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 전관예우 백태

경찰청 간부 총포협회…국방부 대령 군수업체로

[일요시사 취재1팀] 신승훈 기자 = 공직계에 암암리 존재했던 ‘관피아(관료+마피아)’의 실체가 드러났다. 정부는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및 행위제한 제도’를 도입하면서 관피아 문제에 칼을 뽑아든 것처럼 보였다. 엄격한 잣대로 관피아 척결에 앞장서야 할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업무관련성 기준의 모호성과 취업심사의 불투명성으로 공직자 전관예우 양성소로 전락한 모습이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이하 정공위)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국민의 알권리 확대를 위해 2014년 7월부터 매달 취업심사 결과를 공개해오고 있다. 지난달에는 심사를 받은 54명 중 단 4건에 대해서만 취업제한이 결정됐다. 취업에 성공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업무관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평가과정이 불투명해 유관업체에 퇴직공직자 대다수가 어려움 없이 재취업에 성공한 모습이다.

고무줄 잣대
주관적 해석

경찰청 총경 출신으로 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 상임이사로 취업심사를 의뢰한 A씨는 정공위에 의해 취업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받았다. 문제는 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의 업무 내용이 경찰청 인허가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보이기에 충분하다는 것.

총포에 관한 허가를 얻기 위해서는 서류를 경찰청에 제출하고 총포에 대한 검사결과는 의무적으로 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이후 협회의 검사결과를 토대로 담당 공무원이 총포에 대한 승인을 하는 구조다.

이처럼 경찰청과 실질적으로 업무상 관련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정공위에 의해 A씨는 취업가능 평가를 받았다. 국방부 공군중장 출신으로 국방기술품질원의 정책자문위원으로 취업심사를 의뢰한 B씨의 경우도 취업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받았다.


국방기술품질원의 경우 국방기술기획, 국방품질경영, 국방품질인증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군수업체가 국방기술품질원으로 인증을 신청하게 되면 신청업체의 국방품질경영시스템 운영 및 유지실태를 심사해 요구사항에 적합할 경우 인증서를 수여한다.

인증업체는 방위사업청 경쟁 입찰계획의 낙찰자 결정시 미 인증업체와 비교해 가점을 받거나 방산물자 원가 선정 시 이윤 보상, 무기체계 연구개발사업 업체선정 평가 시 가점 및 혜택을 받게 된다.

취업심사 54명중 단 4명만 제한 결정
퇴직공직자 대부분 유관업체 재취업

이처럼 업무가 무관하다고 보기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취업가능 심사를 받은 상황이다. 이밖에 국방부 대령 출신 C씨의 경우도 취업제한기관에 포함된 사립대학교인 동명대학교 예비군연대장에 취업가능 심사를 의뢰해 취업가능 평가를 받았다.

정공위 담당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에서 “국방부 대령의 경우 일종의 국가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퇴직 후 국가 법령에 따라 취업한 것”이라면서도 업무관련성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다.

취업제한과 관련한 업무관련성 판단기준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보조금·장려금·조성금 등을 배정·지급하는 등 재정보조를 제공하는 업무 ▲인가·허가·면허·특허·승인 등에 직접 관계되는 업무 ▲조세의 조사·부과·징수에 직접 관계되는 업무 ▲법령에 근거해 직접 감독하는 업무 등 8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업무를 설명함에 ‘직접’이라는 단어를 넣어 재취업대상자에게 숨통을 터줬다는 점이다.

업무관련성이 있더라도 직접 관련이 없다면 업무관련성 판단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11명의 심사위원들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심사가 결론난다는 지적도 있다.


취업제한은 심사대상자가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하였던 부서, 기관의 업무와 취업예정업체 간에 밀접한 관련성이 확인된 경우다. 취업불승인의 경우 업무관련성이 인정되고 심사대상자가 취업을 승인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인정되지 않은 경우를 의미한다.

심판원장은 전국은행연합회 전무이사로 가려다 취업제한을 받았다. 김 전위원장은 2014년 1월부터 조세심판원장을 지내다가 지난해 11월 명예퇴직했고, 정공위의 심사를 통과하면 전국은행연합회 전무로 취임할 계획에 있었다.

하지만 정공위에 의해 재취업에 고배를 마셨다. 이밖에 울산광역시 남구 지방 3급 공무원의 경우 울산남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려다 취업불승인 결정이 났다. 환경부의 임기제 고위공무원은 한국상하수도협회 상근부회장으로 재취업에 도전했지만 취업불승인 결과를 받았고 마찬가지로 환경부의 4급 공무원도 환경보전협회 수변생태관리본부장으로 재취업 하려고 했지만 취업제한을 받았다.

