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09.19 01:01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여의도가 심상치 않다. 졸지에 ‘내란 수괴 옹호당’이란 꼬리표를 단 국민의힘이지만 어째서인지 더불어민주당의 뒤를 바싹 쫓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광판 대신 유튜브를 택한 덕분일까? 여야 앞에 역풍과 순풍이 번갈아 들이닥치며 모두가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탄핵 열차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락가락 공수처+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회복+내란죄 철회 등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동력이 떨어졌다는 평이다. 민주당은 열차의 액셀을 밟을 수도, 시동을 끌 수도 없는 처지다. 넘지 못한 권력의 벽 지난해 겨울부터 시작된 탄핵 정국 내내 기세는 야당의 편이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청구됐을 때 정점을 찍나 싶더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빈손으로 한남동 관저를 빠져나오면서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 앞서 지난 3일 공수처는 윤 대통령 체포영장과 대통령 관저 수색영장 집행을 시도했지만 대통령경호처 등에 막혀 약 6시간 만에 철수했다. 이날 한남동 관저 앞에 모인 탄핵 반대 시위대와 보수 단체는 공수처가 물러서자 환호하며 기뻐했다. “우리의 힘으로 대통령을 지켰다”는 생각에 결집력이 강해지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영장 집행이 무산된 데 대해 “집행 과정서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 많이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서 서울서부지방법원이 발부한 1차 영장까지 만료됐고 결국 지난 7일 체포 영장을 재발부받았다. 공수처는 “2차 집행이 마지막이라는 비상한 각오”라며 신병 확보 의지를 다졌다.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꼬였다. 경호처 뒤에 숨은 채 체포영장에 불응하는 윤 대통령도 문제지만,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수사를 무리해서 밀어붙였기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윤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을 경찰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에 넘기려다 반발에 부딪혀 곧바로 철회한 것 역시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우려는 공수처가 자처한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 초기부터 제기됐다. 수사 역량이 부족했을뿐더러 지난 4년 동안 공소 제기한 사건이 4건에 그치는 등 경험이 많지 않다. 무엇보다 차장을 포함한 검사가 15명에 불과해 현직 대통령이 연루된 대형 수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화살은 민주당에 향했다. 문재인정부 시절 공수처가 처음 꾸려졌을 때 국민의힘은 “검찰의 힘을 빼겠다며 만든 조직”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공수처가 갈피를 못 잡자 “무능한 조직”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졌고 아예 공수처를 폐지하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가 불투명해지자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공수처를 싸잡아 비판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을 향해 “민주당 이재명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2심 판결 전 조기 대선을 치르겠다는 목표하에 정부·여당에 일방적 내란 프레임을 씌우고 법치 파괴행위를 불사하며 속도전을 내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욕심내다 결국…” 공수처 헛발질 지켜보던 보수 환호…지지율 급등 공수처를 향해서는 “내란죄 수사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무리하게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을 강행하려고 한다”며 “현재 정국을 자신들 지위를 공고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며 사법체계 공정성을 크게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도 실망감을 내비쳤다. 민변은 입장문을 통해 “공수처는 체포영장 집행 과정서 너무나 무책임하고 무능하며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실제 수사 역량이 부족했다면 법치주의 실현을 위한 강한 의지와 결기라도 보여줬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공수처는 이제라도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신병 확보에 매진하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 체포가 무산으로 돌아간 건 물리적 한계로 이해할 수 있다지만, 여당 지지율이 비상계엄 선포 이전만큼 회복한 건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여기에 윤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율이 40%까지 올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보수 지지자들이 더욱 결집하는 양상을 띠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2~3일 이틀간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34.4% ▲민주당 45.2%로 집계됐다. 같은 업체서 조사한 결과 비상계엄 발생 직전 국민의힘 지지율은 32.3%였다. 이후 지난해 12월1주차에 26.2%로 급격히 떨어졌다가 차례대로 ▲25.7% ▲29.7% ▲30.6% 등을 나타냈다. 비상계엄 해제 이후 더디지만 점차 회복세에 오른 것이다. 해당 여론조사에 대한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조사는 무선(97%)·유선(3%) 자동응답 방식,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야당의 주도로 한덕수 전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이 잇달아 일어났다. 다음 타자인 최상목 권한대행을 향해서도 으름장을 놓자 보수 지지자들은 “야당이 국정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지율 왜 올라?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된다”는 현수막이 동네 곳곳에 걸린 것도 비슷한 시점이다. 지난 2일 윤 대통령은 관저 앞에 모인 지지자들을 향해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서면 메시지를 발표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자신감과 야당의 연쇄 탄핵안이 결합해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40%까지 급등한 것에 대해서는 여당도 고개를 갸웃했다. <아시아투데이>가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에 의뢰해 지난 3~4일 이틀 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40%(‘매우 지지한다’ 31%, ‘지지하는 편이다’ 9%)로 집계됐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 RDD를 이용한 ARS 조사 방식으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응답률은 4.7%이며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10%대로 추락한 지지율이 한 달 새 회복한 것도 모자라 임기 초반에 가까운 숫자로 나타난 것이다. 지지율이 눈에 띄게 오르자 야당은 “편향된 조사”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의힘은 예상치 못한 수치에 당황스러운 눈치다. 구태여 말을 얹지 않았지만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고 있다. 대표적인 반윤(반 윤석열)인 국민의힘 중진 유승민 전 의원만이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전 의원은 “저 여론조사가 진실이라면 계엄 한 번 더 하면 지지율이 올라가냐”며 “윤 대통령의 잘못을 엄호하고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만 보고 정치를 하면 앞으로 모든 선거서 판판이 질 것”이라고 질책했다 40%라는 숫자가 나온 데에는 여론조사 문항이 편파적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총 10개 문항으로 이루어진 해당 여론조사에서는 윤 대통령의 지지도와 정당 지지도를 물은 뒤 3번 문항부터 “윤 대통령 체포영장에 대한 불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을 강제 연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앙선관위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 야당 관계자는 “응답 도중 중도·진보층은 중간에 대거 이탈 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세력만 끝까지 남아 성실하게 답변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다소 신뢰가 떨어지는 여론조사로 보고 있지만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동기 부여가 됐다. 민주당 자충수? 민주당이 쏘아 올린 ‘내란죄 철회’ 수습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서 내란 행위를 형법 대신 헌법 위반으로 재구성해 심판대에 올리겠다는 민주당과 이에 맞선 윤 대통령 측의 공방이 장기화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탄핵소추안을 재의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대통령의 법률대리인단 역시 “탄핵소추 사유서 내란죄를 철회한다는 것은 단순히 2가지 소추 사유 중 1가지가 철회되는 것이 아니라 무려 80%에 해당하는 탄핵소추서의 내용이 철회되는 것”이라며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기존 탄핵소추안에 명시된 내란죄 중 형사법적 위반 부분을 빼고 헌법 심판에 맞게 ‘재구성’하겠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탄핵소추의결서에 나오는 내란 행위는 조사 대상에 포함되고, 이에 따라 민주당이 주장하는 “내란 사유를 단 한 줄도 빼지 않았다”는 주장도 들어맞는다. 