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총선 앞두고…박지만-함승희 행보가 주목되는 내막

"비선이 움직인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이 여당 소속 정치권 인사들과 사석에서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력에 관심이 없다"던 박 회장이 모임에 참석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가올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에 줄을 대려는 예비 후보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된 가운데 의외의 인물이 '정권 비선'으로 의심된다. 소위 '진박'(진짜 친박)으로 분류되는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이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사건에서 박지만 EG회장은 '피해자'에 가까웠다. 그는 검찰이 '미행설'에 대해 '허위'라고 결론짓자 진술서를 통해 의문을 표했다. 지난 7월 열린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재판에서도 "문건에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검찰이) 한 번에 거짓으로 만든 문건이라고 했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청와대가 언급한 가이드라인에 충실했다. '국정 개입'보다는 '문건 유출'에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 검찰 발표의 핵심은 "문건 내용이 풍문에 기초한 지라시"라는 것이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문건 내용의 전부가 허위는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및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기소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지난 10월15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끝나지 않은
비선실세 의혹

국정 개입 파문 당시 청와대는 '비선실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2014년 12월7일 여당 지도부 오찬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정윤회는 이미 오래 전에 내 옆을 떠났고, 동생 부부(박지만·서향희)는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은 "청와대 실세는 진돗개"라는 농담으로 비선 논란을 일축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만은 없었다. 역대 정부 가운데 비선이 부재한 정권은 없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안팎에서 제기된 '문고리 3인방' 경질 요구를 묵살했다. 정권 초기 거듭된 '인사 참사'도 비선의 존재를 의심케 했다.


지난 9월21일 <매일경제>와 <레이더P>가 국회보좌관·교수 등 정치 분야 전문가그룹 11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정치권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응답자별 3명 복수응답)는 질문에 응답자의 13.55%(50명)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선택했다. 이 비서관은 2위와 4%가량 차이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문고리 3인방+정윤회 정권실세 의혹 여전
박지만+여당 정치권 인사 '회동설' 촉각

이 비서관과 함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9.76%·36명)은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9.49%), 4위는 최경환 경제부총리(8.4%)가 각각 이름을 올렸다. 5위는 민간인인 정윤회씨(7.59%)가 꼽혔다. 정씨의 뒤를 이은 6위는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안봉근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7.32%)이었다. 3인방과 정씨를 '실세'로 응답한 비율의 합은 38.22%에 이르렀다.

하지만 관련 조사에서 박 회장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10위권 밖에서도 박 회장은 실세로 꼽히지 않았다. 실제 박 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3성 장군들은 나란히 진급 심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육사 37기인 신원식 당시 합참차장과 이재수 제3군부사령관이 대표적이다.

박 회장 역시 '정치 개입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7월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재판에서 그는 "난 원래 정치권력에 관심이 없다"라며 "심하게 말하면 냉소적이다. 나를 이용해 뭘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증언했다. 또 '평소 청와대와 관련한 사안을 조 전 비서관에게 알아봐 달라고 했나'라는 검사의 질문에 대해선 "난 청와대에 아무 것도 궁금한 게 없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최근 박 회장이 여당 소속 정치권 인사들과 서울 모처에서 회동을 가진 사실이 알려졌다.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평소 친분이 두텁지 않은 편이며, 박 회장과도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회동설'에 연루된 이들의 공통점은 새누리당 당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전직 공무원 출신으로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새누리당 공천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 무관심
박지만은 왜?


