준 이하의 전시회를 여는 작가가 있다고 비판했다.



"자본주의니까 어찌됐든 돈만 많으면 되는 거예요. 개인전은 아무리 작게 해도 한 번에 2000만∼3000만원은 들어갑니다. 그래서 생활이 어려운 작가들은 평생에 한 번 할까 말까 하고요. 그런데 돈이 있으면 어떤 사모님들은 계절마다 전시회를 합니다. 이건 이중섭도 못했던 일이죠. 또 전시회에 걸린 그림들은 그림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인맥 때문에 서로 사고 팔립니다. 그림을 우습게 알면 안 되죠."

그 흔한 종이조차 구할 돈이 없었던 이중섭은 최후의 도화지로 담배 종이를 택했다. 그리고 이중섭이 세상을 떠난 지 반백년이 흐른 지금에도 가난한 화가들의 생활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미협에서 알아주는 마당발로 통하는 박 선생도 재물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감은 가격이 오르는데 그림 값은 안 올라요. 보통 호당 20만∼50만원이 많고, 많게는 100만원, 유명한 화가들은 아시다시피 이보다 더 비싸죠. 그런데 일반 사람들이 한 작품에 수백만원씩이나 하는 그림을 어떻게 사요? 못 사지. 물론 아낌없이 그림을 수집하는 분도 계세요."

"하지만 그런 분들이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법인이나 공공기관에서 사주면 도움이 많이 되는데 이걸 컨트롤하는 게 미협입니다. 미협 본부로 협조 공문이 오면 화가를 추천해서 그림을 소개하는 식이죠. 그러니까 미협의 힘이 얼마나 셉니까? 하지만 그동안 미협은 본래의 기능을 못했던 게 사실이고요."

붓과 함께 50년…남모를 고충 털어놔
대부분 생활고 "정부 생활보조 절실"

금훈의 작업실 한편에는 그가 그린 수많은 그림들이 놓여있다. 기자에게 박 선생은 "이게 다 팔리면 먹고 사는 데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며 농담을 건넸다. 하지만 이내 "이러다 죽으면 마는 것"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 형님도 화가입니다. 형님은 제 그림의 스승이기도 하죠. 어쩌다보니 형님도 저도 그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림이 좋아서 그리다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풍족하지는 않지만 몇 년 전까지 그림으로만 먹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안 돼요. 솔직히 말해 용돈벌기도 힘듭니다. 지방에 있는 화랑은 거의 다 문을 닫았고, 몇몇 고급 갤러리 외에는 다들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래도 전 그림을 그리는 게 좋습니다. 자유롭잖아요.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손만 멀쩡하면 죽기 전까지 그릴 수 있고요.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참 고맙습니다."

그림은 자유

박 선생은 경상도 출신답게 시원시원한 성격을 갖고 있다. 그의 말대로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게' 박 선생의 신념. 그런 그도 살면서 여러 말 못할 일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붙잡아 준 건 그림이었다는 설명이다.

"인터뷰하면서 쓴소리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우리 미술계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젊은 작가들이 이젠 외국에도 나가고, 그곳에서 전시도 하고 그러면서 외연이 조금씩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또 무엇보다 모든 예술의 기본은 바로 '미술'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내가 화가였다는 자부심은 변치 않을 거예요."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박병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현대미술 최고위 수료
▲신미술 심사위원 겸 초대작가
▲서울미술상 수상 외 다수
▲터키 대사관 초청 한·터키전 참여
▲한국미술협회 동작지구 서양화분과 위원장
▲現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