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09.19 09:56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낙연 전 총리의 신창 창당이 가시권에 돌입했다. 한발 앞서 창당을 선언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 나란히 언급되면서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낳았다. ‘내부 저격수’ 외에 교집합이 없는 두 사람이 함께 그려나갈 그림이 전혀 예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일까?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겠다며 큰 목소리를 치는 건 결국 몸값을 올리기 위한 ‘간 보기’에 그칠 것이란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창당설이 우후죽순 솟아나면서 폭풍전야 기운이 감지된다. 국민의힘 내 창당 선발주자는 이준석 전 대표다. 최근 이 전 대표가 신당 준비에 박차를 가하면서 탈당 가능성이 기정사실화됐다. 이 전 대표가 선언한 마지노선은 오는 27일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당정관계에 변화가 없을 경우 국민의힘을 떠나 새로운 당을 꾸리겠다고 줄곧 예고해왔다. 힘 받는 창당설 이 전 대표는 지난달부터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지자 연락망 구축에 나섰다. 본격적으로 세 모집에 나서는 동시에 함께할 인사를 모으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총선 출마 희망자도 모집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를 지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야당의 신당 창당 후발주자로 뛰어들면서 단숨에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굵직한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움직이자 자연스레 이목이 쏠린 것이다. 이 전 총리가 신당 창당을 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은 이달 초 민주당 강성 지지자의 출당 요구를 받으면서다. 지난 3일, 민주당 청원 홈페이지인 국민응답센터에는 이 전 총리를 ‘당내 통합 장애물’로 칭하며 “더는 민주당에 둘 수 없다”는 글이 게시됐다. 작성자는 “77.7% 당원이 뽑은 이재명 대표를 통해 민주당 당원은 총선을 치르길 원한다”며 “이낙연은 민주당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청원글에 따르면 올해 3월에 7만명이 넘는 당원들이 이 전 총리에 관한 영구 제명 청원을 넣었지만, 이 대표가 통합의 차원으로 이를 무마시켰다. 그런데도 연일 ‘이재명 때리기’에 나서자 강성 지지자들의 분노를 산 것으로 풀이된다. 작성자는 “이제 당내 통합을 저해하는 이낙연 당신을 향한 당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더 이상 민주당에 둘 수 없다”며 “민주당은 당원들의 민주당인데 당신이 무엇인데 선출로 뽑은 당 대표의 거취를 결정하는가”라고 으름장을 놨다. 해당 청원은 이틀 만에 약 1만5000명의 동의를 얻었다. 앞서 이 전 총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 법원에 출석하는 이 대표를 향해 “‘이런 상태로 총선을 치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당연히 함 직하다”며 사법 리스크를 정조준했다. 한 라디오에서는 “민주당이 상당히 많이 변했고 많이 낯설어졌다”며 참담함을 느낄 지경이라고 직격했다. 당내 민주주의가 시들어가고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 점을 꼬집은 셈이다. 이낙연·이준석 저격수끼리 뭉친다? 기상천외한 조합…가능성은 ‘글쎄’ 총선을 앞두고 계파 갈등의 조짐이 보이자 이 대표가 진압에 나섰다. 문제의 소지가 된 탈당 청원글을 삭제하도록 직접 지시했으며 이 전 총리와의 만남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불발할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이 전 총리는 민주당과 이 대표가 변화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언제든 응하겠지만, 단순한 사진 촬영을 위해서라면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당을 창당할 계획이 있는지’에 관한 언론의 질문에는 “머지않아 결정될 것”이라며 해석의 여지를 남겨뒀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던 이 전 총리가 최근 마음을 굳히면서 본격적으로 내홍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 13일 SBS에 출연해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했다. 내년 총선서 원내 제1당을 목표로 연대를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 전 총리는 실제로 신당을 창당할 것인지에 관한 진행자의 질문에 “예”라고 짧게 답한 뒤 “절망하는 국민께 작은 희망이나마 드리고 말동무라도 돼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창당 진행 단계에 관해 “아주 실무 작업의 초기 단계”라며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애를 많이 쓰고 계실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새해 초에 새 희망과 함께 말씀드리겠다”며 이전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이 전 총리와 이 전 대표가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물꼬를 튼 셈이다. 두 물줄기가 하나로 이어질지가 정치권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전 대표는 이 전 총리와의 만남에 긍정적인 의견을 비쳤다. 이른바 ‘낙준연대’에 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입장이다. 이 전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낙연 전 대표는 민주당서 활동하신 이력 등을 볼 때 이재명 대표보다 더 민주당에 가까운 인사”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큰 틀을 벗어나는 것에 많은 고민이 있으실 거고, 큰 정치인이 움직일 때는 명분을 아주 크게 가져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야연대 나비효과 이 전 총리는 대선주자로 나섰던 인물인 만큼 향후 거취를 정하는 데 있어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만일 두 사람이 손을 잡는다면 각각 TK(대구·경북)와 호남을 기반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여야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무당층 비율이 30%에 달하는 만큼 중도 세력을 ‘쌍끌이’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문제는 두 사람의 정치 기반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친낙(친 이낙연)계로 알려진 이병훈 의원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당에 참여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오히려 “제1야당인 민주당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전 총리의 신당 창당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민주당 텃밭으로 분류되는 광주서도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대선서 이 대표의 발목을 잡은 ‘대장동 사건’을 이 전 총리가 의도적으로 흘렸다는 의혹 역시 떨쳐내야 할 과제다. 당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서 한차례 곤욕을 치렀던 만큼 호남서 긍정적인 시그널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대표의 경우 TK서 ‘비호감’으로 낙인이 찍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대구는 특히 다른 지역보다 의리가 강한 면이 있는데, 이곳에서 한 번 배신자로 찍히면 얼굴 들고 다니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물며 당에서 ‘내부총질’ 소리를 들었던 이준석 전 대표가 이쪽을 노린다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자신감”이라며 다소 냉소적인 의견을 보탰다. 이낙연·이준석 조합이 뚱딴지같다는 평도 적지 않다. 둘은 각각 여야의 대표를 지내는 등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다. 