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09.18 17:54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05년 설립된 유튜브는 20년 만에 전 세계를 장악했다. ‘온라인 동영상 공유 플랫폼’으로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뛰어난 접근성과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다양한 콘텐츠를 무기로 인간 삶의 구석구석에 파고들었다. 문제는 화려한 빛 뒤에 가려진 이면이다. 인천 송도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20일 인천 연수구 송도동 아파트에서 A씨가 아들 B씨를 총으로 살해했다. 이날은 A씨의 생일로 B씨와 그의 아내, 자녀, 지인 등이 함께했다. 생일 파티는 축하 노래를 부르는 등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자의 비극 범행 동기는? 비극은 A씨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면서 시작됐다. 편의점에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물렸다가 다시 돌아온 A씨는 아들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가방에서 쇠파이프를 꺼내 겨눴다. A씨가 직접 만든 총기였다. 아들을 향해 한 발 발사한 A씨는 곧바로 총신 역할을 하는 쇠파이프를 교체한 뒤 두 발을 더 쐈다. 아들은 세 발 중 두 발을 오른쪽 가슴과 왼쪽 옆구리에 맞았다. A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들의 지인을 향해서도 두 번이나 방아쇠를 당겼으나 다행히 불발됐다. A씨는 며느리에게도 총을 겨눴다. B씨의 아내는 자녀 둘을 방으로 피신시킨 뒤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나왔다. A씨는 그런 며느리에게 소리를 지르며 위협했다. B씨의 아내는 A씨가 총을 재정비하는 사이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B씨의 아내가 경찰에 신고하자 A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공영주차장에 뒀던 렌터카를 타고 도주했다. 이후 A씨는 범행 3시간 만인 지난 21일 오전 12시20분경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인근 도로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국내에서 사제 총기를 이용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배경을 두고 궁금증이 일었다. 특히 A씨의 아내가 국내 유명 피부미용 기업 대표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갖가지 추측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 경찰에서도 프로파일러를 투입하는 등 A씨의 범행 동기를 밝히기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성공한 전처에 대한 분노, 경제적·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본인에 대한 자괴감이 쌓이다가 폭발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유가족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들이 생활비를 끊은 것에 분노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유가족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쇠파이프로 만들어 폭발물도 제작했다 A씨의 범행 동기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서 유가족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은 입장문을 내고 “남편(B씨)의 억울한 죽음이 왜곡되지 않고 아이들이 이 고통을 딛고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A씨의 전 아내도 “저는 피의자와 이혼한 뒤에도 자식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모두 진술할 예정이니 제발 부탁하는데 더는 추측성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사건을 맡은 인천경찰청은 “프로파일링 결과를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A씨는 사제 총기를 만들어 발포했고 또 폭발물도 제작해 집에 설치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서울 도봉구 자택에 인화성 물질과 발화 타이머를 설치했다고 진술했다. 경찰특공대가 출동해 주민 105명을 대피시킨 후 폭발물을 제거했다. A씨가 설치한 폭발물은 실제 폭발 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이 충격적인 점은 A씨가 범행 도구를 직접 만들었다는 데 있다. A씨가 만든 사제 총은 쇠파이프를 잘라 만든 총신에 발사기 역할을 하는 손잡이를 단 형태다. 플라스틱 탄피 안에 비비탄 크기의 쇠구슬이 든 산탄이 장전돼있었다. 폭발물은 시너 14통과 타이머가 결합된 형태였다. A씨는 유튜브를 통해 총기 제작법을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유튜브에는 수천 건이 넘는 총기 제작 영상이 업로드돼있다. 총기 제작을 위한 물품도 전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말 그대로 시간과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A씨처럼 사제 총과 폭발물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각종 추측에 유가족 고통 경찰의 유튜브 영상 삭제 요청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단속이 영상의 제작, 확산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총기 제작 등 사제 무기를 제작하는 영상이 퍼지고 접근성이 좋아지면 모방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전 차단 조치와 법적,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도 제언했다. 경찰청은 2020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5년간 온라인상 총기 제조법 불법 게시물 8893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삭제·차단을 요청했다. 지난 5월 한 달에만 3264건에 대한 삭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경찰청 등 소관 기관의 요청에 따라 총포·화약류 불법 게시물에 대한 심의를 진행한다. 방심위의 불법 무기류 관련 정보 시정 요구 의결 건수는 2021년 744건에서 2022년 5610건으로 8배가량 급증했다. 이후에도 매년 수천 건 이상이 심의되고 있다. 유튜브 측은 총기를 판매하려는 의도로 제작됐거나 시청자에게 총기와 탄약 특정 액세서리의 제조 방법을 안내하거나 액세서리의 장착 방법을 안내하는 콘텐츠는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신고가 접수되면 내부 검토를 거쳐 삭제나 채널 정지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튜브 특성상 영상이 장기간 노출되거나 재업로드 되는 경우가 있어 이를 전부 막진 못하는 실정이다. 법도 있긴 하지만 허술하긴 매한가지다. 현행 총포·도검·화학류 등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총포화약법)은 총기나 폭발물의 제작 방법·설계도 등을 인터넷 등에 게시하거나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모의 총포 등 유사 위협 장치의 게시·판매 행위도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 대상이다. 