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1500호 특집기획> 한눈에 보는 김건희 8가지 의혹 총정리 ①어떻게 살아왔나

52년 행적마다 의문 투성이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어릴 적부터 예술에 재능을 보이며, 화려한 경력을 쌓은 김건희는 무려 10살 차이를 극복하고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현재 영부인의 자리까지 올랐다. 개명하기 전 이름인 김명신의 과거 행적 의혹이 제기됐지만, 현재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는 윤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녹취록 공개 파장에 무속 논란으로 후폭풍을 맞기도 했다. 의혹이 빗발치자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으나 이를 까먹은 듯 광폭 행보를 이어 나가는 중이다.

김건희는 지난 1972년 9월2일 경기도 양평군서 아버지 고 김광섭, 어머니 최은순 사이서 셋째로 태어났다. 서울 남동부로 이주해 지금의 송파구에 살며 잠동초등학교, 잠실중학교를 졸업하고 강동구로 이사한 후 명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이름은 김명신이다. 

예술 두각
숱한 경력

김건희가 15세 때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 최은순이 홀로 자식들을 키웠다. 부친 김광섭은 양평군청 공무원으로 지낸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 1987년 작고했다.

김건희는 어린 시절 오래된 골동품이나 예술품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자연스레 그림과 예술에 관심이 커진 김건희는 향후 문화예술 사업에 뛰어든다.

서울 명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기대학교 예체능대학 회화과(서양화 전공)서 학사학위를 취득했던 그는 이 시기부터 예술적 재능을 발휘했다. 지난 1995년 ‘대한민국미술대전’서 입선을 차지하는 등 주목받는 작품을 선보였다.

대학 졸업 후 다양한 교육과 업무 경험을 쌓으며 전문가로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지난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서 미술교육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수료한 후, 교육 분야서 전문성을 증명했다. 이후 2001년 영락여자상업고등학교서 미술 강사로 활동하며 경험을 쌓았고, 한림성심대서도 강단에 섰다. 

서일대학교와 서울정보기능대학교서도 강의를 맡으며 디자인과 컴퓨터 그래픽스 분야 전문 지식을 공유했다.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서는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인문학 과정(AFP)과 글로벌 리더 과정(GLA)을 이수하며 지식을 넓혔다. 

지난 2007년 해외 유명 소장품과 미술품을 전시하는 회사인 ‘코바나컨텐츠’를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창의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국내서 보기 힘든 유명 작품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전시를 다수 기획했다. 2015년 ‘마코 로스코 전시’ 2016년 ‘르 코르뷔지에 서울특별전’ 2018년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시’ 등이 대표적이다. 

결혼 후엔 안양대학교와 국민대학교 등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문화 콘텐츠와 색채,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서 학문적인 역량을 발휘했다.

또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화예술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하고, 테크노디자인대학원서 강의를 통해 학문적 기여를 이어갔다. 

김건희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검 중수부 1과장 시절이던 지난 2012년 3월 결혼했다. 결혼 당시 윤 대통령의 나이는 52세로, 40세였던 김건희와 12살 띠동갑의 나이 차이를 극복했다. 그는 과거 한 언론 인터뷰서 윤 대통령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오래전부터 그냥 ‘아는 아저씨’로 알고 지내다 한 스님이 나서서 연을 맺어줬다”고 밝힌 바 있다. 

“과거에 유흥주점 근무” 주장
“쥴리 하고 싶어도 못해” 반박

윤 대통령 주변 인사는 “김건희를 처음 만난 자리서 마음에 들었지만, 나이 차가 많고 여건상 이뤄지기 어렵다는 생각에 김건희의 명함을 버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후 윤 대통령은 명함에 적혀있던 김건희의 이메일 주소를 기억해 메일을 보내 마음을 표현했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다시 만났다고 한다. 

지난 2017년 남편인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임명됐을 당시 그의 직업적 성취와 함께 김건희는 사회적으로도 주목받았다. 이후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승진하면서 더 큰 관심을 받게 됐으며, 지난 2019년 청와대서 검찰총장 임명장을 수여받는 자리에도 함께 참석했다.