한때 당을 대표했던 만큼 정치 이념서 엇갈리는 지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한쪽의 지지자가 다른 한쪽의 이념을 지지할 가능성 역시 미지수다. 신당을 창당하는 목적과 방향성도 사뭇 다르다. 이 전 대표는 윤정부를 향한 비판을, 이 전 총리는 민주당의 회복에 방점을 찍었다. 중도 세력을 흡수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제외한다면 이들의 교집합이 확장될 가능성은 매우 적다. 누구 하나 자신 있게 나서서 손을 내밀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성급했나? 흐릿한 노선 낙준연대는 이 전 대표만의 희망 사항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짧은 기간 동안 이 전 총리의 뉘앙스가 여러 번 바뀌면서다. 당초 이 전 총리는 창당이 가시화되기 이전부터는 이 전 대표와의 만남에는 선을 그었지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때가 되면 만날 것”이라며 초반보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긍정적인 메시지에 이 전 대표 역시 “만날 준비가 됐다”며 화답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또다시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을 취하면서 낙준연대 성사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최근에는 이 전 총리가 새로운선택 금태섭 대표와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를 향해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내면서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가 이 전 대표를 벗어났다는 평이 나온다. 결국에는 총선을 앞두고 제 몸값을 불리기 위해 서로의 유명세를 빌리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지금, 넘어갈 듯 말 듯 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당 지도부 간 보기에 그칠 것이란 설명이다. 다만 이 전 총리는 민주당 ‘원로’에 가까운 만큼 어떤 선택을 하든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과거 꾸준히 언급됐던 제3지대 인물들과 비교했을 때 정치적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속도감 있는 행보를 두고 당내 친·비명을 막론하고 민주당의 분열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도부를 대신하듯 이 전 총리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는 이들도 있다. 총선을 앞두고 원팀으로 똘똘 뭉쳐 윤정부와 맞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날아가 버리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뜻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와의 통화서 “민주당 내 다른 목소리가 수용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은 많이들 지적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 잘못됐다”며 이 전 총리의 개혁 방식을 꼬집고 나섰다. 그는 “당의 원로이고 당 대표도 지내셨다. 문재인정부의 총리까지 지셨던 분인데 당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민주당을 떠나려는 건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총리까지 하신 분이 굳이 왜?” 서서히 붙는 ‘배신자’ 꼬리표 이 전 총리를 향해 연일 날을 세우고 있는 민주당 김민석 의원은 “정치인 이낙연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내일도 신당 얘기를 할 거면 오늘 당장 나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 덕으로 평생 꽃길을 걸은 분이 왜 당을 찌르고 흔드냐”며 “신당을 할 거면 안에서 흔들지 말고 나가서 하는 것이 최소한의 양식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검찰 독재의 협조자로 기록되실 거냐. 이 전 대표는 ‘사쿠라’ 노선을 포기하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쿠라는 벚꽃을 뜻하는 일본어로 정치권에선 ‘배신자’를 뜻한다. 혁신계 모임 ‘원칙과상식’을 이끄는 이원욱 의원조차 “매우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그는 “숨 고르기가 좀 필요한데 갑자기 링에 뛰어들어서 100m 질주를 하고 계신 것 같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이 대표 체제와 결을 달리하는 이들조차 선뜻 민주당을 떠나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적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국민의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 이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을 향해 ‘양두구육’이라고 일침을 가했지만, 지금의 이 전 대표 역시 “창당을 위해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매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전 총리가 “큰 줄거리를 함께하겠다”고 밝힌 새로운선택 측 역시 중립적인 태도를 지키고 있다. 새로운선택 관계자는 “금 대표는 양당의 문제점과 문제의식을 느낀 분이라면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있다”면서도 “이 전 총리가 연대의 가능성을 비쳤지만 실제로 어떤 생각이고, 또 어디까지 함께할 수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낙준연대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중도 세력을 끌어오는 데 실패한다면 미미한 성과에 그치는 것은 물론 ‘명분도 실리도 없는 신당’이라는 비판은 불가피하다. ‘낙장불입’ 그 결과는? 지금까지는 이 전 총리와 이 전 대표가 서로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양당의 지도부가 안심하기엔 이르다. 다음 해 총선까지 채 반년도 남지 않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여의도의 판을 뒤집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두 사람은 연일 신당 창당에 힘을 실으며 스스로 퇴로를 끊어내고 있다. 지금의 선택이 신의 한 수가 될지 자충수로 전락할지 양쪽의 귀추가 주목된다. 어색한 삼자대면?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낙연 전 총리 이외에도 정세균·김부겸 전 총리와의 회동 추진에 나섰다. ‘이낙연 신당’ 파장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문재인 3총리’의 연대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에 따른 당내 갈등을 사전에 수습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치권에 따르면 정 전 총리는 이 대표와의 만남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이·김 전 총리와는 오는 18일 예정된 다큐멘터리 영화 시사회를 계기로 삼자대면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전 총리가 연일 선을 긋고 있는 만큼 3총리와의 회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지난 10여년 동안 낙동강 상류에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방류하는 등 환경 관련법을 120여차례 위반한 영풍 석포제련소. 사고가 끊이지 않던 이곳에서 근무한 협력업체 노동자가 삼수소화 아르신(비소)을 흡입해 사망에 이르렀다. 영풍 측은 “환경문제와 사망사고는 별개 문제다. 결부시키지 말라”고 경고했다. 영풍의 주력 사업장인 석포제련소는 연간 아연 생산량 기준 세계 3위의 비철금속 제련소다. 영풍은 “제련소로는 세계 최초 폐수 재이용 시설(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현장 노동자의 아르신 중독은 예방할 수 없었는지 의문이다. 이달 초 경북 봉화군 석포제련소서 일하던 노동자 3명이 아르신 중독으로 다치고, 1명이 숨졌다. 