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노숙자들은 지금…

“따뜻한 봄날만 기다립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2015년의 끄트머리 영등포역은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여행을 떠나는 가족, 연인 등 올해가 가기 전 마지막 추억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훈훈한 마음이 감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틈 외로이 영등포역 바닥에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차가운 바닥에 잠들어 있는 사람, 낮부터 술에 취해있는 사람, 심지어 서로 몸싸움을 하기도 한다. 바로 노숙자들이다. 그들은 연말이 훈훈하지 않다. 자신을 괴롭히는 추운 겨울일 뿐더러 하루하루가 더욱 고통스럽다.

영등포 지역의 노숙자 숫자는 공식적으로 150여명, 비공식적으로 6000명에 이른다. 노숙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외로움과 편견·무력감을 첫 번째로 들었다. 노숙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23명이 ‘외로움’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 이라고 말했다.

하루하루가 고통

‘무기력’(22명), ‘주위 사람들의 편견’(24명)까지 합치면 심적인 어려움을 토로한 이가 69%에 달했다. ‘배고픔과 추위’라고 답한 이는 28명이었고, ‘건강 악화’를 꼽은 이는 3명에 불과했다. 가장 필요한 것으로는 41명이 ‘직업 훈련’을 꼽았다.

노숙자들의 대부분은 무료급식소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숙박은 길거리에서 자거나 더러는 PC방·만화방·고시원 등을 이용한다. 이들의 절반 이상은 5년 이상 노숙을 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영등포 지역은 잠재적 노숙자들이 무더기로 대기하는 곳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곳에는 일용직 인력시장과 기초수급자 집단이 몰려 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시설·노숙 생활을 번갈아 가면서 한다.

노숙자들의 월 평균 수입은 20만∼40만원. 월수입이 있는 노숙자들이 있지만 이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술값, 담배값이나 경마, PC게임 등으로 탕진한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각종 종교·사회봉사단체 등의 숙식 지원 때문이다. 노숙자가 많은 영등포에 숙식 지원이 집중되다보니 노숙자들의 자활의지가 떨어지는 것.


노숙자들의 범죄도 위험수위에 올랐다. 지난 13일 영등포역에서 노숙자 두명이 말다툼 끝에 몸싸움을 벌여 이 과정에서 노숙자 이모(61)씨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피를 흘리고 미동조차 없는 이씨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난 김모(45)씨는 달아나려 했지만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7분 뒤 경찰의 신고를 받은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 응급처치 후 봉합수술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해 병원으로 후송하려 했지만 술에 취한 이씨가 이를 거부했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이씨가 먼저 욕을 하며 시비를 걸어 왔다”면서 “부모욕을 하는데 누가 참을 수 있겠냐. 때리진 않았지만 밀치긴했다” 는 등 일부 혐의를 인정하는 진술을 했다.

노숙생활을 하던 남성이 생활비 마련을 위해 화물차 안의 건설공구를 상습적으로 훔치다 붙잡히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2일 밤, 노숙자 김모(49)씨는 골목길에 주차된 화물차 안의 건설공구를 훔치다 꼬리를 잡혔다. 김씨는 지난 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서울 금천구, 관악구, 영등포구 등을 돌아다니며 27회에 걸쳐 절도를 저질렀다.
 

김씨가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생활비 마련 때문이었다. 김씨는 같은 범죄를 저질러 수감됐다 2010년 초 출소했다. 이후 특별한 직업 없이 영등포역에서 노숙생활을 했으나, 노숙이 장기화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다시 절도를 시작한 것.

갈 곳 없는 길거리 생활 “추위가 야속”
생계형 범죄 급증…부랑 외국인도 늘어

김씨는 박스포장용 끈으로 화물차 문을 열고 충전드릴, 전동드릴 등 비교적 쉽게 가져갈 수 있는 공구를 빼내는 방식으로 약 1400만원 상당의 공구를 훔쳤다. 이렇게 훔친 공구는 3분의 1가격으로 중고거래상에 팔았고, 이 돈으로 여인숙 이용료와 식비 등을 충당했다. 경찰 관계자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 모여 있는 영등포역에는 노숙자끼리 다툼이나 사고 등 노숙자 관련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고 말했다.

