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야쿠자의 세계

최대조직 전쟁 임박…국내 조폭도 초긴장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세계 3대 조직 중 하나인 일본의 야쿠자가 파벌싸움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올해로 101년째를 맞은 야쿠자는 매해 100조원 가까운 수익을 벌어들이며 일본 사회를 주름 잡고 있다. 이번 파벌 싸움이 지난 1985년 25명의 사망자를 낸 ‘야마이치’ 항쟁을 재연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파가 분열하면서 기존 조직과 파벌싸움이 시작됐다. 조직원 2만7000명 규모의 ‘야마구치파’는 지난해 8월 기존의 ‘야마구치파’와 ‘고베 야마구치파’로 갈라섰다. 야마구치파의 현 두목이 간사이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100년 전 야마구치파가 처음 태동한 고베를 강조한 고베 야마구치파가 생겨난 것. 일본 정부는 야쿠자들의 전면전인 ‘항쟁’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지난 8일 일제히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일본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계파별 알력
‘야마이치’ 재연?

야쿠자는 일본의 범죄조직을 일컫는 말로 주로 대규모 조직을 가진 폭력 조직이다. 토건 및 금융 업체로 위장해 사업을 벌인다. 야쿠자의 근원은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력 송출, 하역, 건설 등의 목적으로 무리를 지은이들이 당시에 마피아처럼 누구누구 일가(一家)라는 명칭 아래 텃세를 과시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구미(組), 또는 가이(會)로 바뀌었다.

야쿠자라는 명칭은 도박용어에서 나왔다는 것이 통설이다. 화투놀이 중 하나인 산마이라는 도박은 1부터 9까지의 숫자패 중 3장을 뽑아 합산해 끝자리를 가장 높게 만드는 도박으로 ‘7이상을 뽑으면 다음 장을 뽑지 않아도 된다’라는 기본 규칙이 있다. 8, 9의 눈이 나오면 합계가 17이 돼 끝자리 수가 7이 된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여기서 한 장을 더 뽑지 않겠지만, 사행심이 강한 사람들은 여기서 한 장을 더 뽑는다. 최악의 경우 3을 뽑아 끝자리수가 0(8+9+3=20)이 된다. 이 같은 행동 패턴이나 인생 설계가 야쿠자가 사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일본어로 ‘893’을 읽어서 ‘야쿠자’라 하고, 이를 ‘쓸모없는 자’라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야쿠자의 조직 구조를 살펴보면 3대 조직은 ‘야마구치파’ ‘스미요시파’ ‘이나가와파’로 나뉜다. 야마구치파의 조직원 숫자는 2만3000여명이다. ‘고도카이’는 야마구치파 산하 최대 파벌로 현재 6대 회장 시노다 켄이치가 여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야마켄파’는 야마구치파 산하 2대 파벌로 ‘고베야마구치파’를 창설하는 데 주도한 파다. 3대조직 중 하나인 ‘스미요시파’는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야쿠자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3대조직 중 하나인 ‘이나가와파’는 현 5대 회장이 재일동포 출신으로 알려졌다.

최근 일련의 조직 분열의 중심에는 야마구치파 6대 두목 시노다 겐이치가 있다. 2005년 두목이 된 이래 10여년 동안 야마구치파를 이끌어왔다. 일본 전국의 산하조직의 중간 보스에 해당하는 직책에 자신의 파인 고도카이 사람을 대부분 임명해온 것이다. 다른 파벌 간부들을 중용하지 않고 본부에 과도한 상납금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심해졌다. 특히 지난해 8월 긴급집행부회의에서 산하 조직 두목 13명을 ‘절연’ 또는 ‘파문’ 형식으로 조직에서 배제하면서 격화됐다.

폭력조직 내부규율에 따르면 파문이 되면 다른 조직에도 통보돼 야쿠자사회에서 배제되며 절연 조치에는 무서운 보복이 뒤따라 일반사회에 부랑자로 전락하게 된다. 지난해 야마구치파에서 이탈된 13개 세력은 야마켄파 두목인 이노우에 구니오를 새 조직의 리더로 추대했다. 조직명을 야마구치의 발상지 고베를 넣은 ‘고베야마구치’로 만들어 야마구치파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수십년째 지속
경찰 초긴장