윤 대통령의 재산은 대부분 김건희 명의로 밝혀졌다. 그는 결혼 당시 윤 대통령의 재산이 불과 2000만원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대선후보 시절 윤 대통령이 신고한 재산은 약 77억4500만원이다.

신고액 중 68억9900여만원이 김건희의 재산이다. 대부분 김건희가 소유한 땅과 건물, 예금이다.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지난 1990년대 IT붐이 일었을 당시 주식으로 번 돈이 밑천이 돼 사업체를 키웠다고 설명한 바 있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부부는 역대 대통령 배우자 중 유일하게 자녀가 없다. 한 번 임신한 적이 있었는데, 스트레스로 유산한 후 다시는 임신하지 못했다.

김건희는 지난 2021년 12월 허위 경력 의혹으로 열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당시 “결혼 후 어렵게 아이를 가졌지만, 남편의 직장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쳐 아이를 잃었다”며 “예쁜 아이를 낳으면 업고 출근하겠다던 남편의 간절한 소원도 들어줄 수 없게 됐다”고 유산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그는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반려견 4마리와 반려묘 3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들 가운데 비숑 프리제 종 2마리를 제외한 반려견 2마리와 반려묘 3마리는 모두 유기동물을 입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대선 기간 중 각종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특히 유흥업소서 일했다는 의혹과 경력 관련 논란은 진위 여부를 떠나 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정천수 열린공감TV 대표와 안해욱 전 한국초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 등은 김건희가 과거 서울 강남구에 위치했던 라마다르네상스호텔 지하 1층 모 나이트클럽서 ‘쥴리’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고 수차례에 걸쳐 언급해 왔다.

나이트클럽서 접대부로 활동했던 김건희를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 개인 접대 공간(호텔 6층)까지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봤다고 말한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에 김건희는 지난 2021년 6월 <뉴스버스>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의혹에 해명했다. 먼저 ‘강남 유흥주점의 접객원 쥴리로 검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의혹을 두고 김건희는 “누가 소설을 쓴 것”이라며 “기가 막힌다”고 억울해했다. 

각종 소문들
숨겨진 과거

이어 “제가 원래 좀 남자 같고 털털한 스타일이고 오히려 일 중독”이라며 “석사학위 두 개에 박사학위까지 받고, 대학 강의 나가고 사업하느라 정말 쥴리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도 “김건희가 술 마시고 흥청거리는 것을 싫어한다”며 “이런 사람이 술집 가서 이상한 짓 했다는 얘기가 상식적으로 안 맞다”고 반박했다.

이어 “집사람은 새벽 2~3시까지 책을 읽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만큼 쉴 틈 없이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며 “고교 교사와 대학 초빙 겸임교수도 했고, 석사학위도 2개나 받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나이트클럽 운영자들 역시 정천수 대표와 안해욱 전 회장의 주장을 모두 부인한 상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한성진 부장판사)는 지난달 10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천수 전 대표와 안해욱 전 회장의 6차 공판을 진행했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나이트클럽 공동대표였던 조모씨와 배모씨는 이날 증인으로 출석해 “쥴리에 대해 전혀 듣도 보도 못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조씨는 “삼부토건 회장을 비롯해 이른바 VIP들이 따로 사용하는 공간은 없었다”며 “또 호텔 건물로 직결되는 엘리베이터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비중 있는 손님들과 친교를 가진 여성이 있었느냐’는 검사의 질문엔 “한번도 들은 적 없고, 전혀 없다”며 “종업원 외에 다른 여자는 있을 수 없다”고 부인했다.

‘르네상스 지하 또는 1층에 그림을 전시했던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조남욱 회장이 특정 여성을 동석시키거나 같이 다녔냐는 물음에 “본 적 없다”고 일축했다.

배씨 역시 비슷한 증언을 내놨다. 호텔 6층까지 직통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가 있었냐는 취지로 검사가 묻자 “구조상, 상식적으로 안 맞는 것 같다”며 “건물이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건 미친 사람 아니면 그걸 왜 하나 싶다”고 말했다.