노숙자 중에는 외국인도 섞여 있다. 지난 10일 수년 전 한국에 들어와 일정한 주거 없이 떠돌던 외국인 노숙자 토머스씨가 담도암으로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토머스씨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5년 전 영어교육 사업을 하려고 한국에 왔다. 이후 사업이 기울며 불법 체류자로 전락해 노숙자가 됐다. 반포 지하상가 등지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던 토머스씨는 올해 초 서울시 다시서기종합센터의 지원을 받아 서울역 인근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오랜 거리 생활로 온 몸에 종양이 생기고 손을 심하게 떠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


토머스씨가 숨을 거두자 서울시는 장례식 절차를 밟으려 했지만 아직 국적 확인도 정확히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대사관은 “우리 국민이 아니다”라고 밝혔으며 유품 정리 과정에서 발견된 영국 여권도 위조된 것으로 판명났다. 여성노숙자가 성폭행·임신 등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노숙생활 중 성범죄로 인해 임신과 낙태를 반복하거나 원치않는 출산을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간혹 자녀와 함께 노숙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의 안전도 아슬아슬하다. 현재 영등포역 부근 응급쪽방에서 임시 거주하고 있는 여성 노숙자 최모씨도 7살 아들과 영등포역 대합실이나 영등포공원 등에서 노숙하다 발견됐다. 최씨는 지금도 낮이면 아들과 함께 PC방이나 영등포역 주변을 맴돈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말이 많이 어눌하다. 최씨는 “딸도 있지만 지인이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실직자와 가정불화 등의 사유로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거리노숙인 들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노숙인들을 쉼터에 입소시키거나 숙식, 의료서비스 제공, 알콜 재활 등의 자활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여성노숙인과 아이가 딸린 여성가족 노숙인을 위해서는 여성 및 여성가족쉼터를 별도로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여성거리노숙인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마련해 이들이 목욕, 세탁 등 생활상의 편의시설을 상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편 자활에 성공한 노숙자들은 거리·시설 노숙자 뿐 아니라 일용직노동자와 기초수급자를 아우르는 새로운 빈곤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노숙자는 “노숙자들은 주저앉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현 상황을 극복하고픈 욕구가 있다”며“직업훈련 등 좀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방안이 모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녀와 함께 노숙

노숙자 쉼터인 햇살보금자리 관계자는 “노숙자들이 뭔가를 스스로 만들어 일을 성취했을 때 그 만족감이 자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들의 달라진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ktikt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벼룩 간을 빼먹지” 노숙자 등쳐 먹은 사기꾼 

일자리 소개와 휴대폰 깡을 미끼로 노숙자 명의의 휴대전화를 각각 개통한 후 그대로 달아난 성인 남성 두 명이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이들에게 공동으로 노숙자 두 명을 유인·감금한 혐의도 적용했다. 

지난 6월 A(41)씨는 대전 동구 정동 소재 대전역 광장에서 노숙자에게 접근해 “택배 일을 같이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휴대전화 2대가 필요하다”고 꼬드겨 시가 106만원 상당의 아이폰 한 대를 편취했고, B(35)씨는 같은 달 같은 장소에서 “내 대신 휴대전화를 개통해 주면 그 대가로 100만원을 주겠다”고 노숙자를 꾀어낸 후 노숙자가 실제 106만원 상당의 삼성 스마트폰을 개통해 오자 이를 건네받아 그대로 도주했다. 

이에 앞서 A씨와 B씨는 지난해 10월 대전역 지하도에서 노숙자 두 명에게 접근, 숙식제공을 미끼로 대전 중구 모처의 여관으로 유인한 후 “주민등록등본 등 서류를 주면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노숙자들이 이를 거부하자 태도를 바꿔 욕설을 퍼붓고 몸에 새겨진 문신을 들춰내 위협하는 등으로 노숙자들이 다음날 오전까지 밖에 나오지 못하게 감금하기도 했다. 

대전지법 형사6단독(임민성 재판장)은 사기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공동감금)로 기소된 A씨(41)와 B씨(35)에게 각 징역 6월과 징역 8월을 선고했다.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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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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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