민주당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내란죄가 성립이 안 되니 이제와서 탄핵 사유를 고친 게 아니냐” 등의 의구심은 여전히 전파되고 있다. 탄핵 심판 변론일이 다가오면서 국회와 윤 대통령 측도 내란죄 철회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종국에는 야당이 여론전서 밀릴 수 있는 불리한 구도에 몰렸다. 이를 깨트리기 위해서는 탄핵안서 내란죄를 ‘삭제’한 것이 아닌 재구성했다는 부분을 여러 차례 부각하는 수밖에 없다. 여당의 강경 대응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자니 7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와 다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속수무책 끌려다녔지만 두 번째 탄핵 정국을 맞닥트린 국민의힘은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며 맞서 싸우는 편을 택했다. 탄핵소추안 표결 때도 국민의힘은 부결을 당론으로 택했다. 분열하기는커녕 가결파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이른바 ‘쌍권(권영세·권성동)’ 체제로 빠르게 단일대오를 이뤘다. 대통령의 태도도 다르다. 박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 모두 관저에 숨었다는 점은 같지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윤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 야당 내란죄 철회·최 탄핵 딜레마 액셀에 발 올리고 잠시 숨 고르기 예상을 빗나간 모습에 민주당도 완급 조절에 나섰다. 먼저 민주당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탄핵이 아닌 고발을 택하면서 숨 고르기에 나섰다. 지난 7일 민주당은 최 권한대행을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내란 상설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 미시행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마용주 대법관 후보자 임명 연기 ▲대통령경호처를 통한 윤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 방해·방관 등을 직무유기 사유로 제시했다. 민주당이 한 단계 수위를 낮춰 고발을 택한 배경에는 한 전 권한대행에 이어 최 권한대행까지 탄핵 절차를 밟으면 국정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상계엄 선포로 정치·외교·안보·경제를 불안에 몰아넣은 것은 윤 대통령이지만, 민주당이 수습 대신 혼란을 가중한다면 역시나 책임이 따를 것이란 점에서다. 민주당은 국무위원 추가 탄핵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해 8인 체제로 만들어준 것은 인정해야 한다”며 “최 권한대행에게 굉장한 불만을 갖고 있고, 나도 SNS를 통해 비열한 태도를 비난했지만, 민주당서 최 권한대행의 탄핵을 얘기하는 건 성급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언제든지 탄핵을 추진할 여지는 남겨뒀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6일 중진 의원 간담회서 “주권자인 국민은 내란범이 침탈한 주권 회복을 위해 눈비를 맞으며 밤을 새우고 있는데, 수습해야 할 최종 책임자인 최 권한대행은 대통령 놀이만 해서 되겠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국정 정상화를 위해 최 권한대행에 대해서 형사고발뿐만 아니라 탄핵이라는 국회가 가진 국정 정상화를 위한 마지막 수단까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대로 당하지 않겠다는 여당과 내란 수괴 혐의자를 심판하기 위한 야당의 힘겨루기가 이어지면서 여의도 정가도 하루에 몇 번씩 뒤집히는 추세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저렇게 자신 있는 이유는 국민 10명 중 3명만 윤 대통령을 지지해도 승산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보수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또 정권을 잡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입으로 흥해 입으로 망해 이 모든 사태의 장본인인 윤 대통령의 입이 주목받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보수는 환호하고 야당은 분노했다. 여론이 윤 대통령 쪽으로 기운다고 하더라도 결국 7:3이다. 분노의 파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면 종국에는 남은 세 명의 목소리 정도는 거뜬히 집어삼킬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야권발 대통령 도주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재발부되던 날 느닷없이 ‘윤석열 도주설’이 일파만파 퍼졌다. 해당 의혹은 윤 대통령이 한남동 관저에 칩거하던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됐지만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대통령 도주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여러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답해 논란이 커졌다. 관저 앞을 에워싼 탄핵 찬성 지지자는 물론 보수 단체까지 분노를 드러냈다. 탄핵 반대 시위의 경우 “이 추운 날 이제까지 아무도 없는 텅 빈 관저를 지키고 있던 거냐” 등 실망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수의 언론 보도를 통해 관저 입구 쪽에서 윤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포착돼 대통령 도피설은 일단락 됐다. <박>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한민국의 흑역사’가 10년도 안 돼 반복되고 있다. ‘평행이론’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비슷한 양상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하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같고 다를까? 2024년 12월은 국민에게 충격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됐다. 현직 대통령은 법정형이 사형과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인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으며 사상 초유의 체포 작전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 여객기 사고로 179명의 아까운 목숨도 잃었다. 8년 만에 재연됐다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10여년 전 우리나라는 이미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295명이 사망했고 9명이 실종됐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됐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파면됐다. 2000년대 들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서 가결된 사례는 세 번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 전 대통령,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헌재서 탄핵안이 기각되면서 직무에 복귀했다. 직무가 정지된 윤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불과 8년 새 두 명의 보수 진영 대통령이 헌재 심판대 위에 섰다. 사건의 발단부터 전개, 절정, 결말에 이르기까지 멀리서 보면 비슷하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가까이에서 볼수록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단적인 예로 박 전 대통령은 ‘태블릿PC’ 보도가 불씨를 댕겼다면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사태가 시발점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헌재의 탄핵안 인용-특검 수사-사법 처분 등의 과정을 거쳐 단죄됐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는 사이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된 때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돼있다. 2017년 5월9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보궐선거가 열렸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윤 대통령의 상황은 박 전 대통령보다 복잡하다. 헌재의 탄핵 심판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의 내란죄 수사가 동시에 이뤄지면서 양쪽에서 압박하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는 대통령의 불소추특권도 소용없는 중범죄라서 수사 속도가 박 전 대통령보다 훨씬 빠른 상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 호감도 만큼 비호감도↑ 정치권의 눈은 조기 대선에 쏠려 있다.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최우선에 놓고 심리 중이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4월18일 이전에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탄핵안이 인용되면 6월경에는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여야 잠룡들은 헌재의 탄핵안 인용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다. 