배씨는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이 특정 여성이랑 있거나 다른 사람을 초대한 것을 본 적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못 봤다”고 답했다. ‘김 교수’라는 여성의 호칭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경력 논란도 김건희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김건희는 지난 2008년 개명한 이후 전시 관련 일을 하며 사업을 확장했지만, 업계에서는 김건희를 제대로 아는 이가 없다는 뒷말이 나왔다. 또 거물급 대형 전시회를 가져왔는지 의문이라고 할 정도라고 전해지기도 했다. 

당시 김건희는 페이스북에 서울대 대학원 졸업이라고 개재하며 SNS로도 본인을 홍보하는 데 힘썼다. YG 빅뱅 멤버들이 홍보도 해줄 정도로 정관계, 연예계와도 친분을 쌓았다. 

이때 전시회에 LG전자, GS칼텍스, 우리은행 등 12~16곳이 넘는 협찬을 끌어오는데,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발표될 무렵 일주일 사이에 협찬사가 무려 12곳이나 불어났다. 

무속인 연결
녹취록 공개

수사에 들어가 확인해 본 결과 김건희의 코바나컨텐츠 협찬사였던 GS칼텍스는 대기오염물질 측정치를 조작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고, 협찬에 나선 한 유명 게임업체 대표는 개인 비리로 수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업들은 행사를 주최한 <국민일보> <연합뉴스> 등 언론사에 협찬한 거라고 해명해 왔지만, 수사팀은 협찬금이 언론사를 거쳐 그대로 코바나컨텐츠 측에 전달된 사실도 확인했다. 

김건희의 무속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윤 대통령 부부가 스님·법사라는 이름을 붙인 이들과 교류가 잦았고 중요한 국면서 이들로부터 조언을 받았다는 의혹이 대선 경선 과정서부터 이어졌다.

김건희와 인터넷 매체 기자와의 7시간 통화 녹취록에도 윤 대통령과 역술인의 오랜 인연이 등장한다. 

당시 국민의힘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은 지난 2022년 1월18일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네트워크본부를 이 시간부로 해산한다”며 “네트워크본부를 둘러싸고 후보와 관련해서 불필요한 악의적인 오해가 확산하는 부분에 대해 단호하게 차단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건진 법사’로 불리는 무속인 전씨가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아예 조직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전씨는 지난 2022년 1월1일 윤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 네트워크본부 사무실을 방문하자 윤 대통령을 사무실 안쪽으로 이끌며 직원들을 소개했다. 국민의힘은 전씨를 “대한불교종정협의회 기획실장”이라고 소개했다. 

전씨의 존재가 알려진 건 이번 언론 보도가 처음이 아니었다. 유튜브 방송 <열린공감TV>는 지난 2021년 10월 충북 충주 일광사의 혜우 스님을 만나 ‘건진 법사에게 윤 대통령을 지키라고 했고, 그가 윤석열 캠프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발언을 보도했다.

충주 일광사는 조계종과 관련 없는 일광조계종의 본산이며 혜우 스님은 건진 법사의 스승이라고 한다. 혜우 스님은 김건희에게 초청 받아 코바나컨텐츠서 주관한 전시회에 3차례 참석해 축원을 해줬다고도 밝혔다. 건진 법사도 김건희를 통해 윤 대통령과 연결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언이었다. 

건진·천공과 인연은?
“도사들과 대화 좋아해”

유튜버 ‘천공 스승’과 윤 대통령의 인연도 논란을 낳았다. 천공 스승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서 사퇴했던 지난 2021년 3월4일 <최보식의 언론>과 인터뷰서 “윤 총장은 내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자기 자리서 일을 잘하도록 돕는 것이다” “열흘에 한번쯤 만난다”고 주장했고 “윤 총장이 대선에 나온다”고 단언해 ‘윤석열 멘토’로 불렸다. 

논란이 되자 천공 스승은 같은 해 10월 <YTN> 인터뷰서 “멘토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김건희에게서)연락이 와서 만났는데, 윤 전 총장이 남편이니까 같이 왔다”며 검찰총장 사퇴 문제를 조언해 줬다고 했다. 김건희가 천공 스승과 윤 대통령을 연결했다는 얘기다.