지난 18일 사정기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박 회장이 여당 정치권 인사로 분류되는 A씨와 B씨 등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정확히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서로 말이 다르지만 선거에 대해 의논하지 않았겠느냐"라고 귀띔했다. 관계자가 언급한 A씨와 B씨 등은 수도권과 영남이 아닌 지역에서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박 회장이 평소 알고 지낸 지인들과 어울리는 것은 '사생활'의 영역이다. 하지만 총선 출마를 검토 중이었거나 선언한 이들과 만난 것은 사생활로 보기 어렵다. 회동의 맥락과 관계없이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박 회장은 김수남 검찰총장 후보자와 사석에서 만났다는 의혹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제기됐다. 지난 19일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평소 박지만 회장과 잘 알죠?"라고 물었고, 김 후보자는 "개인적으로 일대일로 만난 적은 없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박 의원은 "어떻게 됐든 박 회장과 만난 적 있죠?"라고 물었고, 김 후보자는 "그 부분을 말씀드리기는…"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김 후보자는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수사 당시 박 회장을 곤경에 빠뜨린 장본인이다. 박 회장과 최근 만났다는 정치권 인사 또한 김 후보자와의 사이가 매끄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중 누가 먼저 모임을 제안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 회장 측은 지난 20일 오후 총선 관련 해명을 들으려 하자  "대답할 사람이 없다"라고 했다.

박 회장은 대통령의 동생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박 회장이 직접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당장 공천권 행사를 둘러싸고 당·청간 갈등이 깊어진 상황에서 마땅한 명분을 내세우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박 회장의 진의와 무관하게 이른바 '문고리 권력'은 '박지만사단'의 당·청 입성을 강하게 견제해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관련 대목에서 박 회장은 물론이고 청와대와도 '끈'이 닿는 인물의 '총선 역할론'이 제기된다. 정치인이지만 공공기관장으로서 권력투쟁과는 무관해 보이는 인물. 바로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이다. 함 사장은 최근 박 회장과 함께 여당 소속 정치권 인사들과 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함 사장은 검사 출신으로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당적은 민주당이었지만 2007년 탈당한 뒤 예상을 깨고 '박근혜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 2008년 친박연대 최고위원과 공천심사위원장을 지낸 그는 이른바 '진박'(진짜 친박)으로 분류된다.

권력 맴도는
주변 사람들

함 사장은 박근혜정권이 출범한 후에도 '야인'으로 있다가 2014년 11월 강원랜드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함 사장은 박 대통령이 선호하는 '사심 없는 사람'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함 사장은 지난 2012년 7월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2007년 대선 당시) 김기춘이 '차나 한잔 합시다'해서 갔는데 박 후보(현 대통령)가 나와 있었다"라며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함 사장은 지난 2008년 5월부터 포럼 '오늘과 미래'(포럼오래)를 이끌고 있다. 박 대통령은 17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 낙마한 뒤 포럼오래에 합류했다. 함 사장의 표현을 빌면 포럼오래 회원들은 박 대통령과 함께 공부했다.
 

포럼오래는 18대 대선 과정에서 최외출 영남대 교수가 주축인 국가미래연구원과 더불어 박 대통령의 숨은 외곽조직으로 지목됐다. 함 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 지지모임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하지만 포럼오래가 박 대통령의 당선을 염원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함 사장이 2012년 4월 포럼오래 회원들에게 남긴 글(총선 후기)과 홈페이지에 게재된 공지글(SBS <힐링캠프> 출연)만 봐도 박 대통령을 지지할 의사가 뚜렷했음이 드러난다.


특히 포럼오래에는 박근혜정부 들어 정부 내각 및 국책·금융·연구·공공기관 등에 중용된 회원이 다수 포진해 있다. 포럼오래 출신들의 약진에서 함 사장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반대로 이는 박근혜정부가 얼마나 편중된 인사를 하고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일부 공개된 회원 및 강연에 나선 연사의 면면은 화려하다.

먼저 백승주 국방부 차관(2013.3), 김행 청와대 대변인(2013.3), 유영제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2013.4)을 비롯해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2013.10), 신각수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 소장(2013.11), 이중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감사(2014.2), 김주남 국가브랜드진흥원장(2014.3), 오건택 한국기술벤처재단 사무총장(2014.3),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2014.6), 선경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2014.12), 황인경 한국원자력연구원 감사(2014.12),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2015.02), 김정식 경찰위원회 상임위원(2015.8) 등이 모두 포럼오래에서 활동했다.

