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09.19 06:47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필리핀 도박왕’ 사건 재판이 수개월째 공전 중이다. 피고인 ‘조삼’ 김모씨가 시간 끌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한 대형 로펌이 또 사임신고서를 제출해 해당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사정당국 안팎에서는 검찰도 문제라고 비판한다. 공판에 제대로 임하지 않고 김씨의 혐의를 부실하게 들여다봤다는 지적이다. “계좌 내역이 있다면서요. 출력물이잖아요. 원본 파일을 제출해 달라는 건데.” 지난 6일 진행된 ‘필리핀 도박왕’ 사건 재판 도중 판사가 검찰 측에 한 말이다. 공판 담당 검사가 재판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지적한 셈이다. 검찰의 부실한 대비가 피고인 ‘조삼’ 김모씨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혐의 적용도 논란이다. 비슷한 사건으로 알려진 ‘민준파’ 사건과는 사뭇 다르다. 조삼은 누구냐? 김씨의 공판은 그가 지난해 9월20일 구속 기소된 이후 총 6번 진행됐다. 약 6개월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재판 진행이 더뎠던 건 김씨 변호인 측의 연이은 사임 때문으로 보인다. 김씨가 선임했던 대형 로펌은 총 5곳이었다. 개인 변호사들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총 13명이 사임계를 제출해 왔다. 일부 로펌은 공판 직전 검찰 측 기록에 관한 복사 및 열람을 신청하고 나서 사임했다. 증인들이 출석하지 않아 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기도 했다. 김씨의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고 있지만 공판 담당 검사가 재판에 집중하지 않는 태도도 문제다. 김씨는 자신이 바지사장으로 내정된 이후 현금을 움직이는 자금책이었을 뿐 총책은 따로 있다며 일부 혐의를 부인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이 모르는 부분이 포함된 부분과 중복으로 산정된 부분이 있어서 실제와 다르다. 1조3000억원이라고 기소돼있지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정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검찰 측에 문제가 되는 계좌에 관한 증거기록과 전산자료를 일괄해서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검찰 측은 “찾아 보고 있으면 제출하겠다. 관련자들이 다 재판 중이라 시일이 걸릴 것 같다”고 답했다. 이에 재판부는 “왜 시일이 걸리냐? 아니 계좌 내역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출력물을 말하는 거다. 그 원본 파일을 제출해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 측은 “증거기록을 샅샅이 뒤져 보지는 못했다. 확보해서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계좌가 여러 개가 있고, 회원 입금한 돈이 계좌로 넘어가고 다시 일부는 반환되거나 순환이 이뤄졌다. 변호인 측이 주장한 건 순환되는 걸 걷어내면 1조3000억원은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검찰도 수사할 때 순환되는 건 걷어내고 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 부분에 관한 입증은 검찰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 공판 검사 수차례 지적 이러다…혐의 입증 물거품 우려 핵심 증인들의 불출석도 이어졌다. 재판부는 “증거조사부터 해야 할 것 같다. 구속 만기가 다 되도록 진행된 게 없다. 이건 피고인에게도 유리한 게 아니다. 변호인들이 뒤늦게 선임된 건 이해하지만, 1차 기소된 사건 구속기한도 다 됐는데, 이 상태면 재판 진행 자체가 되질 않는다”고 비판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판사가 직접 재판 진행이 더딘 문제를 언급할 정도면 인내심에 한계치에 온 것”이라며 “검찰이 판사가 지적한 증거조차 제대로 보완하지 않은 부분은 아직 초임 검사이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도 “현재 단계서 피고인이 노리는 건 불구속이다. 실형을 피할 수 없으니 최대한 혐의를 빼려는 전략을 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이 증거를 보완해야 하는데 어쩌면 입증에 실패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형 보이스피싱 범죄였던 민준파 사건은 김씨의 범죄와 유사했다. 이 사건도 김씨처럼 필리핀 마닐라서 시작됐다. 민준파 조직원들은 마닐라 콘도 등에 사무실과 숙소를 마련한 뒤, 개인적인 인적 관계를 이용하거나 필리핀 현지 사이트에 “상담원을 구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게시하며 신규 조직원들을 모집했다. 이들이 범행 초기에 가장 신경 쓴 것은 보안 유지로 실제로 조직원들은 실명을 쓰지 않았다. ‘승이’ ‘맹구’ 등 가명 또는 별명을 써서 신분을 철저히 위장했다. 이 조직(민준파)의 총책이 되는 팀장 최민준이 ‘민준’이란 가명을 쓴 것도 이때부터다. 이들은 조직원들의 여권을 거둬 여행사에 맡겨 버리는 방식으로, 조직원의 이탈을 적극 방지했다. 한 번 가입한 조직원은 마음대로 탈퇴할 수 없었고, 내부 사정을 밖에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수시로 교육받았다. 피해액 200억 ‘민준파’ 유사 나중에 민준파 부총책이된 A씨가 보이스피싱에 발을 들인 것도 이 무렵이다. 2016년 1월 A씨는 큰 돈을 벌고자 필리핀으로 갔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시작했고, 최씨와 A씨는 팀장과 팀원으로 2017년 1월까지 58억원에 가까운 돈을 챙겼다. 최씨와 A씨는 2017년 가을쯤 금융기관을 사칭해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하는 보이스피싱 범행조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총책 최씨와 A씨는 ▲콜센터 직원 ▲출집(보이스피싱 인출책) ▲장집(대포 체크카드 모집책) ▲국내 인출책 ▲국내 환전책 등으로 구성된 조직을 꾸렸다. 콜센터 조직은 팀장급 별명이나 팀 구성원들의 특성에 따라 10여개 팀으로 구성됐다. 최씨는 2021년까지 약 4년간 보이스피싱 범죄를 일삼으며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020년 2월 ‘민준파’의 존재를 인지한 후 2017년도부터 2020년까지의 3년간 발생 사건을 분석했다. 경찰은 조직원들을 특정해 범죄단체조직죄, 사기 등의 혐의로 국내 조직원들을 순차적으로 검거했다. 경찰은 이후 총책 최씨 등 조직 윗선까지 검거하기 위해 약 2년간 장기 추적을 거듭했다. 총책의 동선을 확보한 경찰은 현지 사법기관과 공조하며 1주일간 잠복한 끝에 지난해 9월 드디어 최씨를 검거했다. 나흘 뒤에는 총책의 검거 사실을 눈치채고 급하게 다른 곳으로 도피를 준비하던 A씨와 조직원 4명도 모두 검거했다. 이들은 같은 해 10월 수원지검으로 구속 송치됐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최씨와 A씨는 2017년 12월쯤부터 약 4년간 피해자 560명으로부터 적게는 200만원부터 많게는 3억3000만원까지 뜯어 총 108억원을 가로챘다. ‘민준파’ 이전의 보이스피싱 조직서 얻은 범죄수익을 합하면 피해액은 총 160억~170억원으로 늘어난다. 대놓고 공판 지연 검찰은 당시 합수단은 법리 검토를 통해 단순 사기죄서 법정형이 높은 특경법 위반으로 혐의를 변경하며 법원에 중형 선고를 요청했고, 최씨에겐 동종범죄 역대 최장기형인 징역 35년과 추징금 20억원이 선고됐다. A씨에겐 징역 27년과 추징금 3억원이 선고됐다. 기존 보이스피싱 총책에 대한 최장기형은 징역 20년(안산지원·피해액 54억원)이었다. 사건 내용을 보면 민준파 사건과 김씨의 사건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 안팎에서는 김씨의 혐의를 두고 사기도박 혐의가 추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 내용에 밝은 한 수사관은 “수년간 이뤄진 조직적인 범죄고 수사 과정서 김씨가 보이스피싱을 주도했다는 정황도 여럿 포착된 바 있다”며 “검찰의 추가 기소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다른 수사관도 “1조3000억원대 부당이익은 역대급 범죄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상황으로는 중형이 선고되기 어렵지 않나 우려가 된다. 타인을 기만한 증거는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추가 기소가 이뤄지는 걸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이용자를 속인 행위를 입증해야 한다. 승률을 조작했다거나 이용자들을 속였다는 근거가 필요하다. 단순히 인터넷상에 도박장을 개설하거나 상대방과 도박하는 구조를 만들고 수수료 형식으로만 수익을 냈다면 사기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남부지검의 한 검사도 “차후 공소장 변경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검찰서 신중하게 기소했을 것”이라며 “피고인이 전관을 썼다고 해도 재판부서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에는 어려운 사례”라고 말했다. 계좌 증거도 준비 못해…느슨한 대응 6개월 시간 끌기…사임 변호사만 13명 김씨의 부당이익 1조3000억원 중 검찰이 특정한 금액은 40억원에 불과하다.