김건희와 <서울의 소리> 이 기자 통화 녹취록서도 윤 대통령 부부가 미래를 보는 역술인에게 의존하고 교류하는 내용이 확인된다.

같은 해 7월20일 전화 통화에서 김건희는 ‘무정 스님’ 이야기를 꺼냈다. 무정 스님은 이미 검찰 주변서 윤 대통령의 대선 당시 멘토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건희는 이 기자에게 무정 스님이 “진짜 스님은 아니다”라면서도 윤 대통령이 20대 시절에 그와 만났고 “(남편이)사법고시서 떨어지니까 한국은행에 취직하려고 했는데 ‘너는 3년 더해야 한다’고 해서 3년 했는데 정말 붙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자신에게는 “너는 석열이하고 맞는다”며 결혼을 권했다는 이야기도 털어놨다.

하지만 “(무정 스님이)문재인 대통령이 되고 나서 갑자기 남편 앞에서 ‘문재인은 망한다’고 했다”며 “우리 남편 망한다는 말밖에 더 돼냐” “그때부터 인연을 끊었다”고 전했다. 김건희는 “내가 되게 영적인 사람이라 차라리 도사들하고 같이 얘기하면서, 삶은 무엇인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세간에 내가 무당을 많이 만난다고 돼있는데, 전혀 아니고 무당을 원래 싫어한다”며 “제가 더(점괘 등을) 잘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기자에게 얼굴·손금 사진을 보내라고 한 뒤 그걸 토대로 “이직을 하라”며 “국정원, 정보 일이 맞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드러난 사실과 제기된 의혹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 부부는 무속인·역술인과 깊은 교분을 유지하며 이런저런 조언을 받아왔던 것으로 해석된다.

아내 역할만 
충실한다더니…

김건희는 대선 과정서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이 제기되자 지난 2021년 12월 기자회견서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며 이른바 ‘조용한 내조’를 약속한 바 있다. 취임 초반에는 패션 등이 시선을 끌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구설과 논란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김건희가 남편인 윤 대통령보다도 더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조용한 내조 대신 ‘광폭 행보’라는 논란이 이어졌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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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대로’ 양당의 선동 역사학