또 김철호 본죽 대표, 문창기 이디야커피 회장, 신달순 센트럴시티 사장, 이도식 GS동해전력 대표이사 등 재계 인사를 포함해 최민호 전 국무총리비서실장, 안광찬 전 국가위기관리실장, 조청원 전 국립대구과학관 원장,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등 관가 인사, 정현숙 국민생활체육회 부회장 등 체육계 인사까지 포럼오래에 소속돼 있다. 위 인사들은 포럼오래 측이 직접 출판물 및 부고 공지 등을 통해 한 차례 이상 회원으로 언급했다.

함승희 이끄는 외곽조직은 '등용문'
'중도개혁' 표방 포럼오래 출신 약진?

뿐만 아니라 최근 '광화문 시위' 발언으로 논란이 된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 같은 당 김도읍 의원이 포럼오래와 인연을 맺고 있다. 이외에도 새누리당 강석훈·김회선·박덕흠 의원이 각각 포럼오래 출신으로 확인된다.

당초 포럼오래의 간판은 김종인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었다. 현재는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포럼오래정책연구원장으로 관련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김기춘의 절친'으로 알려진 김성호 전 국가정보원장은 외곽에서 김 전 실장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가지 눈여겨 볼 부분은 포럼오래 4분과 위원장인 우주하 전 코스콤 사장이 최근 함 사장이 있는 강원랜드 사회공헌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사실이다. 우 전 사장은 지난 2013년 11월 자신의 친구 자녀를 특혜 채용한 의혹에 휩싸이며 자진 사임했다. 2014년 가을 국감에서는 관련 의혹이 사실이라는 취지의 보고서가 공개됐다. 흥미롭게도 우 전 사장은 지난 9월 강원랜드 임직원들을 상대로 '윤리특강'을 진행했다.

포럼오래는 창립 당시 경제민주화에 관한 연구 등 의미 있는 성과물을 내놨다. 그러나 이들은 박근혜정부 출범 후인 2013년 3월 중국 현지에서 박 대통령 홍보와 함께 '부패와의 전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새마을 운동과 같은 캠페인이 필요하다"라는 내용의 강연을 진행했다. 전자는 실제 국정운영에 오차 없이 반영됐고, 후자 역시 중요 주장을 인용한 논문집이 지난 20일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명의로 발간됐다.

결과적으로 함 사장은 자신의 인맥이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음은 물론이고, 일부 정책적 제안마저 관철시키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박 회장과 만났다면 우연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포럼오래 회원 상당수는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소위 '문고리 권력'과 '최경환사단'의 인사 독점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박지만&함승희 회동설'은 권력 지각변동의 전조로 풀이된다. 중도개혁을 표방한 '비선'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한편 함 사장은 지난 20일 오후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박지만은 옛날부터 알고 지낸 사이지만 요즘에는 통 본 적이 없고, 총선과 관련해서 얘기를 나눈 적도 없다. 가만있는 사람(박지만)을 정치권에 끌어 들이면 안 된다. 허위사실이다"라며 "나는 총선에 나갈 생각이 없지만 회원들이 선거와 관련해서 물으면 '나가 보라'고 한다. 대신 우리 포럼에서는 제명될 수밖에 없다. 포럼오래는 정치적인 조직이 아니며 학술모임이고 봉사단체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웅크린 싱크탱크
문고리와 일전?

또 기사에 언급된 일부 인사에 대해서도 "그 사람(유영제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은 자기가 알아서 원장이 된 거고, 백승주는 두 번 나오다가 말았다. 김행은 처음부터 우리 멤버가 아니었다. 강연만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김회선, 김도읍은 검사 후배일 뿐 정식 회원이 아니다. 회원이 아닌 사람들까지 회원이라고 하지마라. 허위사실이다. 정치적인 시각으로 비춰지면 안 되기 때문에 회원 이름도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함 사장은 "부패와의 전쟁 같은 경우 예전 VIP(대통령)가 우리 모임에 나왔을 때 깨달음을 얻었을 수도 있지 않느냐"라며 "VIP도 그 부분(부패척결)은 잘하고 있지만 사실 중국이 우리 정책을 더 잘 반영한다. 난 강원도 시골에 있는 사람이다. 최근 VIP와 통화한 적 없다. 총선이나 (청와대) 인사와는 전혀 무관하다"라고 해명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