영풍 석포제련소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협력업체 비소 중독 영풍 석포제련소 협력업체 노동자인 60대 남성 A씨는 공정 물질을 저장하는 탱크의 모터를 교체하던 중 아르신을 흡입했고, 지난 9일 숨졌다. A씨의 몸에서는 치사량(0.3ppm)의 6배가 넘는 2ppm의 비소가 검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현장서 함께 작업하던 협력업체 노동자 등 3명도 현재 비소 중독으로 병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중 1명은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4명의 사상자들은 공기호스가 달린 송기마스크 착용 없이 최대 7시간가량 삼수소화 아르신에 노출돼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수소화 아르신은 아연을 황산에 녹일 때 발생하는 액화가스 형태의 비소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서 지정한 ‘관리대상 유해물질’이다. 특히, 노동자에게 건강장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 사업주는 해당 물질로 인한 후유증을 예방하기 위해 보건상의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비소 또는 그 무기화학물 노출 근로자의 보건관리지침’에 따르면 비소는 폐암, 방광암 및 피부암 등을 유발하는 인체발암물질이다. 또 “비소와 그 화합물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작업한다” “지급된 보호구는 사업주 및 관리감독자 등의 지시에 따라 반드시 착용한다” 등의 근로자 준수사항이 제시되고 있다. 대응 방법은 익히 알려져 있으나, 사고 당시 석포제련소에서는 안전을 위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흡입을 막는 송기마스크 등을 착용해야 하는데 방독 마스크만 착용하고 있었다고 들었다”며 “관리가 안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류경희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지난 12일, 사고 현장을 방문해 “사전에 충분히 위험을 파악하고 평가했는지, 그에 따른 필수적인 안전보건 조치를 했었는지 철저히 조사하라”며 “향후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에 대해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영풍의 주력 사업장인 경북 봉화군의 석포제련소는 아연 생산량이 연간 최대 40만톤에 달하는 비철금속 제련소다. 현재 상시근로자 50인 이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가능하다. 고용부는 사고장소에 대한 작업중지 명령과 유사 공정 근로자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임시건강진단 명령을 내린 상태다. 송기마스크 없이 삼수소화 아르신 노출 관리·감독 소홀 지적에 핑계뿐인 영풍 아울러 석포제련소와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를 포함한 영풍그룹 제련·제철 관련 계열사 7개사를 대상으로 12월 중 일제 기획감독도 실시할 계획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영풍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사고 소식을 협력업체로부터 뒤늦게 전달받으면서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며 “(근로자들이)작업 도중 어지러움을 느꼈다고 호소할 때 병원에 입원한 뒤 사망한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환경단체들은 유독물질을 발생시키는 석포제련소를 폐쇄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12일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은 서울 광화문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석포제련소가 아연을 생산하는 과정서 비소와 폼알데하이드 등 유독물질이 발생한다”며 “사람을 죽이고 환경을 파괴하는 석포제련소를 당장 폐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운동연합은 1997년 이후 지금까지 석포제련소서 8건의 사고로 11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영풍그룹 측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노동자 사망사고와 환경훼손 문제는 별개다. 결부시키지 말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러면서 “자사는 2025년까지 7000억원 규모의 환경 투자를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제련 공정서 나온 폐수를 단 한 방울도 외부로 배출하지 않는 무방류 시스템을 3년째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풍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석포제련소의 공정에 사용한 용수를 일체 외부로 배출하지 않았다. 하루 평균 1,946㎥, 총 71만376㎥의 폐수를 무방류시스템을 통해 처리한 다음 제조공정에 재활용했다. 영풍 측의 입장에 관해 김수동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제련소서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환경부가 제련소에 환경인증을 계속 내주고 있기 때문”이라며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를 영풍이 방치해왔다는 면에서 환경문제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영풍의 폐수 무방류 시스템 도입에 따라 아르신 중독사고 예방책도 충분히 세울 수 있었다는 해석이다. 환경단체 폐쇄 촉구 석포제련소의 안전관리 소홀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9년부터 7년 가까이 석포제련소서 불순물 찌꺼기를 긁어내던 노동자 진현철씨는 2017년 급성 백혈골수암 진단을 받았다. 결국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았다. 이밖에 석포제련소 퇴직자 4명은 지난달 27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를 통해 직업병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모두 진씨처럼 제련소서 필터프레스 용해·여과 공정을 맡아왔다.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약 14년을 영풍석포제련소서 일한 퇴직자 박용택씨는 중금속이 녹아 있는 수증기를 오랜 기간 마신 뒤 이가 조금씩 흔들렸다고 말한다. 박씨는 “중성액이 담긴 탱크를 받으려고 무전기를 들고 서 있으면 (탱크서)뜨거운 김이 올라오는데 방진마스크(먼지 막는 마스크)를 써도 소용없고 그 김을 다 내가 마신다”며 “만약 회사서 방독마스크라도 하나 주고 ‘위험하니까 이걸 받을 적에는 꼭 쓰시오’ 했으면 이가 안 망가졌을 수도 있잖아요. 어느 날 이가 흔들리더니 뽑고 나면 또 그 옆의 이가 흔들리고. 그러더니 그냥 이가 다 빠져버렸다”고 증언했다. 최근 박씨는 노무사를 만나 산업재해 신청도 준비했으나 직업병과 관련 있다는 의사 소견서를 구하지 못해 신청을 포기했다. 영풍그룹은 근로자의 건강장해 예방에 미흡했을 뿐 아닌 환경오염의 주범이기도 했다. 10년 동안 공장 폐수를 상습적으로 무단방류하다 걸려, 8번이나 국정감사에 등장한 ‘단골손님’이었다. 특히, 1급 발암물질인 카드뮴 오염수를 낙동강에 불법 배출하는 등 환경 법령 위반사례는 120건이 넘었고, 90여차례 이상 행정처분을 받았다. 일례로 2018년 폐수 70t을 낙동강에 불법 방류해 20일 조업정지를 당한 바 있다. 지난 2019년에는 환경부 점검서 오염방지 시설을 거치지 않은 폐수배출시설을 설치 및 이용한 사실과 방지시설에 유입된 폐수가 최종 방류구를 통과하기 전 배출하는 시설을 설치·이용한 사실 등이 적발돼 조업정지 60일(2개월) 처분을 경상북도로부터 받았다. 그렇게 분위기 파악이 안되나? 이에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대구지법 제5형사항소부(최종한 부장판사)는 지난 10월18일 석포제련소서 업무상 과실로 특정수질유해물질을 낙동강에 유출되도록 한 혐의(물환경보전법 위반)로 기소된 당시 석포제련소 환경·안전 업무 총괄 상무에 대한 항소심서 원심과 같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폐수처리시설에 대한 충분한 근무자들을 배치해 주기적으로 점검하지 않는 등의 업무상 과실로 셀레늄을 낙동강에 배출했다”며 “영풍은 석포제련소서 얻은 이익을 향유하는 주체이자 궁극적인 책임자로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2021년에는 카드뮴 오염수 방출로 281억원의 과징금을 받아 환경과 건강권 침해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다. 환경부의 주민건강 조사 결과 제련소 인근 주민의 카드뮴·납 농도가 국민 평균치의 두세배에 이르렀다. 현재 석포제련소는 2022년 12월 ‘환경오염시설의 통합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환경부의 통합허가를 받아 운영 중이다. 허가조건 103개 중 54건, 세분류 총 235건 중 123건을 이행 완료한 상황이다. 