파면이 결정된 날부터 두 달 사이에 대선을 치러야 하기에 기존에 인지도와 지지율을 어느 정도 확보한 인물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의 눈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쏠리는 이유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 대표는 압도적인 차기 대권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2위 그룹과 큰 격차를 보이면서 1위위로 질주하는 중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이 대표가 3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오세훈 서울시장(7%), 홍준표 대구시장(7%),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5%),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4%) 등이 뒤를 이었다. ‘없다 또는 모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32%였다. 이번 조사는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3.1%포인트, 응답률은 22.8%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스트레이트뉴스>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4~6일 만 18세 이상 2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 조사에서도 이 대표는 45.1%를 얻었다. 홍준표 대구시장(9.7%),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7.8%),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7.2%), 오세훈 서울시장(6.1%) 등이 뒤를 이었다. 빠르면 6월 보궐선거로 이 대표의 지지율은 여당 후보 5인(홍준표·한동훈·원희룡·오세훈·안철수)의 지지율을 모두 합한 수치(33%)보다 오차범위 밖에서 높았다. 이번 조사는 휴대전화 100% RDD 방식으로 실시했고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조원씨앤아이 홈페이지 참조). 최근 정치권에서 조기 대선 가능성과 함께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8년 전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나돌았던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과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당시 문 전 대통령의 상황과 현재 이 대표의 상황은 천차만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문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서 박 전 대통령에게 밀려 낙선했다. 당시 대선은 제3당 후보 없이 보수 후보와 진보 후보의 맞대결로 치러졌다. 양측 모두 짜낼 수 있을 만큼 모조리 다 짜낸 선거서 패하자 문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이후 지지세를 회복하기까지 꽤 긴 시간을 암흑기로 보냈다. 문 전 대통령을 야권의 압도적인 대선주자로 만든 결정적 한 방은 국정 농단 사태였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존재가 드러났고 파생 의혹이 쏟아졌다. 1300만명(누적)의 국민이 거리로 나왔다. 국민적 인기를 등에 업은 문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헌재서 인용될 무렵 ‘차기 대통령’으로 완벽하게 눈도장을 찍은 상태였다. 하지만 현재 이 대표의 상황이 당시 문 전 대통령과 비슷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여론조사 수치상으로는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는 말이 들린다. 이 대표가 가진 사법 리스크에 더해 ‘비토층’이 상당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도 싫지만, 이 대표도 싫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전면 나오면 공격거리 많아 실제 최근 나온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는 호감도, 비호감도 모두 1위를 기록했다. <뉴스핌>의 의뢰로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6~7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39.1%가 이 대표를 꼽았다. 오세훈 서울시장 9.5%, 홍준표 대구시장 9.3% 등이 뒤를 이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도 이 대표는 40.8%로 단연 1위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3.5%, 홍준표 대구시장이 12.2% 등이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호감도 1~4위(이재명·오세훈·홍준표·원희룡)와 비호감도 1~4위가 같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여야의 대선후보군이 어느 정도 추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대은 미디어리서치 대표는 “대선후보군은 ‘이재명 1강’ 독주 속에 범여권의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는 양상”이라며 “범여권 유력 후보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이 대표 한 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마저 탄핵 정국을 거치며 한 달 만에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이재명 대항마’는 사실상 실종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의 비호감도 1위 원인으로는 사법 리스크를 지목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때 불거진 대장동 개발비리 특혜 의혹서 시작된 사법 리스크를 여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만 5개고 검찰서 추가로 수사 중인 사건도 2개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의혹은 1심 판결이 나왔다. 특히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당선무효형이 나오면서 대선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법원서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는 수준이다. 발목 잡는 사법 리스크 박 때와 다른 보수 결집 위증교사 1심 재판에서는 무죄를 받았지만 항소심서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 실제 법조계에서는 선고 전 공직선거법 위반보다 위증교사 혐의의 유죄 가능성을 더 크게 봤다. 위증교사 혐의는 양형 기준에 따라 무죄 아니면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어 항소심서 판결이 바뀌면 이 대표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윤석열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상대 후보의 공격 포인트 역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은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대통령과 그 배우자가 연루된 의혹과 논란에 크게 실망했다. 윤 대통령이 퇴장하고 이 대표가 대선후보로 검증을 받기 시작하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수층의 결집이 심상찮은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보수 진영은 친박(친 박근혜)과 비박(비 박근혜) 등으로 사분오열했다. 탄핵안 표결 당시 찬반이 갈리면서 물리적으로 분당 사태까지 벌어졌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은 재적의원 299명 가운데 찬성 234표로 가결됐다. 당시 야당과 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 표는 171표였다.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표수(200표)는 29표였지만 그보다 많은 63표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서 나왔다. 당이 쪼개질 수밖에 없는 이탈표였다. 반면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는 2번의 표결 끝에 간신히 정족수를 넘겼다. 찬성은 204표로 국민의힘서 12표가량의 이탈표가 나왔다. 탄핵안이 가결된 뒤에도 국민의힘은 강경 지지층을 등에 업고 결집 중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지키기’에 나선 보수층과 국민의힘의 힘을 빼기 위해 ‘머릿수’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이 과정서 중도층의 이탈이 표면화되는 모양새다. 애매한 표수 걸림돌 될까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궤멸 직전까지 몰렸던 보수층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는 태도로 대응하는 점은 민주당은 물론 이 대표에게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명확하게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은 유보층이 상당하다는 점을 봤을 때 중도층을 놓치면 대권서 멀어질 수 있다. 