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시뮬레이션> 서울 핵폭탄 투하 시나리오

서울시청에 한발만 떨어져도…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남북간 경제와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한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가 불안 속에 빠져들고 있다. 북한이 감행한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추가도발이 결국 개성공단 전면 폐쇄라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남북간 긴장이 증폭되고 있는 것. <일요시사>가 전문가의 자료를 토대로 ‘서울에 핵폭탄이 떨어진다면’이라는 주제로 가상 시나리오를 정리해봤다.

핵무기가 투하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엄청난 양의 열 복사선이 퍼져나가면서 열에 약한 물질들을 일시에 태워 대규모 화재를 일으킨다. 이와 함께 막대한 압력파의 발생으로 폭발 중심지의 반경에 있는 모든 콘크리트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고 이후 불어 닥친 후폭풍으로 가까운 거리의 물체들은 통째로 날아가 버린다.

결국 폭발지점과 가까운 거리의 건물들과 사람은 흔적도 남지 않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방사선과 방사성 낙진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인간과 환경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핵무기 사용의 재앙은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그야말로 불바다
건물 완전히 파괴

남북간에 전면전이 벌어지고, 1Mt(메가톤) 규모의 북한 핵폭탄이 서울에서 터졌을 경우의 시나리오를 구상해 봤다. 이 내용은 전문가들이 연구 조사한 한반도 핵전쟁 시 야기될 인적, 물적 피해 시뮬레이션이다. 1Mt 규모로 가정한 것은 1Mt이 일반적인 전략 핵폭탄의 기본 크기이며, 말 그대로 전략 핵폭탄인 만큼 도시들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온한 오후 1시 서울시청 상공서 1Mt 전략 핵폭탄 폭발


▲열복사 = 폭발 직후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약 3km의 모든 생명이 폭발과 동시에 ‘증발’한다. 청와대, 정부종합청사, 조중동, 경복궁, 서울역, 을지로, 종로, 동대문, 연세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용산구청, 북한산 국립공원 일부가 태양의 약 1000배의 열로, 1∼2초간의 빛의 방출로 인해서 불에 타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죽는지도, 핵 폭발이 일어났는지조차도 느낄 수 없다. 핵폭탄이 터졌을 때 제일 ‘운좋은’ 사람들이다. 그냥 밝은 빛이 카메라 플래시 터지듯 반짝한 후 동시에 증발. 그리고 이 지역은 폭발에 의한 화구를 형성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전자장 펄스(EMP)에 의해 서울 및 기타 인근 도시의 모든 전자장비 및 자동차, 심지어 손목 시계까지 모두 작동을 멈춘다. 또한 7∼9km 떨어져 있는 고려대, 서울시립대, 성산대교, 동작대교, 국립묘지, 고속버스 터미널, 미아삼거리, 동덕여대, 서대문 시립병원, 서부시외버스터미널 등의 가연성으로 이뤄진 모든 것이 엄청난 열로 인해 폭발의 중심지가 증발함과 거의 동시에 불타기 시작하며,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같이 타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지역 거주자들은 3도 화상을 입게 되고 노출 부위가 25%가 넘는 사람들은 몇 초 뒤 절명하지만(‘약간 운 좋은’ 사람들) 거의 이 지역의 대부분인 ‘운 나쁜’ 노출 부위 25% 미만의 사람들은 약 1분 뒤 후폭풍이 다가올 때까지 고통 속에서 기다리게 된다.

3km내 모든 생명 플래시 터지듯 증발
6개월 안에 최소 700만명 사망 예상

▲후폭풍 = 폭심지부터 반경 약 3km의 불덩이가 생기며 엄청난 양의 산소를 태운다. 그리고 모자라는 산소를 주위에서 흡수하기 시작하는데 불타고 있는 폭심지 주변의 건물들은 산소를 빨아들이는 속도에 못 견디고 대부분 폭심지 안쪽을 향해 붕괴한다.

롯데호텔, 프라자호텔, 코리아나호텔, 교보빌딩, 정부종합청사 등 고층건물이 단숨에 무너진다. 몇 초 뒤 시속 1000km 속도로 산소를 팽창시키는데 속도는 점점 느려져서 25초 뒤에는 약 시속 400km 속력의 후폭풍이 동대문, 연세대, 숙명여대, 용산구청 등에 도달하게 되고, 1분 뒤에는 시속 350km 속력의 후폭풍이 7∼9km 떨어져 있는 고려대, 서울시립대, 동작대교, 반포 등지에 도달하게 된다.


