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그동안 '소'하면 이중섭 화백을 떠올리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 '소'를 보면 양홍수 작가를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소처럼 우직이 내면으로 뻗어 가는 양 작가의 그림은 생동적이면서도 강렬한 경험을 전달했다.
현대인은 '힐링'이란 핑계로 문제의 답을 늘 다른 곳에서 찾는다. 하지만 나를 먼저 들여다봐야 상처의 치유가 가능하단 사실을 드러낸 작가가 있다. 동양화가 양홍수 작가는 우직한 먹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려냈다. 부드러움과 화려함을 내던진 그의 먹선은 투박하기 때문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를 찾는다
"이번 전시 주제가 심아(尋我)인데요. 찾을 심과 나 아를 써서 '나를 찾는다'는 뜻입니다. 불교 용어인 '아'를 차용했고요. 아시다시피 사찰에 가면 심우도(尋牛圖)라는 게 있습니다. 어린 동자승이 소를 찾아가는 그림인데 불교에서 이 소가 바로 '아'거든요. 소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진정한 나를 찾는다는 의미고, 사실 전 화가이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은 아녜요. 다만 제 내면의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근원적 욕구를 심우도의 형식을 빌려 그린 거죠."
양 작가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특별히 소라는 소재에 집중했다. 사람의 감정을 소에 이입해 살면서 성내고, 화내고, 욕심 부리는 과정을 이미지로 표현한 것. "일종의 자기 반영으로도 볼 수 있다"고 양 작가는 말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림 속에서 자기 자신을 표현해요. 소라는 동물은 정말 순하죠. 등치는 엄청난데 그렇게 착하고 겁도 많아요. 그런데 화가 나면요. 정말 말릴 수 없을 만큼 무섭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도 다르지 않다고 봐요. 늘 억눌린 채 살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요. 싸우기도 하고요. 이번 전시에선 소라는 동물을 통해 작가 개인의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양 작가는 스스로가 "소처럼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꾸준한 작품 활동 대신 소위 말하는 '딴 짓'을 많이 했다는 게 본인 설명. 그는 "내가 그린 그림으로 물질적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마음이 없어서 편했다"고 회고했다.
"저는 제 스스로가 아둔하면서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게으르고요. 이번 전시된 그림 중에는 '이태백의 시'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도 있습니다. 강물에 비친 달인데요. 하늘 위의 달은 실재하지만 우리가 가지 못하고, 강물 위에 비친 달은 지금 내 앞에 있기 때문에 좀 더 친근하죠. 하지만 강 위의 달은 결국 허상이잖아요. 이런 허상을 잡으려고 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소' 소재로 인간 내면 표현 설치 미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양 작가는 평면과 수묵이라는 틀 속에 자신을 가뒀다. 제한된 범위에서 보다 많은 걸 표현하고자 하는 화가 개인의 욕심 때문이다. 때로는 다양한 색을 써보고 싶다는 충동도 느끼지만 절제된 형식 안에서 원하는 그림을 끌어내는 게 양 작가의 보람이다. "그렇게라도 제한을 두지 않으면 정말 제 멋대로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색에 대한 욕심을 버렸고, 또 먹선을 예쁘게 그리려는 욕심도 버렸습니다. 예쁜 그림은 선에 사로잡혀서 원하는 만큼 표현이 잘 안 나와요. 먹물이 번질 때도 있고요. 작은 것에 구애받음 없이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편입니다." 양 작가의 수묵화는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그림이 구성돼 있기 때문에 색상의 강렬함에서 종종 서양화와 대비된다. 그러나 한 공간에 놓여 있을 때는 그 어떤 작품보다 깊이를 낼 수 있는 그림이 또 수묵화다. "다음에는 군중이 있는 그림도 그려보고 싶어요. 한 10m정도 되는 화선지에 말이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남들이 하지 않았던 그림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 그림도 동자승을 빼고, 소에만 초점을 맞췄거든요. 그래서 소를 그리려다 보니까 이중섭 작가가 생각났어요. 구도가 겹치면 안 되니까 하나하나 다 찾아보면서 '이중섭 작가의 소는 대부분 측면을 그렸다' 이런 나름의 결론도 내렸고요(웃음). 솔직히 신경이 좀 많이 쓰여요. 만약 쥐를 가지고 캐릭터를 만든다고 하면 미키마우스가 생각나지 않겠어요?(웃음) 그러나 또 선배 작가와는 어떻게 다른 느낌으로 표현할까란 욕심이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내면의 치유 양 작가는 보통 관객들은 그림 앞에서 "2초도 서 있지 않는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림을 보고 20초 이상 서 있으면 성공"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은 듯 하다. "그림에 글을 쓴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시선을 잡아 놓는 작가도 있어요. 저도 누가 제 그림 앞을 쓱 지나가면 참 허탈하죠. 내 그림이 저 정도로 시선을 못 끌까. 하지만 혼자만의 동굴에 갇혀있기 보단 이런 반응 속에서 또 다른 동력을 찾기도 합니다. 저는 제 그림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지켜봐도 질리지 않는 그런 그림 있잖아요."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양홍수 작가는?]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관객들, 그림 앞에 20초 서 있으면 성공"
▲1999년 삼정아트스페이스 개인전
▲2010년 경기도미술관전 외 그룹전 다수
▲2012년 홍연아트센터 개인전
▲2013년 갤러리192(서울·동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