‘입맛대로’ 양당의 선동 역사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정치가 역사·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은 진영마다 다르다. 하지만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사실과 검증을 뒤따르게 만든다는 공통점은 있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은 정치적으로 친화적인 영화에 역사적 의미와 권위를 부여하고, 국민의힘 일각은 이미 확립된 역사적 판단을 다시 논쟁의 영역으로 끌어낸다.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종착지는 같다. 양당의 ‘선동 역사학’은 결국 반지성주의를 마주보게 한다. 영화사에 걸작으로 남은 선전·선동 영화로 구소련의 1925년 작 <전함 포템킨>과 나치 독일의 1935년 작 <의지의 승리>를 거론할 수 있다. 이 영화들은 관의 전폭적인 제작 지원을 받은 관제 영화였지만, 당시로서는 참신하고도 획기적인 촬영 기법을 통해 극한의 선전·선동을 수행하면서 역사에 남았다. 말보다 강한 장면 <전함 포템킨>은 각각의 쇼트를 연결하면 제3의 감정·개념이 발생한다는 판단 아래 몽타주 기법을 선보였다. 포템킨 전함의 수병이 먹을 고기에 구더기가 득실거리면, 구 러시아 제국의 체제가 부패했다는 감각이 만들어진다. 오데사 계단에서 벌어지는 학살극은 군인들의 군화와 겁에 질린 사람들의 얼굴 등을 빠르게 교차하며 묘사한다. 이어 어머니가 쓰러지고 아기를 태운 유모차 한 대가 계단을 내려간다. 실제 화면에 등장하는 폭력의 양보다 관객이 체험하는 학살의 규모가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의지의 승리>는 아돌프 히틀러의 초월적 지도자상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하지만 직접 강조하지는 않는다. 히틀러가 탄 비행기가 구름 위를 날아오고, 그 아래로는 독일의 도시가 펼쳐져 있다. 비행기가 착륙한 후에는 히틀러가 등장한다. 그야말로 웅장한 신의 강림이다. 이어 펼쳐지는 것은 ‘하나의 지도자’와 질서정연한 수십만의 군중이다. 이 구도에 개인은 없다. 지도자와 군중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민족 공동체인 것이다. “전체주의가 옳다”는 말 대신 ‘하나의 지도자’와 수많은 사람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렇듯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국가가 문화 생산·배급에 직접 개입해 선전·선동을 수행할 수 있었다. 나치 독일도 영화산업을 강하게 통제·지원하면서 영화를 이데올로기 전달 수단으로 적극 이용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부·정당이 특정 영화를 직접 주문 제작해 자신의 역사관을 주입하는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다. 정치와 문화는 보다 간접적으로 만난다. 대표적인 방법은 정치인이 특정 영화를 관람한 후 의미를 부여하거나 공개적으로 추천·평가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이 두둔하는 영화가 비판을 받으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규정하면서 방어하기도 한다. 자신의 세계관과 친화적인 작품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공개적으로 찬양·추천·옹호하고, 작품이 가진 정치적 메시지의 확산을 돕는 것이다. 정치적 지위와 진영의 상징 자본을 이용해 특정 작품에 역사적·도덕적 권위를 부여하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암살자(들)> 개봉 이후 많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치인이 영화를 두둔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언급했다. 하지만 작품의 역사적 암시를 둘러싼 반발도 거세다. <암살자(들)>은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 범인 문태광(박정민 분)을 움직였을 수도 있는 배후로 ‘중정 윗선’을 거론한다. ‘중정 윗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말이다. ‘중앙정보부 내 윗선’으로 해석하면 신직수 당시 중앙정보부장 등 간부들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중앙정보부를 움직이는 더 높은 권력’으로 해석하면 박정희 당시 대통령까지 연상할 수 있다. 영화는 영화라더니 픽션에 역사 입히는 정치 예술의 진영 가치화…국힘에 대가·책임·처벌? 연출자 허진호 감독은 지난 2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이 영화가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을 지시한 영화라는 어떤 재단을 해놓고 보신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애초부터 분리해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권력을 지키는 게 아내의 목숨보다 중요하다면?”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때문에 허 감독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울러 당시 사건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는 <동아일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사건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해 의문을 제기하는 주인공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런데 유신 정권의 언론탄압은 이전부터 존재했고 자유언론운동도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오히려 긴급조치는 육 여사 사망 이후 일부 해제됐고, 유신 비판 운동은 이후 더욱 확산됐다. 