인터넷 널린 총기 제작법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이 총포화약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사제 총기 제작 행위를 명확히 불법으로 규정하고 관련 정보의 게시·유포에 대해 형사 처벌 및 삭제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골자다. 여기서도 유튜브 같은 해외 사업자가 운영하는 플랫폼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처벌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IT업계에서는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플랫폼 규제안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유튜브의 뛰어난 접근성과 빠른 확산 속도가 역설적으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유튜버들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심해졌고 이 과정에서 자극적인 영상이 여과 없이 시청자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조회 수가 곧 수익과 직결되는 만큼 시청자를 유인할 요소로 도를 넘는 내용의 콘텐츠를 제작해 업로드하는 유튜브 채널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다. 과도한 신상 털기, 박제 등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낙인을 찍는 사례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서 실제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지난해 6월 한 유튜버가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라면서 일반인의 신상을 공개해 사회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은 2004년 12월 경남 밀양 지역 고교생 44명이 울산 여중생 1명을 밀양으로 불러내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다. 일단 유포되면 못 막아 가짜 뉴스 진원지 역할 당시 가해 학생 가운데 30명은 소년원 송치 처분 또는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고 14명은 합의 등으로 인해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다. 아무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의 공분을 샀던 사건이다. ‘집행인’이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던 C씨는 가해자의 얼굴과 이름 등 신상을 공개하는 영상을 2차례 올린 혐의로 기소됐다. C씨가 영상을 올릴 때마다 누리꾼은 언급된 인물의 신상을 털었고 SNS에 악플을 달거나 회사로 전화를 거는 등의 방식으로 반응했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인물이 언급돼 피해를 입는 사례도 생겼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C씨는 지난 4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유튜브나 SNS를 통해 가짜 정보를 관망하는 현상에 대해 이제는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엄벌을 통해 최소한의 신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유튜브가 가짜 뉴스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 됐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나온 유명인 관련 루머가 유튜브를 통해 확산하고 언론 보도로까지 이어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과거보다 짧은 영상을 선호하는 대중의 입맛에 맞게 등장한 1분 이내의 ‘쇼츠’는 퍼지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대형 이슈가 발생하면서 유튜브의 위력이 다시 한번 만천하에 드러났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조차 유튜브를 즐겨보면서 정치에 적용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 여러 차례 자신을 지지하는 쪽 유튜버를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접근성 높고 확산 빠르고 더 큰 문제는 유튜브 영상의 휘발성이다. 누리꾼은 유튜브 영상을 소비한 이후 그대로 흘려버린다. 자신이 접한 영상이 잘못된 정보라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한 유튜브 측의 제재도 미미하다. 누군가에게는 유튜브가 배움의 터전이고 놀이터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범죄를 위한 교재이자 타인에 대한 공격의 시발점일 수 있다. 유튜브의 두 얼굴인 셈이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8·2 전당대회 일정이 변경되면서 선거가 깜깜이 모드에 돌입했다. 정청래 후보가 박찬대 후보를 앞서는 결과가 나왔지만 각종 변수가 튀어나오면서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세론’을 굳히려는 자와 ‘한판 대결’로 결과를 뒤집으려는 자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가 한치 앞도 알 수 없게 된 데에는 선거 일정이 변경된 점이 크게 작용했다. 당초 민주당은 이달 26일 호남, 27일 수도권(경기·인천)을 거쳐 다음 달 2일 서울·강원·제주를 포함해 권역별 순회 경선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수해 복구 작업으로 취소됐다. 대신 권리당원 현장 투표와 지역 투표를 다음 달 2일로 통합해 사실상 ‘원샷’ 경선으로 치르게 됐다. 당심이냐 민심이냐 지난 19일 충청권(대전·세종·충남·충북) 경선에서 정 후보가 박 후보를 크게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개표 결과 정 후보가 62.77%의 득표율로 37.23%를 얻은 박 후보를 25%p 차이로 따돌린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은 대의원 15%, 권리당원 55%, 일반 국민 30% 투표를 반영해 신임 당 대표를 뽑는다. 해당 득표율은 권리당원 투표 결과만 합산한 것으로 대의원·일반 국민 투표 결과는 다음 달 2일 전국 대의원대회에서 발표된다. 정 후보는 투표 결과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투표가 끝난 뒤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직 당원만 믿고 당심만 믿고 끝까지 더 겸손하게, 더 낮게, 더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첫 경선에서 승기를 빼앗긴 박 후보는 “더 열심히 하라고 당원 동지 여러분이 명령을 내려주신 것으로 생각한다”며 “오늘의 부족함을 겸허히 안고 내란 종식, 개혁 완수, 유능하고 일하는 민주당이라는 제 정치적 소명을 당원 및 국민들께 전달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경선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다음 날인 20일 치러진 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 등 영남권 투표 결과 정 후보는 62.55%를, 박 후보는 37.45%를 득표했다. 이로써 충청권과 영남권 투표 결과를 합친 누적 득표율은 정 후보와 박 후보 각각 62.65%, 37.35%로 집계됐다. 