영풍그룹의 환경훼손 논란은 황산을 싣고 달리는 사유화차 발주 과정서도 드러났다. 영풍은 2018년 12월 말 철도차량 제작업체 ‘고려차량’에 황산조차 20량 제작을 의뢰했다. 그해 1월 황산조차 도면설계에 착수했고 6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측에 통보했다. 해당 열차는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서 나온 황산을 싣고 석포역과 온산역을 왕복 중이다. 문제는 고려차량이 수입한 화물열차에 탑재된 제동·연결기가 원산지인 중국서조차 사용승인을 받지 못한 불안전한 제품으로 평가받은 것이라는 점이다. 국내서 사용해본 적이 없다 보니, 기존 화차와의 호환성을 검증하기 어렵다. 연결기 간 호환성이 떨어지면 운행 도중 분리 및 탈선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열차 불량으로 탈선·전복 등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량의 황산 유출로 막대한 환경피해가 불가피하다. 사고 끊이지 않아도…남의 일? 노동부, 중대재해처벌 만지작 2002년부터 코레일의 검증절차를 거쳐 선정된 부품 사양과 고려차량이 중국서 수입한 사양은 제원상 큰 차이를 보인다. 기존 사양의 A 대차는 북미권서 60년간 사용돼 신뢰성을 확보했다. 반면, 고려차량이 수입한 B 대차는 중국서 1990년도에 개발됐으면서도 현지서 운행되지 않고 있다. 결정적으로 바퀴 단면이 거칠고, 금이 발생하는 등 편마모 현상도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B 대차의 바퀴가 선로에 알맞게 올라가지 않으면서 주행 시 미세한 충돌로 손상이 발생한다고 봤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시험 결과에 따르면 고려차량이 수입한 제동장치는 기존 화물열차에 제동장치보다 제동 시간이 2배 이상 늦게 기록됐다. 자동차로 비유하면 ‘브레이크가 밀린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업계에선 영풍이 단가를 낮춰 사유화차를 발주하는 상황서, 고려차량이 입찰을 위해 헐값에 중국산 화차를 수입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대해 고려차량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국토부 철도차량 형식 승인을 받은 사유화차의 안전성과 차적 편입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숱하게 나왔다”며 “신경 안 쓴다”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서 “영풍이 어떤 그룹인데 화차 수입하는 게 얼마나 한다고 아까워하겠냐”며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면 코레일이 차적에 이미 편입한 황산조차 20량을 계속 운행하는 이유는 뭐냐”고 반문했다. 영풍이 얼마나 대단한 기업인지 오히려 궁금한 대목이다. 영풍은 지난 10월1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도 출석해 환경오염 문제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날 국회의원들은 국감장서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질타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통합허가 이후에도 환경부가 적발한 위반사항이 9건, 지자체인 봉화군서 적발한 위반사항이 1건이 있다”며 “대기오염 배출을 조작하기도 하거나 비가 오는 날 낙동강에 카드뮴을 배출하는 등 위반 사항이 무척이나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박영민 영풍그룹 대표는 이날 환노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지만, 회사 측에서 일정 변경을 신청해 출석을 연기했다. 위험천만 황산 열차 한편,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영풍 석포제련소서 일한 노동자 2명의 아르신 가스 중독을 진단한 강희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매체와 인터뷰서 “농도가 짙은 아르신가스에 노출되면 콩팥 기능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고 예방과 관련해 “사업주 의지가 제일 크다. 어떻게든 (문제를)잡겠다고 하면 했을 것”이라며 “실제 그렇게 안전관리를 하는 곳도 있다. 안전관리 잘하는 기업들은 보호장구를 제대로 안 낀 노동자에겐 아예 일을 못하게도 한다. 여기(제련소)는 그렇게 하진 않았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smk1@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대북 수사 업무의 지형이 바뀐 게 크다. 경찰은 안보 우려를 잠재우려 ‘안보수사단’ 카드를 꺼내 들었다. 몸집을 키움과 동시에 수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 노하우’를 습득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찰 안보수사단이 기존 인력의 3배로 증원된다. 이들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첩보를 바탕으로 국내 주 간첩 수사를 진행한다. 해외 정보활동만 담당하게 된 국정원이 안보수사단의 파트너가 되는 셈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사실상 전문적 대북 수사 경험이 전무한 경찰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상실로 인한 공백을 메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머드급 인력 증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산하의 안보수사단은 안보수사심의관(경무관)이 단장을 맡는다. 142명 규모, 4개의 수사대로 구성된다. 안보수사단장 아래 안보수사1과와 안보수사2과가 편성되고, 한 개 과에 각각 2개 수사대가 들어가는 식이다. 기존에도 국수본 산하에 50여명의 안보수사대가 있었지만 안보수사단 신설로 조직이 3배 가까이 커지게 됐다. 경찰은 인력 증원을 위해 일선 경찰서의 안보 경찰 정원 82명을 안보수사단으로 이관했다. 또 경험과 역량을 겸비한 안보 수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9월 ‘안보 수사 인력풀 선발’을 진행해 298명을 뽑았고, 다음달 15일까지 366명을 추가로 선발할 계획이다. 전국 18개 시도청은 소속 안보 수사 인력 191명을 증원했다. 서울청의 경우 기존 5개이던 안보수사대를 6개로 늘렸고, 조직 규모도 190명서 280명 규모로 키웠다. 앞으로 안보 수사는 시도청 중심의 광역 수사 체계로 개편하고 일선 경찰서는 탈북민 신변 보호, 안보 상황 관리, 첩보수집 등에 집중하게 됐다. 이 같은 경찰의 개편은 2020년 말 문재인정부가 국정원법을 개정해 3년 유예기간을 두고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서 경찰로 넘기면서 시작됐다. ‘정보 및 보안 업무 기획·조정 규정 개정안(대통령령)’에 따라, 국정원의 안보 수사 조정권은 대폭 축소된다. 검경 등 수사기관이 정보사범에 대한 신병처리 및 공소보류 의견을 제시할 때 의무적으로 국정원장의 ‘조정’을 받도록 한 규정을 국정원장의 ‘의견을 청취’하는 권고 수준으로 낮춘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정부는 ‘대공수사에서 국정원을 전면 배제해서는 안 된다’며 일부 조정을 추진했다. 국정원이 수십년간 쌓아온 휴민트(Humint·인적 정보망) 등 해외 정보 네트워크를 사장하지 않고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의 안보 수사 역량은 여전히 시험대에 올라있다. 지난 4월 수도권에 거주하는 탈북민 A씨(44) 부부가 갑작스럽게 경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한 사례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경찰이 내민 압수수색 검증영장에는 A씨 부부가 국내 탈북민들의 의뢰로 북한에 있는 그들의 가족에게 돈을 전달한 행위가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실속 없는 몸집 키우기 습득만…안보 구멍 우려 A씨 부부가 ‘재북 가족을 볼모로 탈북민을 상대로 송금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거나, 북의 가족에게 돈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반국가단체(북한) 기관원과 공모하고 있을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대공 용의점을 시사했다. 경찰은 최근 탈북민들로부터 주로 송금받은 A씨 아내를 기소 의견(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A씨 부부는 “지금까지 탈북민을 상대로 가족 송금을 주선해주면서 문제가 불거진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처럼 탈북민 B씨도 지난달 경찰로부터 대북 송금 문제로 수사 대상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B씨는 2020년부터 2021년에 걸쳐 약 6개월간 자신의 위안화 계좌를 이용해 다른 탈북민의 송금을 도와준 적이 있는데, 이게 문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민 대북 송금의 구조는 탈북민이 국내 브로커에게 원화계좌로 송금한 이후 국내 브로커가 중국 브로커에게 돈을 전달하게 돼있다. 