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사정당국 수사관들의 추가 조사 이후 금액이 늘어날 수는 있다. 그러나 김씨가 조직원들을 통해 현금을 은닉하거나 벌어들인 수익 일부를 필리핀 길거리 환전소서 대량으로 바꿔치기는 방법을 지속해온 만큼 추적에만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도 “코인 거래소도 추적이 어려운데 수십서 수백만원을 환전소서 현금화한다면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김씨가 은닉한 금액을 추적할 순 있어도 이미 현금화된 돈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정당국은 김씨의 두 번째 아내로 추정되는 B씨가 김씨의 수익 일부를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대포통장으로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 필리핀에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조사 중”이라며 “범죄수익환수를 담당하는 수사관들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부자가 아니었던 B씨는 김씨를 만난 이후 생활고에 시달린 적이 없다. 마땅한 직업이 없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다. B씨는 현재 마닐라 지역 중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꼽히는 곳에 거주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의 자식은 일반인이 다닐 수 없는 국제학교에 다니며 호화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김씨의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기관 관계자들도 B씨에 주목하고 있다. 김씨가 은닉한 추가 금액을 B씨가 소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해외 파트 담당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김씨가 필리핀 현지서 잡혔을 당시 초호화 생활을 했던 건 차명으로 운영하는 계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고급 리조트에 거주하며 마이바흐 등 고가 외제 차량 10대를 타는 초호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와이프를 굉장히 신뢰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가난한 동네서 살던 B씨가 월세 1000만원이 넘는 곳에서 거주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기 혐의 적용 안 해 한편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김씨의 보석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김씨 측 변호인은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반면 검찰은 김씨가 필리핀서 검거된 뒤에도 허위 사건을 만들어 송환을 지연시키는 등 또다시 해외로 도피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범죄 가해자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서 형사공탁은 ‘천사공탁’으로 불린다.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주는 것보다, 형사공탁을 해서 감형받겠다고 문의하는 피의자들도 있다. 피해자의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위한 제도가 사실상 피고인의 감형을 위한 ‘꼼수’로 악용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형사공탁 특례가 시행된 지 1년2개월여가 지났지만 개선을 향한 정부의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고 범죄 피해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피해자가 합의를 완강히 거부해도 형사공탁을 하면 감형을 끌어낼 수 있다.” 가해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이 하는 이야기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형사공탁 특례가 시행된 후 1년간 2만5789건(1심부터 대법원 포함)의 공탁 신청이 있었다. 이 중 공탁금이 지급된 건수는 1만445건으로 신청 건수의 40%에 불과하다. 피해 회복? 뻔한 목적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피해복구나 변제 등을 목적으로 법원의 공탁소에 금전을 맡기는 제도다. 기존에는 피해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알아야 공탁금을 낼 수 있었지만, 2022년 12월 특례 시행 이후 사건번호나 조서·공소장 등에 기재된 내용 등만으로도 공탁이 가능해졌다. 공탁 과정서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일과, 이로 인한 2차 가해 등을 막기 위한 취지로 입법됐다. 하지만 입법 취지와는 다르게 피고인의 감형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했는데도 공탁금 유치로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점을 감안해’라는 판결문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피해자가 공탁된 사실도 모르는 상황서 공탁금을 내고 감형받는 사례도 나왔다. 최근 대법원서 징역 5년이 확정된 강남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서도 공탁금 감형은 큰 화두였다. 강남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는 지난 2022년 12월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한 초등학교 후문서 방과후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을 40대 A씨가 차로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사고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28%로 면허취소(0.08% 이상) 수준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A씨가 B군을 충격한 순간 차량이 흔들렸고 사이드미러 등을 통해 A씨가 사고를 인식할 수 있었지만, 그대로 차량을 몰아 도주해 사고를 당한 B군이 방치됐던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1심 결심서 유족 측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과 예방적 효과를 고려해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의 도주치사 혐의는 무죄로 판단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20여m 거리에 떨어진 곳에 위치해 금세 발각될 가능성이 있는 주거지 주차장으로 A씨가 들어가기보다는 사고 현장서 직진해 멀리 달아나는 것이 도주 의사에 부합하는 행동”이라며 “피고인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소극적으로 구호 조치한 것으로 볼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이어 “9세에 불과한 피해자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꿈을 펼쳐 보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며 “가족은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충격과 고통을 입었다”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아들을 보는 가족의 절망감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며 무엇보다 유족이 피고 엄벌을 원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이전까지 피고가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고, 가족과 지인이 선처를 구한다”며 “종합보험에 가입됐고 3억5000만원을 공탁한 점, 암 투병 중인 점 등을 피고에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부연했다. 1년간 2만5789건 신청 피해자 몰래 해도 인정 양형 이유에 공탁금이 들어가자 피해자 유족 측은 “공탁금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형량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A씨가 사고 현장에 돌아온 직후 사고 사실을 알렸고, 경찰에 체포 이전까지 피해자 주변의 자리를 지킨 점 등을 근거로 도주 고의성이 입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A씨의 범죄 공소사실과 관련해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고 판단해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5년으로 형을 낮췄다. 상상적 경합은 1개의 범죄 행위가 여러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를 뜻한다. 