이날 두 사람의 합동 연설 기조도 전날과 비슷했다. 정 후보는 “싸움 없이 승리 없고 승리 없이 안정은 없다. 싸움은 제가 할 테니 이재명 대통령께서는 일만 하시라” “궂은 일, 험한 일, 싸울 일은 제가 하겠다” “내란 당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내란당은 해체시켜야 한다” 등 당심일체를 강조하는 동시에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박 후보는 “저는 이재명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라며 “이재명정부의 뜻이 국민에게 닿도록 정치가 먼저 뛰는 ‘선봉장’이 되겠다”고 호소했다. 그동안 여의도 민심은 박 후보, 당원의 민심은 정 후보를 향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던 만큼 경선 결과가 발표되자 수면 아래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박 후보는 원내대표를 지낸 인물로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지역위원장 등으로 이름을 알려 정 후보다 앞설 것이란 예측이 엎어진 셈이다. 두 번의 경선, 25%p로 앞서나간 정 “내란 현재 진행형” 강경파에 한 표 먼저 정 후보의 강한 개혁 의지가 당원들의 한 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판 불출석 의사를 밝히고, ‘아스팔트 보수’로 불리는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 등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내란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민주당 지지층의 요구와 정 후보의 의지가 맞아떨어졌다는 해석이다. 반면 박 후보는 각종 개혁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집권여당 대표로서 국정을 뒷받침하는 ‘안정성’을 강조해 왔다. 그는 합동 연설에서 정 후보의 “이 대통령은 일만 하시라”를 겨냥한 듯 “(정 후보는 제가) 좋아하는 친구지만 ‘내가 싸울 테니, 대통령은 일만 하라’ 이 말에는 반대한다”며 “대통령이 일하게 하려면 대표도 같이 일해야 한다. 국회가 막혀 있으면, 대통령도 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의 첫 1년을 함께할 당 대표는 달라야 한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유능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렇듯 박 후보는 야당과 협치하며 이 대통령의 실용 정치에 발 맞추겠다는 온건적 개혁을 표방했지만 강성 지지층에게 어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정 후보의 지지층이 박 후보를 ‘초식동물’로 부르며 비판하는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전당대회가 ‘어대정(어차피 당 대표는 정청래)’으로 굳어가나 싶더니 단 하나의 사건으로 기류가 돌변했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던 강선우 의원의 거취를 놓고 박 후보의 의미심장한 행보가 당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탓이다.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정 후보는 강 의원을 줄곧 두둔해 왔다. 인사청문회가 한창이던 지난 15일,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여성가족부 강선우 곧 장관님, 힘내시라”며 “발달장애 딸을 키우는 엄마의 심정과 사연을 여러 차례 들었다. 힘내시고 열심히 일하시라. 강선우 파이팅”이라고 적었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 박 후보가 돌연 강 의원을 향해 “결단을 내리시라”며 사실상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지난 23일 오후 3시 반경 박 후보는 “동료 의원이자 내란의 밤 사선을 함께 넘었던 동지로서 아프지만 누군가는 말해야 하기에 나선다”며 “강 후보자가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 대부분 강 의원을 엄호하고 나섰기에 박 후보의 자진 사퇴 요구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솔솔 부는 명심 어느 쪽으로? 약 17분 뒤 강 의원은 SNS를 통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박 의원과 대통령실과의 교감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일련의 과정을 보면 박 의원이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과 발을 맞춘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박 의원은 “사퇴 발표가 날 걸 전혀 알지 못했다”며 대통령실과의 교감설에 선을 그었다. 박 후보는 ‘자진 사퇴 사실을 알고 글을 올린 게 아니냐’는 취재진 질문에 “17분 뒤에 사퇴 발표가 날 걸 미리 알지 못했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위해 강 후보와 같은 마음을 가졌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꼭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고 당원들의 의견도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던 걸 알고 있었다”며 “동료 의원의 결단을 촉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굉장히 오래 고민했지만, 이정부 성공을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이라고 부연했다. 전당대회를 앞둔 만큼 명심의 향배도 언급했다. 박 후보는 “이재명 대통령의 마음, 명심은 국민에게 있다”며 “대통령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가 유불리한 영향이 있을 수는 있지만, 집권여당 대표를 뽑는 데 그걸 명분으로 삼을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강 의원의 사퇴로 논란은 일축됐지만, 25%p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박 후보가 당원들에게 명심을 어필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 후보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선명성보다는 이 대통령과 발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반면 강 의원을 감쌌던 정 후보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는 강 의원의 자진 사퇴에 대해 “동지란 이겨도 함께 이기고, 져도 함께 지는 것. 비가 오면 비를 함께 맞아주는 것”이라며 “인간 강선우를 인간적으로 위로한다”고 밝혔다. 결국 “결단을 내려줘서 감사하다”는 박 후보의 메시지와 온도차를 보이면서 다시 한번 정 후보는 당심, 박 후보는 민심을 강조하는 듯한 모양새가 됐다.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박 후보가 대통령실의 기류를 읽고 (강 후보의 사퇴를) 이야기했다는 해석이 있다”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렇게 읽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한 최고위원은 “그런 입장을 전당대회 중인 후보가 직접 거론하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면서도 “그런데도 그걸 했다는 건 그런 식(대통령실과 교감했다는)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표심 가를 한 끗 차이 반면 같은 당 박지원 의원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명심에 대한 해석을 경계했다. 