후폭풍은 진도 7의 지진의 파괴력으로 도시를 덮치는데 지상의 90% 이상의 모든 건물들은 이 충격으로 파괴되고 건물 잔해나 유리 파편은 조각조각 나서 이 부근의 사람들의 몸을 총알처럼 관통하게 된다. 더욱이 파편뿐만 아니라 이 후폭풍에 직접 노출되면 사람이나 동물의 몸도 두 동강이 난다.

또한 엄청난 열을 발산하므로 인근의 아스팔트 도로들이 부글부글 끓게 된다. 약 2∼3분 정도 경과하면 후폭풍은 과천시청, 정부종합청사, 서울랜드, 중부고속도로 입구, 강남성모병원, 김포공항, 도봉산, 광명시청, 송파구, 부천역곡, 태릉선수촌, 구리시, 미금시, 행주산성에까지 도달하며 이 지역들 역시 처음 지역보다는 덜하지만 후폭풍으로 인한 건물붕괴, 화재 등이 일어난다. 겨우겨우 목숨을 건져 건물 밖으로 도망쳐 온 생존자들에겐 화재선풍이라는 또 하나의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죽는 게 낫다?
심각한 후유증

오후 1시로 폭발 시간을 정한 이유는 이 시간대에 일반적으로 불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핵폭발 시 더 많은 피해를 내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후폭풍의 범위는 일반적으로 반경 약 30km 이내라고 생각하면 된다. 결국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후폭풍이 인천, 일산, 의정부, 수원, 분당, 용인까지도 도달해 건물을 파괴할 수도 있다.

▲선낙진 = 엄청난 후폭풍으로 인해 차량, 인간, 건물 파편 등이 공중으로 날아가는데 약 2∼3km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간다. 그 뒤 후폭풍의 영향으로 폭심지 멀리 떨어지는데 피해 예상지역은 인천, 안산, 수원, 용인, 동두천, 심지어 강화도까지 날아간다.

대부분의 선낙진은 눈처럼 떨어지는 뿌연 재인데 앞서 언급한 차량, 인간, 건물 파편 등도 많은 양이 같이 떨어진다. 선낙진들은 엄청난 방사능을 띤 물질들로 처음 열복사 내지 선낙진에 노출된 사람은 2주 내지 길게는 6개월 안에 사망하게 된다. 핵폭발에서는 살아 남았지만 ‘아주 운이 나쁜’ 사람들이다.

▲후낙진 = 작고 가벼운 먼지 크기의 재들은 더 높이 올라가 바람을 타고 더 멀리 뿌려지게 된다. 서울에서 핵폭탄이 터졌을 때 후낙진은 한반도 전역은 물론이고 바람에 따라서는 중국, 일본에까지 가게 되어 피해를 더욱 확산시킨다.

물론 북한의 피해도 엄청날 것. 종합해 보면 1차 열복사 및 2차 후폭풍에 의해 서울의 건물 붕괴 80∼90% 및 서울 인구 1000만명 중 약 200만명은 즉사, 약 200만명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사망, 그리고 약 300만명은 2주 내지 6개월 안에 사망하게 될 것이며, 교통마비, 급수 중단, 단전, 의료기관 및 의료요원의 부족 속에서 사망자는 더욱 더 늘어날 것이다.
 

서울시민 1000만명 중 6개월 안에 최소 700만명이 사망한다. 또한 인천, 경기도 주민들도, 열복사 및 후폭풍에 의한 직접피해는 그나마 서울보다는 좀 덜하겠지만 선낙진 및 후낙진 피해로 인해 1200만명 중 약 60% 이상인 700만명이 6개월 안에 사망할 것이다. 대충 계산해도 수도권 인구 2200만명 중에서 1300만명 정도가 사망하는 셈.

“생·화학 테러
가능성도 상존”

방사능 피해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며 핵전쟁 후를 표현한 TTAPS 보고서에서는 이를 두고 ‘산 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세상(the quick envy the dead)’이라고 표현했다. 말 그대로 살아 남은 사람들은 살아 남아 있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고통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현재 시점에 2004년 미국이 공개했던 북한의 핵공격 시뮬레이션 동영상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는 북한이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후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때였다. 시뮬레이션은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피해를 예상해 모두에게 경악을 안겼다.