형법 40조는 이 같은 경우 가장 무거운 범죄에 대해 정한 형으로 피고인을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1심은 특가법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사 혐의와 위험운전치사 혐의를 별개의 법률행위로 판단했다. 다만 항소심은 법리상 2개의 치사 혐의가 1개의 법률행위로 평가된다고 판단해 형량이 낮아졌다. 검사는 무죄 부분에 대한 채증법칙 위반, 법리오해 및 유죄 부분에 대한 죄수 판단을 주장하며 상고했다. 피고인 A씨는 위험운전치사에 관한 법리 오해, 양형부당을 주장하며 상고했다. 다만 대법원은 양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며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대법원 확정 이후 유족 측은 “한 줄기 희망을 품고 대법원에 나왔다. 그러나 저의 희망은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며 “재판 과정을 통해 저의 피해가 구제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상처와 고통을 겪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다른 어린이보호구역 음주 사망사건에 비해 현저히 적은 형량이 나온 것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가해자가 전관 부장판사 출신의 대형 로펌 태평양을 쓴 점, 기습공탁금을 사용한 점 둘 다 모두 금전적인 힘이 작용해 이 같은 판결이 나온 것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또 “1심, 2심 모두 가해자는 기습공탁을 이용했고 저는 매번 피눈물을 흘렸다”며 “피해자인 제가 공탁금이 필요하지 않으며 용서할 의사가 없다고 수차례 밝혔음에도 재판부가 이를 감형 요소로 고려하는 것은 저 대신 용서라도 하겠다는 것이냐”고 호소했다.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소속 유연수의 축구선수로서의 생명을 앗아간 음주운전의 피고인도 1심 선고를 앞두고 700만원을 형사공탁했다. 지난 1월19일 제주지방법원에 따르면 이날 유연수 선수를 다치게 한 음주운전 피고인 C씨가 700만원을 형사공탁했다. 지난달 25일 선고 공판(제주지법 형사1단독)을 6일 앞둔 시점이었다. 수령 안 해도… 유연수 선수는 지난달 17일 방영된 tvN <유 퀴즈 온더 블록>서 “(가해자는)지금까지도 사과 한 마디 없다. 재판에서는 저희한테 사과하려고 했다고 하던데 정작 저희는 한 번도 연락받은 적이 없다”며 “그걸 듣고 더 화가 나더라. 와서 무릎 꿇고 사과했으면 그래도 받아 줄 의향이 있었는데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지만 사과하기보다 기습으로 공탁을 한 셈이다. 이에 유연수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오션 소속 오군성 변호사는 “1심 선고를 며칠 앞두고 피고인 측이 사과문을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여기에 형사공탁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유연수 선수와 논의한 결과 1심 선고를 며칠 앞둔 상황 속에 사과문 전달·형사공탁은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C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상), 강제추행 혐의로 1심서 징역 4년, 40시간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5년간 취업 제한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재판부에 항소장을 제출한 상황이다. 이외에도 후임병에게 상습적으로 가혹행위를 일삼은 해병대 선임도 기습공탁을 통해 감형받고 벌금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D씨는 2022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인천 강화 소재의 한 해병대 생활관서 후임병들에게 이른바 식고문을 일삼고 이유 없이 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후임병들에게 반복적으로 가혹행위 등을 가했고 수단과 방법도 불량하다”고 지적하면서도 “일부 피해자와 합의하고 합의 못한 피해자를 위해 형사공탁하는 등 피해복구를 위해 노력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은 모두 판결 선고일이 임박해 형사공탁을 진행한 예시들이다. 이 같은 형사공탁은 소위 기습공탁으로 불린다. 피고인의 형사공탁을 원고가 수령 의사가 없음을 밝히기 위해 공탁금회수동의서 또는 엄벌탄원서를 제출할 시간도 없게 만드는 것이다. 형사공탁 특례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피해자의 동의가 없으면 형사공탁금을 신청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피고인들은 형사변제공탁이 아닌 민사변제공탁으로 돌려서 공탁을 신청하는 꼼수를 사용했다. 대표적인 예로 ‘지리산 산청 펜션 살인사건’ 재판이 있다. 지리산 산청 펜션 살인사건은 2021년 경남 산청서 투숙객이 펜션 주인을 마구 구타해 살해한 사건이다. 해당 사건서 1심 재판부는 피고인 E씨에게 범행이 잔혹하고 심신미약도 인정할 수 없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E씨에게 4년을 감형한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돈으로 사고 다시 주머니로 2심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은 별다른 이유 없이 피해자의 얼굴 부위를 주먹과 발로 수회 구타해 살해했는데 그 수단과 방법이 매우 잔혹하며 피해자는 두부에 광범위한 손상을 입어 사망해 범행의 결과 역시 참혹하다”며 “피해자는 사망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의 유족들 역시 피해자의 죽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며 피고인에 대해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인은 조현병 등의 정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 피고인은 이 사건 이전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전혀 없고 일관되게 잘못을 인정하며 진심 어린 반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의 가족들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등 사회적 유대관계가 비교적 분명해 보이며 향후 피고인에 대한 치료와 계도를 다짐하고 있다. 당심에 이르러 피고인의 가족들이 피해자의 유족들을 위해 상당한 금원을 공탁한 점 등을 고려해 이같이 형을 정한다”고 부연했다. 유족 측은 해당 공탁 사실을 알지도 못했으며 받을 생각도 없던 공탁금으로 감형이 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알고 보니 E씨는 선고 일주일 전에 1억5000만원을 민사변제공탁했으며, 심지어 선고 일주일 후 가해자는 공탁금을 회수하기도 했다. 형사공탁금은 돈을 맡길 때부터 공탁금을 가져갈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해야 해 회수가 불가능하지만 가해자는 민사변제공탁을 신청해 회수가 가능했다. 대법원 예규에 따르면 변제공탁자가 회수청구권의 행사에 조건을 붙이는 경우의 처리지침에 따른 공탁금 회수 제한 신고서를 첨부하지 않은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판결 선고 전후를 불문하고 피공탁자의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공탁자가 공탁금을 회수할 수 있으므로 공탁 사실을 양형에 참작함에 있어서는 공탁금회수 제한 신고서가 첨부됐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해당 재판부서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유족 측은 “돈으로 감형을 사고 다시 그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은 상황인데 법원의 묵인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형량에 영향 미치면 안 된다” 과거엔 민사변제공탁 꼼수도 피고인 측 변호사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민사도 진행 중이라 민사변제공탁을 진행한 것이며 당시 형사공탁 특례가 시행되기 전이라 피해자 동의 없이 공탁하려면 민사변제공탁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에는 다들 이렇게 공탁했다”고 말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아무리 같은 사건으로 형사‧민사재판이 둘 다 진행 중이더라도 민사공탁금을 통해 감형을 받고 다시 회수한 것은 법의 허점을 이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변호인은 법의 허점을 파고들었고 법원은 확인 절차를 제대로 하지 못해 유족 측만 고통받은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형사공탁 특례 시행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합의가 불가능할 때 공탁을 통해 감형을 노린다는 지적이 나오자 대검찰청은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변론 종결 후 선고가 나오기 전 기습공탁이 접수되면 검사가 법원에 변론 재개를 신청해 피해자의 의사와 공탁 경위 금액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개진하라”는 명령을 일선 청에 내렸다. 