박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교감설이 나온 배경에 공감하면서도 “어떻게 된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오비이락(‘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이 한 일이 공교롭게 다른 일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의심받게 되는 경우를 비유)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우연의 일치라도 해도 박 후보 측에서는 그런 게 싫지 않을 것”이라며 “정 후보 측에서는 좀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강 의원을 대하는 태도를 놓고 지지층도 두 갈래로 나뉘었다. 박 의원이 사퇴 촉구 메시지를 냈을 당시 댓글에서는 “왜 굳이 나서서 사퇴 압박을 하냐” “국민의힘 프레임에 걸려들었다” 등 날선 반응이 터져 나왔다. 당 대표 후보가 굳이 나서 이재명정부를 제 손으로 흔드는 모양새에 반감을 산 것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박 후보가 총대를 멘 것이라고 봤다. 강 의원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지명 철회는 불가피한 수순이었는데, 박 후보가 이 대통령의 고충을 읽고 먼저 자진 사퇴를 촉구함으로써 정부의 부담을 덜었다는 것이다. 정 후보 측은 지금 이 기세가 마지막까지 유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변수가 존재하지만 이미 두 자릿수로 벌어진 격차를 단숨에 좁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이제 두 후보는 민주당의 텃밭이자 권리당원 비중이 전체의 35%에 달하는 호남으로 시선을 옮겼다. 앞서 치러졌던 충청·영남권 순회 경선은 전체 표심의 일부에 불과한 만큼, 호남과 수도권에서 치러진 ‘원샷’ 경선이 순위를 뒤집을지 이목이 쏠린다. 전국에서 수해가 잇따르면서 두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일정을 중단하고 민주당 의원과 호남 등 현장을 찾아 피해 복구를 위한 봉사활동에 나섰다. 두 후보는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중에도 호남 맞춤 공약을 내세우며 틈새 운동을 이어갔다. 박 후보는 전북특별자치도를 겨냥해 ▲2036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지원체계 구축 ▲교통 인프라 혁신 통한 지역 균형 발전 실현 ▲K-문화 콘텐츠 및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 등을 약속했다. 박-정 경쟁에 뜬금 소환된 강선우? 호남·수도권서 마지막 표심 구애 정 후보는 전남도의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호남특별위원회’ 설치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민주당의 심장인 호남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기 위해 당 대표 직속으로 민원실장을 임명해 민원을 빠르게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전남 숙원 사업인 RE100 관련해서는 바다에 케이블을 설치하는 등 전남을 신재생 에너지 허브로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두 후보는 경쟁관계를 이어가면서도 한 갈래의 목소리로 호남을 향해 구애했다. 정 후보는 “이번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아산시가 빠졌다”며 “호남·영남·충청 등 일부 지역을 추가로 선정해 주실 것을 건의드린다”고 말했다. 박 후보 역시 “나주·곡성·구례·남원·광주 전역, 그리고 영남·충청 일부 지역에 대한 특별재난지역 추가 선포를 요청한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신속 지원 원칙이 실현되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선거운동을 자제하면서도 SNS를 통해 지지층 사로잡기를 위한 막판 스퍼트에 돌입했다. 특히 계엄 옹호 발언으로 논란이 된 강준욱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를 향해 자진 사퇴를 요구하며 저마다 선명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정 후보는 강 전 비서관이 ‘법원 난입이 폭도면 5·18은 폭도란 말도 모자란다’고 발언한 보도를 언급하며 “이건 용납할 수 없다. 대통령께 누를 끼치지말고 스스로 결단하라. 사퇴하라”고 비판했다. 박 후보도 마찬가지로 “인사는 대통령의 권한”이라면서도 “하지만 ‘내란 옹호자’만은 안 된다. 강 비서관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 국민 여러분의 우려에 깊이 공감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강 비서관이 과거 책과 발언을 통해 보인 인식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며 “윤석열-김건희 내란 카르텔의 논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특히 해당 발언들이 담긴 책이 발간된 시점은 지난 3월이다. 국민이 길거리로 나와 내란 세력과 싸우고 있을 때”라고 지적했다. 결국 강 비서관은 논란이 불거진 지 이틀 만에 자진 사퇴했다. 일각에서는 8·2 전당대회를 지난해 치러진 국회의장 선거와 겹쳐 보기도 했다. ‘강경파’ 추미애 의원과 ‘온건파’ 우원식 의원이 겨룬 승부에서 당원들은 추 의원을 강력하게 지지했지만, 민주당 다선 의원들이 추 의원의 강경 노선을 우려해 우 의원을 밀어주면서 그야말로 대이변이 일어난 사건을 떠올린 것이다. 강경 VS 온건 어디서 본 듯 하지만 전당대회 투표권은 의원이 아닌 권리당원에게 있어 의장 선거와 같은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국민주권정부라고 이름을 붙인 이상 앞으로 민주당의 모든 절차는 당원의 뜻에 따르게 돼있다. 이를 거스르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 의원 거취를 놓고 두 의원이 이견을 보였는데 박 의원에게는 일종의 ‘승부수’”라며 “25%p 차이를 뒤엎는 훈풍이 될지 후폭풍이 될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최근 행적이 확인됐다. 지난해 탈옥에 성공한 이후 1년여 만이다. 박씨와 함께 탈옥에 성공했던 인물은 총 3명이다. 이들은 올해 초까지 말레이시아로 여러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박씨는 최근 필리핀 카비테 부근 한 시골 마을로 주거지를 옮겼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초부터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탈옥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교·수사당국은 현지 담당자가 철저하게 관리 중이라며 ‘소극 행정’으로 대처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꼴이다. 1년이 지난 현재, 박씨는 필리핀 서부 지역 한 시골 마을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못 잡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필리핀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후 올해 초까지 총 세 차례 이상 말레이시아 사바주로 밀항을 시도했다. 이들이 밀항을 시도한 곳은 필리핀 남서부 잠비앙가와 민다나오 다바오 시티다. 잠비앙가의 경우 여행경보 4단계인 흑색 경보(여행금지) 발령 지역이다.