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 요동치는 대기업 서열 막전막후

엉성한 커트라인…개나 소나 재벌그룹?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매년 이맘때면 기업들의 시선은 공정거래위원회로 쏠린다. 대기업집단 지정현황이 공개되는 까닭이다. 기업의 외형을 가늠하는 수단이자 재계 서열을 구분 짓는 잣대라는 점에서 공정위의 발표에는 관심요소가 다분하다.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 65개 기업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이른바 대기업집단 선별작업으로 불리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은 재벌에 의한 시장경쟁 저해를 막는 데 뜻을 두고 있다. 직전년도를 기준으로 자산총액 5조원을 초과한 기업이 포함 대상이다.

올해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민간기업은 총 52곳. 지난해보다 3곳이 늘었다. 하림, 한국투자금융, 셀트리온, 금호석유화학, 카카오 등 총 5개 기업이 새롭게 이름을 올리고 홈플러스와 대성이 명단에서 빠진 덕분이다.

대기업 52곳
3개 늘어나

하림과 카카오는 인수합병에 따른 자산증가가 영향을 미쳤고 셀트리온은 보유주식 가치 상승으로 자산이 많아진 게 한몫했다. 비금융사 인수로 금융전업집단에서 제외(한국투자금융)되거나 계열분리(금호석유화학)를 거쳐 새롭게 명단에 오른 경우도 있다. 반면 최대주주가 바뀐 뒤 금융사지배집단으로 분리된 홈플러스(전년 기준 37위)와 계열회사 매각으로 자산이 줄어든 대성(전년 기준 43위)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통상 민간기업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포함된다는 것은 대기업으로 인정받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자산총액 규모에 따라 나열된 순번이 재계 서열을 구분 짓는 지표로 활용된다. 해당 기업에서 지난 1년 간 발생한 자산 증감 추이에 따라 서열에도 등락이 뒤따른다.


이번 발표에서는 순위가 큰 폭으로 하락하거나 자산이 급감한 기업의 명단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주로 자금난을 겪으며 부정적인 소식이 전해지던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장 극적인 서열 하락을 겪은 기업은 전년 대비 15계단 떨어진 동부(35위)였다. 지난해 4월 기준으로 14조6000억원 규모였던 동부의 자산총액은 1년이 지난 지금 8조2000억원으로 추락했다. 52개 민간기업 가운데 자산 하락폭은 단연 선두다. 최근 몇 년 간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주력계열사를 연이어 매각한 게 결정적이었다. 그사이 53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25개로 대폭 축소됐다.

동국제강(37위)은 재계 서열이 7계단 하락했다. 9조8000억원이던 자산은 2조원 가까이 줄어든 7조9000억원으로 급감했다. 적극적인 부채 절감이 이뤄진 게 컸다. 동국제강은 사옥인 페럼타워 매각, 포스코 지분 매각, 포항 후판2공장 폐쇄, 사파이어 잉곳 제조업체 DK아즈텍 기업회생절차 신청 등 다방면에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올해에도 국제종합기계 매각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한진중공업(38위)은 8조9000억원이던 자산이 7조8000억원 수준으로 감소하면서 재계 순위가 덩달아 6계단이나 떨어졌다. 2014년부터 8차례에 걸쳐 부동산을 매각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매각한 부동산자산만 해도 2000억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42위), 태광(43위), 현대산업개발(46위), 삼천리(49위)는 자산 감소폭은 미미했지만 비슷한 외형을 갖춘 경쟁사들이 상승세를 타면서 재계 서열이 자연스럽게 뒷걸음질한 케이스다. 한국GM은 8조2000억원에서 7조5000억원으로 자산이 감소하면서 6계단 떨어진데다 부채비율이 606.6% 이상 급등했다, 삼천리는 자산이 3000억원 줄어든 5조70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대비 순위가 5계단 떨어졌다.
 

지난해 41위에 이름을 올렸던 현대산업개발(46위)은 5계단 뒤로 밀려났다. 자산총액은 6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중흥건설, 이랜드, 태영, 아모레퍼시픽 등 현대산업개발의 뒤쪽에 줄서 있던 기업들이 동반약진을 한 게 컸다. 4계단 떨어진 태광(43위) 역시 현대산업개발과 상황이 유사하다. 태광은 7조1000억원으로 자산이 전년 대비 2000억원 가량 줄었다. 계열사는 기존 32개에서 26개로 축소됐다.

