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전쟁 서막' 시험대 오른 재벌 3세들 막전막후

잘 차려진 밥상에 금수저 얹었다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올해 재벌 3세들은 면세점 사업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실제로 삼성, 한화, 신세계, 두산 등 4개 그룹의 재벌 3세(두산은 4세)들은 일제히 면세점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일각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사업 군으로 분류되는 면세사업에 ‘내 새끼’를 투입해 이른바 자녀들 공적쌓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면세점 사업권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은 최근 몇 년동안 지속되온 기조다.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시장규모가 이를 입증한다. 한국의 면세점 시장은 2010년 4조5000억원, 2011년 5조3000억원, 2012년 6조3000억원, 2013년 6조8000억원, 2014년 8조3000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빠른 성장
비중 확대

지난해는 사상 첫 10조원대를 돌파할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5년간 두배 가까이 매출이 확대된 것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늘어난 중국인 관광객이 국내 면세사업 성장을 이끌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4년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 관광객은 1420만1516명을 기록했다.

전년 1217만5550보다 16.6% 증가한 규모다. 5년 전인 2010년(879만7658명)에 비해서는 61% 확대됐다. 중국인 관광객(요우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요우커는 612만6865명으로 전년 432만6869명보다 41.6% 늘었다. 요우커가 전체 외국인 관광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43.1%에 달한다.

면세점에 대한 전망도 밝다. 중국인 관광객이 향후 몇 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빠른 경제성장에 따라 해외여행을 희망하는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지만 여권을 소지한 국민은 전체의 6%에 불과해 향후 시장은 급격히 성장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관세청은 가파르게 증가하는 쇼핑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기업 2곳(HDC신라면세점·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과 중소기업 1곳(하나투어) 등 총 3곳에 신규 면세점 특허권을 허가했다. 또,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SK네트웍스의 워커힐면세점을 사업권을 두산면세점과 신세계디에프에게 넘겨 면세시장을 재편했다.

면세점 사업권을 새로 따낸 이들 기업들은 면세사업을 캐시카우로 키우기 위해 사업경영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들은 면세사업에 오너 3세를 참여시켰다는 점이다. 면세점 사업장의 오너일가 3세들의 경영능력을 시험하는 무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간 경쟁도 치열할 전망이다. 경영능력이 한 눈에 비교되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 한화건설 과장이 공식석상에 얼굴을 비쳤다. 지난달 22일 열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스퀘어에서 열린 ‘갤러리아면세점63’ 기자간담회에서다. 김 과장이 언론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기자간담회서 김 과장은 한화의 새로운 먹거리 산업인 면세점 사업에 참여할 계획을 밝혔다. 김 과장이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들어간 셈이다. 1989년 생인 김 과장은 김 회장의 세 아들 가운데 막내다. 미국 태프트 스쿨을 졸업하고 다트머스대학교로 진학해 지리학을 전공했다.

“고속성장’ 전망 밝은 황금알 낳는 거위
오너 아들·딸 경영능력 시험무대 주목

그는 갤러리아 승마단 소속 승마선수이기도 하다. 올해 리우올림픽 승마 마장마술 부분에 출전한다. 이번 리우올림픽 출전시 국내 승마 마장마술 선수 중 유일하게 가장 수준 높은 국제승마대회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월드컵 파이널 등 3개 대회를 모두 출전한 선수가 된다.

김 과장은 지난 2014년 10월 한화건설에 입사하면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경영수업을 받은 기간이 짧아 이번 면세점 사업은 그에게 경영 능력을 입증할 절호의 기회다. 김 과장은 언론의 관심을 경계했다.


그는 이번 면세사업 참여와 관련해 “당장 저의 역할은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고 일단 배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후계구도 관련해서는 아직 저희 삼형제가 다 어리고 아버님도 젊으셔서 그런 걸 논할 단계가 아니고 배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그룹이 이번 면세점 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에 향후 김 과장의 경영 성과에 따라 후계구도에 변화가 생길 것이란 관측이다. 갤러리아면세점 63을 시작으로 국내 공항·시내 면세점 추가 출점 및 해외 진출을 성사시켜 회사내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이날 간담회에 김 과장과 함께 참석한 황용득 한화갤러리아 대표이사는 “최소한 2017년 중반까지는 내부 역량을 강화해 앞으로 시내 또는 공항, 해외 면세점을 착실히 준비해 나가겠다”며 “면세점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화그룹의 중추계열사로 일어설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도 성과”라고 말했다.
 

범삼성가 3세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사장도 면세사업을 통해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정 사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외손자로 범삼성가 3세다. 정 사장은 지난 12월초 백화점부문 총괄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백화점부문은 정 사장이 이마트 사업부문은 정용진 부회장이 맡는 모양새다. 정 사장에게 신세계그룹 사상 처음으로 진행하는 서울 면세점 사업의 성과가 중요하다.

면세사업 부문에 향후 5년간 530억원을 투자해 10조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신세계는 본점 신관의 절반 규모인 7개 층을 면세점 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면세점을 중심으로 백화점을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업계 2위 도약을 위해서 면세점 사업의 성공적인 안착은 상당히 중요하다. 정 사장은 이번 면세점 사업과 같은 큰 프로젝트를 이끌어 본 적이 없다.