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흑색 경보 지역을 방문·체류하는 경우, 여권법 제26조 등 관련 규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잠비앙가는 우리나라 국민이 여행할 수 없는 곳인 셈이다. 박씨와 송모씨 등 ‘탈옥 멤버’들은 다바오 시티에서 두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잠비앙가로 이동했다. 잠비앙가에서 술루 제도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루 제도로 이동하던 박씨 일당들은 필리핀 반군에 억류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씨가 밀항을 시도한 잠비앙가를 비롯해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는 이슬람 반군들이 주둔해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해 최소 14명이 사망했다. 당시 민다나오 마긴다나오델수르주의 파갈룽간시에서 필리핀 최대 반군단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두 지휘관과 수하 병력이 총기와 흉기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970년대부터 분리주의 무장투쟁을 벌여온 MILF는 2014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민다나오섬에 설치한 이슬람 임시 자치정부인 ‘방사모로 과도당국(BTA)’과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지역(BARMM)’ 구성에 참여했다. 잠비앙가·민다나오서 ‘뒷돈 도주’ 시도 이슬람 반군에 억류 후 풀려나 마닐라로 MILF는 2019년 9월부터 평화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무기 반납을 시작했지만, 무장 해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여전히 총기를 보유한 MILF 병력은 수천 명 이상이다. 박씨는 반군들에게 마약 및 보이스피싱으로 벌어들인 돈 수천만원을 뇌물로 전달한 이후 풀려났다. 지난 5월 초 박씨는 송씨와 헤어진 후 필리핀 루손섬 카비테주 카비테 시티로 이동했다. 지난달 말에는 카비테 시티 외곽 한 시골 마을에 자신의 현지 부인인 A씨까지 불러 정착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그간 마닐라 타기그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에 거주했다. 현지인들은 보니파시오를 BGC 또는 글로벌 시티로 부른다.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불릴 만큼 고층 빌딩, 고급 주거지, 쇼핑 거리 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파시오의 경우 냉장고와 에어컨 정도만 구비돼있는 콘도 한 유닛의 월세가 필리핀 돈으로 13만~15만페소(약 304만~351만원)에 달한다. 필리핀은 주차장도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차장을 포함하면 월세도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같은 도시에 위치한 원룸 형식의 콘도 월세도 5만5000페소(약 128만원)에 달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경찰도 관련 첩보를 파악해 현지 수사당국과 공조 중이다. 아직 정확한 집 주소나 확실한 거주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이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 넘게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 왔다. 수억 비트코인에 차명 주택 부동산 소유 현지 부인이 조력해 “지속적 현금 조달” 특히,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게 “박씨가 마닐라에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하고 있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했다. 국내 정보기관은 박씨 일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023년 12월과 지난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 교정당국에 박씨의 탈옥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박씨가 탈옥한 것을 두고 필리핀 교정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외교부와 경찰, 법무부 국제형사과 등이 일부 파견을 가 현지에서 한국 범죄자들을 관리하는데, 공문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범죄자와 면담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저 공문만 보내는 것으로는 범죄자들의 탈옥을 막을 수 없다.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잡나 박씨는 A씨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교도소의 취약점을 파악해 탈옥을 계획했다. 사전에 철저히 ‘탈옥 계획’을 구상하고 보안이 허술한 교도소에 잡혔단 뜻이다. 말레이시아로의 밀항 준비도 A씨가 현금 조달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A씨는 박씨가 교도소에서부터 환전한 수억원 이상의 비트코인을 관리해 왔다. 박씨와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한 제보자는 “환전한 비트코인 외에도 A씨가 박씨의 차명 소유 자택 부동산 등 수십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연못이 흙탕물로 변하기까지 미꾸라지 한 마리면 충분했다. 사람들은 물을 맑게 만드는 대신 더 많은 미꾸라지를 연못에 밀어 넣었다. 이제 연못은 바닥을 볼 수 없는 진흙탕으로 변해 버렸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긴급’이라는 두 글자의 힘은 엄청났다. 촌각을 다투는 일일수록 담당자의 재량권은 커지게 마련이다. 일단 진행하고 추후에 상황을 수습하는 게 용인이 되는 일도 많이 있다. 시간 단위로 수십㎞까지 확산할 수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구제역 등 가축전염병 문제가 대표적이다. 확산 방지 죽여서 처리 가축전염병 예방법 제20조(살처분 명령)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제1종 가축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역학조사·정밀검사 결과나 임상증상이 있는 가축의 소유자에게 살처분을 명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1종 가축전염병은 우역, 우폐역, 구제역, 돼지열병, 아프리카돼지열병,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등이다. 제1종 가축전염병은 치사율이 높고 백신으로도 감염 확산을 막기 어려우며 전파 속도가 빨라서 바이러스 숙주 자체를 죽이는 방법을 사용한다. 또 ‘예방적 살처분’이라고 해서 가축전염병 매개체와 직접 접촉했거나 접촉했다고 의심되는 경우 그 장소를 중심으로 확산하거나 그런 우려가 있는 지역의 가축 소유자에게도 지체없이 살처분을 명할 수 있다. 실제 지자체에 가축전염병 의심 신고가 들어오면 진단부터 살처분까지 길게 잡아도 이틀을 넘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년가량 가축 살처분 일을 해온 업계 관계자는 “산란계(알을 낳는 닭) 6만 마리 정도는 퇴비화 작업까지 하룻밤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살처분한 가축을 땅에 묻는 대신 퇴비로 만들어 농가에 무상으로 나눠준다고 했다. 이어 “최근에는 자루에 동물을 잡아 넣고 탄산가스를 주입해 처리한다. 살처분한 동물로 퇴비를 만드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된다. 