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모르게…국민연금 비공개 투자내역

수십조 들어간 베일 싸인 투자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자본시장의 대통령. 500조원 규모의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를 일컫는 말이다. 세계 3대 기금으로 성장한 국민연금은 마이크로소프트·애플 등 초국적 기업은 물론이고, 일본 전범기업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기금 가입자이자 수급자인 국민은 내 연금이 어느 곳에 투자됐는지 알기 어렵다. 박근혜정부 들어 기금운용본부는 일부 투자 포트폴리오를 공개하고 있지만 여전히 베일에 싸인 투자처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1000조. 국민연금관리공단(이하 연금공단)이 2022년께 운영할 것으로 예상되는 연기금 규모다. 세계 3대 기금(일본 연금펀드·노르웨이 국부펀드·한국 국민연금)으로 성장한 국민연금은 국내는 물론 세계 금융시장이 주목하는 '큰손'이다.

연금공단이 2014년 12월 작성한 '기금운용 연차보고서'를 보면 1988년 5300억원으로 시작한 국민연금은 2003년 100조원, 2007년 200조원에 이어 2010년 300조원이 넘는 연기금으로 부상했다. 2014년 말 기금적립금 470조원을 돌파한 국민연금은 올해 들어 이미 500조원을 달성했으며, 2020년에 847조원, 2043년에는 2561조원까지 재원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3대 기금
1000조 가시화

국민이 납부한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은 단순 저축이 아닌 분산투자 형태로 자산이 보전된다. '기금운용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연금공단은 2014년 말 기준 국민연금 재원 470조원 가운데 45%에 해당하는 212조4000억원을 기금운용 수익금으로 조성했다. 1998년부터 2014년까지 금융 이자, 주주 배당, 투자 회수 등으로 200조원이 넘는 재원을 조달했다는 것이다. 연금공단 측이 밝힌 연평균수익률은 6.21%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사모펀드 등 일반 투자자와 달리 단기적인 이윤만 쫓을 수 없다. 일정 부분 기금운용에 대한 사회적인 책무가 요구된다. 연금재정의 장기적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이지 이윤 극대화가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연금공단은 연금 가입자와 수급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충실의무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진다. 이를 '신의성실의무'라고 부르는 데 기금운용 관련자들은 오직 가입자와 수급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전문적 판단 하에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하도록 돼 있다. 바꿔 말하면 오직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연금공단은 최근 국민의 이익에 반한 의사결정과 일본 전범기업 투자로 논란이 됐다. 지난 5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국민연금 투자실태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의결권 행사 등에 대한 집중 추궁이 이뤄졌다.

대기업 편들고
전범기업 투자

이날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본질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라며 "이 과정에 2000만 국민의 노후자금을 책임지는 연금공단은 수익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 적극 협조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연금공단은 합병 발표 전 한 달간(5월1일~26일) 거래량 가운데 10%에 달하는 물량을 매도해 주가를 낮추는 데 공헌했다. 합병비율 역시 연금공단이 추산한 1대 0.46에 못 미치는 1대 0.35에 그쳤다. 그럼에도 연금공단은 삼성일가가 삼성물산(통합) 지분 3.02%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앞서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은 삼성물산 주주총회 2주 전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만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신의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제기됐다. 이후 홍 본부장은 자신의 상관이자 인사권자인 최광 이사장과 갈등설이 퍼지면서 연임이 저지됐다.

국연 500조 시대…2022년 1000조 돌파
대기업 오너 경영권 강화용으로 악용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기금운용의 '도덕성'과 관련한 지적도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인재근 의원은 기금운용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근거로 "연금공단이 최근 5년간 일본 기업에 16조원을 투자했으며, 이 가운데 4조5000억원은 일본 군수기업과 전범기업, 야스쿠니신사 지원 기업 등에 투자됐다"라고 밝혔다.

인 의원이 밝힌 투자처는 미쓰비시 중공업과 가와사키 중공업, 미쓰비시 전기 등 21곳이다. 투자 규모는 1조2000억원에 육박했다. 인 의원은 "연금공단이 전범기업 97곳에 3조원 이상을 투자했다"고도 말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지원기업인 돗판인쇄에 30억원가량을 투자한 사실 또한 논란을 야기했다. 돗판인쇄는 2014년판 야스쿠니 달력 27만부를 제작하는 등 우익성향의 회사로 분류된다. 인 의원은 "국익을 해치는 행위를 하는 기업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에선 수익률만 따지면 일본만한 시장이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내놓은 국가별 투자 분석에 따르면 일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익률(13% 내외)이 높은 시장으로 알려졌다. 전범기업의 일본 내 비중 또한 5분의 1에 해당한다는 것이 투자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실제 흥미로운 자료가 있다. 연금공단이 2013년 하반기부터 공개하고 있는 '국민연금기금 해외주식 투자종목 내역'을 보면 기금운용본부가 10억원 이상의 투자처로 삼은 기업은 2659곳에 이른다. 미쓰비시 등 일본 대기업의 주식도 일정 비율 보유하고 있다. 기금운영 포트폴리오상 2006년 11.6%였던 주식투자 비중은 2014년 29.9%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해외투자 비중은 9.4%에서 21.8%로 확대됐다.

