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 <시그널>로 본 희대의 3대 사건 재조명

드라마가 꺼낸 X파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드라마 <시그널>의 열풍으로 드라마 속 사건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여아 납치 살인사건부터 집단 성폭행 사건까지 드라마로 인해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 실제 사건들을 되짚어봤다.

과거와 현재가 상호작용하며 변화해 간다는 콘셉트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 드라마 <시그널>은 tvN에서 16부작으로 제작된 범죄 스릴러물이다. 일반적인 범죄 스릴러물을 넘어 모두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드라마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충격적 유괴·살해]
[박초롱초롱빛나리 사건]

<시그널>의 에피소드 중 ‘김윤정 유괴사건’은 ‘박초롱초롱빛나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1990년대 한국에서 발생한 유괴, 살해 사건 중 가장 대표적이면서 유명한 사건으로 강렬한 임팩트를 가진 희생 아동의 이름과 살해자의 특이한 신분 때문에 더욱 사회에 깊이 각인된 사건이다.

1997년 8월30일 당시 27세였던 살해범 전현주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영어학원을 나서던 당시 초등학교 2학년생인 박초롱초롱빛나리를 유인·유괴하는데 성공하고 당일 저녁 총 3차례에 걸쳐 부모에게 공중전화로 2000만원을 요구했다.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경찰의 신분 검색에 걸린 그녀는 판단력을 잃고 박양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미 용의선상에 있었던 터라 경찰은 그녀의 자택 주변을 수사 중에 있었고 이를 의아해한 전씨의 아버지의 신고로 전씨는 경찰에 꼬리를 잡혔다. 결국 전씨는 9월12일 신림동의 한 여관에서 검거당했다.


검거 당시 전씨는 임신상태였으며 그해 2월에 결혼식을 올린 상태였다. 낭비벽이 심했던 그녀는 결혼 후 늘어난 씀씀이를 감당하지 못해 3000만원의 빚을 진 상태였고 박초롱초롱빛나리를 유괴한 이유도 2000만원의 빚을 갚기 위함으로 드러났다.

그녀의 범죄를 남편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한다. 사건 재연 때 “현주야 아니지? 네가 그런 끔찍한 일을 할 리가 없잖아. 아니라고 말해줘”라며 울부짖는 듯한 남편의 목소리가 방송에서 생생하게 들리기도 했다.

[3대 미제 사건]
[화성 연쇄살인]

일종의 소시오패스 끼가 있던 그녀는 진술 도중에도 증언을 번복하고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공범의 존재를 주장하는 등 동정심에 호소하고 자신의 죄질을 낮추고자 온갖 이유를 동원해 변명하려 애썼다. 검찰은 진술조차 거짓을 반복하는 그녀의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단해 사형을 구형했지만 결국 무기징역으로 판결됐다.

결국 범인 전현주는 무고한 생명을 살해한 대가로 4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교도소 수감 중이다. 이 사건 이후로 길거나 눈에 잘 띄게 아이의 이름을 짓는 사람들이 한동안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시그널>은 ‘경기 남부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에서 일어난 연쇄살인극으로 한국의 3대 영구 미제 사건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다.

범인에게 모두 10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1988년 9월에 일어났던 8차 사건은 범인이 체포됐으나 8차 사건의 범인은 다른 사건의 범죄를 모방해 벌인 모방범 이었던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나머지 9명을 살해한 범인은 수수께끼이며 미제 사건으로 남아 공소시효가 종료됐다.


이 사건은 180만 명의 경찰이 투입되고 3000여 명의 용의자가 수사를 받는 등 국내 살인 사건 수사 분야에서는 최대의 인력이 동원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이 사건을 다뤘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각색된 부분이 많다. 영화에서는 증거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모든 걸 처리하는 범인으로 나오지만 실제 사건에서는 상당한 증거를 남겼다.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나 6가닥의 머리카락 등이 발견됐을 정도.

에피소드 모티브 실제 사고들 재부상
다시 떠올려도 끔찍한 그때 그 사건

영화에서 나왔던 범인처럼 전문적이고 완벽한 살인자는 아니었다는 뜻인데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대부분이 사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발견됐다. 바람에 증거들이 알아볼 수 없게 변질된 경우가 많았고 아닌 경우에는 빗물에 씻겨내려 간 적도 있었다. 증거를 수집해도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인력도 장비도 노하우도 부족했다.

기껏 증거로 채취한 정액도 유력한 용의자와 일치하지 않는 등 수사는 말 그대로 난항을 거듭했다.

강간과 살인이 짧은 시간에 이뤄졌고 속옷을 안면 부분에 씌우거나 두 손을 뒤로 묶는 등 엽기적인 범행 수법을 보인 범인에게 국민은 분노했다.

 

이 사건은 화성 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를 안겨줬고 공포에 떨게 했다. 당연히 범인을 빨리 잡으라는 여론이 빗발쳤으며 여론에 떠밀려 경찰은 엄청난 숫자의 용의자를 잡아들였지만 범인을 골라내지는 못했다.