진보 진영의 지지만으로는 ‘어대명’은 완성될 수 없다. <jsjang@ilyosisa.co.kr>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과 체포 시도가 현실화하자, 국민의힘의 선을 넘은 법률 왜곡 언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정당해산심판 요구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치 사법화는 정치의 법 왜곡화·정치의 법 선동화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가 지난달 27일 가결되자, 국민의힘은 의원 108명 전원 명의로 즉각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 주진우 의원은 “총리로서 ▲법률안 거부권 행사 건의 ▲비상계엄 국무회의 심의 반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 등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당하게 수행한 직무일 뿐, 탄핵 사유라 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결집 유도 불순 의도 같은 달 31일엔 윤석열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변호인단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권한 없는 영장 청구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내란죄로 체포영장을 발부해 대통령의 헌법 수호와 비상계엄 선포 권한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권한쟁의심판은 2개 이상 기관이 특정 권한의 존재 여부와 범위를 놓고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를 말한다. 권한쟁의심판은 다툼을 하는 당사자가 직접 대립하는 구조기 때문에, 심판을 청구하려면 당사자 능력과 당사자 적격을 갖춰야 한다. 한 총리 탄핵소추에 문제가 있다면, 한 총리가 직접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야 한다는 취지다. 제3자인 국민의힘은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자격 자체가 없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에 대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것도 특이하다. 윤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기 때문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 체포영장 발부에 대한 불만은 ‘개인 윤석열’이 법원에 체포적부심을 청구해 표현할 수 있다. 또 영장이 발부된 자체가 공수처의 체포영장 청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의미한다. 이는 법원의 판단을 놓고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법원의 체포영장 적법성을 다투고 싶다면, 체포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하면 될 일”이라며 “해괴한 절차를 언급하는 것은 오직 시간 끌기를 통해 극단적 지지자들의 결집을 유도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 윤 대통령 변호인단에 참가한 윤갑근 변호사는 같은 날 “공수처가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 체포영장만 서울서부지법에 청구한 영장 쇼핑”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법 제31조는 공수처 사건의 제1심 재판 관할을 서울중앙지법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 조항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다른 법원에 기소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단서가 있다. 또 법률엔 명백히 제1심 재판이라고 규정돼있다. 체포영장 청구는 피의자 신병 확보 절차다.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지, 윤 변호사의 주장대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5일 윤 대통령 측이 신청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기각하는 것으로 윤 변호사의 주장에 대한 답변을 갈음했다. 강성 지지자들에 “방해해 달라” 탄핵·체포 과정 비상식적 주장 윤 변호사는 지난 2일, 형사소송법 역사에 길이 남을 주장을 이어간다. 그는 “경찰기동대는 관련법상 체포영장 집행 권한이 없다”며 “기동대가 공수처를 대신해 체포·수색영장 집행에 나선다면, 직권남용 및 공무집행방해죄 현행범이라서 경호처는 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시민 누구에게나’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현행범은 일반인도 체포할 수 있다. 다만 현행범 체포엔 ▲범죄의 명백성 ▲체포의 필요성 등 적법 요건이 필요하다. 또 공조본은 “경찰기동대는 관저 주변 집회시위 관리 및 질서유지 업무만 담당했다”고 반박했다. 시민들은 관저에 들어갈 수 없다. “경찰기동대와 시민의 충돌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소지가 남는다. 아울러 “다수의 언론에 배포할 목적으로 작성돼 공연성이 인정되는 입장문을 수단 삼아,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에게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해달라’는 특수공무집행방해를 부추긴 것 아니냐”고 해석될 위험이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기 위해 경찰과 충돌했다면, “특수공무집행방해 교사행위를 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함께 제기됐을 것이다. 교사행위의 방법은 제한이 없다. ‘유혹’도 교사행위 방법에 포함된다. 국민의힘은 탄핵 심판에 대해서도 비상식적인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 소추위원 측 대리인단은 지난 3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 중 형법상 내란죄를 사실상 철회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은 총력을 기울여 “내란죄 철회는 소추 사유 중대 변경이므로 각하해야 한다”이란 주장을 퍼트리고 있다. 그러자 대리인단은 “내란 행위를 심판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변함없다”며 “형법상 내란죄가 아닌 헌법 위반으로 주장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탄핵 심판의 논점을 ▲12·3 비상계엄 사태 전반의 헌법 위반 ▲계엄 절차 관련 계엄법 위반 ▲형법상 내란죄 논란 등으로 정리했다. 대리인단의 형법상 내란죄 철회는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내용 자체를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기준을 바꾼 것이다. 헌법 위반·형법 위반을 모두 포함해 탄핵소추했지만, 형법 위반을 다투는 과정서 윤 대통령 측의 시간 끌기를 우려해 헌법 위반 논점만 남겨두고 양을 대폭 줄인 것이다. ‘유혹’도 교사행위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이 총력을 다해 각하를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형법 논점을 없애면, 탄핵 심판 심리가 빨리 끝날 것 같으니 저러는 것”이라며, “형사재판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노렸던 것이고, 어떻게 해서라도 심리를 질질 끌어 시간을 벌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추 사유서 형법 위반 논점을 제외하면, 좋아할 일 아니냐”면서 윤 대통령을 조롱했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소추 대상이 되는 공무원의 기준을 “직무집행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라고 규정했다. ‘이나’라는 말은 ‘둘 중 하나’를 의미한다. 같은 사안을 헌법 위반이라고 규정해 소추할 수도 있고, 법률 위반이라고 규정해 소추할 수도 있다. 둘 다 적용할 수도 있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 관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로 인정되면 파면되는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 44명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기한이었던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정문 앞에 모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려고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 등 일부 중진 의원들과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같은 날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형법상 내란죄 논점이 철회된 것을 항의했다. 단순한 말이 아니라 행동에 나섰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시각에 따라선 특수공무집행방해 시도와 진행 중인 재판에 압력을 행사하는 강요 행위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의 각종 언행은 정치의 사법화를 넘어 정치의 법 왜곡화 혹은 정치의 법 선동화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엔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다수 있고, 권 원내대표는 지난 2017년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소추위원이었다. 자신들의 언행이 법 상식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모를 개연성은 높지 않다.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고 볼 여지가 남는다. 궁지에 몰리면 못 할 일이 없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1년 자국을 방문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에게 원전 사고가 있었던 후쿠시마산 오이를 예고 없이 시식시켰다. 그들이 오이를 먹은 곳은 방사능 수치가 가장 높게 나왔던 후쿠시마시였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일본은 나라가 뒤흔들리고 있었다. 간 나오토 당시 일본 총리는 두 사람에게 오이를 먹인 후 “정말 감사하다. 두 분의 행동이야말로 일본의 복구 지원에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궁지에 몰렸기 때문에 외교 관례를 모두 벗어던진 것이다. 법률을 놓고 진행되는 국민의힘의 ‘아무 말 대잔치’는 당시 일본 정부의 행동을 연상시킨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모두 정치의 사법화를 극단적으로 추구해 현재에 이르게 한 공동 책임이 있다. 양당은 ‘프로 고발러’로 알려진 습관적인 고발장 제출자들과 관련이 있다. 국민의힘엔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를 운영하는 이종배 서울시의원이 있다. 