또 대검찰청은 법원행정처와 실무협의에도 나섰지만 의미있는 결론은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에도 기습공탁을 금지하기 위한 다수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별 다른 움직임은 없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12월에 발의된 총 4건의 공탁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황운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법원이나 검찰에 형사공탁 내용이 통지되면 ‘7일 이내’에 피공탁자 또는 법률대리인에게 고지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특히 피공탁자가 공탁수령 의사가 없을 경우 공탁회수동의서 등을 제출해 원치 않는 공탁이 피고인의 양형에 유리하게 반영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핵심 골자다. 같은 당 이탄희·윤영찬 의원도 유사한 취지의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설훈 전 민주당 의원은 형사공탁 기간을 ‘해당 형사사건의 변론 종결기일 14일 전’으로 제한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각종 사건 등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하려는 노력 대신 변론종결일에 맞춰 기습공탁해 유리한 양형을 받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들 개정안 모두 상임위원회 심사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다음달 22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국회 법안심사는 사실상 멈춰있는 상태다. 법조인도 비판 목소리 법조계에서는 물질만능주의 선고라며 법원을 비판하는 모양새다. 법무법인 영민의 김슬아 변호사는 “한국 법원은 유독 금전공탁을 피해복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공탁은 피해자의 피해복구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정신적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을 재판부는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공탁을 양형 요인으로 보는 것은 재판부의 재량인데 유독 후하게 공탁 감형을 하는 모습”이라며 “사기, 절도 등 금전적 피해가 회복될 수 있는 선고형이 아닌 피해자를 인격적,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성범죄, 아동학대, 무고 등에 관한 선고형에 공탁이 왜 감형 요소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kcj5121@ilyosisa.co.kr>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마침내 닻을 올렸다. 지지자들은 하나같이 “나이스 타이밍”을 외쳤다. 진보 진영의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했던 이낙연 공동대표의 새로운미래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여의도의 기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화한다. 한차례 엇갈린 둘의 운명이 또다시 뒤집힐지 이목이 쏠린다. 지난 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이끄는 ‘조국혁신당’이 공식 출범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한 조 전 장관이 “민주공화국의 가치 회복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겠다”고 선언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다. 이날 당원의 만장일치로 조 전 장관이 당 대표로 추대됐다. 마침내 등판하다 조국혁신당의 상징색은 ‘트루블루’를 대표 단색으로 ‘코발트블루’와 ‘딥블루’를 함께 사용한다. 창당준비위원회 관계자는 “트루블루는 짙은 파란색으로 신뢰와 안정감을 강조하는 색”이라며 “조국혁신당의 최우선 과제인 ‘검찰독재 조기종식’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국민들 삶에 안정감을 돌려 드리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조 대표는 당 대표직 수락연설서 “지난 5년간 무간지옥에 갇혀 있었다. 온 가족이 도륙되는 상황을 견뎌야 했다”며 “생살이 뜯기는 것 같았고 찔리고 베인 상처가 깊었지만 윤석열정부 집권 후 죄인이 된 심정으로 매일 성찰하고 또 성찰했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제 개인의 수모와 치욕을 견뎌낼 수 있으나 피와 땀으로 지켜 온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파괴하는 윤정부의 역주행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며 창당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조 대표는 ▲감사원의 국회 이관 ▲검찰의 독점적 권한 해체 ▲교육개혁과 지역 균형발전 동시 추진 등도 약속했다. 조국혁신당은 단숨에 제3지대의 우위에 올라섰다. 지난 6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YTN 의뢰로 지난 3일부터 4일까지 실시한 ‘비례대표 투표 의향’ 조사에 따르면 조국혁신당은 15%를 기록했다. 개혁신당은 4%, 새로운미래는 2%로 집계됐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제외한 정당 지지율서도 조국혁신당은 4%로 3위를 차지했다. 개혁신당은 2%, 새로운미래는 1%를 기록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난달 조 대표가 총선 출마 의지를 밝혔을 당시 민주당에서는 썩 달가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민주당을 탈당한 이낙연 공동대표가 새로운미래를 창당한 것만으로도 민주당에게 충분히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 논란이 절정에 달할 때 등장했다. ‘이재명 사당화’ ‘이재명의 민주당’이란 비판이 불거지면서 이낙연 공동대표의 신당은 야권 지지자들의 큰 기대를 받았다. 이 과정서 민주당 이탈표가 다수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제시됐다.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조국 신당’ 단숨에 3위…제3지대 의문의 1패 하지만 민주당의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중도·진보를 끌어안을 목적으로 출범한 새로운미래가 방향을 잃고 흔들린 탓에 민심이 등을 돌렸다는 평이 나오면서다. 앞서 새로운미래는 지난 설 연휴 직전, 이준석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과 합당 절차를 밟았지만 11일 만에 이를 철회했다. 이낙연 공동대표는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신당 통합 좌절로 여러분께 크나큰 실망을 드렸다”며 “부실한 통합 결정이 부끄러운 결말을 낳았다”고 말했다. 개혁신당과의 합당이 실패로 돌아서자 이낙연 공동대표는 ‘진짜 민주당’을 강조하며 “민주당의 자랑스러웠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합당으로 인한 리스크를 빠르게 털어내고 야권 지지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낙연 공동대표가 너무 먼 길을 돌아갔다고 평가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당을 뛰쳐나가 별안간 이준석 대표와 손을 잡더니 2주도 안 돼 갈라섰다. 이 과정을 지켜본 국민이 대체 뭐라고 생각했겠는가”라며 “사회서 긍정적으로 수용되는 선택은 아니다. 혁신을 기대했던 지지자들이 적잖은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민주 세력의 기반으로 불리는 호남서 적잖은 반감이 터져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같은 시기에 후발주자로 나선 조국혁신당이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렸다는 평이 나온다. 이낙연 공동대표의 견고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미래는 민주당 공천 파동의 여파로 탈당을 결심한 현역 의원들이 합류하면서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 파동의 중심에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었다. 친문(친 문재인) 핵심으로 꼽히는 임 전 실장의 거취에 양당의 희비가 엇갈릴 예정이었다. 임 전 실장은 서울 중성동구갑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민주당은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전략공천했다.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가 거듭 강조해 온 “윤정부 탄생에 책임 있는 분들”이라는 측면이 고려된 희생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무너진 기대감 이낙연 공동대표는 컷오프된 임 전 실장을 향해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임 전 실장이 새로운미래에 합류한다면 그를 구심점으로 비명(비 이재명)이 모여 ‘민주정신 회복’을 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낙연 공동대표는 BS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임 전 실장과 어젯밤 짧게 통화했다. 