이 시뮬레이션은 히로시마 원폭과 맞먹는 15Kt(킬로톤)의 ‘소형’ 핵탄두를 용산에 투사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폭발 즉시 반경 1.8km 모든 물질이 순식간에 녹아 증발했다. 이 순간 30만명이 즉사하고 10만명이 중상해를 입는다. 눈깜짝할 사이에 용산역, 전쟁기념관 등 주요 건물들이 증발하듯 폭발해 사라진다.

반경 4.5km 내에 위치한 경복궁, 서울역, 시청, 광화문 등은 거대한 폭발력에 의해 찢겨져 나간다. 서쪽의 마포·서교동·여의도, 동쪽의 반포·압구정·청담동 일대, 남쪽의 상도동·동작동 일대도 대부분 파괴된다. 이 같은 직접 피해를 통해 그 자리에서 40만명이 즉사하고 추가 사상도 22만명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게 이 시뮬레이션의 결론이었다.

뿐만 아니라 낙진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죽거나 사망하는 사람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됐다. 시간당 200램 이상을 쬔 사람들은 2∼6주 내 사망해 최대 90만명 이상이 희생되며 0.5램 이내의 극소량에 노출됐다고 하더라도 평생 방사능 후유증으로 고통받는다. 결과적으로 최악의 경우 서울 인구의 10%를 훌쩍 넘는 최대 125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수도권 주민들도 피해 심각
2200만명 중 1300만명 사망

북의 위협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30년 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문가들은 순차적으로조금씩 대비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한반도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화생방 피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서 생·화학 테러 발생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으며 북핵 위협도 엄존하고 있는 상태지만 국가 차원에서 대비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이 안 돼 있는 상태”라며 “유사시를 대비해 사회·경제적 특성에 적합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전략 수립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핵무장에 관한 북한의 능력과 의지가 매우 확고한 것으로 드러나고 좀처럼 단기간 내에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학계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능력을 제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는 판단 아래 ‘비확산 전략을 폐기한 뒤 주한미군에 전술핵을 재배치해 본격적인 억지전략을 추구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과거 한국도 1950년대부터 주한미군 소속으로 다양한 형태의 전술핵이 배치됐다. 1970년대에는 약 700발이나 됐다. 하지만 당시 미군의 전술핵은 북한 단독의 침략보다는 중국까지 참전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외교관계가 개선된 1980년대를 기점으로 주한미군의 전술핵 배치수량이 100∼200발로 크게 감소한 데서 알 수 있다. 1991년에는 북한에 핵개발의 구실을 없앤다는 취지 아래 나머지 전술핵도 철수하게 됐다.

학계·정계의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주장은 1980년대에 미국이 소련의 SS-20 동유럽 배치에 맞서 퍼싱-2 등을 서독에 배치하고 이후 고르바초프와의 INF 조약으로 미소의 동시 전술핵 폐기를 유도했던 전례를 따르자는 논리다.

하지만 미·소 두 초강대국의 입장에서 SS-20과 퍼싱-2는 자신들이 보유한 핵전력의 일부에 불과했으며 폐기해도 전체 핵전력 규모에 큰 변화는 없는 수준이었다. 한 전문가는 “자신들이 보유한 소수의 핵전력 모두를 협상 대상에 걸어야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단순히 전술핵을 넣고 빼느냐의 여부를 갖고 핵포기를 유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마디로 비교 대상이 잘못 연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술핵 재배치는 주변국의 동의가 필요하고, 정치 외교 경제적 국익의 향배가 걸린 중대 사안인 만큼 치밀한 전략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반대하는 쪽의 입장은 우리나라의 외교적 고립과 동북아시아의 ‘핵 도미노’ 현상을 불러온다는 것. 우리나라가 핵 무장에 나서려면 현재 가입해 있는 국제 핵확산금지조약(NPT)부터 탈퇴해야 하는데 북한이 NPT 탈퇴 이후 국제사회의 공적이 된 것처럼 우리나라가 핵 무장에 나서는 순간 우리도 북한 수준의 외교적 고립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핵 무장은 일본과 대만의 핵 무장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대책 30년 전 수준
전술핵 배치가 답?

한국의 핵 보유는 미국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미국이 반대하는 한, 실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한국의 핵 보유를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진행되는 핵 보유 찬반 논란은 어떻게 보면 무의미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감정적 대응보다 차분하게 실현 가능한 방법을 찾아가며 미국 그리고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핵 보유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는 것이 순서라고 조언한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