궁지에 몰렸다 김한메 사법정의 바로 세우기 시민행동 대표는 민주당의 입장에 서서 국민의힘 인사들을 주로 고발한다. 이들은 수시로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언론에 노출된다. 이들의 고발은 언론 보도를 노리고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 특정 정파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일부 언론은 이들의 고발 중 구미에 맞는 것엔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보도한다. 이 과정을 거쳐 강경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결과가 양산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를 악용하는 선동이다. “극단적인 지지자들만 선동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 국민의힘은 이 의원을 서울시의원으로 당선시키고 부대변인으로 임명해 본의 아니게 그 관련성을 공인했다. 이들이 프로 고발러로 알려지는 과정을 토대로 정치의 사법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진행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의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자, 권 원내대표와 주 의원 등 검사 출신 의원들이 직접 법 왜곡 발언이나 행동에 앞장서는 등 프로 고발러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승용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의 지난 2009년 논문 <민주화 이후 정치의 사법화에 관한 연구>엔 스페인의 사회학자 호세 마리아 마라발 마드리드대 사회학과 교수의 지난 2003년 저서 <정치적 무기로서의 법치> 일부가 인용돼있다. 오 교수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마라발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를 정치인과 정부의 전략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정치의 사법화가 발생하는 상황을 ▲정치인의 책임성 제한 ▲선거에 연패한 야당이 새로운 차원의 경쟁 돌입 ▲정부의 야당 약화 시도 등으로 정리했다. 이어 “정치인과 정부의 전략에 따라 법의 지배가 정치적 무기가 되면 법의 지배라는 원칙은 훼손된다”며 “정치의 사법화는 법의 지배의 실현이 아니라 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법의 지배가 강화되는 경향 한편엔 사법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며 “우리 사례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 불신이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독특한 사례”라고 진단했다. 이어 “문제의 핵심은 사법부의 정치화 이전에 의회의 문제 해결 능력 부재에 있다”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부의 정치화는 정치의 장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의회와 정당의 정상화가 선결 과제로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도 지난 2023년 발표한 논문 <법과 정치의 분화와 통합>서 “정치의 실패가 정치의 사법화를 불러온 것”이라며 “정치가 제 기능을 했다면 애초에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가 확산한 이유는 정치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문제를 사법에 떠넘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의 사법화가 사법부의 권력 비대화로 이어질 위험을 경고한다. 오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근대 대의민주주의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경고했다. 그 이유로는 “입법부·행정부와 달리,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다른 헌법기관에 의해 견제받지도 않으며, 사법적 판단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들었다. 홍 교수도 비슷한 예측을 하면서 “사법에 의해 정치가 식민화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점점 늘어나는 정당해산심판 요구 사법부 권력 비대화 위험 경고도 그 경고는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어서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십년 역사를 가진 거대정당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이 제기되고, 만약 인용되는 사태까지 발생하면, 우리 헌정사에 엄청난 여파를 남길 것이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지난해 12월6일 처음 언급했다. 당시 이 의원은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에게 동조하고, 가볍게 퉁치고 넘어가려고 하면, 개혁신당부터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을 걸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다음날 “당이 조직적으로 국헌 문란 행위에 가담했다면 정당 해산 사유인 위헌정당이라는 것이 판례”라며 국민의힘을 향한 정당 해산 가능성을 언급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지난 5일 정부에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혁신당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은 “국민의힘이 위헌정당인 본질은 윤석열을 옹호하는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당해산심판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어긋날 때, 정부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헌재에 청구한다. 우리 헌정사에선 지난 2014년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가 인용된 사례가 유일하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을 적극적으로 두둔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전 의원의 사건은 내란 음모였던 것과는 달리,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실제로 군을 동원했다. 국민의힘은 집단행동을 불사하면서 윤 대통령을 두둔하고 있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진지해지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치의 사법화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2010년 발표한 논문 <정치의 사법화와 민주주의>서 “헌법규범이 생활규범으로 정착되는 단계서 나타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며 “정치의 사법화가 가능하고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최소요건이 갖춰져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권력분립의 실질적인 정착서 비롯되고 촉진되는 현상이라는 점도 간과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선동화 왜곡화 하지만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의 법 선동화·왜곡화가 돼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어느덧 공공연하게 체포영장 집행 방해를 시도하고, 지지자들에게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선동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란 사태 자체의 후유증 못지않은 것이 정치권이 구조화시킨 정치 사법화의 문제점을 수습하는 것일 듯하다. 국민의힘의 ‘아무 말 대잔치’는 비싼 관람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ctzxp@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비상계엄 여파에 온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새해가 밝았지만 희망찬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문제는 암울한 분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사건서 파생된 변수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시계 제로(0)’ 상태로 만들고 있다. <일요시사>가 현재 상황서 가능성이 제기된 ‘경우의 수’를 살펴봤다. 12·3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이 국민의 일상을 파괴하고 있다. 지난달 3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로 시작된 사태의 여파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변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고 있다. 실타래가 엉키듯 상황이 꼬이면서 일상 회복은 멀어지는 모양새다. 꼬리를 문 정국 상황 현재 우리나라는 세 가지 큰 변수 위에 놓여 있다. 윤 대통령 탄핵, 내란죄 수사,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재판이다. 탄핵과 내란죄 수사는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고 이 대표의 재판은 그전부터 진행돼왔다. 세 가지 변수는 날실과 씨실처럼 얽혀있다. 하나의 변수가 또 다른 변수에 영향을 미치는 식이다. 지난달 3일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국회에 군인이 들이닥쳤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윤 대통령이 최종 해제하면서 상황은 6시간 만에 종료됐다. 하지만 6시간이 남긴 후폭풍은 벌써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야권은 비상계엄 선포 다음날인 지난달 4일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1주일 간격으로 2번의 표결 끝에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됐다. 