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사진이 잘 나올지 모르겠네요." 해당 김영순 화백은 사진 촬영 내내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늘 사람들을 향한 배려를 잃지 않는 그의 성품은 인터뷰 중간마다 빛났다. 하지만 온화한 그의 눈빛도 그림을 얘기할 때면 달라졌다. 수많은 문하생을 배출한 미술계의 중진으로서 그가 느끼는 책임감은 남달라보였다.
순수 예술의 위기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렵게 인터뷰를 승낙한 해당 김영순 화백은 "예술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며 입을 열었다. 지난 30여 년간 누구보다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며 한국화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한 김 화백. 그는 "어려워도 결국은 그림"이란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다.
"보통 한국화하면 관객이 그림을 통해 향수를 느낀다고들 하죠. 농촌을 그린 산수화에서 사람들이 풀내음을 느끼듯 작가는 작품을 통해 관객이 그림과 혼연일체의 기쁨을 맛보게 할 책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작가가 벚꽃을 푸른색으로 표현했다고 하면 그걸 보는 관객은 푸른 벚꽃을 마주하면서 '아, 벚꽃을 이렇게도 그릴 수 있구나' 혹은 '이런 색을 내는 데는 이유가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예술에 친숙하지 않은 일반인이 이런 생각을 갖게 하려면 작가는 작품을 그릴 때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어려워도 결국 그림
그림의 성패를 가르는 건 '소재'가 아닌 '실력', 그런 면에서 김 화백은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복잡한 그림은 좋지 않다고 얘기한다.
"한국화에서 기암절벽은 좋지 못한 소재로 꼽힙니다. 물론 사진작가들에게는 좋은 소재일 수 있어요. 하지만 소재가 주는 특별한 인상보다는 주어진 소재를 어떻게 작가만의 스타일로 형상화할 것인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특히나 산수화에서는 절륜한 경치를 자주 다루지 않습니다."
"그려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지요. 설악산 비선대처럼 단풍이 물들면 정말 수려한 곳들이 있어요. 저도 3번을 시도했는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화폭 안에 담을 게 많아지니까 욕심도 많아지더라고요. 그런 욕심을 비우고 내가 본 것을 함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그림이 되는 거죠."
대다수의 관객들은 '추상화'보다 '사실화'에 친숙한 것이 사실. 김 화백도 "일단 그림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닮아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덧칠'이 가능한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는 '일획'으로 색과 선을 모두 표현하기 때문에 '사실화'가 더 어렵다는 설명이다.
"무엇인가와 닮은 그림이 더 인정받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닮았다고 해서 꼭 좋은 그림이 아닙니다. 더불어 관객에게 인정받고 잘 팔린다고 해서 그걸 좋은 그림이라고 해선 안 돼요. 다만 그림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선배 작가들의 화풍이라든지 자신이 묘사하고자 하는 것과 닮기 위해 노력해야죠. 그런 과정들을 생략하고선 좋은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수천명 지도 미술계 버팀목 "책임감 남달라"
"그림과 관객의 혼연일체…그것이 작가의 힘"
김 화백은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전남 천관산 주변의 풍광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김 화백은 여러 그림 중 산수화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다. 정이 있고, 푸근하면서도 때 묻지 않은 그림. 김 화백은 늘 "내가 그리는 산수가 정말 한국적인가"란 고민 속에 있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어떤 방법으로 그림을 더욱 맑게 그릴 수 있느냐에 대한 생각이 많아요. 예전에는 정말 느끼는 대로만 그렸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절제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제가 회화에 입문한 뒤로 모두 13분의 스승을 모셨는데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임했죠. 그런데 요즘은 새로 시작하는 작가들에게서 그런 끈기를 볼 수 없는 게 아쉬워요."
해당이라는 아호를 쓴 뒤 수천여 명의 제자를 길러낸 김 화백. 그는 "이젠 나보다 유명해진 화가가 많아 그럴 때 보면 참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후배들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보통은 '경비'라고 하는데 작가들이 쏟은 노력과 경비를 감안하면 작품이 제값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작가가 작업에만 성실히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많은 화랑은 저변 확대에 관심이 없는 것 같고…."
"소재보단 실력"
김 화백이 밝힌 국내 작가는 대략 2만∼4만여 명. 이중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는 작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한국화의 토대를 닦는 일에 꾸준히 매진해 온 김 화백. 그를 아는 한 제자의 말처럼 김 화백은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붓이란 친구와 함께 한국화의 영원한 스승으로 남을 것이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김영순 화백은?]
▲1951년 전남 강진 출생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졸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전공
▲1985년 무등미술제 입선
▲1987∼88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1998∼01년 숭실대·국민대 외래교수
▲2001∼04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2006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2008∼09년 목우회 공모전 심사위원
▲2004∼06년 한국미술협회 이사
▲2006∼09년 한국미술협회 한국화분과 부위원장
▲2008년 경향미술대전 운영위원
▲2009년 경기도 미술대전 운영위원 등
▲현 해당화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