이 같은 ‘시간차 눈속임’ 때문에 허 감독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 또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야당> <남산의 부장들> <메이드 인 코리아> <서울의 봄> 등 군사 정권·정보기관·권위주의 시대의 권력을 비판적으로 다룬 영화·드라마를 반복적으로 제작해온 점도 논란을 증폭시키는 배경으로 자리 잡는다. 이 때문에 보수 진영에서는 작품 자체를 넘어 제작사의 역사관을 의심하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정치인의 <암살자(들)> 두둔도 영화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강해지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암살자(들)> 극우 정치권 홍보가 아니라 작품성으로 매일 매진 매진!”이라며 “대박 납니다. 신납니다”라고 썼다. 이어 “극우들이 바라는 대로 육영수 여사도 제작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편력도 만들면 히트? 육 여사님은 우아하시겠지만, 박정희의 편력은?”이라며 “영화는 영화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같은 당 서영교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연 배우 유해진씨가 자택 앞 시위에 대해 강경 대응하기로 결정했다는 언론 보도를 공유하면서 “극우와 국힘(국민의힘)에 그 대가를! 책임을! 처벌을!”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극우 그리고 국힘, 그 영화 보기는 했나? 보면 감동할 걸? 영화 진짜 잘 만들었어. 작품성 최고!”라고 강조했다. 나치 독일의 문화·예술관은 정치적 세계관을 최상위 가치에 둔 후 그 세계관에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따라 문화·예술의 가치를 평가했다. 우호적인 문화에는 권위를 부여했고 적대적인 문화에는 ‘퇴폐적’이라는 낙인을 찍고 배제했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 정치인의 영화 추천과 국가 권력으로 문화 생산 자체를 통제했던 나치의 문화 정책은 그 성격과 강도가 전혀 다르다.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세계관이 예술의 가치 판단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예술의 진영화 박 의원은 먼저 “영화는 영화”라고 전제하면서도 “양식 있는 국민 모두가 관람하는 게 영화를 살리고 유해진을 돕는 길”이라면서 <암살자(들)> 재관람 캠페인까지 제안했다. <암살자(들)>의 흥행 추이도 정치적 공방의 일부로 해석했다. 박 의원은 <암살자(들)>을 정치적 연대 행위의 매개물로 만들었다. 예술작품을 진영 연대의 상징으로 소비한다는 측면에서 나치 문화 정치와 추상적인 공통점이 있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작품의 미학적·역사적 타당성을 독립적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누가 공격하고, 우리 진영이 방어해야 할 작품인지’라는 정치적 좌표가 작품의 가치 판단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예술의 진영적 가치화’라고 할 수 있다. 서 의원의 발언은 “국민의힘과 극우는 책임·처벌의 대상이고, 그들이 공격하는 문화상품은 감동적이고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문장으로 독해될 수 있다. 겉으로는 유씨의 자택 앞 시위에 대한 책임·처벌을 주장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문법적으로는 ‘극우’뿐 아니라 국민의힘까지 책임과 처벌의 대상으로 병렬해 놓은 것으로도 읽힌다. 서 의원은 긍정적 문화와 부정적 정치집단을 한 문맥 안에 동시에 설정했는데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나치는 자신의 세계관에 맞는 작품에 ‘건강한 독일 예술’이라는 권위를 부여하면서 반대편에는 ‘퇴폐적’ ‘볼셰비키적’ ‘유대적’이라는 정치적·도덕적 낙인을 찍었다. 박 의원은 개인적 영화 감상을 진영적 집단행동으로 전환했다. 서 의원은 정치적 가치 판단과 미학적 가치 판단을 결합했다. 예술을 정치·진영의 영역으로 확장해 그 작품을 공격하는 반대 세력과의 전투를 동시에 이야기한 것이다. 이들의 미학적 평가는 정치적 소속감과 분리돼 제시되지 않았다. 이들 외에도 민주당에서는 최민희·김영배·노종면·박성준·전용기·강득구 의원 등이 영화 <암살자(들)>을 두둔했다. 이들의 논리는 대체로 묘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겉으로는 “영영봐(영화는 영화로 봐)”를 거론하고 ‘표현의 자유’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일부는 “역사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라며 작품에 실제 역사적 의미까지 부여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책임은 ‘픽션’이라는 말로 낮추면서 작품의 정치적·도덕적 권위는 ‘역사적 성찰’이라는 말로 높이는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9장에서 시인의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단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개연성 또는 필연성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봤다. 허구의 힘은 사실을 마음대로 바꾸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개연성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그래서 문학에서는 핍진성이 중요하다. 허 감독은 분명히 ‘박 전 대통령 사주설을 암시한다’는 해석을 부인했지만 사주설을 암시하는 독해는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감독의 의도만으로 작품이 실제 만들어낸 독해를 봉합하기는 어려워진다. 책임은 빼고 권위 높이고 영화가 어떤 추론을 만들어냈느냐는 문제에 더 강한 의미가 붙었고, 그 의미를 정치인들이 다시 증폭시키고 있다. 