국민의힘서 일부 이탈표가 나오면서 탄핵소추안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200표)를 넘겼다. 탄핵소추의결서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다. 헌재는 즉시 심리에 돌입했다.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에 대한 수사도 속도가 붙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수사기관은 경쟁을 벌이듯 수사에 돌입했다.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김 전 장관 외에도 여인형 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등도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도 발부됐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공수처가 윤 대통령에 대해 청구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윤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수괴), 직권남용 방해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라고 세 차례에 걸쳐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계엄 여파로 꼬이고 꼬여 대통령 직무·수사 연계 내란 우두머리 혐의는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밖에 없다. 대통령의 불소추특권도 소용없는 중범죄다. 헌재의 탄핵안 인용 이후 본격적으로 수사를 받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다른 경우다. 윤 대통령은 탄핵 심판 이후 수사를 주장하고 있으나 헌재나 수사기관 모두 절차대로 진행하고 있다. 헌재 재판관도 일부 채워졌다. 지난해 10월 이후 6인 체제로 운영되던 헌재에 2명의 재판관이 보충되면서 8인 체제가 됐다. ‘완전체’는 아니지만 6인 체제의 결론이라는 부담에서는 벗어난 상태다. 헌재는 조한창‧정계선 재판관을 대통령 탄핵 심판 심리에 투입했다.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오는 4월 중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오는 4월18일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 최근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는 문제로 정국이 반으로 쪼개진 상황을 또다시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63일), 박근혜 전 대통령(91일) 사례에 비춰 2~3월에 결론이 날 가능성도 있다. 법적 기한은 180일 이내다. 이 대표의 재판은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이 대표는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힌다. 이 대표의 재판 결과에 따라 2년 남짓 남은 대선 구도가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서 하나라도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오면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미는 야권 버티는 여 이 대표는 현재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서 맡은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대장동·백현동 개발비리 의혹과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이 있고 수원지법은 ▲대북 송금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19일 검찰이 법인카드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하면서 재판이 늘었다. 여기에 검찰은 이 대표 관련 수사를 2개 더 진행하고 있다. 성남지청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한 호텔과 관련해 성남시의 특혜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사업비 2000억원 규모로 추진된 이 호텔 개발사업에 용도변경 등 특혜성 지원을 지속하면서 성남시에 손해를 끼쳤다는 내용이다. 수원지검은 이 대표의 ‘쪼개기 후원’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지난해 8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불법 대북 송금 혐의 재판서 “2021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 전 부지사 부탁으로 ‘이재명 캠프’에 1억5000만원 정도를 쪼개기 (방식으로)후원했다”고 증언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이 2개 사건을 모두 기소하면 이 대표는 총 7개의 재판을 동시에 받아야 한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서 불거진 사법 리스크가 3년여 만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지난해 11월 일부 재판의 1심 결과가 나오면서 사법 리스크는 이 대표의 목을 조이고 있다. 두 개의 재판서 ‘1승1패’를 기록했으나 이 대표에게 1패는 곧 ‘끝’을 의미한다.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는 2021년 대선후보 시절 허위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초 벌금형이 예상됐던 터라 정치권의 촉각은 당선무효형에 이르는 액수가 나올 것인지에 쏠렸다.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는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공직을 잃는다. 다시 돌아온 사법부 시간 재판부는 “선거 과정서 유권자에게 허위 사실이 공표되는 경우에는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돼 선거제도의 기능과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될 염려가 있다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양형 배경을 밝혔다. 향후 재판서 1심 형량이 유지되면 이 대표는 의원적을 잃고 확정된 시점부터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또 민주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서 보전받은 대선 선거 비용 434억원을 반환해야 한다. 위증교사 혐의는 1심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 대표는 ‘검사 사칭’ 사건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8년 12월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비서였던 김진성씨에게 여러 차례 전화로 거짓 증언을 요구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 씨는 이 대표의 요구에 따라 거짓 증언을 했다고 자백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증언이 일부 위증에 해당한다고 봤지만 이 대표가 위증을 교사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김씨의 일부 증언에 대해서는 “김씨의 기억에 반하는 증언에 해당된다”며 유죄로 봤다. 일각에서는 항소심 재판서 1심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대표 입장에는 ‘산 넘어 산’인 상황이다. 이 대표 재판은 비상계엄 사태와 꽉 맞물려 있다. 헌재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인용하면 60일 이내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 이때 이 대표의 재판 결과가 조기 대선의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과 동시에 ‘재판 지연’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상황은 ‘사법부의 시간’으로 흐르고 있다. 재판관 2명 보충 ‘8인 체제’ ‘완전체’ 아녀도 논란 줄 듯 여당인 국민의힘은 헌재 판결 전에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선고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고 야권은 헌재가 빨리 결론을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내란죄 수사의 경우 탄핵안이 인용되면 그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를 제외하고 대통령의 권한이 없어지기에 수사기관이 부담을 덜 가능성이 크다. 탄핵안이 기각되면 혼란 상황이 가중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렇게 되면 윤 대통령은 즉시 직무에 복귀한다. 문제는 그 과정서 발생할 수많은 갈등 상황이다. 이미 헌재는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외에도 9건의 사건을 심리 중이다. 여기엔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심판 사건도 포함돼있다. 윤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게 되면 당장 장관 등 공석을 채워야 한다. 이 과정서 야권과 사사건건 부딪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윤 대통령은 남은 임기 내내 여소야대 국면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이미 한 차례 국회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이미 국정 동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라 직무 복귀가 이뤄진다고 해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윤 대통령이 복귀하면 내란죄 수사는 표류할 가능성이 생긴다. 검찰, 경찰, 공수처 등은 윤 대통령의 내란,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해 수사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두고도 여전히 공방을 벌이고 있다. 내란 혐의 수사권은 실질적으로 경찰에만 있지만, 공수처 등은 직권남용 혐의와 엮어 함께 수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4월 전 선고 어떤 영향? 