패션부문을 중심으로 그룹내에서 입지를 다져온 정 사장이 성공적으로 면세사업을 안착시킬 수 있을지 우려 섞인 시각도 존재한다. 다양한 활동으로 그룹내 존재감을 높였지만 실패한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 화장품 사업 실패가 대표적이다. 정 사장은 2012년 색조화장품 ‘비디비치’를 인수해 100억원 가량의 투자를 했지만 실적 부진으로 체면을 구긴 바 있다. 다만 정 사장이 패션 분야에 대해 잔뼈가 굵어 면세사업을 잘 이끌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는 서울예술고등학교, 이화여대 응용미술학과를 거쳐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를 졸업했다. 경영수업은 1996년 조선호텔 마케팅담당 상무보로 입사하면서 받기 시작했다. 2009년 신세계백화점으로 자리를 옮겨 부사장으로 재직했다. 3대 주주로 지분 2.52%를 갖고 있으며 조선호텔과 신세계인터내셔널 업무를 맡고 있다. 정 사장은 신세계로 자리를 옮겨 경영에 힘을 보탰다.

좋은 기회
다른 입장

또 다른 범 삼성가의 3세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도 최근 새롭게 면세점 사업을 벌였다. 신라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 사장은 올해 현대산업개발과 손잡고 신규 면세사업권을 따냈다. HDC신라면세점이란 이름으로 지난 12월 말, 용인에 문을 열었다.

이 사장의 경우 다른 3세들과는 다른 상황이다. 경영능력면에서는 검증이 끝난 상황. 이 사장은 올해 6년째 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오빠인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을 대신해 ‘리틀 이건희’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그는 호텔신라의 성장세를 이끌며 사장 취임 이후 4배 가량 시총을 늘려 범삼성가 내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시장에서도 이 사장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이번 현대산업개발과의 협업 역시 그의 경영감각을 드러냈다는 평이다. 당초 이미 면세사업을 하고 있는 호텔신라가 신규면세사업권 심사에서 사업권을 획득할 것으로 확신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산업과 손을 잡고 협업을 강조하면서 면세점사업권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 사장은 HDC신라면세점 사업 외에도 해외 면세사업부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호텔신라는 2014년 10월 중국 마카오 국제공항 면세 사업권을 따내 운영을 시작했다. 또한 지난 3월에는 기내 면세 사업자 세계 1위 기업인 미국 디패스(DFASS)의 지분을 매입했다. 이에 따라 면세사업부에서 차지하는 해외 면세점 매출 비중은 확대될 전망이다.

이 사장은 1970년 생으로 연세대 아동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삼성복지재단, 삼성전자를 거쳐 2001년 호텔신라 기획부 부장직을 맡으며 호텔신라와 인연을 맺었다. 2010년에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오른 후 현재까지 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쉬운 사업이란 평가
맡은 역할은 제각각

최근 경영난으로 대규모 인원 구조조정을 단행한 두산그룹에게는 체질 변화를 위해 면세점사업이 중요한 시점이다. 재계에서는 두산그룹이 중공업 중심의 B2B 기업에서 소비재의 사업으로의 사업영역 확대를 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그룹은 2000년대 들어 소비재 기업에서 중공업 기업으로 전환했다. 그룹의 외형은 1996년 매출 4조원대에서 2008년 23조원대로 6배 가까이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주력 계열사의 부진으로 중공업 중심의 기업경영에 한계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따라서 이번 면세점 사업은 두산그룹의 신성장동력이자 소비재 사업 영역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두산그룹에게 중요한 사업으로 평가된다.
 

두산그룹은 중책에 오너일가 4세 박서원 오리콤 크리에이티브총괄 부사장을 낙점했다. 그는 두산 면세점 최고전략책임자로 임명돼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박 부사장은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박승직 창업주의 증손자다.


박 부사장은 오리콤 부사장과 ㈜두산 면세점 전략담당 전무를 겸하면서 내년 봄 동대문 두산타워에 개장할 면세점 사업에 참여한다. 박 부사장은 두타 쇼핑몰, 면세사업 등과 관련된 전략을 담당할 예정이다. 면세사업과 관련된 유통 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는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지난 12월1일 박 부사장이 면세점 최고전략책임자로 임명됐다”며 “향후 동현수 사장을 보좌, 면세 사업과 관련된 전략을 담당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 부사장은 주로 광고부분에서 경력을 쌓아왔기 때문에 이번 경영 참여로 승계구도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형제경영으로 유명한 두산그룹은 3세 경영을 지나 4세 경영 체제로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이다. 현재 그룹 3세 맏형격인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 박정원 두산 회장, 차남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등이 회사의 중역으로 안착했다.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의 장남 박진원 전 두산 산업차량BG 사장· 차남 박석원 두산엔진 상무,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장남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 등도 계열사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따라서 박 부사장은 면세사업을 통해 회사의 새로운 먹거리 사업을 발굴하는 목표 외에도 그룹 내 기반을 다지기 위해 성공적으로 면세사업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다.

무난한 사업
“공적 쌓기”

한편, 재벌 3세 경영인들이 면세사업에 몰리는 것을 두고 단순히 치적 쌓기 아니냐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다른 사업군에 비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는 면세사업부문에 오너일가를 투입해 경력을 화려하게 꾸미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얘기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