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코스 18홀의 비밀

5홀? 7홀? 12홀?…오리지널은?

골프는 왜 18홀이 한 라운드일까? 보편적인 십진법인 10홀, 20홀로 하지 않고 도대체 누가 맨 처음 18홀로 만들었으며, 거기에는 어떤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까.

골프장 역사 시작 스코틀랜드
다양한 코스에서 하나로 정착

처음엔 12홀 코스로 정착
1764년 처음 18홀 탄생

수백년 전 스코틀랜드의 동쪽 해안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골프 코스는 왕실 전용 골프장이었던 리스(Leith)처럼 5홀 코스도 있었고, 뮤어필드(Muirfield)처럼 7홀 코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프레스트윅이나 올드 코스처럼 12홀이 되는 등 일정한 기준 없이 자연 상태에 의존했었다. 그러다 보니 한 라운드의 규정도 지역마다 제각기였고 룰도 함께 치는 사람들끼리 정해 놓을 수밖에 없었다.
스코틀랜드 동쪽 해안의 세인트 앤드루스 지역이 최초로 골프장이 형성된 곳으로 전해진다. 바닷가 인근의 초원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골프장이다. 기록에 의하면 4백년 전인 1603년 3월10일 당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최초 통합 국왕인 제임스 6세(통합 제임스 1세)는 올드 코스에서 신하들과 내기 골프를 즐겼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올드 코스는 그 이전부터 존재해 온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에도 코스가 18홀이었을까? 당시의 올드 코스는 몇 홀이라는 규정 없이 그저 바닷가 인근에 초원처럼 존재했다. 단순히 티 박스와 그린 지역만 대충 만들어 놓고 자연 상태를 유지했다. 그렇게 수백년의 세월을 보낸 뒤 18세기 중엽에 와서 비로소 12홀로 자리를 잡기에 이른다.
골프 역사책에서는 올드 코스가 22홀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의미는 18세기의 올드 코스가 22홀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홀은 명백히 12홀이었지만 두 라운드를 돌면서 첫 홀과 마지막 홀을 제외하고 22홀을 친다는 뜻이었다. 예전의 12홀 코스를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당시 12홀의 문서와 부메랑처럼 생긴 코스의 지도 등이 보존되어 있어 확인은 가능하다.
수백년 전의 올드 코스 12홀을 상상 속에서 돌아보자. 우선 시계 반대 방향으로 1번에서 티샷을 하며 아웃 코스로 출발한다. 그렇게 마지막 12번까지 홀을 마친다. 13번째 인코스는 이제까지 지나왔던 아웃코스의 맨 마지막인 12번 홀을 건너뛰고 11번 홀부터 거꾸로 다시 시작한다. 인코스는 이제껏 지나왔던 2번부터 11번 홀을 다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11번 홀이 13번째 홀이 되고, 10번 홀이 14번째 홀이 되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1번 홀과 마지막 12홀은 처음 한번만 사용하게 되니 총 22홀을 플레이 하는 것이다.

누가, 왜?
필연적 이유

골퍼들이 인코스와 아웃코스에서 동시에 티오프를 하는 경우도 생겨 티 박스와 그린이 이중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당시의 방식이 지금도 일부 그대로 재현되어 올드 코스에서 브리티시 오픈이 열릴 때 이따금씩 플레이어가 서로 엇갈려 지나게 되는 것도 이중 그린과 이중 티 박스 때문이다. 현재 올드코스는 1, 9, 17, 18홀은 따로 그린을 쓰고 있지만, 나머지 14개 홀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22홀은 언제 어떻게 해서 18홀로 만들어지게 됐을까? 그대로 22홀을 한 라운드로 지정하면 되지 않았을까? 해답은 올드 코스의 멤버들이 쥐고 있다. 18세기 중엽 스코틀랜드에서 석공 조합원들의 모임이었던 프리 메이슨(Free Mason)의 최고 수장은 에딘버러 인근의 로슬린 성주였던 세인트 클레어경(St. Clair)이었다.


1858년…
1894년…

그는 1744년에 최초로 골프 규칙 13조항을 기초한 인물이기도 했다. 게다가 최초의 골프동우회인 세인트 앤드루스 젠틀맨 클럽도 조직한 인물이다. 당시 골프는 사회를 주도하는 메이슨 단원들이 주축이었고, 올드 코스의 멤버인 젠틀맨 클럽 역시 전원 메이슨 단원으로 구성됐다.
1764년 4월의 어느 날, 올드코스에서 젠틀맨 클럽 회원들끼리의 대회가 끝난 뒤 22명 멤버 전원이 클럽하우스에 모였다. 당시 내로라하는 귀족들이자 명망 있는 회원들로 구성된 메이슨 단원 22명이 모두 참석했다. 수백년 훗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날 모임은 골프의 역사에 있어서 그 어떤 사건보다도 가장 의미 있고 뜻깊은 날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올해 브리티시오픈은 5년 주기로 개최하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열렸다.
클레어 경이 회의를 주재하기 시작했다. 당시 멤버들은 올드코스의 2번과 3번 홀이 각각 파3인데다 너무 짧은 반면, 4번과 5번 홀 역시 짧은 파4 미들 홀이어서 전체적으로 코스의 조화나 경기 리듬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 오던 차였다.
여러 시간의 회의 끝에 참석자 22명은 만장일치로 코스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파3였던 2, 3번 홀이 하나로 합쳐져 2번 홀이 됐다. 파4였던 4, 5번 홀 역시 하나로 합쳐져 롱 파5인 3번 홀이 된 것이다. 그렇게 되니 올드 코스는 기존의 12홀에서 두 홀이 줄어든 10홀이 됐다. 역사적인 18홀이 최초로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이날의 모임은 골프사에 있어 ‘왜 하필 골프 코스는 18홀이 됐는가’하는 단순한 물음에 ‘번거로운 코스를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라는 너무나도 간단명료한 답을 주는 회동이 됐다. 이날의 회동으로 탄생한 새로운 18홀 규정은 또 다른 100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의무 규정은 아니었다. 골프장이 작아서 홀을 더 늘릴 수 없었던 경우도 있었고, 올드 코스의 뜻에 반감을 가진 골프장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홀 숫자를 고집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스코틀랜드의 여러 골프장이 올드 코스를 롤 모델로 삼았고, 골퍼들도 18홀을 한 라운드로 여기면서 차츰 18홀에 대한 인식이 굳어져 갔다.
1858년 R&A 즉, 영국왕실골프협회는 새로운 골프 조항 첫 구절에서 ‘링크스 골프 코스에서의 한 라운드는 18홀을 의미하며 별다른 예외 조항이 없을 경우 이를 따른다’며 공식적으로 한라운드 18홀 원칙을 정했다. 영국의 여러 골프장이 이를 준수하기 시작했고, 1894년 미국 골프협회(USGA)도 이에 동조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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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