결국 실타래는 헌재서 풀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헌재가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어떻게 결론 내리는지에 따라 향후 변수가 전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헌재 재판관 2명이 임명되면서 ‘탄핵 심판 사건은 재판관 7명 이상이 참석하고 그중 6명이 찬성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됐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도 8명이 결론내렸다. 변수가 상수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전까지 지난 2023년부터 2년 동안 탄핵소추 9건을 가결시켰다. 양당에 극단 정치를 종식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제도로 통제해야 한다.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와 동거정부 체제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해 12월27일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탄핵소추를 가결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 다음날인 12월15일 “너무 많은 탄핵은 국정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일단은 한 총리에 대한 탄핵 절차는 밟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상 최초 권한대행도… 하지만 한 전 총리는 12월19일 내란·김건희 특검법과 농업 4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어 지난해 12월26일 대국민 담화서 “헌법재판관 임명동의안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그러자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이날 한 전 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다음날 가결했다.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 가결이었다. 한 전 총리 탄핵소추 사유는 ▲채 상병 특검법·김건희 특검법·내란 특검법 거부 ▲여야 합의된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합의·발표한 ‘한덕수 책임총리 체제’라는 위헌적 정권 이양 시도 등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여야 합의된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였다. 공석이었던 헌법재판관 3석은 모두 국회 추천으로 임명해야 했다. 민주당은 마은혁·정계선 후보자를 추천했고, 국민의힘은 조한창 후보자를 추천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26일 선출안을 가결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승계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2월31일 정 후보자와 조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했다. 원칙상 헌법재판관 9명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가능 여부에 대해선 여야의 견해 차이가 있다. 민주당 김한규 의원은 마 후보자와 정 후보자에게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가 국회서 선출된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느냐”고 질의했고, 두 후보자는 지난해 12월22일 국회 제출 서면을 통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마 후보자는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선애 전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정 후보자는 “여야 합의에 따른 국회 선출·대법원장 지명 후보자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은 형식적”이라고 답변했다. 황교안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지난 2017년 3월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 전 재판관을 임명했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이 전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인용 이후 임명했다”고 반박했다. 한 전 총리는 대통령의 적극적 권한인 법률안 거부권은 행사하면서,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임명이라는 형식적 권한 행사를 거절했다. 이는 곧 거센 반발로 이어졌다. 헌법재판관 신규 임명을 반대한 국민의힘도 조한창 헌법재판관을 추천했기 때문에 모순은 더 크게 부각됐다. 민주당은 지난 2023년부터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전까지 탄핵 심판 9건을 가결시켰다.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엔 윤 대통령과 한 전 총리 탄핵소추를 포함해 4건을 가결시켰다. 2023년에 가결시킨 4건 중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안동완 검사 ▲이정섭 검사 등 3건은 기각됐고, 손준성 검사 탄핵 심판은 형사재판 진행 때문에 정지됐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최초의 탄핵 심판인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서 탄핵 심판 청구를 인용하는 기준을 설정했다. 헌재는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반’을 기준으로 설정했고, 파면 정당화 사유로 ▲대통령직 유지가 헌법 수호 관점서 용납될 수 없을 때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잃었을 때로 한정했다. 헌재 마비설 불거졌는데 여태 방치하다 부랴부랴 이 전 장관의 탄핵 심판서 설정된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반’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나 해악이 중대할 때 ▲대통령을 통해 간접적으로 부여된 국민의 신임을 박탈해야 할 정도일 때 등으로 규정됐다. 대통령 탄핵소추 인용 기준과 비슷하지만, 강도는 낮아졌다. 이 전 장관 탄핵 심판서는 헌법재판관 9명 만장일치로 소추 사유가 하나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들은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 ▲서울 곳곳에 여러 소요와 시위가 있어서 경력 배치가 분산됐던 측면이 있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골든타임이 지났다 등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이 전 장관의 발언에 대해선 “부적절하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도 “재난 및 안전관리에 관한 국민의 신뢰가 현저히 실추됐다거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관련 기능이 훼손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별개 의견을 통해 이 전 장관의 일부 발언들을 일컬어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의무 위반”이라고 지적했던 4명도 “법 위반 행위가 중대해 파면을 정당화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때문에 탄핵소추됐던 안동완 검사에 대해선 4명이 인용 의견을 제시했고, 5명이 기각 의견을 제시했다. 기각 의견은 안 검사의 유우성씨 기소를 놓고 “검찰청법·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고의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법질서에 역행하기 위해 법률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고, 이미 기소 이후에도 9년 넘게 공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이 상당 부분 희석됐다”고 판단했다. 인용 의견을 제시한 재판관 4명은 “위조된 증거로 기소한 것으로 봐선 유씨에게 불이익을 가할 의도로 기소했다”며 “법 위반의 정도가 중대하고, 파면을 통한 헌법수호 이익이 파면에 따른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판단했다. 안 검사 탄핵소추는 그나마 팽팽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 반면 이 검사 탄핵소추는 헌재가 국회를 질타할 정도로 부실했다. 헌재는 재판관 9명 만장일치로 이 검사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이 검사 탄핵소추는 ▲범죄경력조회 무단 열람 ▲위장전입 ▲처남 관련 수사무마 등 개인 비위 의혹을 계기로 추진됐다. 헌재는 이 중 범죄경력조회 무단 열람에 대해선 “심판 대상을 확정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관계를 구체화해 다른 사실과 명백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는 “소추 사유의 일시와 위반 행위의 수가 전혀 기재되지 않았고, 헌법·법률 위반의 구체적 태양도 전혀 특정되지 않은 채 막연히 기재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일시·방법·대상 등이 전혀 특정돼있지 않은 소추 사유는 이 검사의 방어권 행사를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고 질타했다. 아울러 “이 검사가 대기업 고위 관계자로부터 강원도 춘천 소재 리조트서 접대받았다”는 소추 사유에 대해서도 “금품 제공자·제공한 금품 내용과 가액·금품 제공자와 리조트의 관계·이 검사의 직권 남용 내용이 전혀 기재돼있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처남 관련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검사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는지 기재되지 않았다”며 “의혹 제기와 의심만 적시했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헌재 결정 보니… 비상계엄 사태 전까지 지난 2024년 발의된 탄핵소추는 검사 3명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최재해 감사원장을 상대로 가결됐다. 