사건 용의자들과 수사 담당자 상당수가 이상하게 죽어가자 이른바 ‘화성 괴담’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9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3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던 중년의 차모(38)씨는 1990년 3월 화성시 태안읍 병점역 철길에서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1991년 4월에는 10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의 추적을 받던 장모(32)씨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9차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다가 현장 검증 도중 범행을 부인했던 19세 청년은 1997년 20대 중반의 나이에 암으로 요절. 7차 사건의 용의자 박모씨 역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뒤 아버지의 무덤 근처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여기에 심령술사의 제보로 붙잡힌 4, 5차 용의자 김모씨도 고문 후유증의 스트레스로 사망하고 유일하게 범인을 잡은 8차 사건에서 범인 추적에 결정적인 공을 세우고 일 계급 특진한 최모 순경은 1999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화성 수사본부 관계자 중에서도 최모 치안감, 장모 수사과장, 송모 서장 등은 모두 수사 일선에서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과도한 스트레스 등의 이유로 숨졌다. 범인이 잡히지 않자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풍수가 좋지 않다고 해서 경찰서 위치를 옮겨보기도 하는 등 별별 수를 다 써봤지만 헛수고였다.

SNS 통해 재수사 청원
경찰 나설까…반응은?

‘비 오는 날 밤에 붉은 옷을 입은 여자를 죽인다’는 괴담이 돌아 붉은 옷의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거나 비 오는 날에 외출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사실 비 오는 날에 일어난 사건은 단 2건 뿐이었지만 말이다.

이 사건은 한국에서 과학 수사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되는 사건이 됐고 서서히 제대로 된 과학 수사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고 결국 공소시효까지 끝나버렸다.
 


연쇄살인범인 유영철은 “화성살인범이 죽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연쇄살인범의 경우 살인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시그널>의 여파로 인터넷상에서 가장 떠들썩한 사건이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에서 ‘인주 여고생 사건’으로 재구성됐다.

2004년 12월 한국 밀양지역에 일어난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밀양지역 유지들의 자식들인 고교생(밀양공업고등학교, 밀양 밀성고등학교, 밀양 세종고등학교)들이 여중생 자매를 1년여 동안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다.

연루자 100여 명 중 3명에 대해서만 10개월형이라는 미약한 처벌과 피해자 여중생에 대한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 피해자 여중생 가족에 대한 가해자 가족들의 협박으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누리꾼들의 힘으로 사건을 수사한 남부경찰서가 피해자 인권보호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경찰서장이 대기 발령되고 인권위원회 등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이 진상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성폭행 사건 가해자 41명 중 처벌을 받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울산지검이 처벌 대상으로 간주한 20명 중 10명이 소년부로 송치됐고 그중 5명이 보호관찰 처분을 받아 사실상 전과가 남은 가해자는 아무도 없다. 이들이 재학 중이던 대부분의 고등학교도 가해자들을 징계 조치하지 않았고 2개 학교에서만 ‘3일간 교내 봉사활동’과 같은 가벼운 벌을 내렸을 뿐. 이후 정상적으로 고교를 졸업한 가해자들은 현재 사회인이 돼 성인으로서 사회생활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다시 논란 중심에]
[밀양 집단강간 사건]

반면 피해자는 사건 후 서울로 이사해 전학을 시도했지만 ‘성폭행 피해자’라는 이유로 다수의 학교로부터 전학을 거부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전학을 허락받아 간신히 다니게 된 어느 고교에는 한 가해자 부모가 아들의 처벌완화를 위한 탄원서를 써달라며 피해자의 교실로 무작정 찾아왔다. 학교에 성폭행 피해자란 사실이 알려질까 늘 두려워하던 피해자는 이 일로 학교를 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또 가해자 부모들이 알코올중독 상태인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돈을 미끼로 합의를 종용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친권을 근거로 서울에서 정신과 치료 중이던 피해자를 다시 울산에 데려와 가해자 측과 합의할 것을 강요했다.

이처럼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사회적 편견과 법적 무관심 속에 정신적·육체적으로 무척 힘들어하던 피해자는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울산남부경찰서는 수사 과정 중 피해자들에게 ‘밀양의 물을 다 흐려놨다’ ‘내 딸이 너희처럼 될까 겁난다’ 등의 말을 하며 피해자를 피의자와 직접 대질시켜 범인을 지목시키기도 했다. 또 피해자의 실명 등을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공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러한 경찰의 일련의 대처가 인권 침해 등의 문제로 이슈화되기도 했다.

가해 고교생들은 4개 고교에서 결성한 속칭 ‘밀양연합’이라는 일진 서클 소속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고 실제 조사를 받은 41명 외에도 75명이 더 있어서 최대 116명이라는 설이 있다.

밀양 지역 교육감들이 사태를 덮기 위해 경찰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항간에는 이들이 사회지도층 인사의 자녀들이라서 쉽게 풀려났다는 의혹이 돌았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밀양 여중생 성폭행 가해자들 신상 및 최근 사진’ 등이 나돌고 있다. 한 네티즌이 이들의 최근 근황과 SNS 주소, 학력 및 현재 직업 등을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 게시글을 올려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 정보의 정확성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해당 게시물이 확산되자 일부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SNS를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가해자의 한 친구는 사건 당시 고등학교 때 자신의 미니홈피 방명록에 가해자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는데, 현재 현직 경찰 신분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흥행을 이어온 <시그널>은 지난 12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시그널>은 시청자에게 ‘재미’를 선물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마련해줬다. 자연스럽게 위에서 언급됐던 사건들은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회자됐고 이는 곧 장기 미제로 남아 있는 각종 사건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사실 이런 국민적인 관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도 영화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크게 이슈가 되면 네티즌 수사대와 제보 등이 이어지곤 했다. 다만 아쉬운 건 얼마 지나지 않아 잊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

[꾸준한 관심 필요]
[적극적 협조 관건]

나중에 같은 주제로 또다시 언급되면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볼 수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관심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도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장기 미제 사건의 경우 특히나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이 생존해있는 경우 관련된 사건이 다시금 언급되는 건 2차 피해를 입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심스러운 접근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 전체에서 SNS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정보를 알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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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