희비교차…새로 등장한 하림, 사라진 대성
출자제한 순위 내 지각변동 ‘UP & DOWN’


금호아시아나(19위)는 계열분리가 재계 서열을 떨어뜨린 경우다. 지난해 17위에 이름을 올렸던 금호아시아나는 올해 금호석유화학이 그룹에서 떨어져 나간 뒤 자산이 15조2000억원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1년 전에 비해 3조6000억원이 빠져 나간 셈이다.

자산 감소가 대내외적 위상으로 직결된 앞의 사례와 달리 몸집이 줄었음에도 재계 순위에 별반 차이 없는 기업도 더러 보인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아도 자산 감소가 발생한 만큼 마음이 쓰리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서열 8위에 이름을 올렸던 현대중공업(9위)은 자산총액 53조5000억원을 기록하며 한 단계 떨어진 성적표를 받았다. 문제는 대폭 축소된 자산이다. 1년 사이에 자산 4조원이 증발했다.

KT(12위)는 자산이 3조2000억원 줄어든 31조3000억원으로 급감한데다 계열사도 50개에서 40개로 대폭 축소됐다. 공교롭게도 KT의 부진을 틈타 두산(11위)은 어부지리로 순위를 한단계 끌어올렸다. 두산 역시 자산이 감소했지만 하락폭이 월등했던 KT가 두산의 재계 서열 상승을 견인했다.
 

포스코(6위)는 재계 순위에 변동이 없었지만 자산이 4조원 이상 줄어든 80조2000억원으로 떨어졌고 계열사는 51개에서 45개로 줄었다. 실적 부진 계열사를 대상으로 매각 작업을 벌였던 포스코는 계열사 지분매각 등을 통해 부채율 개선에 힘쓴 바 있다.

대우조선해양(17위)는 전년 대비 한 단계 순위 하락에 그쳤지만 부채비율 상승폭이 무려 3642.4%에 달했다. 대우조선해양 집단 계열사 14곳 중 부채배율 급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대우조선해양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지난해 말 별도기준 부채비율은 7308.4%에 달한다. 지난해 별도기준 3조 5272억 원의 순손실이 나면서 완전자본잠식을 간신히 면할 정도로 자본총액이 잠식된 결과다. 순이익이 크게 감소한 기업집단에서도 첫손에 꼽혔다.

위상 급추락
좋은 시절 끝나

앞서 열거한 기업들이 냉랭한 분위기에 놓여 있는 것과 달리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며 재계 서열 재편을 가속화하는 곳들도 제법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대기업 집단에 새롭게 편입된 하림(28위)이다.

신규 지정된 기업들 대다수가 대기업 명단 맨 하단에 몰려 있는 것과 달리 하림은 처음부터 30위권 안쪽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까지 4조7000억원대 자산으로 대기업 집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하림은 4조2000억원대 자산을 보유한 팬오션을 인수하면서 순식간에 10조원짜리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중흥건설(40위)의 약진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재계 서열 48위였던 중흥건설은 5조6000억원이었던 자산을 2조원이나 불리는 데 성공했다. 2014년 발표 당시 3조8000억원던 자산이 2년 만에 2배나 증가한 셈이다. 그사이 계열사도 6개 늘어난 49개로 증가했다. 중흥건설의 자산이 급증한 이유는 소유권 이전이 마무리되지 않은 아파트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다 광교신도시 땅값이 8000억원 가까이 급등한 까닭이다. 부채총액은 5조5천840억원으로 자본총액대비 부채비율은 276%이다. 임대주택의 자산이 부채로 잡혔다는 회사 측의 설명이다.

미래에셋(24위)은 5계단 상승했다. 그사이 자산은 1조원 증가한 11조원을 기록했다. KT&G와 교보생명은 자산이 소폭 증가하면서 각각 5계단씩 뛰어 올랐다. KT&G는 부채도 함께 증가하면서 자산이 커졌다. 자본은 작년 초 담뱃값 인상으로 이익잉여금과 적립금이 증가했고 부채는 미지급 담배소비세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부영(15위)은 4계단 상승했다. 16조8000억원이던 자산이 1년 사이에 4조원 가까이 증가한 게 결정적이었다. 계열사도 15개에서 3개 늘어난 18개로 재편됐다.