살처분에 참여한 업체는 바이러스 확산 문제 때문에 1~2주는 일을 맡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긴급’ 이유로 입찰 없어 최저가 낙찰 안 하고 왜? 문제는 감염된 가축을 살처분하는 일을 맡을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가축전염병이 의심된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지자체 담당 공무원은 업체에 연락을 돌린다. 연락을 받은 업체가 견적서를 제출하면 이를 바탕으로 공무원이 업체를 선정한다. 지자체에서 용역 사업을 진행할 때 거치는 공고, 입찰, 평가, 선정 등의 절차가 전부 생략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5조(수의 계약에 의할 수 있는 경우) 제1항 제2호에 의한 조치다. 시행령에 따르면 ‘입찰에 부칠 여유가 없는 긴급복구가 필요한 재난 등 행정안전부령에 따른 재난 복구 등의 경우’ 수의 계약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돼있다. 더 큰 문제는 절차의 불투명성 외에도 업체를 평가하는 잣대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어떤 기준으로 업체를 선정하는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살처분할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지자체에서는 업체 상황을 훤히 알고 있다. 기계는 몇 대가 있는지, 인력은 몇 명이나 보유하고 있는지, 과거에 일은 어떻게 했는지…. 일종의 데이터베이스가 갖춰져 있다. 업무 능력이 비슷하다는 전제라면 비교할 건 가격뿐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최저가 낙찰이 어느 정도 지켜졌다. 다른 지역에서 AI나 ASF가 발생해 살처분했다면 그 단가에 맞춰 견적을 넣거나 공무원하고 협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런 풍토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공무원 손에 다 달렸다 문제가 제기된 곳은 충북 음성군. 음성군청에서 다른 업체와 비교해 1마리당 단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곳을 선정한다거나 살처분 업무 경력이 적은 곳을 고르는 등 석연치 않은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확한 잣대나 투명한 절차까지는 아니어도 업계에 통용되는 규칙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그런 규칙이 다 깨지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말부터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음성군청 가축방역팀 관계자는 AI 등이 발생했을 때 살처분 업체를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 “가축전염병이 발생하면 업체로부터 견적서를 받아 가격이 가장 낮은 곳을 선정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음성군청 관계자의 답변과 달리 지난해 11~12월 음성에서 AI가 발생했을 당시 살처분 업체 최저가 낙찰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7일 한 오리 농장에서 AI가 발생해 살처분이 이뤄졌다. 당시 살처분을 맡은 업체는 A사다. 업계 관계자는 “A사는 당시 1마리당 가격을 3500원에 (견적서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B사는 담당 공무원에게 구두로 1마리당 2000원에 일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살처분 일을 맡은 건 A사였다. A사와 B사의 1마리당 단가 차이가 1500원에 달했지만 더 비싼 곳이 맡은 것이다. 당시 폐사한 오리 수는 5만7000여마리라고 한다. 전체 가격으로 따지면 8500여만원 차이다. 지난해 12월30일 닭 농장에서 AI가 발생했을 때도 똑같은 상황이 재현됐다. 당시 일을 따낸 업체는 C사로, 1마리당 가격으로 2800원을 적어냈다. B사도 1마리당 가격을 1900원 견적으로 내 음성군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1마리당 가격이 900원 비싼 C사가 낙점됐다. 싸게 해도 안 줬다 당시 폐사한 닭 수는 4만3000여 마리로 전체로 보면 3800여만원 차이다. B사 관계자는 “심지어 C사는 원래 인력 업체다. 우리가 살처분 업무할 때 사람이 필요하면 C사에 연락해 공급받았다. 등기부등본에도 C사의 업종은 인력 공급업으로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B사는 살처분한 가축을 퇴비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받은 업체다. C사와 비교해 살처분 업무 능력에 있어서 밀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음성군청 가축방역팀 관계자는 “11월7일에 AI가 발생했을 때는 업체 3곳에만 전화했고 그중 A사의 가격이 가장 낮았다”고 해명했다. 12월30일 상황을 묻자 “B사가 견적을 늦게 냈다”고 답했다. B사는 음성군청 관계자의 해명에 반박했다. B사 관계자는 “11월7일 우리가 AI 발생 소식을 알고 담당자에게 먼저 연락해 단가를 말했다. 그런데도 1500원이나 비싼 A사에 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음성군청 공무원이 B사에 연락하진 않았지만 상황을 알자마자 단가를 제시했는데 무시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2월30일 AI가 터졌을 때는 C사 관계자와 군청에 함께 있었다”며 “나란히 서서 이야기하는데 (단가가 더 비싼) C사가 일을 따갔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후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1900원보다) 더 싸게 일을 할 수 있다고도 했는데 이미 정해진 업체가 있다는 말만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가 입수한 당시 통화 녹음에서 음성군청 관계자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B사 직원을 응대했다. 이미 업체가 정해졌다는 음성군청 관계자의 말에 B사 직원이 “(해당 업체의) 단가가 더 싼가 보죠?”라고 물었을 때도 “가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통화 내용대로라면 가격이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업체 선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기준도 잣대도 불명확 퇴직 공무원 연결고리? B사 관계자는 “보통 의심 신고가 들어온 뒤 역학조사를 거쳐 실제 살처분에 돌입하는 건 다음 날부터다. 아무리 급해도 업체 간 가격을 비교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살처분 업체들이 퇴직 공무원을 영입하면서부터”라고 주장했다. 지자체에서 동물방역 등을 담당했던 공무원이 퇴직한 후 관련 업체에 취업하면서 이른바 업계에 ‘전관예우’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B사 관계자는 “A사의 경우 충북도청에서 동물방역과장을 지낸 분, 경기도에서 동물방역과장을 지낸 분을 영입한 이후 비싼 단가에도 일을 많이 했다”고 주장했다. 음성군청 관계자도 충북도청에서 2023년까지 동물방역과장을 지낸 D씨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D씨는 와의 통화에서 “A사에 정식으로 소속돼있는 것은 아니다. 영업 일을 하고 있다”면서 “단가 같은 얘기는 다른 사람이 안다. 내가 그분께 말해 전화하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D씨는 경기도에서 동물방역과장을 지낸 사람의 이름을 언급했다. 