많이 속상했을 텐데 참 대단하신 분”이라며 “모멸감을 많이 느꼈을 텐데 용케 참고 한 번 더 생각해 달라고 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이 공천 배제된 것에 관해서는 “확실히 이재명 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이재명의 민주당이 거의 완성 단계에 왔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낙연 공동대표는 지난 3일 예고됐던 기자회견을 연기하면서까지 임 전 실장과 만남을 가졌다. 임 전 실장도 “이재명 대표의 속내는 충분히 알아들었다”며 탈당으로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모든 예상을 뒤엎고 임 전 실장은 당에 잔류하기로 했다. 정치권 이야기를 종합하면, 임 전 실장은 전날 저녁만 하더라도 탈당으로 마음을 굳혔는데 하룻밤 사이 입장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이낙연 공동대표가 충분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간의 관심이 임 전 실장의 선택에 쏠렸던 만큼 타격도 상당했던 탓이다. 이낙연 공동대표는 광주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면 전환에 나섰다. 그동안 이낙연 공동대표는 줄곧 불출마 입장을 밝혀왔다. 그런데도 지역구 출마 요청이 쇄도하자 숙고 끝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 4일 광주시의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마 선언에 앞서 “광주·전남의 많은 분께 사과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완벽주의자인 저로 인해 일하는 과정서 상처받으신 모든 분께 사과하고, 2021년 국민통합을 위해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해보겠다고 부적절하게 거론했던 일도 거듭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선후보 경선서 실패하고 후보보다 더 많이 노력했지만 결국 패배해 죄송하다”며 “특히 제가 민주당을 나와 당원들께 걱정을 드려 송구스럽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공동대표는 민주당을 향해서도 날을 세웠다. 윤정부를 견제하고 심판하려면 야당이 잘해야 하는데, 지금의 민주당은 도덕적·법적 문제에 발목 잡혀 당당하게 정부 심판론을 견인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이낙연 공동대표는 “민주당의 정신을 되찾고 민주당이 못하는 정권 심판과 교체를 해야 한다”며 ‘진짜 민주당’을 만들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임 전 실장의 민주당 잔류로 한풀 꺾였던 새로운미래에 지난 7일 설훈·홍영표 의원이 합류해 ‘민주 연대’를 구축하면서 몸집을 키워나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야권 지지자의 표를 얻기에는 조국혁신당이 우세한 위치에 있다는 평이 나온다. 새로운미래는 ‘거대 양당 타파’를 기치로 내건 반면 조국혁신당은 ‘윤정부 심판론’이라는 선명성을 부각했기 때문이다. 당부터? 딜레마 이번 총선서 정당은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으로 찍을 것이란 해석에 힘이 실린다. 이에 탄력을 받은 조국혁신당은 이번 총선 승리 전략으로 ‘지역구는 민주, 비례는 조국혁신당’에 투표해 달라는 교차 투표를 표어로 내세웠다. 당초 10석이었던 목표 의석을 12석으로 늘리면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난 8일에는 불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황운하 의원이 조국혁신당에 합류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여의도를 향하던 이낙연 공동대표와 조 대표의 운명이 갈린 것으로 해석된다. 조 대표가 더 높은 곳으로 치고 올라가기 위해서는 민주당을 이끄는 이재명 대표와의 관계를 푸는 게 급선무다. 민주당은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하 민주연합)을 창당했다. 조국혁신당의 비례 의석이 늘어나면 반대로 민주연합의 비례 의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핵심 지지층이 겹친다는 점도 민주당이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난 5일 국회서 성사됐다. 이들은 손을 맞잡고 한목소리로 현 정권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날 이재명 대표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는 동일하다”며 “윤정부의 폭정을 종식하고, 심판하고, 국민께 희망을 드리는 것”이라고 소리 높여 말했다. 그러면서 “총선서 윤정부를 심판하고자 하는 모든 정치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며 “그중에 조국혁신당이 함께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 또한 “민주당이 의지는 있어도 조심해야 하는 캠페인을 담대하게 전개하겠다”며 “‘검찰 독재 조기종식’ ‘김건희씨를 법정으로’ 등 캠페인을 통해 범민주진보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나오게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향해서는 “넓은 중원으로 나가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에 실망한 중도 표와 합리적 보수표까지 끌어오고 전국 지역구에 일대일 구도를 형성해 승리하길 빈다”며 “저희는 당의 비전과 정책을 알림과 동시에 투표 독려 운동을 강하게 전개하겠다. 이렇게 연대하고 협력해야 윤석열의 강, 검찰 독재의 강을 건널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개 발언이 끝난 뒤 두 대표는 10분가량 비공개로 회동했다. 이날 자리에 배석한 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회동이 끝난 뒤 “4월10일 총선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승리가 절실하다는 말씀을 나눴다”며 “두 당이 연대하고 협력하자는 취지의 말씀이었다”고 설명했다. ‘더 파란’ 민주당 가리기 싸움 총선 후 그려질 관계도 주목 이어 조국혁신당 신장식 대변인은 “‘윤정부를 심판하는 총선서 연대하고 협력해 승리해야 한다’고 이재명 대표께서 말씀하셨다”며 “이에 조국 대표는 ‘학익진처럼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로 출마해 ‘범야권 투표’를 독려하곘다는 게 조국혁신당의 계획이다. 다만 두 대변인 모두 선거와 관련해 지역구 연대 등에 관한 논의는 없었다고 전했다. 이날 만남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느슨한 연대’가 이뤄졌다고 내다봤다. 불편한 관계가 해소되지 않았지만 민주당이 정권심판론을 주장하는 조국혁신당을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선의의 경쟁이 불가피하다지만 민주당 입장에서는 ‘조국의 강’을 또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존재한다. 게다가 입시 비리 의혹 등으로 조 대표가 2심서 실형이 나오면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덩달아 불거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도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총선 이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관계에 관해 “이론적으로 함께 갈 수 없는 사이”라고 전망했다. 신 교수는 “조 대표와 이재명 대표 모두 사법 리스크가 있어 상대방이 공격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주게 된다”며 “‘비명횡사’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이재명 대표는 자기 세력 구축에 힘쓰고 있는데, 유력 대선후보(조국 대표)와 손을 잡는 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조국 심판론’ 여론이 불거질 조짐이 보이자 조국혁신당은 초기 진압에 나섰다. 총선을 앞두고 칼을 겨눌 대상은 조 대표가 아닌 윤정부라는 것이다. 신 대변인은 한 라디오서 “지금 사과 한 알이 1만원인데 (물가 문제는)조국 때문인가? 의사 면허를 박탈하는 것도 조국이 했는가?”라며 “지금 대한민국이 건너야 할 강은 조국의 강이 아니라 ‘윤석열의 강’ ‘검찰 독재의 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 대표와 이낙연 공동대표의 회동 가능성은 미지수다. 