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50)남효열·음영복 아이베넥스 대표

짝퉁기름 4000만리터에 세금폭탄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50화는 843억3400만원을 체납한 아이베넥스의 대표 남효열씨와 음영복씨다.

아이베넥스라는 회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프리플라이트라는 회사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이들은 '가짜 석유'를 판매했던 업체로 법인 체납액 기준 4위와 2위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먼저 프리플라이트는 2002년부터 교통세 등 31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국세청이 거둘 세금은 1239억500만원이다. 아이베넥스는 2004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41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한 국세는 788억3000만원이다.

수백억 체납

아이베넥스 전 대표인 최모씨는 2003년부터 교통세 등 16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국세청은 최씨를 상대로 53억6500만원을 과세했다. 아이베넥스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법인) 명단에도 포함돼 있다. 2004년 7월부터 주민세 등 17건의 지방세를 체납했다. 체납한 세금은 1억3900만원이다.

법인등기부상 아이베넥스의 대표는 남효열씨로 확인된다. 하지만 검찰은 2004년 아이베넥스의 실질적인 사주가 음영복씨라고 밝혔다. 음씨는 재판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신은 '짝퉁 기름'을 시판하는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음씨는 2002년 11월 경기 시흥 시화공단 내 공장에서 이른바 'LP파워'라는 유사석유제품을 생산했다. LP파워는 석유제품인 솔렌트, 화학제품인 톨루엔, 메틸알콜을 섞어 만든 가짜 석유상품이다. 혼합 비율은 솔렌트 57%, 톨루엔 34%, 메틸알콜 9%로 구성됐다. 당시 언론에선 알콜휘발유로 불렸는데 아이베넥스는 '기존 자동차 연료인 휘발유에 6대4 비율로 첨가한 뒤 사용하라'고 권장했다.

아이베넥스가 설립된 시기는 2002년 8월이다. 당시 ‘대체석유시장’은 프리플라이트가 선점하고 있었다. 프리플라이트가 판매한 제품은 ‘세녹스’다. 세녹스는 솔렌트 60%, 톨루엔 30%, 메틸알콜 10% 비율로 LP파워와 구성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세부 사용법 역시 휘발유와 6대4 비율로 혼합하도록 권장됐다. 프리플라이트는 후발주자인 아이베넥스가 자신들의 상품을 베꼈다고 주장했다.

이들 가짜 석유가 유통될 수 있던 근거는 환경부가 제공했다. 2001년 환경부는 세녹스에 대한 유해물질 검사 등을 실시한 결과 합법적인 연료첨가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환경부 승인과 함께 프리플라이트는 시판 준비에 착수했다. 2002년 1월 프리플라이트는 산업자원부에 세녹스 판매와 관련한 질의를 넣었다. 같은 달 산업자원부는 "세녹스가 유사 석유에 해당한다"라고 회신했다.

하지만 프리플라이트는 같은 해 6월부터 세녹스를 판매했다. 산업자원부는 2002년 7월 프리플라이트 대표 성정숙씨를 고발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프리플라이트는 시중 유통망을 확대했다.

서울시 1억3900만원 국세청 788억3000만원
연료제 LP파워 판매 과정서 적발

프리플라이트가 위기를 맞자 아이베넥스에게 기회가 왔다. 2002년 11월 LP파워 생산에 착수한 아이베넥스는 2003년 3월까지 3927만리터의 가짜 석유를 유류취급소에 공급했다. 전국 20개 대리점에서 LP파워가 판매됐다. 약 4000만리터의 기름을 현금으로 환산한 가액은 388억여원이었다. 2003년 1월 산업자원부는 아이베넥스를 검찰에 고발했다.


유사 석유 논란이 확대되자 환경부는 2003년 8월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연료유 부피기준 1% 이내로 첨가제를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개정된 규칙에 따라 세녹스와 LP파워는 가짜 석유로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이들 제품은 각각 생산단계부터 40% 비율로 휘발유와 섞어 사용하도록 취급됐다.

그런데 법원은 2003년 11월 1심에서 '이들 연료가 휘발유를 사칭해 판매된 것이 아니'라며 프리플라이트 대표 심씨와 아이베넥스 대표 음씨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음씨는 1심 판결 직후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음씨는 이후 재판 과정에서 "LP파워 유통에 개입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아이베넥스가 재판 중인 2003~2004년에도 LP파워를 생산·유통했다고 설명했다. LP파워는 카센터는 물론 일반 문구점에서까지 판매됐다.

아이베넥스는 2심 판결 직전인 2004년 7월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유사 석유제품의 제조 금지가 헌법이 규정한 직업수행의 자유, 재산권과 평등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앞서 아이베넥스는 가짜 석유 생산이 법적으로 중단된 2003년 8월에도 환경부의 시행규칙 개정과 관련해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고 다른 사업자와의 차별로 인한 평등권 침해, 재산권 침해가 있었다'라며 위헌심판을 청구했다. 프리플라이트 역시 같은 취지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했다'라며 2003년 9월 위헌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2월 위헌심판 대상이 된 석유사업법 26조 등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휘발유에 부과되는 각종 조세를 탈세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유해 가스의 배출을 억제하여 국민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할 수 있으므로 법익의 균형성을 갖췄다"라고 판시했다. 같은 해 11월 헌법재판소는 아이베넥스가 제기(2004년 7월)한 위헌소송에 대해서도 각하 또는 기각결정을 내렸다.

음씨와 성씨를 상대로 한 2심 결과도 뒤집혔다. 먼저 성씨는 2004년 8월 2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벌금 3억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판결 취지는 세녹스가 인체 유해물질을 배출해 정상적인 연료로 보기 어려우며 세금도 부과되지 않아 탈세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음씨 역시 유죄를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LP파워에 대해 "휘발유 대비 40% 비율로 혼합할 것을 예정하고 있다"라며 자동차 연료로 쓸 수 있는 정상적인 석유제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제품 내 알코올 비중이 6~7%로 발암물질 배출이 예상되며, 정품휘발유가 아님에도 소비자들 사이에서 정품으로 인식돼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있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2005년 12월 대법원은 징역 1년6개월에 벌금 5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줄줄이 구속

2000년대 초반을 뜨겁게 달군 가짜 석유 논란은 아이베넥스와 프리플라이트 사주가 연달아 구속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유사 석유를 제조·공급하는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했다. 나이트클럽 사장 변모씨는 2004년 7~8월까지 LP파워 용기에 담은 가짜 휘발유를 판매하다가 적발됐다. 가짜 석유를 흉내 낸 또 다른 가짜 석유가 나온 것이다.

현재 아이베넥스는 폐업한 까닭에 사무실이 남아 있지 않다. 아이베넥스에 부과된 수백억원의 세금은 사실상 환수가 불가능하다. '짝퉁 기름'을 만들어 이득을 챙기려던 일당은 '세금 폭탄'을 맞고 실명마저 공개되는 운명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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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