이 중 검사 3명에 대한 탄핵 심판 첫 변론준비기일은 비상계엄령 사태 발생 이후인 지난해 12월18일 진행됐다. 이날은 국회 측과 대리인은 모두 헌재에 출석하지 않아 3분 만에 종료됐다.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소추는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사실상 무력화되고 탄핵소추가 가결된 이상 국회가 이들에 대한 탄핵 심판을 성실하게 진행해야 할 이유는 사실상 사라졌다. 헌재는 이종석·이영진·김기영 전 재판관이 퇴임한 지난해 10월부터 재판관 3명 공백이 발생했다. 그래서 지난 8월엔 ‘헌재 마비설’이 불거졌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사건 심리는 최소 7명의 재판관이 출석해야 진행할 수 있다. 법률상으론 3명의 공백을 채우지 못하면 평의조차 열기 어렵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11일 “6인 체제서 변론은 가능하다”고 답변했지만, 선고에 대해선 “계속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진 헌재 공보관은 지난해 12월27일 “재판관 6인 체제서 선고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며 “상황이 변동하기 때문에 선고 여부에 대해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재판관 3명 공백을 알면서도 최 원장과 검사 3명을 탄핵소추했고, 비상계엄 사태 이후 비로소 재판관 임명에 나섰다. 이로 인해 현재 이르러 큰 혼란이 발생했고, 국민의힘엔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27일 “국정 혼란과 국가적 손실이 불 보듯 뻔한데도 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했다”며 “조기 대선 정국을 유도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덮어보려는 속셈”이라고 주장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대통령들은 그들과 같은 절대적인 권위와 정치력을 가지진 못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하는 현행 헌법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지난 2019년 기준 국민교육수준 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25~64세 성인의 고등교육(전문대 졸업 이상) 이수 비율은 50%였다. 이 중 25~34세 청년층의 고등교육 이수 비율은 69.8%였다. 3김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던 1970~80년대와는 다르다. 역대급 여소야대 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견지하는 현행 헌법의 요구 수준과는 달리 대선 출마자들의 수준은 낮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 2022년 제20대 대선후보였던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일컬어 유행했던 표현은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었다. 이런 상황서 거대 야당이 수시로 가결시켰던 탄핵소추는 현재의 악순환을 만들었다. 따라서 헌재의 까다로운 기준 제시를 무시한 탄핵소추를 제도적으로 막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행 헌법과 제도로는 절대적인 여소야대 상황서 남발되는 탄핵소추를 막을 방법이 없다. 개헌 논의에선 미국식 4년 중임제와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가 주로 거론된다. 이 중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엔 국민의 지지를 잃은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프랑스 대통령에겐 의회해산권이 있고, 의회는 총리와 내각을 불신임할 수 있다. 원래 의원내각제였던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당제 정국과 알제리 독립운동의 여파로 혼란을 맞이했다. 이때 정계에 불려온 소방수는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었다. 드골 전 대통령은 지난 1958년 헌법 개정을 조건으로 전권을 위임 받아 총리로 취임했다. 이어 기존 의원내각제 요소에 강력한 대통령제 요소를 결합한 제5공화국 헌법을 ‘합리화된 의원내각제’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총리가 갖고 있던 의회해산권은 대통령에게 넘어갔고, 의회의 내각 불신임을 제한하는 헌법 조항을 신설했다. 또 대통령에게 국민투표 회부권 등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고,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게 했다.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의 시작이었다.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와 내각이 의회로부터 불신임당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여대야소 상황에선 대통령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다. 문제는 여소야대 상황이다. 헌법에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와 내각을 의회가 불신임해서 발생할 공백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 상황은 현재 프랑스서 진행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의회를 해산해 조기 총선을 치렀다. 마크롱 대통령의 기대와는 달리, 여당 앙상블은 전체 577석 중 168석만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다. 극우 정당 국민연합과 좌파 정당 신인민전선이 함께 약진했기 때문에 동거정부 구성도 어려웠다. 지난해 12월5일엔 2025년도 예산 문제 때문에 야당이 미셸 바르니에 전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시켜 내각이 총사퇴했다. 그러자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를 임명했고, 국민연합이 바이루 총리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 그나마 냉각이 완화됐다. 양당 극단 정치 대립 프랑스식 동거체제는? 이런 상황을 처음 직면했던 대통령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었다. 미테랑 전 대통령은 지난 1986년 총선 패배로 인해 ▲대통령직 사임 ▲의회와의 대립 지속 ▲야당에 행정부 구성권 이양 등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그의 선택은 행정부 구성권 이양이었다. 총리로 취임했던 사람은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었다. 미테랑 당시 대통령과 시라크 당시 총리는 권한 배분 관련 합의를 한다. 이에 따르면, ▲외교·국방 관련 권한 ▲정부의 행정입법 ▲의회해산권 등은 대통령이 행사하고, 그 외 내정 권한은 총리에게 넘어간다. 우리가 흔히 아는 프랑스식 동거정부는 이때 처음 출범했다. 시라크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똑같은 상황을 맞이한다. 시라크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한다. 하지만 야당 좌파연합이 577중 314석을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고, 대선 맞상대였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를 총리로 임명해야 했다. 동거정부는 5년 동안 지속됐다. 시라크 당시 대통령은 대부분의 권한을 잃었다. 여당 RPR서도 당내 정적 필립 세귄이 지도자로 선출되면서 당내 영향력도 잃었다. 한동호 UCL 박사는 지난 2010년 발표한 논문 <한국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과 프랑스 동거정부의 함의>서 시라크 당시 대통령을 놓고 “이중(정부와 당)의 동거를 감당해야만 했다”고 평가했다. 조스팽 당시 총리는 시라크 대통령과 협력했고, 시라크 대통령도 조스팽 총리의 정책 중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것은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동거정부 체제는 복잡미묘함 때문에 프랑스 정치권도 가급적 꺼린다. 프랑스는 지난 2000년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임기를 7년서 5년으로 단축하고, 2002년 대선과 총선을 약 두 달 간격을 두고 치러 동거정부를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김태수 한국외대 글로벌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2007년 발표한 논문 <프랑스 대통령제의 특징, 변천 그리고 운영의 메커니즘>서 ”프랑스 야당은 한결 같이 대통령의 ‘권력독점’을 막기 위해 자신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정치의 논리”라고 서술했다. 즉, 동거정부 성립을 통한 대통령 견제를 근거로 지지를 호소한다는 것이다. 만약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했다면, 지난해 4월 총선 이후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동거정부가 탄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이 국방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을 제외한 내각을 원하는대로 구성했다면, 탄핵소추를 지나치게 많이 추진하진 못했을 것이다. 아울러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시도도 국회가 아닌 국무회의서 제동이 걸렸을 것이다. 프랑스에선 무슨 일이? 프랑스서도 꺼리는 동거정부라지만 극단의 정치를 거듭하면서 국가 에너지를 낭비하는 우리 양당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당이 극단의 정치를 종식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제도로 이를 통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일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와 그 후폭풍이 남긴 숙제일 것이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