이 조직원의 숫자는 7000명으로 야마구치파 전체의 30%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 야쿠자의 조직원수가 급격히 감소해 수 십 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26일 <도쿄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경찰청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일본 전국에 거점을 둔 폭력단 구성원과 준 구성원 수가 지난해보다 6600명(12.3%) 감소한 4만6900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1958년 이후 가장 적은 숫자다. 야쿠자의 세력이 가장 컸던 1963년에는 조직원이 18만4100명에 이르렀다. 폭력단 가입자는 2005년 이후로 줄곧 감소했고 그 수가 5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지난해 9월5일 고베야마구치파의 모임에 도쿄에 근거지를 둔 일본 3대 야쿠자인 스미요시파의 간부가 등장한 것은 다른 조직과도 연계하고 있다는 ‘세 과시용’인 것으로 일본 경찰은 분석했다. 야쿠자 조직간 알력 다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85년 1월 오사카 스이타시에서 야마구치파 4대 두목인 다케나카 마사히사가 조직원이 쏜 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야마구치파 내분이 고조되면서 암살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최대조직 ‘야마구치파’분열
6대 두목 시노다 과도한 상납 요구

이후 2년여 간 세력 다툼으로 조직원 25명이 숨지고 경찰과 시민을 포함해 7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1997년 내분에서 당시 부두목이 고베시 호텔에서 사살됐고 근처에 있던 치과의사가 유탄을 맞아 희생되기도 했다. 2010년에는 한 두목의 집에 수류탄이 날아들어 일본 국민이 공포에 떨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달 15일, 도쿄 신주쿠에서 발생한 충돌이 있다.. 야마구치파의 본거지 중 하나인 도쿄 신주쿠 가부키쵸(도쿄 유흥업소 밀집지역)에서 고베 야마구치파가 두 달 연속 회합을 열면서 양측의 충돌이 벌어졌다.
 

야마구치파 조직원들이 고베 야마구치파 조직원을 일방적으로 폭행했고 이 사건 이후, 두 조직은 일본 전역에서 보복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주로 상대방 사무실에 차로 돌진하거나 총을 쏘고 달아나는 방식이다.

지난 5일, 도쿄 인근 이바라키현에 있는 고베 야마구치파 사무실에 트럭이 돌진했다. 경찰이 범인을 잡고 보니 야마구치파 조직원으로 드러났다. 다음날인 6일에는 총도 등장했다. 같은 사무실에 5발의 총탄이 날아들어 야마구치파가 고베야마구치파를 위협했다.

일련의 알력다툼에 일본 공안위원회 고노 장관은 “대립항쟁 상태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며 “민간인 피해가 없도록 확실하게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두 계파 간의 갈등에 대해 일본의 한 형사는 “언제 어디서 격렬한 항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며 “특히 두 조직의 본거지가 있고, 소수파인 고베 야마구치파가 오히려 세력이 더 큰 고베일대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일본열도의 불안감도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야쿠자가 100년 넘게 명맥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막대한 수익에 있다. 지난 2014년 9월14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에 따르면 일본 야쿠자 야마구치파의 연매출이 800억달러(한화 94조여 원)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 5대 범죄조직’ 가운데 최대 규모다. <포춘>은 “범죄조직이 지하경제를 통해 활동하고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이들의 수익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파악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1958년 당시 조직의 3대 보스 다오카 가즈오는 100만엔을 투자해 연예기획사 ‘고베 예능사’를 세웠다. 당대 최고 인기 스타 미소라 히바리 등을 소속 가수로 두면서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소속 가수가 음반을 내거나 공연을 하면 지역 유지들에게 표를 강매하는 식으로 돈을 벌었다.

이 같은 행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지난 2011년 일본의 국민MC로 불린 시미다 신스케는 야마구치파 두목과 편지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연예계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60년대는 좌익 학생운동을 폭력으로 탄압해 우익 정치인들로부터 특혜를 받기도 했다. 정·관계의 비호아래 공갈, 협박, 갈취, 마약 밀매, 도박, 건설 등에 해결사 노릇을 자처하며 몸집을 급속히 불려나갔다. 특히 일본 경제가 최고의 호황을 누린 1980년대는 부동산, 미술, 대부업에 뛰어들면서 자금을 축적했다. 특히 야마구치파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시노다 겐이치는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2005년 보스의 자리에 오른 뒤 조직 사업을 양성화 했고, 복잡한 다단계의 지배구조를 통해 건설, 식품운송 등 다양한 영역의 기업들을 소유했다. 국책사업에까지 뛰어들어 간사이 국제공항 건설, 국립대학교 기숙사 건설에 참여할 정도로 덩치를 키웠다.

폭행에 보복
일본열도 불안

야마쿠치파는 자신들을 의리의 사나이로 위장하는 영화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감행해 이미지 세탁을 시도했고 조직원들을 공개 채용하는 대범함도 보였다. 2000년대부터는 ‘두뇌’ 산업에 뛰어들었다. 경제, IT 전문가들과 함께 주가조작과 M&A를 추진해 지능형 조폭으로 변신했다. 야마구치파는 세계 다른 조직들과의 협업도 진행 중이다.
 