반면에 업무관련성이 의심됨에도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국정원 특정3급 공무원의 경우 주식회사 대교씨엔에스의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기는 데 성공했다.

기획재정부 고위공무원의 경우도 한국동서발전의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한국방송공사의 편성본부장의 경우 KBS미디어 부사장으로 재취업에 성공했다. 공정거래위원회 4급 공무원의 경우 LG경영개발원의 비상근고문으로 취업했다. 이밖에 금융감독원 4급 공무원의 경우 실무를 담당하는 한국투자증권 차장으로 자리를 옮겨 평가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형평성 없고
일관성 없어

정공위가 매달 발표하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는 공무원이 퇴직일로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나 대학, 병원 등 비영리법인에 재취업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취업제한 기관의 기준은 ▲자본금이 10억원 이상이면서 연간 외형거래액이 100억원 이상인 사기업체 ▲안전감독, 인허가 규제, 조달업무 수행 공직유관단체 ▲고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학교를 설립·경영하는 학교법인과 학교법인이 설립·경영하는 사립학교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제3항 제1호 가목(자산규모 2조 이상)에 해당하는 시장형 공기업 등 9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적용대상은 재산등록의무자였던 퇴직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4급 이상 공무원, 경찰·소방·감사 및 조세·건축·토목 등 인허가부서 근무자로 5∼7급 공무원, 공직유관단체 임원(상근이사·감사 이상), 일부 공직유관단체 직원(금감원,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적용대상에 해당하는 공직자들이 취업제한 기관의 기준에 해당하는 기관에 취업하고자 할 때 정공위의 심사를 받게 된다.

공직자윤리법은 취업제한 및 재산공개를 명시하도록 해 1981년 12월31일 제정, 1983년 1월부터 시행됐다. 취업제한의 목적은 퇴직예정 공직자가 퇴직 후 취업을 목적으로 특정업체에 특혜를 주는 등의 부정한 유착 고리를 사전에 차단하고 사기업체 등에 취업한 후 퇴직 전에 근무했던 기관에 부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후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부각된 민관유착과 전관예우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인 이른바 ‘관피아 방지법’이 생기면서 퇴직공무원에 대한 취업제한 강화를 도모했다. 하지만 현실은 퇴직공무원들의 재취업을 심사하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관피아를 근절하기보다는 오히려 면죄부를 쥐어주는 형국이다. 

업무관련성 판단 기준 모호
평가 과정도 불투명해 불신


문제는 취업예정 업체에서 맡게 될 업무내용은 공개되어 있지만 퇴직 당시 소속에서 맡은 업무내용이 공개돼 있지 않아 실질적으로 인허가 업무를 맡은 사람이 재취업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공개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정공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법상 윤리위원회 회의는 비공개로 한다”며 “너무 자세한 개인의 신상을 공개하면 개인정보 문제가 발생해 심사결과 정도만 공개한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정보를 공개해 취업예정자의 개인정보는 보호했지만 일관성 없는 판단에 대해서는 해명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결과를 내놓아도 비판을 면키 어려운 모습이다.

이 같은 지적에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취업 제한 여부에 대한 매뉴얼이 있지만, 업무관련성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개인적인 성향도 일정 부분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심사결정에 주관적이 요소가 개입될 수 있음을 인사혁신처 측도 일정부분 시인한 모습이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2월31일 2016년도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대상기관 1만5687곳을 확정했다. 인사혁신처는 공직자가 퇴직 후 취업심사를 받아야 하는 영리기관 1만4214곳, 비영리기관 1473곳을 관보에 고시했다. 인사혁신처는 “세월호 참사 이후 민관유착 근절을 위해 취업대상 사기업을 확대했다”며 “2014년 3960곳에서 2016년 1만4214곳까지 늘렸다”고 설명했다.

취업제한기업의 확대는 분명히 심사대상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취업대상자가 취업심사를 통과하기만 하면 취업제한기업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취업심사의 핵심키는 정공위가 쥐고 있음에도 불투명한 심사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공위는 퇴직공직자의 취업심사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매달 발표한다고 하지만 취업가능 여부의 결과만 보여줄 뿐 그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누군 되고
누군 안된다

이밖에 업무관련성 판단의 모호성에 대해 정공위 관계자는 “업무내역이 외견상으로 보기엔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퇴직 당시 소속과 취업예정 업체만 공개하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 전체와 취업예정 업체와의 업무내역을 세밀히 검토한다. 계약건, 지도사항, 예산, 용역 및 간단한 민원처리가 있었는지 여부까지 조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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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