중국 브로커는 이 돈을 위안화로 북측 브로커에 전달해 북한 내 가족에 전달하는 순이다. 엄밀히 말하면 외국환거래은행을 통한 정식 환전과 외환 송금이 아닌, ‘환치기’ 방식이다. 하지만 탈북민들은 중국 측 브로커가 탈북민의 돈을 북한에 전달한 내용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아 합법적 송금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특히 경찰이 탈북단체들에 관한 수사를 하더라도 대공 혐의를 입증하지 못해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만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간 정부는 탈북민의 가족 대상 송금은 인도적 차원서 묵인해왔다. 경찰의 대공수사권 이관 정당성을 채우기 위한 ‘실적 수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 지하조직 경험이 없다 경찰의 안보 수사력 우려가 지속되면서 정부는 국정원 소관 법령인 ‘안보침해 범죄 및 활동 등에 관한 대응업무규정’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해당 시행령은 대공수사권 이전 뒤 유관기관과의 업무협력 방식 등을 규정한다. 구체적으로 국정원은 ▲국가안보에 반하는 행위자에 대한 정보수집 및 추적 ▲안보위해자에 대한 행정·사법 절차 지원 활동 ▲경찰·검찰 등 안보침해 범죄를 다루는 유관기관의 수사에 국정원 직원 참여 ▲국가안보 침해 활동을 저지하는 과정서 습득한 유류물이나 임의로 제출받은 물품 등을 보관할 수 있게 됐다. 국정원의 협력이 뒷받침된다고 해도 경찰이 단기간 내에 충분한 대공수사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 우려를 표하는 시각은 여전하다.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첩보수집과 깊이 있는 분석평가를 통해 정보를 생산해내는 능력 등은 단기간에 갖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그간 북한의 대남공작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온 국가 핵심 기능이 저하됨에 따라 일정 수준 안보공백 발생은 불가피하다”며 “경찰과 내수사 협업 및 직무 교육을 실시했고, 현재 ‘대공 합동수사단’을 운영하며 대공 수사기법을 경찰에 전수 중”이라며 “국가정보원법서 위임받은 직무 범위에 따라 유관기관과 직무교육 및 협업체계 구축, 합동수사 기구 참여를 통한 정보지원 등 국가 대공 역량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정보기관 출신 한 전문가는 “경찰 실적의 세부내용을 들여다보면, 단기간에 검거가 가능한 국보법 제7조(찬양, 고무 등) 위반 사범이 대부분”이라며 “직파간첩이나 북한 연계 지하조직, 고첩망 사건과 같은 중요사건은 대부분 국정원서 처리해왔다. 이는 통계가 말해주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원이 5년에 걸친 내사 끝에 직파간첩을 체포한 것이 일례다. C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3년형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 후 2019년 7월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트워크 처음부터? 정보당국에 따르면 C씨는 2011년 당시 북한서 중국으로 이동해 중국인 한족 D씨 명의로 된 여권을 위조, 한국으로 잠입했다고 한다. 정보당국은 C씨를 내사한 경위에 대해 수사기법이나 정보원 노출 등을 우려해 구체적으로 확인해주지 않았다. 다만 국정원이 5년간 내사를 거쳐 북한서 서울로 보낸 직파간첩의 혐의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증거를 수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내사를 기반으로 정보당국이 2016년 7월 안양의 한 공사장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C씨를 체포했다. 당시 C씨는 서울에 거처를 두고 있었지만 일정한 직업이 없이 일용직 등을 전전하며 생계유지를 위해 일터를 옮겨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C씨가 암암리에 남한 정세나 인물에 대한 정보수집 등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했을 것으로 의심했지만, C씨는 국정원과 경찰의 합동 신문서 간첩활동 유무를 묻는 질문에 대체로 부인했다. C씨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우선 남한에 정착한 다음 한국인 여자와 결혼해서 기반이 안정되면 그때 지령을 내릴 테니 일단 기다리고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신분에 위협을 느끼거나 발각됐을 경우에 대비한 지령은 사전에 전달받았다고 한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C씨가 일종의 암호로 과천 서울대공원 앞에서 신문지를 들고 있으면 자신의 신변상태가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며 “그러면 한국에 있는 다른 요원들이 C씨와 접선해 귀국을 돕기로 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정보당국은 C씨를 검거하면서 “국내에 있는 직파간첩이 5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국수본, 100명 넘게 늘려 우려 해소 “인력과 기술·수사기법은 다른 문제” 경찰은 안보수사단 인력 증원 이전에 내부적으로 아직 대공수사 역량이 미흡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의 대공수사 관련 3개 과제가 모두 ‘다소 미흡’ 이하의 평가를 받았다. ‘탈북민 보호 강화’와 ‘안보수사 활동 강화’는 다소 미흡, ‘안보 정보수집’은 미흡 평가를 받았다. 보고서는 각 과제를 ‘매우 우수’부터 ‘부진’까지 7개 등급으로 평가했는데, 대공수사 관련 과제는 모두 5~6등급에 머물렀다.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넘겨받기 위한 준비 작업들이었다. 통일부와 협업해 탈북민 안전지원팀을 신설하거나, 안보수사 경력·전문성을 검증받은 수사관을 선발하는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대공수사권 이관에 대비한 인프라 구축 등이 구체적으로 국민에게 미치는 기대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 2월 작성됐다. 수사권 이관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임에도 대공수사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9월20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서도 국정원과 경찰로부터 대공수사권 이관 문제와 관련한 준비 상황을 보고받았으나 준비가 미흡하다고 판단해 추가 보고를 받기로 하기도 했다. 국수본 출신 한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올 초에 작성된 것으로 지금과 수사 역량이 비슷하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면서도 “노력해야 하는 측면이 많지만 국정원과 합동수사단 및 교육·협력 과정을 통해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정원은 사이버 안보와 관련해서도 대응 중이다. 지난달 14일 국정원은 “중국 업체가 국내 언론사로 위장한 웹사이트 38개를 개설해 기사 형식 콘텐츠를 국내에 무단 유포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적나라한 자체 평가 이달 국정원은 미국 국토안보부 소속 ‘사이버안보·인프라보호청(CISA)’과 사이버 안보 분야 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 자금원으로 알려진 가상자산 탈취와 사이버 해킹 저지를 위한 실무그룹 설치를 발표한 바 있다. <hounder@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은 2000년대 들어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공업지역이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고 대형 상업시설이 들어오면서 구로구서 가장 ‘비싼’ 동네가 됐다. 이제 남은 곳은 ‘신도림동 293번지 일대’. 신도림동의 마지막 불모지로 불리는 지역이다. 지하철 1·2호선이 지나가는 신도림역은 ‘환승지옥’이라고 불릴 만큼 혼잡도가 높다. 신도림역을 이용하진 않아도 이름은 알 정도로 악명이 높은 환승역이다. 과거에는 환승 승객이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역 주변이 발전하면서 승·하차 인구도 크게 늘었다. 