적어도 두 사람이 A사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확인된 것이다. 음성군청 관계자는 살처분 업체를 선정하는 데 학연이나 지연 등 인맥이 영향을 미치는지 묻자 “그런 건 없다”면서도 “견적서만 내는 것보다 (군청에) 찾아와서 일은 어떻게 하겠다, 뒤처리는 이렇게 하겠다 등 설명해주는 업체를 더 선호하긴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최소한의 기준은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체 선정 과정에 공무원의 입김이 개입될 여지가 큰 만큼 일정 정도의 제동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기만? 다른 데는? B사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업계가 망가져 버렸습니다. 이대로 두면 걷잡을 수 없을 겁니다. 지금껏 누구도 말하지 못했고 기사도 제대로 나지 않은 이유는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밥줄이 끊길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 겁니다. 그만큼 공무원이 업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하다는 방증입니다.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김건희 특검팀의 수사 속도가 빨라졌다. 전방위적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피의자에 대한 잇단 소환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특검팀이 수사해야 하는 의혹만 16개라는 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특검팀은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기도 했다. 어떤 사건을 먼저 수사할지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수사하는 김건희씨의 의혹은 총 16개다. 사전 자료 제출 요구나 실무진 조사 없이 참고인 조사를 진행 중이다. 특히 최근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집사 게이트’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늘고 있는 셈이다. 특검팀의 시간은 6개월도 남지 않았다. 발걸음이 조급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남은 5개월 부족한 시간 특검팀은 이른바 ‘집사 게이트’와 관련,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김익래 전 다우키움 그룹 회장, 윤창호 전 한국증권금융 사장에게 지난 17일 오전 10시까지 특검 사무실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조 부회장은 베트남 출장을 이유로 7월21일 오전 10시로 출석 일정을 조율했다. 특검팀은 이들 1차 참고인 조사 이후 IMS에 투자한 나머지 기업 관계자들을 포함해 2차 소환을 예고했다. IMS 투자에 참여한 기업·기관은 모두 12곳으로, 신한은행·제이비우리캐피탈·한컴밸류인베스트먼트·경남스틸 등도 포함돼있다. ‘집사 게이트’는 김씨의 측근으로 지목된 김예성씨가 2023년 자신이 설립에 관여한 렌터카 업체 ‘IMS모빌리티’가 부실기업이었음에도 김씨와의 친분을 토대로 여러 기업 등으로부터 180억여원을 석연치 않게 투자받은 사건이다. 순자산(556억원)보다 부채(1414억원)가 많은 상태에서 거액의 투자금을 모을 수 있었던 배경에 김씨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핵심이다. 특검팀은 당시 참여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각종 경영상 리스크를 안고 있었던 점에 주목하고 있다. IMS 투자가 단순 재무적 투자라기보다는 정권 실세와의 친분을 활용한 보험성, 또는 대가성 성격이었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김씨는 지난 4월 베트남으로 출국 후 잠적했다. 특검팀은 김씨가 출석 요구에 거듭 불응하자 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았다. 특검팀은 김씨의 최종 목적지가 태국이 아닌 싱가포르일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 출입국 기록을 확인한 결과 김씨와 자녀들이 올해 여러 차례 싱가포르에 다녀온 기록이 나왔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 1월, 김씨와 아내, 자녀 2명 모두 싱가포르를 다녀왔다. 특검법이 통과된 직후에도 김씨의 자녀들은 다시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이후 아내 정모씨는 한국에 머문 채 김씨와 자녀들은 차례로 베트남으로 출국했다. 특검팀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등과 공조해 김씨 소재를 파악하고 신병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 등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여러 경영상 현안을 안고 있어 일종의 보험성이나 대가성 자금을 제공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집사 게이트 핵심 인물 제3국으로 도피 위치 파악 안 돼…검거 가능성은 미지수 통상 수사기관은 사건에 연루된 기업 총수를 부르기 전 압수수색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나온 증거를 토대로 실무자들을 조사하면서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게 기본적인 수사의 순서다. 문홍주 특검보는 이에 대해 “수사 기법은 다양하다”며 “톱 다운 방식도 있고 바텀업 방식도 있는데, 수사팀에서 편리한 방식을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검팀의 최대 걸림돌은 시간이다. 준비 기간 20일을 포함해 총 110일에, 30일씩 두 번 연장할 수 있다. 지난 2일 현판식을 갖고 수사를 개시했기 때문에 늦어도 오는 12월까지는 모든 게 정리돼야 한다. 사실상 6개월도 되지 않는 시간이 부여된 셈인데, 특검팀이 수사해야 할 의혹만 인지 사건 포함 16개에 달한다. 최근 관련 의혹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것도 특검팀을 다소 조급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현 상황만 보면 ‘집사 게이트’부터 정리하려는 것 같다. 금품을 준 기업과 관련자들에게서 최대한 협조적인 진술을 얻어내고 김건희씨를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검팀은 집사 게이트를 수사하기 이전에 명태균씨, 건진법사 전성배씨 등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했으나 유의미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었다. 명씨 사건 같은 경우 검찰에서 수개월간 수사해 법리 적용만 검토하면 문제가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전씨 사건의 경우 그렇지 않다. 먼저 특검팀은 지난 16일 오전 10시 명씨 사건을 폭로한 강혜경씨에 대한 소환 조사를 진행했다. 강씨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명씨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을 위해 불법 여론조사를 해준 대가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이 2022년 6월 재보궐선거 공천을 받았으며, 해당 공천 과정에 김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인물이다. 