종목별 분류에서 해외주식 투자총액 1위는 마이크로소프트(4856억원)였다. 2위는 오라클(4691억원), 3위는 애플(4359억원)로 모두 미국계 IT기업이 차지했다. 4위는 미국 은행인 웰스파고(4296억원), 5위는 스위스 바젤에 본사가 있는 제약회사 노바르티스(3844억원)였다.

그 다음으로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3698억원), 미국 투자은행 JP모건(3599억원), 미국 제약회사 존슨앤존슨(3142억원)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9위를 기록한 업체는 구글(3048억원)로 확인되며, 10위는 비아그라 생산업체로 유명한 제약회사 화이자(3042억원)였다.

이밖에 시티그룹, 네슬레, 페이스북, 인텔, 엑손모빌, AIA, 시스코(미국 보안업체), 뱅크오브아메리카, 사노피(프랑스 제약회사), 아마존 등이 국민연금의 해외주식 투자처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은 미국의 대표 상장지수펀드(ETF)인 'SPDR S&P 500 ETF Trust'에도 2659억원(14위)을 투자하고 있다. 투자순위 20위권 밖에 있는 기업들도 P&G, 필립모리스 등 세계적인 기업이다.

미국 일변도
부동산 쉬쉬

일본 도요타(1804억원)는 38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텐센트(2283억원), 바이두(2199억원)가 각각 22∼23위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해당 자료는 주식만을 표집으로 했기 때문에 투자 총액으로 간주하는 데 무리가 있다. 해외주식 지역별 보유비중은 북미권이 53.47%, 유럽이 24.19%, 아시아(일본 제외)가 10.43%, 일본이 6.9%, 남미가 1.69%, 아프리카 및 중남미가 0.71%로 나타났다.

연금공단이 채택한 '2014∼2018년 중기자산배분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는 국내주식 20% 이상, 해외주식 10% 이상, 국내채권 50% 미만, 해외채권 10% 미만, 대체투자 10% 이상으로 조정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 2014년 기준 대체투자 비중은 9.9%(46조7000억원)를 기록했다. 대체투자란 부동산, 인프라, 벤처투자, 사모투자 등을 포함한 고수익 모델을 지칭한다.

기금운용본부는 해외투자 비중을 늘림은 물론 대체투자 비중을 높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연금공단에서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켜 공사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좋게 보면 수익성에 특화된 미국식 전문가그룹을 만들자는 것인데 나쁜 예를 들면 미국 내 투자집단은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원흉으로 지탄받는다.


글로벌 '대체투자' 비공개
전범기업·페이퍼컴퍼니 논란

금융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투자 다변화를 위해선 해외투자와 대체투자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는 있다. 복잡한 투자모형을 설계해 국민의 감시에서 벗어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의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으려는 '비밀주의'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연금공단은 국내대체투자 및 해외대체투자 내역에 대한 정보 공개를 꺼리고 있다. 말 그대로 중개기관이 '대체' 형태(펀드·신탁 등)로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약관계상 상세한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돈의 용처를 가늠하기 어려운데 연금공단이 '인프라투자' '프로젝트형 부동산투자' 등으로 투자 내역을 명시하고 있는 까닭이다.

가령 서울 중구 충무로에 있는 극동빌딩은 연금공단이 소유하고 있다. 연금공단은 부동산신탁회사 리츠 '지이엔피에스제1호'를 통해 빌딩을 매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월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가 보도한 연금공단의 프랑스 오파리노 쇼핑센터, 독일 베를린 소니센터 매입은 기대했던 수익률에 한참 못 미쳐 비판받았다. 특히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통한 '우회 투자'는 조세회피 문제와 연결됐다.

또 국민연금은 미국, 중국, 싱가포르 등 해외 26개 투자회사에 부동산 투자를 맡기며 보수를 지급하고 있다. 매년 소요되는 수수료만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지난 2월 '국민연금 운용 및 경영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에서 해외대체투자 평균 수익률이 3% 내외라고 발표했다. 해외대체투자는 전액 중개기관이 위탁운용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외국인이다.

자원외교 실패에
국민연금 동원설


대체투자의 위험성은 지난 6월 CBS 등이 보도한 하베스트 투자 계획 등에서도 드러난다. 캐나다 하베스트는 이명박정부 당시 한국석유공사가 4조5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정유회사다. 이후 이른바 '깡통' 논란에 휩싸이며 현재는 부도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부실 회사에 국민연금을 투입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발상이었다. 정부 실책을 감추기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할 경우 대체투자라면 그 실상에 접근하기 어렵다.

기금운용본부는 대체투자로 서울외각순환 민자도로를 매입한 뒤 통행료를 걷고 있다. 2015년 2분기 기준 지분 5% 이상을 획득한 기업만 215곳에 이른다. 삼성, 현대차그룹, SK 등 대기업은 물론이고, SBS 등의 지분도 함께 갖고 있다. '자본시장의 대통령'이란 별명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권력이 막강한만큼 그에 따른 감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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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