러시아 마피아와는 해산물 밀수를 진행하고 우즈베키스탄 폭력 조직과는 우즈벡 매춘 여성을 일본에 공급하는 사업에서 협력하고 있다. 야쿠자 전문가 미조구치 아쓰시는 “이들은 외부 세력과 협조를 할 때 외부 세력에 의해 자신의 조직이 공격받는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야마구치파가 ‘사회공헌’ 분야에 진출한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2014년 야마구치파는 마약추방 운동을 장려하고, 사회공헌활동을 부각시키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건장한 인력이 많다는 점을 활용해 지진, 태풍과 같은 재난 시 자위대보다 먼저 재해지로 들어가 피해자를 돕는 일도 일본 신문에 종종 보도되고 있다.

마약매춘…연매출 100조 육박
기존 조직들과 양보 없는 파벌


야마구치파가 다각도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지만 이들의 검은돈이 국제 금융시장을 흔들자 미국 정부는 야쿠자를 압박했다. 지난해 4월21일 미국 재무부는 야쿠자 산하 야마구치파의 유력 지파인 ‘고도카이’에 대해 자산 동결 등 경제제재를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조치로 고도카이와 다케우치 회장의 미국 내 자산이 모두 동결돼 미국의 기업이나 개인이 이들과 거래하는 것도 금지됐다.

당시 미 재무부는 “이번 조치는 야쿠자 조직의 자금줄을 약화시켜 그들의 국제 범죄 행위를 막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야쿠자는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미국 등 다른 나라의 범죄 조직과도 연계돼 있고 특히 미국에서 마약, 돈세탁 등의 범죄에 연루돼 있다”고 덧붙였다.

멈출 줄 모르는 성장을 거듭한 야쿠자는 일본경제가 장기침체에 접어들면서 경제 영향력이 쇠퇴했다. 이번 야마구치 내분도 총수입이 줄어든 데 따른 불만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폭력조직을 적대시하는 사회분위기가 더해지면서 야쿠자는 옛 명성을 잃은 상황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1992년 일본정부가 ‘폭련단대책법’을 만들어 대대적 단속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지난 2012년에는 20년 만에 폭력단대책법을 더욱 강화해 5명 이상의 야쿠자가 모여 경쟁조직 사무실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체포할 수 있게 개정했다. 도쿄와 오키나와를 비롯해 47개 지자체가 야쿠자 조직에 이익 공여를 금지하는 ‘폭력단배제조례’를 만들어 압박했다. 대기업, 소기업, 자영업에 이르기까지 야쿠자와 친분을 맺거나 그들이 돈을 버는 일에 협력하는 것이 모두 금지됐다.

이러한 단속의 영향으로 6∼7년 사이 야마구치파의 조직원은 4만여 명에서 2만3000여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최근 일련의 사태가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찰 당국은 최근의 내분이 ‘항쟁’의 시작단계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일본 경제 침체
조직 돈 줄 말라

경찰이 특히 우려하는 이유는 지난 1985년 전면전이라 불리우는 ‘야마이치’ 항쟁의 악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은 시민들에게 안전 주의를 당부하고 폭력단 대책 과장 등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고노 다로 국가공안위원장은 지난 8일 각의 뒤 기자회견에서 “관련 사건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흉포화하는 등 두 조직이 ‘대립 항쟁’ 상태에 있다고 경찰청이 판단했다”며 “시민들이 항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안전 확보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야쿠자 국내 유입 실태

새로운 마약시장 ‘타깃’

야쿠자가 일본의 경기 침체와 엔화 가치 하락 속에 한국을 새로운 마약 소비시장으로 노리고 있다.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검은 한국에 들어와 필로폰 10kg을 팔아넘기려 한 혐의로 구속한 야쿠자 간부급 조직원 A씨를 상대로 추가 혐의를 수사했다. A씨는 검찰에서 “한국의 필로폰 수요가 늘고 있고, 여기에 환율 등을 감안하면 일본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사실상 두 배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필로폰 수요 증가
환차익으로도 수익 발생

필로폰 1회 투약분이 한국에서 10만원 선으로 일본보다 높고,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환차익까지 발생하면 더 큰 수익을 누릴수 있기 때문에 한국을 최종판매지로 선택했다는 평가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조직과 연계한 야쿠자 조직이 국내 진출을 시도하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어 관련 기관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07년 9월에는 일본 야쿠자 최대 조직 ‘야마구치파’의 중간보시가 김해공항으로 필로폰 615g을 밀수입하고, 일본으로 밀수출 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에 검거되기도 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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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