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 정읍시 '온천 스캔들' 내막

주민들 다 좋다는데 김생기 시장만 반대

[일요시사 사회팀] 박호민 기자 = 시장의 역할이 막강하다. 시장이 바뀌면 전임 시장이 허가를 내줬던 사업이 까닭 없이 엎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해당지역에 대규모 투자를 했던 업체와 시민이 애꿎은 피해를 보기도 한다. 전북 정읍시도 전임 시장이 허가했던 사업이 중단된 사례가 있다. 지역경제 발전을 기대했던 주민들은 시장이 바뀌면서 의도적으로 사업을 ‘스톱’시킨 것 아니냐며 불만이다.

전북 정읍시 부전동 1065번지 내장산 입구에 다다르니 흉물스럽게 헐벗은 산이 있었다. 이 곳은 개발되던 사업이 중단되면서 오랫동안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있어 왔다. 내장산 입구는 포클레인과 자동차로 진입로가 막혀 있어 스산한 분위기를 더했다.

지역경제 외면
주민들은 실망

차를 세워두고 산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금 걷다 보니 우리 안에 있던 개들이 짖어댄다. 마침 산을 관리감독하는 관리소장이 나와 기자를 맞았다. 관리소장의 도움을 받아 산 위로 올라가니 허허벌판에 잡초만 무성했다. 유스호스텔과 온천 개발이 중단되면서 산지 복구작업을 진행 중이란다. 허허벌판 옆으로는 개발 뒤 사용하려고 심어 놓은 소나무만 쓸쓸히 자리잡고 있었다. 

관리소장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개발을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현재는 허가가 취소돼 이렇게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산이 방치돼 있다”며 “경찰들도 우범지역으로 인식해 순찰을 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진행된 사업이 중간에 중단된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인근 마을 주민들도 사업이 무산된 데에 따른 아쉬움이 크다. 지역주민 노모씨는 “유스호스텔과 온천 개발이 지역주민에게 많은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사업이 중단되면서 실망감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씨는 “정읍시는 관광도시라는 이미지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약하다고 생각한다”며 “마땅한 즐길거리가 없는 가운데 대형 사업이 진행돼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사업이 무산돼 아쉽다”고 말했다. 


개발지 근처에 사는 주민 최모씨는 “주변에 유스호스텔이나 온천이 생기면 고용효과가 증대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허가가 취소되는 바람에 상권이 죽었다”고 말했다. 

내장산 유스호스텔 사업
시장 바뀌고 갑자기 취소
 

인터뷰에 응한 지역주민 상당수는 이번 사업이 물거품 된 배경을 두고 전임 시장에서 현 시장으로 바뀐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사업을 진행했던 잔디로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잔디로 측은 “강광 전 시장의 투자유치 노력으로 유스호스텔과 온천, 골프텔 사업을 진행했는데 시장이 바뀌면서 잇달아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됐다”며 “행정 절차상의 이유로 사업이 무산됐으므로, 사실상 행정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잔디로와 정읍시의 인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잔디로는 강광 시장 재임시절인 2007년 4월 정읍시와 유스호스텔 민자유치사업기본협약(MOU)을 맺었다. 그러나 2010년 김생기 시장 체제에 들어와 관련 사업은 된서리를 맞았다. 정읍시가 2013년 9월 공사 지연을 이유로 투자협정을 파기한 것이다. 잔디로 측은 정읍시가 의도적으로 공사를 방해해 공사가 지연됐다는 주장이다. 

잔디로는 “유스호스텔 착공을 위해 토목공사(전체 52억 가량)를 진행하는 등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했지만, 막상 건물을 착공하려 하니 MOU체결 당시 쓸 수 있다던 정읍시 지방보조금 100억을 쓸 수 없게 만들어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유스호스텔 사업의 수익성이 안 맞아 융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발견된 온천 개발을 허가해 줄 것을 정읍시에 요청했지만 협상에 난항을 겪으면서 공사 진행 속도가 늦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잔디로는 사업 취소 이후에도 정읍시의 행정폭력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정읍시가 사업 취소 후 명령한 적지복구를 기한내 마치지 않았다며 적지복구비용 11억3000만원을 잔디로로부터 강제로 유치시키면서 관련 행정절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관련 행정절차법 제21조 1항에 따르면 '행정청은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미리 관련 필요한 사항 등을 당사자 등에게 통지해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또 같은 법 제22조 1항에 의하면 의견제출 기한 내에 당사자등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는 청문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온천 터지자
본전 생각?