예술의 자율성보다 사상적·사회적 기능을 우선했던 일제강점기 카프의 목적문학론도 일부 연상되는 대목이다. <암살자(들)>을 연일 비판하는 국민의힘도 여기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국민의힘에서는 전신 자유한국당 시절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비하·왜곡하는 발언들을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열린 공청회에서 자유한국당 이종명 전 의원은 “5·18은 폭동이었다가 정치 세력 때문에 민주화운동이 됐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김순례 전 의원도 “5·18 유공자는 괴물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은 최근 5·18을 성역화했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참여한 토론회를 개최해 논란을 불렀다. 국민의힘 김태규 의원은 지난달 30일 JTBC 유튜브 채널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윤석열은 내란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변했다. 이어 “전두환은 내란이냐”라는 질문에도 “내란 아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김 의원은 판사 출신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97년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해 12·12 군사 반란과 5·18 과정의 내란죄를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신군부가 군 지휘권과 정보기관을 장악하고 비상계엄 전국 확대·국보위 설치 등을 통해 헌법기관의 권능을 강압적으로 무력화했다고 판단했다. 논란이 되자 김 의원은 지난 2일 입장문을 통해 “제 발언은 비록 진의는 그렇지 않더라도 오해를 초래할 빌미를 제공한 부분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 표현에 더욱 신중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윤석열·전두환은 내란이 아니”라고 주장한 계기는 영화 <암살자(들)> 비판 과정에서 비롯됐다. 김 의원 스스로도 “발언을 한 현장은 영화 <암살자(들)>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을 문제 삼아 패륜적이고 반인륜적인 영화를 창작이라는 허울 속에서 만든 것을 문제 삼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이어 “6·25나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과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창작의 자유라는 핑계 뒤에 숨어서 무자비한 난도질을 하고, 5·18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이 가능한 입법을 만들어 성역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였다”고 덧붙였다. 다시 흔드는 5·18…판결보다 정치적 확신 금기 파괴의 정치학…확신이 검증 이긴다? 유감을 표하면서도 김 의원은 ‘5·18 성역화’라는 문제의식은 유지했다. 영화라는 장르 예술의 틀을 빌려 역사적 의미를 확장하는 민주당 일부의 방식과 달리, 국민의힘 일부에서는 확립된 역사적 판단 자체를 다시 논쟁의 영역으로 돌리려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 같은 ‘금기 파괴의 정치’는 나치 돌격대가 보여준 행동주의적 정치 문법의 일부를 연상시킨다. 물론 오늘날 정치인의 발언과 준군사 조직이 행사했던 물리적 폭력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비교 가능한 것은 복잡한 현실을 적과 아군으로 단순화하고 논증·절차보다 진영의 확신과 행동성을 앞세우는 태도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제기하는 ‘5·18 성역화’ 프레임 역시 역사적 사실의 재검증과 별개로 “남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말한다”는 금기 파괴 자체에 정치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우리의 정치적 적이 독점한 역사이므로 다시 깨뜨려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무엇을 새로 밝혀냈느냐보다 금기에 도전했다는 행동성 자체가 중요해진다. 양당이 역사·문화를 정치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반지성주의로 수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필요한 정치적·도덕적 결론을 정한 후 지식을 그 목적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 회로는 진영적 욕망 → 동기화된 추론 → 반증 저항 → 독립적인 검증 절차의 가치 하락 → 반지성주의 순서로 움직인다. 정치학·정치심리학 연구에서 반지성주의는 대체로 전문가·지식인·전문적 지식에 대한 일반화된 불신 또는 가치 절하를 뜻한다. 동기화된 추론 자체가 곧 반지성주의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불리한 전문가 판단과 판결, 검증 절차의 권위를 지속적으로 낮추는 방향으로 이어지면 반지성주의와 만날 수 있다. 한쪽은 진영에 친화적인 역사 서사를 접하면서 사실성과 허구의 경계를 느슨하게 허용하고, 작품의 역사적 효용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거나 권장한다. 다른 한쪽은 대법원 확정 판결과 축적된 역사 연구보다 정치적 확신을 우선시해 기존 판단 자체를 다시 의견의 영역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양당 일부 정치인의 역사 소비가 ‘선동 역사학’이라 부를 만한 정치 문법으로 기울고 있는 셈이다. 진실 판정을 내 손 안에? 정치가 진실을 판정할 권리를 자신에게 가져오려고 하는 순간 좌우를 막론하고 반지성주의가 시작된다. 원하는 정치적 결론 때문에 증거의 자격 자체를 선택적으로 인정하거나 거부한다면, 이 역시 반지성주의다. 반지성주의는 나치 정치 문화의 핵심 태도 중 하나였다. 무엇이 진실인지 독립적으로 탐구하도록 두지 않고 어떤 역사와 예술에 권위를 부여할지를 정치적 세계관이 결정했다. 양당은 그렇게 서로 반지성주의와 선동 역사학으로 마주 보고 서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