하나 남은 낙후 지역 신도림동은 신도림역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했다. 대단지 아파트를 비롯해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 등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구로구서 가장 발전한 지역으로 성장했다. 반면 준공업지역인 신도림동 293번지 일대는 여전히 낙후된 상태다. 소규모 공장과 연립주택 등이 많아 잘 정비된 지역과 비교해 유독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신도림동 293번지 일대는 2009년 서울시가 마련한 ‘준공업지역 종합발전계획’에 따라 2012년 우선정비대상구역으로 지정됐다. 지하철 2호선 도림천역 일대 19만6648㎡ 규모의 낙후 지역에 아파트, 지식산업센터 등을 짓는 공사비 3조원의 초대형 사업으로 정식 명칭은 ‘신도림 도시환경정비사업’이다. 2006년부터 추진위원회, (가칭)조합설립 추진위원회, 주민대표회의 등 여러 단체들이 난립하다가 현재 ‘신도림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사업 진행을 주도하고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조합이 아닌 ‘토지등소유자’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 구로구청은 주민을 상대로 사업방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토지등소유자 방식이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 이 방식은 별도의 조합 설립 없이 토지등소유자가 주체가 돼 사업을 이끄는 것으로, 조합 방식에 비해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토지등소유자가 재개발사업을 시행하려는 경우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하기 전 사업시행계획서에 대해 토지등소유자의 75% 이상, 토지 면적의 50% 이상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추진위에 따르면 2019년 전체 토지등소유자(965명) 가운데 3분의2 이상(685명)의 동의를 받아 건축심의를 완료했다. 이후 2021년 6월과 12월 두 차례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이 반려된 끝에 토지등소유자 4분의3 이상(728명)의 동의를 받아 지난해 9월 다시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했다. 공사비 3조원, 6만평 규모 아파트·지식산업센터 예정 문제는 최근 추진위와 구로구청 사이에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면서 사업이 ‘올스톱’ 상태에 빠졌다는 점이다. 교육환경평가를 두고 추진위와 구로구청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것. 교육환경평가는 교육환경의 근본적인 확보와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학교 예정지나 기존 학교 일대의 위치, 교통, 일조, 지형, 환경, 위험시설, 공공시설 등의 항목을 평가해 위해성이 있는 환경은 사전에 배제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다. 개발사업을 진행할 경우 교육환경평가서를 관할 교육감에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추진위는 아직 교육환경평가를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구로구청은 추진위가 교육환경평가서를 승인받지 못한 채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한 부분이 ‘절차상 하자’라고 보고 신청서를 반려하겠다는 입장을 통지했다. 교육환경평가를 완료하고 토지등소유자의 동의서를 다시 받아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하라는 입장이다. 구로구청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과 시행령, ‘교육환경보호에관한법률’(교육환경법) 시행령 등에 의거해 “사업시행자는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 전에 사업시행계획서 작성 시 교육환경평가 결과 및 교육환경 보호를 위한 조치계획 등을 포함해 작성하고 토지등소유자 동의서를 징구하도록 규정함”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현재 추진위가 제출한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는 교육환경평가에 대한 내용 없이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무효라는 것이다. 재수 끝에 3차 신청 한복순 추진위원장은 “55개 유관 부서 중 53개 기관과 인가 협의를 완료하고 교육환경평가를 비롯한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이하 중토위) 절차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중 중토위 절차는 구로구청서 진행하는 것이라 실질적으로는 교육환경평가만 남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추진위는 교육환경평가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입장이다. 2017년 2월 교육환경법이 시행되면서 학교나 교육환경보호구역이 재건축‧재개발 정비구역에 포함된 경우 반드시 교육환경평가서 승인을 받도록 했다. 법이 시행되기 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경우에도 예외는 없었다. 한 위원장은 “2019년 7월 서울남부교육청에 교육환경평가서를 제출하고 한국교육환경보호원과 협의하는 과정서 지난해 3월 공문 한 건을 발견했다”며 “2011년 구로구청과 서울남부교육청이 협의한 내용이 담긴 문서였다”고 설명했다. 추진위에 따르면 공문에 담긴 협의 내용에는 교육환경평가에 대한 내용이 정확하게 명시돼있지 않았다. 추진위는 해당 공문을 근거로 이의 신청을 진행했고 교육부는 지난 5월 신도림 정비사업이 교육환경평가 대상인지 법제처에 질의했다. 법제처는 교육환경법이 시행되기 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정비사업 역시 교육환경평가서를 제출하고 승인받아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구로구청은 법제처의 답변을 근거로 추진위의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반려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려하면 백지화? 추진위 측은 교육환경평가를 받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진행 중인 사안인데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을 반려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구로구청서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를 되돌려 보내면 총회를 열 수 없는 토지등소유자 방식의 특성상 모든 절차를 원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한 위원장은 “구로구청의 결정에 따라 건축심의를 위한 동의서(전체 토지등소유자의 3분의2 이상), 사업시행계획 동의서(전체 토지등소유자의 4분의3 이상)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물론 200억원 이상 사용한 사업비 손실도 불가피하다”며 “사업 자체가 좌초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추진위는 ‘윤석열 대통령님께 호소합니다. 구로구청의 부당한 행정처리를 막아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했다. 동의서를 받은 이후 사업시행계획이 변경됐다는 것을 이유로 토지등소유자의 동의 의사 표시를 무효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위험하고 낙후된 환경서 벗어나 새로운 안전한 보금자리에 안착할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또 구로구청의 사전통지에 법무법인의 의견서를 받아 회신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의견서에 따르면 “제출된 사업시행계획서에 교육환경 영향평가 결과 및 교육환경 보호를 위한 조치계획 등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현 상황서 곧바로 반려하는 것은 인가권자의 재량권 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다른 법무법인은 “추진위가 교육환경평가서를 제출해 사업시행계획안이 일부 변경된다고 해도 정비 사업비를 10% 범위서 변경하는 경우, 대지면적을 10% 범위서 변경하는 경우 ‘경미한 변경사항’으로 정하고 있다”며 “교육환경평가서의 제출로 인한 사업시행계획 변경은 경미한 변경사항에 준한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교육환경평가’ 쟁점으로 떼쓰기냐, 직권남용이냐 다시 말해 사업시행계획안이 일부 변경되더라도 기존 토지등소유자의 동의 의사표시가 무효가 되는 게 아니니 동의서를 새로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추진위서 신문광고, 소식지 배포 등 사업 관련 정보를 전달하면서 구로구민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구로구민은 “지자체에서는 허가권자가 말 그대로 왕이다. 