그러나 정읍시는 잔디로의 적지복구 기한(2014년 4월30일∼2015년 5월31일)이 끝난 후 이틀만인 지난 6월3일 사전 공지 없이 11억3000만원의 예치금을 유치시켰다. 사실상 사전 안내없이 예치금을 유치시킨 셈이다. 정읍시 측은 이미 예치금 유치를 위한 공문을 여러차례 보냈다고 해명했지만 정작 공사기한이 끝난 이후에는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에 앞서 실질적으로 공지를 해야하는 의무를 져버린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울러 정읍시가 유치한 예치금 규모도 행정적 괴롭힘을 위한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정읍시가 보증보험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보험금액은 보험사고 발생 당시 객관적으로 산정되는 복구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읍시는 보증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액 전액인 11억3000만원을 지급받아 예치했다. 
 

잔디로 측은 적지복구공사가 상당부분 진행된 상태였음에도 이를 감안하지 아니하고 전액을 청구해 유치시키는 것은 행정목적 달성을 위함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보복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5월 22일 정읍시에 제출된 제7차 감리보고서에 따르면 적지복구공사는 ▲토공 85% ▲부대공 100% ▲식재 20%가 진행됐다. 정읍시 측은 잔디로 유스호스텔 사업과 관련해 “이미 행정절차가 끝난 사안”이라며 “행정절차를 진행하는 데 있어 관련법에 어긋난 점이 없다”고 해명했다. 

현재 중소기업인 잔디로 측은 적지복구 예치금으로 11억3000만원의 현금이 묶여 사실상 다른 사업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온천공 발견 신고가 취소된 점도 잔디로 측이 보복행정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2011년 정읍시는 잔디로가 발견한 온천공 신고를 적합판정을 내렸지만 2013년 9월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를 두고 잔디로 측은 “갈팡질팡 행정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정읍시가 잔디로의 온천공 신고 적합판정을 취소하고 원상복구 명령을 내린 것은 온천공 개발계획 승인신청이 지연됐다는 이유였다. 

흉물스런 개발부지…지역민들 ‘부글’
기업 압박해 기부채납이 최종 목적?

하지만 온천법에 따르면 시장·군수는 온천발견신고를 수리했을 때 수리한 날로부터 일정기간 이내에 온천공보호구역 지정 등을 해야하는데 정읍시는 온천공보호구역 지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읍시는 온천발견신고를 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온천공보호구역 지정을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온천공보호구역의 지정승인신청 등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리를 취소했다. 잔디로 측은 이같은 행정절차상의 문제가 있어 온천발견신고 수리 취소 처분 및 대집행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잔디로 측은 정읍시의 일련의 행정폭력이 유스호스텔 및 골프장, 온천 등의 부지를 받기 위한 조치로 보고 있다. 김생기 시장 당선 후 시장이 이 토지를 헐값에 넘기라는 요구가 있었는데 이를 거부하면서부터 행정폭력이 시작됐다는 주장이다. 정읍시가 공문을 통해 해당토지 매각과 기부채납을 종용했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다. 정읍시는 공문을 보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잔디로 측에 토지매각과 기부채납의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낸 것은 잔디로 측이 땅 사용과 관련해 향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문의해와 일종의 제안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행정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자치단체장의 인허가권은 지역사회의 경제 사회개발과 보편타당성의 원칙에서 행사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행정은 행정법에서 정한 절차를 준수하지 않으면 무효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법적 다툼 시작
시는 일체 함구

정읍시 측은 관련 사항에 대해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읍시와 김 시장에게 관련 사안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요청했으나, 정읍시 측은 잔디로의 개발 건과 관련 법정 다툼 중이기 때문에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읍시 개발사업 형평성 논란
‘어딘 되고 어딘 안되고’  


정읍시가 잔디로의 온천개발 사업을 막은 것은 산지관리법 규제인 보전산지 보호가 이유였다. 하지만 최근 정읍시는 내장산 내 보전산지인 관광호텔 신축부지를 준보전산지로 완화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전라북도는 지난 7월10일 남원 스위트호텔 연수원에서 각 시군 관계자 및 업체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끝장토론회를 열었다. 정읍시는 이 자리에서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유발 효과를 이유로 보전산지로 지정된 내장산 관광호텔 신축부지 4425㎡를 준보전산지로 해제해줄 것을 주장했다.

현행 계획관리지역 안에서는 4층까지만 건축이 가능하도록 돼있다. 또 10층 규모의 관광호텔 신축을 위해서 지구단위 계획수립(관광휴양형)을 위한 부지 3만㎡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계획부지 중 보전산지가 호텔소유 부지임에도 산지관리법 규제로 사업 추진에 애로가 크다는 주장이다.

이에 산림청은 관광호텔 신축(10층규모)을 위해 지구단위계획 수립에 필요한 토지를 보전산지에서 준보전산지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후 정읍시는 도시관리계획을 변경(계획관리지역 지정)하고 관광휴양형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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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