순위 올리고
자산도 키우고

재계 서열에 큰 변동이 없어도 함박웃음을 짓는 기업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한화(8위)는 재계 서열이 2계단 오르는 데 그쳤지만 외형은 한층 커졌다. 현대중공업, 한진(10위)이 뒷걸음질 하는 사이 38조원이던 자산은 16조원 이상 증가했다. 삼성종합화학(1조309억원)과 삼성테크윈(8232억원) 등을 인수하면서 자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기업으로 우뚝 섰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한 단계 밑에 있던 KT와 비슷한 자산을 보유했지만 이제는 꽤나 차이가 벌어졌다.

현대자동차(2위)는 자산을 15조원 이상 불리며 자산 증가로는 한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계열사인 현대제철을 통해 현대종합특수강(구 동부특수강)의 지분을 거머쥔 게 주효했다. 다만 1위인 삼성과의 현격한 격차는 여전하기 때문에 당분간 자리바꿈을 기대하긴 힘들다.

지난해 '형제의 난'으로 떠들썩했던 롯데(5위)는 입방아에 오르내린 것과 상관없이 자산을 크게 불렸다. 재계 순위에는 변동이 없었지만 93조원대 자산이 1년 사이 무려 10조원 가까이 증가하면서 자산 변동이 미미했던 LG(4위)와의 간극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삼성SDI 화학부문, 삼성정밀화학, KT렌탈 등 굵직한 M&A를 성사시킨 게 결정적이었다.

CJ헬로비전과 OCI머티리얼즈를 연이어 인수한 SK(3위)는 152조원이던 자산을 8조원 가량 늘리면서 LG와 격차를 더욱 별렸다.
 

대기업들 사이에서 희비가 교차되는 상황에서 공정위는 추가적인 자료들을 더 공개할 예정이다. 지정 기업집단의 계열회사 소유지분현황과 출자현황을 분석한 내부지분율, 순환출자현황 등이 그것이다. 내부거래현황, 채무보증, 지배구조현황도 단계적인 분석 대상이다.


잘 나가던 동부·동국제강 좌충우돌
잘 나가는 한화·중흥건설 파죽지세

다만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기업들이 동일한 범주에 귀속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다. 재벌기업 사이에서도 양극화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집단 지정은 거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을 막고, 경영과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신규 순환출자, 채무보증 등이 금지되고 소속 금융ㆍ보험사가 가진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이 제한되며, 공시의무도 대폭 강화된다.

제도의 시행으로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 억제되고, 그룹 내 일감 몰아주기, 하도급 업체와의 관계 등에서 경영 투명성이 개선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경제민주화 관점에서 보면 대기업을 규제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생태계에 도움이 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나라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몸집이 불어나는 상황에서 8년 전 도입한 자산총액 기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을 두고 재계를 중심으로 말들이 많다. 규제를 받는 대기업이 갈수록 증가하면서 외국 기업보다 역차별을 받고 전반적인 경제 활력 제고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면 30여 개 법령의 규제를 받게 돼 공격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기 어렵게 된다는 불만도 있다. 자산규모 5조원을 겨우 넘긴 기업집단을 글로벌 거대기업인 삼성이나 현대차, SK, LG그룹과 같이 상호출자제한 등의 각종 규제 대상으로 묶어 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해외자산을 합할 경우 자산규모가 5조원을 훌쩍 넘는 네이버는 제외한 채 카카오를 대기업집단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자산 5조원 이상’을 한 묶음으로 분류하는 현행 방식이 무조건 합리적으로 비춰지지 않는 이유다. 경제력 차이가 현격한 다른 대상을 동일한 잣대로 규제하는 것은 차별적인 규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카오(5조1000억원)와 삼성(348조2260억원)은 자산을 기준으로 놓고 볼 때 70배가량 덩치 차이가 난다.

이렇게 되자 지정에서 탈락되는 게 속편한 일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이미 몇몇 기업은 몸집을 줄여 해당 규제를 피하고자 하는 의도를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한다. 대기업집단에 속하면 그에 따른 각종 제약이 뒤따르는데 명예보다는 실리가 중요하다는 계산이다.

덩치 상관없이
일괄적 적용?

일각에서는 그동안 경제 규모가 커진 것에 맞게 대기업집단의 자산총액 기준을 10조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는 그룹이 40개 미만으로 감소하게 된다. 대기업집단 간에도 규모에 큰 격차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차등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자산규모 4000억원에서 시작된 지정기준이 상위 30대 그룹, 2조원 이상을 거쳐 2009년 이후 지금껏 5조원 이상이다”며 “지정기준을 10조원으로 상향조정하자는 의견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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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