끌려가는 기업 수사 명씨는 윤 전 대통령 부부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로, 그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던 여론조사 업체 미래한국연구소를 이용해 다수의 불법 여론조사를 주도한 의혹을 받는다. 특검팀은 같은 날 오전 10시30분 ‘서울-양평고속도로 의혹’ 관련해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국토교통부 서기관 A씨 소환 조사도 병행했다. A씨는 당초 이상화 동해종합기술공사 부사장 등 5명과 전날 소환 통보를 받았으나 불출석했다. 지난 14일 국토부와 A씨 주거지, 양평고속도로 타당성 조사를 맡았던 용역사 경동엔지니어링과 동해종합기술공사, 용역사 임원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양평고속도로 의혹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듬해인 2023년 5월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종점이 기존 양평군 양서면에서 김씨 일가가 보유한 땅 28필지(2만 2663㎡)가 있는 강상면으로 돌연 변경됐다는 내용이다. 특검팀은 전씨 법당과 서초구 양재동 주거지, 전씨가 속한 종파의 거점으로 알려진 충북 충주 일광사 등 10여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청탁 대상으로 알려진 박창욱 경북도의원과 박현국 봉화군수, 박 군수 공천을 청탁한 사업가 B씨, 윤석열 대선 후보 당시 선거대책본부 네트워크위원장을 맡았던 오을섭씨, 전씨 변호인 김모씨의 서초구 사무실 등도 포함됐다. 특검팀은 박 군수의 휴대전화, 변호인 사무실에 보관 중이던 전씨 명의 휴대전화 2대, ‘찰리’로 알려진 전씨 처남의 휴대전화 2대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이르면 이달부터 관련자 소환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특검팀은 지난 15일부터 연이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전씨의 법당을 압수수색해 법당 내 CCTV 등을 확보했는데 CCTV가 최신 기종이 아니라 복제(이미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법당 내 CCTV는 앞서 서울남부지검에서 한 차례 진행한 압수수색 대상물에는 포함돼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CCTV 저장 보관 기간이 길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관련 증거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검팀은 남부지검에서 압수수색했던 곳 중 법당 내 지하창고도 다시 살펴 관련 증거를 압수했다고 한다. 사라진 피의자들 수사를 마친 뒤 관련자를 재판에 넘겨 공소 유지까지 맡는 특검은 핵심 물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제출하는 측면과 더불어 수사 단계에서도 관련자들에 대한 진술을 끌어내는 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지난 14일 법원에 낸 이일준 삼부토건 회장, 조성옥 전 회장, 이응근 전 대표, 이기훈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이들이 챙긴 부당이득이 369억원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팀이 산출한 조 전 회장 측 부당이득은 200억원, 이 회장 측은 170억원가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 등은 2023년 5∼6월쯤에 삼부토건이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본격 추진할 것처럼 속여 주가를 띄운 뒤 보유 주식을 매도해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이들이 2023년 5월 폴란드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 포럼을 계기로 현지 지방자치단체와 각종 업무협약을 맺는 등 재건 사업을 추진할 것처럼 투자자를 속였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재건주로 분류된 삼부토건은 그해 1000원대였던 주가가 2개월 뒤 장중 5500원까지 급등했다. 이 시기 회장이 교체됐는데, 특검팀은 조 전 회장이 주가가 급등한 주식을 팔아 거액의 수익을 내자 이 회장도 우크라 재건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남아있던 시기에 주식 매매로 차익을 봤다는 혐의도 영장에 적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표가 우크라이나 관련 사업을 총괄한 인사로 꼽히는 가운데 이 부회장은 삼부토건 전·현직 회장의 지분 승계 실무를 맡고, 포럼 참석 과정을 주도한 ‘그림자 실세’로 지목된다. 이들 4명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17일 서울중앙지법 이정재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이는 지난 3일 수사를 개시한 특검팀의 첫 구속영장 청구 사례다. 건진법사 그라프 목걸이도 행방불명 삼부토건 ‘그림자 실세’ 잇단 도주 그러나 그림자 실세인 이 부회장의 신병 확보에 차질이 생기면서 특검팀 수사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17일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이가 영장실질심사 절차에 출석하지 않았다고 알리며 “현재 도주한 걸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 관계자는 “법원에 출석한 이씨의 변호인 또한 이씨의 소재를 모른다고 말했다”며 이 같은 사정을 종합해 도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특검팀은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이전에 삼부토건이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추진할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여러 정황들을 확보해 놓은 상황이다. 특검팀이 확보한 삼부토건의 ‘해외사업 수주 내역’을 보면, 2017년 파키스탄 도로공사 사업 수주를 마지막으로 해외사업을 수주하지 못했다. 이는 삼부토건의 낮은 신용도와 자금 여력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삼부토건은 신용도가 낮아 해외공사 입찰 시 국내 은행으로부터 입찰 보증서를 발급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공사 수주 금액의 10% 수준인 이행 보증금을 현금으로 납부할 능력이나, 해외사업을 위해 사용할 자금을 확보할 여력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해외사업에 사실상 실패한 삼부토건은 2022년 초부터 정기보고서에 해외사업 부문을 철수하겠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특검팀은 또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하는 삼부토건 내부자의 진술도 확보했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추진 당시 삼부토건 재건 관련 해외 사업 담당자는 고작 1명에 불과했는데, “삼부토건은 현실적으로 해외사업 진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해당 직원이 진술한 것이다. 핵심 물증 중요 과제 이 직원은 또 조사에서 “해외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여러 곳과 MOU 체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수주할 수 있는 거래 상대방과 MOU를 체결하고 더 많은 연락과 출장을 다녀오는 것이 맞다”며 “그러나 정말로 (삼부토건이) 우크라 사업을 하려는 의사가 있는지 당시에 의문스러웠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