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인베스트 7000억 사기극 전말

뇌물고리 수면위로…‘게이트’ 열리나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7000억원 규모의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밸류인베스트코리아가 불법유사수신으로 거액을 끌어 모은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치인 연루 혐의가 포착됐다. 사건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보험 영업사원 출신인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이하 VIK) 대표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인가를 받지 않고 자금을 수신한 혐의로 지난 3일 구속됐다.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거액 투자손실
폭탄 돌려막기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VIK를 정통 VC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다단계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투자금을 모아서 투자를 하는 (VIK의) 방식이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VIK는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모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상적인 크라우드펀딩으로 보기 힘들다. VIK가 사용한 투자자 유치 방식이 일반적인 크라우드펀딩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VC업계의 한 관계자는 “크라우드펀딩은 웹사이트 등을 통해 투자대상을 공개하고 투자자가 투자하는 방식인데 반해 VIK는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한 뒤 직접 투자 대상을 찾는 방식을 사용했다”며 “일반적인 크라우드펀딩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금융당국으로부터 인가 없이 자금을 수신했다는 점이다. 검찰에 따르면 VIK는 금융 당국으로부터 인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을 유치했다. 정부 인가가 떨어지지 않은 불법유사수신을 벌인 셈이다. 


신종 크라우드펀딩…알고보니 불법유사수신
보험영업사원 출신 대표가 주도 ‘호화생활’
 

유사수신행위법 상 인·허가를 받지 않거나 등록·신고 등을 하지 않고 장래에 출자금의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금액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고 출자금을 받는 것은 유사수신행위다. 

금융당국은 선량한 거래자를 보호하고 건전한 금융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유사수신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겼을 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검찰에 따르면 VIK는 지난 2011년 9월부터 일반인들에게서 투자자금을 모았다. 피해 투자자들은 3만여명, 투자금은 7000억원 규모다. VIK가 갑자기 큰 것은 2013년 무렵 투자했던 투자처에서 이른바 ‘대박’이 났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VIK 영업사원들을 통해 빠른 속도로 확대됐다. 

VIK 영업사원들은 투자자들에게 원금보장과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했다. VIK는 유사수신 혐의를 피하려고 공식적으로 ‘확정수익’, ‘원금보장’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영업사원을 교육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가가 나지 않은 투자업체의 원금과 고수익 보장은 금융당국이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1인당 투자액
100만∼500만원
 

전문성이 떨어지는 영업사원들도 문제였다. 영업사원들은 보험업계에서 온 경우가 많았다. VIK가 보험사보다 수당을 높게 책정한 것이 주효했다. 이렇게 모인 영업사원들은 전국 5개 영업본부에서 3000여명에달했다. 투자회사로서의 전문성 역시 높지 않았다. 


사내 투자자문 기구를 운영했지만 투자자 전문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투자는 이 대표와 일부 임원들의 독단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임원들이 이 같은 투자방식을 문제 삼기도 했지만 이 대표가 이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일한 투자방식은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투자자 한 사람의 피해규모는 100만∼500만원까지 다양했다. 일부 투자자의 피해규모는 1000만원을 상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철 대표는 호화생활을 영위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는 1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아 외제차를 구입하고 호텔에서 생활했다. 

VIK는 투자에 대한 유지보수 비용이 높아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였다. 투자금의 20%를 사업비로 활용된 것이다. 통상 여의도 증권가에서 잘나가는 애널리스트도 매년 20% 내외의 수익률을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VIK의 투자 실적은 초라했다. VIK는 비상장사 주식이나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자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에 따르면 VIK는 손실이 발생해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 분배를 하기 어렵게 되자 신규 회원의 자금을 빼내 ‘돌려막기’를 했다. 돌려막기 규모는 2000억원에 달했다.

정치권에 불똥
투자업계 긴장

현재 VIK는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면서 투자금 유치를 중단했다. 그러나 VIK는 신문광고를 통해 “현행법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고객들을 보호할 수 있는 충분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며 고객들을 안심시켰다. 향후에도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는 법률 위반의 소지가 있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 따르면 유사수신 업체는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제4조(유사수신행위의 표시·광고의 금지)에 따라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영업에 관한 표시 또는 광고를 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박찬호)는 자본시장법과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및 사기혐의로 이철 대표와 범모 경영지원부문 부사장을 구속 기소하고, 박모 영업부문 부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VIK가 유사수신행위로 모은 자금 일부가 정치권으로 흘러간 정황이 포착됐다. 사건이 점점 확대되는 양상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에게 수억원의 정치 자금을 제공했다는 증언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김 전 처장이 정치권으로 진출을 타진하던 시기 이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처장이 2011년 9월부터 약 4년간 이 대표로부터 수수한 금액은 6억2900만원 규모다.

파장 정·관계로 확산
흘러간 정치자금 포착
 

검찰은 지난 1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김 전 처장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었지만 김 전 처장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석을 거부해 다음날에야 소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 전 처장은 현재의 논란과 관련 자신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 전 처장은 검찰 조사실에 들어가기 전 기자에게 “대한민국 굴지의 싱크탱크를 만들고 싶었다”며 간접적으로 돈을 받은 사실을 암시했으나 혐의 내용 전반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이었다. 
 


불법자금과 관련해서는 “몰랐다. 제가 알 바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 대표로부터 받은 자금 가운데 일부를 선거자금으로 사용했냐는 질문에는 “단정적인 질문”이라고 답변을 회피했다. 김 전 처장과 이 대표는 한 단체에서 만나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지지만 현재 김 전 처장은 부인하고 있다. 다만 이 대표와의 친분이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김 전 처장은 “내 강의를 들으면서, 나를 굉장히 좋아하고 내 강의를 경청하려는 후배”라고 말했다. 조사실에서도 김 전 처장은 관련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혐의를 부정했던 것과는 달리 이 대표에서 김 전 처장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과정은 치밀했다. 

<MBN>의 보도에 따르면 이 대표는 부인의 통장을 통해 부사장에게 돈을 보냈다. 돈을 받은 부사장은 다시 부하 직원들에게 돈을 보냈다. 최종적으로 돈을 입금 받은 직원들은 돈을 인출해 김 전 처장에게 전달했다. 이 과정은 총 6단계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김 전 처장이 혐의 내용에 대해 부인하자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같은 날 오후 11시30분께 긴급체포했다. 다음날에는 김 전 처장을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되면서 김 전 처장의 정치 생활에 결정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김 전 처장은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사회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모 일간지에서 언론인 생활을 했다. 2005년 참여정부시절에는 국정홍보처장직을 거친 후 정치권 진출을 모색했으나 번번히 고배를 마셨다. 김 전 처장은 2012년 총선 경기 성남 분당갑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총선 앞두고…
배지 떨어지나


지난해에는 6·4 지방선거 경기지사 새정치민주연합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김상곤 후보 지지의사를 밝히며 사퇴한 바 있다. VIK의 불법유사수신 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드러나면서 정치권은 해당사안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번 VIK 불법유사수신 논란으로 크라우드펀딩 업계가 된 서리를 맞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VIK가 자금을 모은 방식이 크라우드펀딩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강조해 온 크라우드펀딩이 유사수신 업체 하나 때문에 안 좋은 이미지가 형성됐다”라며 “신생 회사의 자금 유치에 희망이 되는 크라우드펀딩이 이번 사건으로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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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