새로운미래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조국혁신당 출범 전후)두 대표가 만남을 가진 적은 없다”며 “따로 소통하는지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찐’ 민주 일각에서는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이 컨벤션 효과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새로운 미래와 개혁신당 모두 창당 직후에는 상당한 지지를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잡음이 새어 나오면서 이들 또한 기득권에 지나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신 교수는 ‘진짜 민주당’ 가리기에 나선 이낙연 공동대표와 조 대표의 파급력을 비교하는 취재진의 질문에 “어느 한쪽의 파급력을 논하기 보다는 팬덤의 문제”라며 “이낙연 공동대표는 조 대표에 비해 팬덤이 약하다. 조국혁신당이 비례 6석 정도 얻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법리스크 강타 시동 거는 국민의힘 국민의힘이 조국 대표와 이재명 대표를 동시에 조준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두 사람의 회동을 놓고 “단순한 선거 연대를 넘어 방탄 동맹”이라며 “민주당과 야권의 잘못된 선거 야합을 국민들께서 총선 때 반드시 심판해 주길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윤 원내대표는 “도덕성이 결여된 인물과 반국가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 국회에 입성하면 헌정사에 흑역사로 남을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자녀 입시 비리 혐의를 받는 조 대표와 조국혁신당의 1호 영입인사이자 대변인인 신장식 변호사의 음주·무면허 전과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박>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달 뒤 정치권 최대 게임이 열리는 가운데, 현재 정당들은 선수 선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본 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는 승리만을 위해 달려야 한다. ‘승자 독식’, 이긴 쪽이 모든 것을 갖는 게 게임의 규칙이다. 문제는 심판이다. 단판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만큼 심판의 역량이 중요한 상황서 자질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4·10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각 정당은 정치권 최대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째에 접어든 만큼 안정론과 심판론이 맞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는 다음 달 5~6일 사전투표와 10일 본투표 등 3일간 진행된다. 사흘간의 투표 결과에 따라 정치권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활 건 정당들 정치권을 비롯한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지점은 심판 역할을 맡은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공정성과 중립성이 생명으로 이를 위해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벌을 선고받은 게 아닌 이상 신분이 보장된다. 1963년 이래 60년간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를 관리해 온 선관위의 위상이 불과 1~2년 새 나락으로 향하고 있다.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 부분서 삐끗하더니 내부 도덕성 문제까지 불거졌다. 여기에 선관위 시스템이 해킹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 등 취약한 보안에 대해서도 말이 얹어졌다. 특히 사전투표에 대한 불신은 그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최근 선관위는 사전투표 용지 직접 날인 건에 대해 국민의힘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지난달 7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서 “(사전투표 용지에)실제로 꼭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현재는 관리관 직인이 인쇄된 사전투표 용지를 유권자에게 나눠주는 방식인데 이를 법 규정에 따라 관리관이 투표장서 직접 도장을 찍어 나눠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본투표에서는 관리관이 투표용지에 직접 도장을 찍는다. 국민의힘은 사전투표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해 혹시라도 제기될 수 있는 ‘부정투표’ 논란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장동혁 사무총장은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허철훈 선관위 사무차장을 불러 면담했다. 선관위는 사전투표 용지 직접 날인과 관련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장 사무총장은 선관위의 입장에 ‘납득할만한 설명’을 요구했다. 사전투표 용지 직인 두고 국민의힘과 힘겨루기 상황 장 사무총장은 “국민이 선거 관리에 불신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면 선관위는 선거 관리가 공명정대하고 투명하다는 신뢰를 주는 게 역할이자 책무”라며 “가장 중요한 책무인 공정 선거관리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의지가 없다면 선관위가 왜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반면 선관위는 사전투표소서 관리관이 직접 날인할 경우 투표 절차가 길어지고 유권자 대기 시간이 더 늘어날 수 있다며 기존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 편의를 이유로 내세운 것이다. 또 사전투표 관리 매뉴얼 등이 이미 확정된 상황서 현실적으로 국민의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선관위는 2019년과 2020년, 20201년 대법원이 사전투표 관리관 인쇄 날인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점을 들어 법적 문제가 없다고 봤다. 헌법재판소 역시 지난해 적법 판정을 내린 바 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측에서 말하는 대량 조작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야권에서는 여당의 선관위 압박이 총선용 노림수라고 의심하는 중이다. 사전투표는 젊은 층이나 직장인이 많이 참여하는 만큼 투표율이 높을수록 보수 진영에 불리한 편이다. 여권에서는 국민의힘이 사전투표율을 낮추기 위해 불신을 조장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른바 ‘사전투표 음모론’이라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사전투표에 대한 불신을 키운 건 선관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 대선 과정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가 플라스틱 소쿠리나 종이박스 등에 담겨있는 것이 발견되면서 부실 관리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논란으로 노정희 선관위원장이 책임지고 사퇴했다. 헌법기관 방패로 선관위는 사전투표 용지 부실 관리 논란과 관련해 책임자에게 2~3개월의 정직 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갈무리했다. 공직선거 절차 사무를 총괄 관리하는 핵심 간부와 선거정책실장이 각각 철퇴를 맞았다. 실무 부서장인 선거1과장은 ‘불문 경고’ 처분을 받았다. 명시적인 징계는 아니지만 과거 표창 공적 소멸 등으로 불이익을 주는 조치다. 선관위는 창설 60주년을 맞은 지난해 보안 논란으로 또 한 번 몸살을 앓았다.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선관위‧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한국인터넷진흥원이 합동보안전검팀을 구성해 선관위 보안점검을 실시했다. 국정원은 “국제 해킹조직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해킹 수법을 통해 선관위 시스템에 침투할 수 있었다”며 “북한 등 외부세력이 의도할 경우 어느 때라도 공격이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발표했다. 국정원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선관위 시스템은 총체적인 부실 상태였다. 유권자 등록현황과 투표 여부 등을 관리하는 ‘통합 선거인 명부 시스템’의 해킹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사전투표 용지의 무단 인쇄, 개표 결과를 조작하는 일도 가능했다. 이뿐만 아니라 선관위 내부망을 외부와 분리하는 작업이 미흡해 해커가 마음만 먹으면 내부망까지 침입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전에 일어났던 해킹 사고 대응과 관련해서도 조치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관위는 최근 2년간 국정원서 통보한 북한발 해킹 사고에 대한 사전인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적절한 대응 조치도 하지 않았다. 