구로구에서는 구청장이 왕인 셈이다. 선거 기간에는 신도림동 293번지 재개발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하더니 지금에 와서 사업을 백지화하려 든다”며 “이것이야 말로 ‘말바꾸기’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구로구민은 “추진위는 법을 위반한 상태다. 법률에 명시된 대로 진행해야지, 떼를 쓰고 우긴다고 들어주는 게 말이 되나. 추진위에서는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를 반려하면 사업 자체가 백지화될 것이라고 겁을 주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진행하면 충분히 금방 삽을 뜰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추진위는 현행법에 명시된 교육환경평가를 피하려는 게 아니다. 구로구청은 추진위가 아예 교육환경평가를 받지 않으려 한다면서 주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토지등소유자 방식에 대한 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서 여러 잣대를 맞추다 보니 벌어진 것이다. 2006년부터 진행돼온 정비사업이 좌초되지 않도록 중지를 모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누가 맞나 진실공방 구로구청 관계자는 “추진위서 낸 신문광고는 일방적인 주장만 담긴 것”이라며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에 절차상 하자가 있는 상태서 인가를 내줄 수 없다는 게 구로구의 입장이다. 구청도 변호사 자문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답변했다. ‘문헌일 구청장이 선거 때와 말이 달라졌다’는 일부 주민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아니다. 신도림동 293번지 재개발사업은 구청장의 공약 사업이다. 구청도 사업이 잘 진행돼 좋은 방향으로 가길 원한다”며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서의 반려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총선을 앞둔 이맘때 즈음이면 ‘공천 살생부’가 구설처럼 떠돌기 마련이다. 이는 정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국회의원들에게 있어 진위와 상관없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때마침 더불어민주당이 공천룰을 일부 수정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르기 위해서는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방해되는 잔가지를 쳐내기 위한 무자비한 칼춤이 벌어질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총선 경선서 현역 의원에게 주어진 페널티를 강화하고, 전당대회 때 대의원 비중을 낮추는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자를 뜻하는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이 요구해온 사안이었던 만큼 친명(친 이재명) 세력이 강해질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이 대표의 입김이 들어간 ‘비명(비 이재명)계 찍어내기’ 꼼수라는 지적이다. 지도부 데스노트 이날 통과한 안건은 당헌 제100조와 제25조 개정안이다. 현역 의원 하위 10%에 관한 경선 득표 감산 비율을 기존 20%서 30%로 상향하고, 전당대회서 권리당원이 행사하는 표의 반영 비율을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앞서 당 최고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이 같은 내용의 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두 안건은 당무위원회를 통과했고, 지난 7일 치러진 중앙위 투표 결과 최종 확정됐다. 이날 이 대표는 투표에 앞서 “당원들의 의사가 당에 많이 반영되는 민주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의 등가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당헌 개정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역 의원 평가와 관련해서도 “정권을 되찾아오기 위해서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며 “공천 시스템에 약간 변화를 줘서 혁신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당내 비주류로 꼽히는 의원들의 반발이 빗발쳤다. 이번 개정안은 특정 세력을 솎아내기 위한 ‘장치’라는 의혹이 나오면서다. 특히 하위 10%를 가려내기 위한 평가 과정이 일부 불투명하다는 점에 공통된 의견을 모았다. 현역 의원 평가 지표에 따르면 평가점수는 총 1000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의정활동(380점) ▲지역활동(270점) ▲기여활동(250점) ▲공약이행활동(100점)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 대부분은 ▲대표발의 법안 수 ▲본회의·상임위 출석률 ▲공약이행도 등 측정 가능한 부분이지만 가장 배점이 높은 의정활동(380점)은 정성 평가로 진행된다. 특정인의 주관적 견해가 개입될 여지가 있는 만큼 불공정한 심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비명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개정이 당헌 위반이라 할지라도 이 대표 체제는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고, 결국 성사되게 할 것”이라며 “하위 10%에 찍히는 순간 살생부처럼 이름이 나도는 건 시간문제다. 거기에 이름을 올리는 건 결국 민주당의 누구겠느냐”고 소리 높였다. 총선 앞두고 공천룰 ‘만지작’ 마침내 다가오는 복수의 시간? 이날 표결에 앞서 진행된 중앙위 자유토론서 ‘원칙과 상식’ 소속인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독일의 ‘나치’ 정당을 언급하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포퓰리즘과 정치권력이 일치될 때 독재권력이 된다”며 “이재명 대표가 말하는 국민 눈높이라는 게, 그 국민이 과연 누구인지 굉장히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일부 의원은 투표 전날인 지난 6일, 민주당 중앙위원들에게 서한을 발송해 부결을 호소하기도 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집행부가 편의주의적 태도로 당헌을 누더기로 만들고 원칙과 기준을 무너뜨리는 내용이므로 부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미 선출직공직자평가위가 구성돼 현역 의원에 대한 각종 평가가 진행됐고, 당원과 지역주민 대상 여론조사도 진행되고 있다”며 “경기 도중에 규칙을 바꾸거나 시험 도중 배점을 바꾸는 일은 부정시비를 스스로 일으키는 불공정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 4일부터 국회의원 평가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민주당 전해철 의원도 자신의 SNS를 통해 “시스템 공천은 계파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지도부 등이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없도록 공천심사 전반에 걸친 내용을 당헌당규에 담아 제도화한 것”이라며 선거를 앞두고 급작스럽게 바꾸는 것은 나쁜 선례를 만드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총선기획단은 민주당의 혁신을 위한 선택이라며 진압에 나섰다. 총선기획단 소속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일부 의원님들께서 우려하시는 지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정성 평가에 주관적 의견이 개입될 우려가 있는지 총선기획단 회의를 통해 확인해봤다”며 “평가위원회는 우리 당과 상관이 없는, 제3자의 독립 기구로 운영되기 때문에 당내 의원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얼룩진 과거사 다만 “주관적으로 ‘찍어내기’ 우려에 관해서는 아예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면서도 시스템상 특정 의원만 솎아낼 매우 가능성은 낮다고 시사했다. 