국정원은 선관위 시스템에 대해 외부 세력이 의도할 경우 어느 때라도 공격 가능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채용 의혹 치명타 반면 선관위는 “해킹 가능성이 실제 부정선거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기술적 가능성이 실제 부정선거로 이어지려면 다수의 내부 조력자가 조직적으로 가담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단순히 기술적인 해킹 가능성만을 부각해 선거 결과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선거 불복을 조장해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선거 시스템의 신뢰성을 떨어뜨려 국민 불안과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며 선출된 권력의 민주적 정당성까지 훼손할 위험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선관위가 국정원의 발표를 재반박하면서 방어에 나섰지만 신뢰에는 이미 금이 갔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부정선거에 대해 선관위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 등에는 그 가능성이 ‘망령’처럼 떠돌았다. 지난 1월 국정원은 선관위가 지적사항을 개선했는지를 두고 재점검을 진행했다. 총선을 앞두고 부정선거 논란을 불식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됐다. 선관위는 지난해 국정원의 보안점검 이후 개표 과정서 사람이 투표지를 일일히 확인하는 수검표 절차를 도입하는 등 부정선거 논란 차단에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여기에 자녀 특혜채용 의혹으로 불거진 도덕성 논란이 선관위 자체에 큰 타격을 입혔다. 선관위 자체 조사 결과로만 20건이 넘게 확인됐다. 이마저도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 사람만 대상으로 한 조사였다. 허철훈 사무차장은 지난해 6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4촌 이내 친족으로 확인된 특혜채용 의심자가 몇 명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허 사무차장은 “특별채용으로 선관위에 전입한 직원 가운데 직원과 친족 관계에 있는 직원은 (기존에 알려진)11명을 포함해 모두 21명”이라고 답했다. 부실 관리 논란 여전 부정선거는 선 그었다 송봉섭 전 선관위 사무차장은 구속 기로에 섰다. 송 전 차장은 선관위 경력 채용서 자녀를 부당하게 채용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2018년 1월 자신의 딸 송모씨를 충북선관위 공무원 경력 채용서 부당하게 채용하도록 한모 전 충북선관위 관리대장과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선관위 인사담당자에게 관계 법령을 위반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당시 선관위 사무차장으로 재직 중이던 송 전 차장이 한 전 과장에게 채용을 청탁했고 한 전 과장은 채용 절차가 진행되기 전 딸 송씨를 합격자로 내정하고 채용 절차를 형식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한 전 과장은 해당 경력 채용 당시 자신의 고교 동창 딸인 이모씨를 충북선관위 공무원으로 채용하라고 압력을 행사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시민단체의 고발과 국민권익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같은 해 10월 송 전 차장 등을 상대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한 검찰은 채용에 관여한 선관위 직원 사무실, 선관위 등에 강제 수사를 진행했다. 송 전 차장은 논란이 불거진 이후 사퇴했다. 일단 법원은 송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상태다.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지난해 6월경 불거져 현재진행형인 선관위 특혜채용 논란은 직무감찰을 두고 감사원과 힘겨루기를 벌이면서 더 큰 논란으로 확대됐다. 특히 선관위가 헌법기관,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내세워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거부하면서 정치권 등에서 비판이 빗발쳤다. 국민의힘에서는 노태악 선관위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선관위는 헌법기관으로서 회계감사만 받을 수 있으며 직무감사 대상은 아니라고 항변하다가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결국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감사원 직무감사의 정당성을 따져달라는 취지로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당시 선관위의 행태로 기관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심판 역할 잘할까? 각 정당은 이번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윤석열정부의 향후 국정 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심판 역할을 맡은 선관위의 행보가 중요한 상황이다. 부실 선거 논란, 보안 이슈, 도덕성 문제까지 선관위는 이미 국민 신뢰를 많이 잃었다. 선관위의 신뢰 회복 정도에 따라 선거 전과 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필리핀 도박왕’ 김모씨가 송환된 지 6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9월 구속 기소됐으나 아직 선고기일이 잡히지 않았다. 범죄조직단체 및 도박 혐의를 받는 만큼 중형이 선고돼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부당이득을 환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금액만 약 1조3000억원이다. ‘필리핀 도박왕’ 김모씨는 2년간 국내 송환을 피해 1조3000억원대 도박 수익을 냈다. 그의 별명이 ‘조삼’이라고 불린 이유다. 사정당국은 이 금액을 환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사 과정서 포착하지 못한 차명계좌의 존재가 걸림돌이다. 당국은 사실혼 관계로 추정되는 그의 두 번째 아내가 핵심 ‘키맨’이라고 보고 있다. 역대급 불법 수익 김씨의 도박사이트 운영은 2014년 10월부터 이뤄졌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2019년 9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김씨가 필리핀서 사무실을 마련하고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운영한다는 결정적인 첩보를 입수했다. 경찰은 관련 첩보 자료를 국정원과 함께 분석한 뒤 김씨를 포함해 22명에 대한 국제형사경찰기구(이하 인터폴) 적색수배를 발부받고, 국정원·필리핀 수사당국과 2년간 이들의 행방을 쫓았다. 검거 당시 김씨는 최고급 리조트에 거주하며 마이바흐 등 고가 외제차량 10대를 타는 초호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평소 무장 경호원들도 대동하고 있어 붙잡기도 쉽지 않았다. 지난 2021년 9월18일, 경찰과 필리핀 코리안데스크 담당관, 필리핀 이민청 도피사범 추적팀 FSU, 현지 경찰특공대 등 30여명으로 꾸려진 검거팀은 김씨의 거주지를 급습해 그의 신병을 확보했다. 그러나 필리핀 형사사법체계를 잘 아는 그는 현지서 형사사건에 엮이면 재판 종결 전까지는 한국으로 추방되지 않는다는 꼼수를 이용했다. 타인에게 자신을 사기와 특수협박 혐의로 2차례나 고소하게 한 것이다. 국내 송환이 계속 미뤄지자, 경찰은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을 통해 필리핀 법무부에 조기 송환 협조를 요청했다. 경찰은 지난해 7월부터 필리핀 법무부와 매주 실무회의를 열었고, 양국 간 공조로 필리핀 법무부의 추방 결정을 끌어냈다. 그는 막판까지 국내 송환을 늦추려고 발버둥 쳤다. 추방 결정이 난 뒤에도 다시 제3자로 하여금 자신을 위조수표 사용 등 조세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게 한 것이다. 필리핀 법무부가 추방 결정을 번복하자 이 같은 사실을 보고받은 이상화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는 송환 협조를 재차 강력하게 요청했다. 결국 필리핀 법무부가 이 대사의 요청을 받아들이며 그의 시도는 불발됐다. 결론적으로 경찰은 김씨와 2020년부터 필리핀에 체류 중이던 조직원 20명 중 16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서울청 마약범죄수사대는 국내 조직원 177명 중 166명을 검거해 사실상 범죄조직을 와해시켰다. 김씨는 지난해 8월 말 송환돼 구속 기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필리핀 도주 후 200여명 규모 범죄조직 꾸려 체포 2년 만 국내 송환…지난해 9월부터 재판 <일요시사>가 입수한 김씨의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범죄단체조직·활동 ▲도박 공간개설 및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김씨 조직 사이트의 서버는 서울과 일본, 홍콩 등에 있었다. 2017년 2월 필리핀 마닐라로 도주한 김씨는 마카티에 있는 한 호텔 카지노서 진행되는 바카라 등의 도박을 생중계해 이용자들로부터 게임의 결과에 돈을 결제하게 하는 사설 스포츠 토토 도박사이트를 만들었다. 이용자에게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불특정 다수와의 거래가 시작된 것이다. 