공정성과 관련한 문제가 계속해서 지적된다면 당 차원서 투명성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도부를 비롯한 친명계 역시 입을 모아 숙청 시나리오에 발 빠르게 선을 그었다. 이들은 당의 균열을 부추기지 않기 위해 당무감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당무감사는 현역 의원 평가(1000점) 중 80점에 불과하지만 현역의 지역구 관리 현황을 서열화할 수 있는 민감한 지표 중 하나로 꼽힌다. 앞서 국민의힘이 당무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예고된 대대적인 물갈이로 인해 혼란에 빠졌던 만큼 민주당은 당내 안정에 무게를 뒀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당내 균열을 무릅쓰고 총선을 5개월 앞둔 시점서 공천룰을 변경했다. 그 의중을 두고 비명계의 쓴소리가 이어졌지만 일각에서는 총선 승리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해석했다. 정치권에서는 총선 전에 이 대표가 자신의 세력을 탄탄히 구축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나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달리 이 대표의 구심점이 약하다는 평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친낙(친 이낙연), 친문(친 문재인), 친명(친 이재명) 등으로 민주당의 세가 나뉜다면 당내 혼란은 불가피하다. 만일 뜻을 달리하는 이들이 힘을 합쳐 신당을 창당할 경우 표가 분산되는 것 역시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있어 걸림돌이 되는 세력은 뽑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르는 이유다. 따라서 이번 사태로 친문·친낙 세력이 가시방석에 앉았다는 게 일부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성향이 짙거나 주요 직을 맡았던 의원이라면 더욱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깊어진 갈등 골 ‘팬덤 정치’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부터 특정 세력의 국회의원이 살생부에 이름을 올리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계기도 여러 가지다. 개딸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을 뜻하는 은어) 리스트’나 ‘공천 자객’이 가능한 지역구 지도는 두고두고 온라인서 회자된다. 일부는 이 대표에 관한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예상되는 의원을 색출한 뒤 반란군으로 낙인찍기도 했다. 이들이 수박으로 칭하는 부류는 대부분 친낙계지만, 간혹 친문계 의원이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강성 친명계가 두 인물과 대립하는 이유는 그들이 과거 이 대표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분노 때문이다. 지난 19대 대선 경선서 당시 이재명 후보는 같은 당 문재인 후보의 강성 지지자로부터 ‘문자 폭탄’을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 1위 후보이자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그를 향해 날을 겨누자 친문의 반감을 산 것이다. 이 후보는 토론회 등에서 문 후보를 향해 “기득권자들과 재벌의 사외이사 등이 문 후보 주변에 대규모로 몰린다” “기득권 대연정이다”라고 말하는 등 거침없는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이를 두고 친문 진영에서는 ‘수위를 넘은 발언’이라고 질타했다. 하루빨리 이 후보를 탈당시켜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이런 와중에도 이 후보는 “경찰이 진실 대신 권력을 택했다”며 끝까지 각을 세웠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이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되돌아보니 정말 싸가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 손해만 될 행동을 했다”며 화해의 메시지를 던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양측의 감정도 다소 누그러진 듯했다. 이, 친문·친낙 누르고 세력 구축 이미 블랙리스트 작성? 재선 비상 하지만 이들의 악감정은 20대 대선서 이 후보가 고배를 마시고 지방선거서 참패를 겪으면서 되풀이됐다. “문재인이 이재명을 도와주지 않아 패배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다. 친명계 의원은 패배의 원인으로 문재인정부의 실정과 조국 사태, 부동산 문제 등을 핵심 원인으로 꼽았다. 이 대표의 실책이 없진 않지만 대선과 지방선거는 현 정부(당시 문정부)에 평가가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친문계 의원은 “결국 후보의 사법 리스크가 문제”라며 ‘이재명 책임론’으로 맞불을 놨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웃돌았던 만큼 이 대표의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와 그의 아내인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이 패배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와 갈등의 골이 깊어진 계기 역시 비슷하다. 지난 20대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때 이 전 대표를 후보로 만들기 위해 친낙계가 의도적으로 대장동 사건을 흘렸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사건의 발단은 대장동의 핵심 인물인 남욱 변호사의 증언으로 시작됐다.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가 민주당 윤영찬 의원에게 관련 자료를 넘겨줬다는 취지로 증언하면서다. 대표적인 친낙계로 꼽히는 윤 의원은 “남 변호사가 진술한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극구 부인했다. 이를 두고 이 대표 지지자들은 “대장동 의혹을 최초 제기한 쪽이 친낙계가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진실공방이 이어지자 개딸은 ‘이재명 명예 살인을 사주했다’ ‘이재명을 친 건 이낙연’ 등의 포스터를 만들어 거칠게 비난했다. 지난 9월, 이 전 대표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당시 민주당 커뮤니티가 그를 향한 혐오 발언으로 도배됐던 만큼 두 집단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인 모양새다. 과거의 혈투를 짚어가다 보면 이번 공천 작업은 이 대표의 설욕을 위한 전초전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이와 관련해 비명계 의원은 “아무리 당에서 친낙·친문 세력과 화합한다고 말해도 결국 다 잘라낼 것”이라며 자신과 같이 ‘반이재명파’로 꼽히는 이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상된 시나리오 현역 의원 중 하위 10%에 포함되면 사실상 컷오프나 마찬가지라는 회의적인 시선이 나온다. 이와 함께 이 대표와 결을 달리한다는 이유만으로 살생부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는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지도부는 당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만큼 정당성이 보장된다고 팽배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총선을 앞두고는 여의도를 구성하는 퍼즐 조각이 해체되고 다시 끼워 맞춰지길 반복한다. 컷오프 대상자가 추려지는 다음 해 1월을 기점으로 정치권 지각이 크게 흔들릴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명낙회동 시즌2 더불어민주당 내 계파 갈등이 심화할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의 두 번째 ‘명낙 회동’이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 이 전 대표가 탈당과 신당 창당 등을 시사하며 ‘이재명 때리기’에 나서자 지도부가 급히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 전 대표는 “사진 한 장 찍고 단합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만날)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등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지난 7월에 성사된 회동 역시 약 한 달 진통을 거친 만큼 이번에도 양측의 기싸움이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