그의 조직은 철저했다. 마닐라에 오자마자 2020년 5월까지 모집된 200여명의 조직원들을 총괄 관리하면서 ▲스포츠토토팀 ▲바카라팀 ▲사이트관리팀 ▲지원팀으로 나눠 팀장과 팀원까지 정했다. 스포츠토토팀은 사이트관리팀이 제작한 카바라 사이트의 이용자들이 도금을 배팅하는 것을 모니터링하면서 지정된 계좌의 대포통장으로 도금이 입금되는 것을 확인하고 게임머니를 충전해 줬다. 특히 총판 모집 및 지원팀의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홍보 문자메시지를 발송하고 인터넷 전화로 연락을 시도했다. 사이트관리팀인 CS팀은 도박사이트 제작과 관리에 집중했다. 팀장들은 팀원들의 업무에 따른 수익을 정산해 총책인 김씨와 이사에게 보고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받아 팀원들에게 전하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특히 김씨가 텔레그램을 통해 업무지시가 이뤄지면 조직원들이 서로를 본명이 아닌 명칭으로 부르게 해 수사기관이 조직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했다. 변호사 교체 시간 끌기? 지원팀은 CS팀의 백업 역할을 담당했다. 지원팀은 개인정보 판매업자로부터 구입한 불특정 인물들의 핸드폰 번호 중 신규회원으로의 유치가 가능하거나 관리가 필요한 회원들의 정보를 엑셀 파일로 정리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해 다른 팀이 해당 데이터로 회원을 모집하고 관리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같은 방법으로 김씨의 조직은 150개가 넘는 계좌로 약 150만회에 걸쳐 도박사이트 이용자들로부터 1조3000억원이 넘는 돈을 입금받아 약 40억원을 취득했다. 사이트가 2021년까지 운영됐던 점을 고려하면 김씨가 굴린 판돈 전체 규모는 2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김씨는 취득한 범죄수익에 관한 취득이나 처분을 은닉하기 위해 타 명의의 가상자산 거래 계정을 이용하기도 했다. 일부 수익금으로 가상화폐를 매수하고 거래소 거래를 통해 매도해 현금화한 이후 천안 시내에 위치한 한 토지를 매수하려 했다. 김씨의 조직이 소탕됐으나 아직 해결돼야 하는 문제는 산더미다. 1조원이 넘는 부당이익금을 환수하고 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김씨가 재판에 넘겨진 지 6개월 가까이 지났음에도 아직 1심 선고기일조차 잡히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의 공소장이 접수된 건 지난해 9월20일이다. 김씨는 이때부터 ‘시간 끌기’ 전략을 썼다. 그가 처음 선임한 법무법인은 공소장이 접수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사임했다. 개인 변호사는 공판기일 연기를 신청했다. 그다음에 선임했던 대형 로펌은 선임계를 중앙지법에 제출한 다음 날, 사임신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부장검사,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들을 선임해 이른바 전관 혜택을 노리는 모양새다. 한 서초동 변호사는 “재판 절차를 미루기 위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며 “6개월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공판이 다섯차례도 진행되지 않은 건 피고인이 재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거나 불구속 구사를 받기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봤다. 차명계좌 운영 의혹 수사기관 안팎에서는 김씨의 혐의를 두고 사기도박 혐의가 추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 내용에 밝은 한 수사관은 “수년간 이뤄진 조직적인 범죄고 수사 과정서 김씨가 보이스피싱을 주도했다는 정황도 여러번 포착된 바 있다”며 “검찰의 추가 기소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다른 수사관도 “1조3000억원대 부당이익은 역대급 범죄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상황으로는 중형이 선고되기 어렵지 않나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추가 기소가 이뤄지는 걸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이용자를 기망한 행위를 입증해야 한다. 승률을 조작했다거나 이용자들을 속였다는 근거가 필요하다. 단순히 인터넷상에 도박장을 개설하거나 상대방과 도박하는 구조를 만들고 수수료 형식으로만 수익을 냈다면 사기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남부지검의 한 검사도 “차후 공소장 변경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검찰서 신중하게 기소했을 것”이라며 “피고인이 전관을 썼다고 해도 재판부서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에는 어려운 사례”라고 말했다. 윤석열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검찰은 ‘범죄수익환수’에도 사활을 걸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대검찰청은 일선 검찰청에 도박사이트 운영 및 자금세탁 조직원의 재산을 철저히 추적해 몰수·추징보전 조치하고, 실물 재산도 압수해 범죄수익을 완전히 박탈하도록 지시했다. 그동안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은 도박 개장 혐의로 기소됐으나 형량이 높지 않아 ‘몇 년 징역 살고 나오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만약 조세포탈죄로 기소하면 포탈세액이 10억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 선고가 가능하고, 포탈세액의 2~5배 상당의 벌금도 필요적으로 병과할 수 있어 실질적인 범죄수익환수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범죄수익환수 대응팀에는 법무부, 교육부, 문체부, 복지부, 여가부, 방통위, 대검찰청, 경찰청,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포함) 등 9개 부처가 참여하고 있다. 부당이득금 환수 불가 “사막서 바늘 찾는 격” 그러나 국내의 미납 세금은 역대 최대로 쌓여있는 체납액만 100조원이 넘는다. 이 중에서도 80% 이상은 사실상 못 받을 가능성이 큰 세금으로 분류돼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누계체납액은 102조5000억원에 달했다. 이 중 징수 가능성이 큰 정리 중 체납액은 전체의 15.2%인 15조6000억원에 그쳤다. 못 받을 가능성이 큰 정리보류 체납액은 86조9000억원이다. 범죄수익의 경우 전체 추징액 대비 환수로 이어지는 금액이 1%에도 못 미친다. 동년 기준 유죄판결이 확정됐지만 거둬들이지 못한 추징액 규모는 31조4000억원에 달한다. 미납 세금처럼 징수할 방법이 제한적인 데다, 현행법상 추징금은 벌금과 달리 노역장 유치 집행과 같은 방법으로 납부를 압박할 수도 없다. 김씨 사건의 경우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직원들을 통해 은닉하거나 벌어들인 수익 일부를 필리핀 길거리 환전소서 대량으로 바꿔치는 방법을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코인 거래소도 추적이 어려운데 수십서 수백만원을 환전소서 현금화한다면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김씨가 은닉한 금액을 추적할 순 있어도 이미 현금화된 돈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사정당국은 김씨의 두 번째 아내로 추정되는 A씨가 김씨의 수익 일부를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대포통장으로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 필리핀에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조사 중”이라며 “범죄수익환수를 담당하는 수사관들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A씨가 관리하는 금액의 규모는 아직 특정되지 않았다. 당국 안팎에서는 수천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으나 현재까지 첩보일 뿐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진 못했다. 부자가 아니었던 A씨는 김씨를 만난 이후 생활고에 시달린 적이 없다. 마땅한 직업이 없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다. A씨는 현재 마닐라 지역 중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꼽히는 곳에 거주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의 자식은 일반인이 다닐 수 없는 국제학교를 다니며 호화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세컨드가 핵심 키맨? 대검 관계자는 “마약 수사와 더불어 범죄수익환수도 지난해부터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문제다. 지금까지 검찰이 환수한 범죄수익환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은 김씨 사건과 관련해 타 기관 조사관들과 현지에 상주하며 들여다보고 있다. 아직 조사가 이뤄지고 있기에 자세한 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