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44)황경호 가오닉스그룹 대표

무리한 인수합병 발목 잡았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44화는 106억8800만원을 체납한 가오닉스그룹의 대표 황경호씨다.

부의 상징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지난 2002년 이곳 한 건물에는 대형 복합 스포츠센터가 들어섰다. 가오닉스스포츠는 같은 해 2월 소유주 이모씨로부터 스포츠센터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최상류층 겨냥

연면적 7336평, 지상 4~9층 건물에서는 골프연습장, 수영장, 스쿼시, 요가시설 등이 회원제로 운영됐다. 가오닉스스포츠는 국내 최상류층을 겨냥한 스포테인먼트 사업을 벌인 가오닉스그룹의 계열사였다. 가오닉스그룹은 전환사채 발행 및 제3자 유상증자 방식으로 기업의 볼륨을 키웠다.

당시 가오닉스스포츠 사장이었던 김진우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레저타임 인더스트리'란 개념을 소개했다. 주5일제의 시행과 함께 사람들이 여가생활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할 것이란 예측이었다. 결과적으로 김씨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가오닉스그룹의 전신은 투자조합 IHIC다. 중소 의류회사 디오원을 소유한 황경호씨가 IHIC란 이름으로 신안화섬을 인수한 것이 시작이다. 지난 2001년 황씨가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를 보면 가오닉스그룹의 지향점이 잘 드러나 있다.


인터뷰에서 황씨는 "한국의 루퍼트 머독을 꿈꾸고 있다"라고 했다. TV·신문 등의 미디어와 영화, 스포츠, 음반, 연예기획, 공연 등 70여개 자회사를 거느린 '뉴스 코퍼레이션'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황씨는 외국자본을 대거 조달하겠다는 계획까지 밝혔다.

미국 뉴욕대(NYU)에서 금융을 전공한 황씨는 영국계 투자증권사, 홍콩 소재 투자컨설팅 전문회사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2001년을 전후로 가오닉스그룹은 공격적인 인수합병에 나섰다. 부족한 자금은 유상증자를 통해 메꿨다. 2001년 11월 사명을 바꾸고 계열사로 편입된 가오닉스스포츠는 같은 해 12월 14억5000만원을 유상증자해 자금을 조달했다.

가오닉스그룹이 계열사 확보에 쓴 돈은 600억원을 훌쩍 넘겼다는 것이 당시 주장이다. 이는 가오닉스그룹의 시가총액보다 규모가 컸다. 증권시장은 가오닉스그룹의 수익구조에 의문을 달았다. 코스닥 상장사였던 가오닉스그룹은 재무 여건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증자를 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주주들의 주식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우려였다.

그러나 가오닉스그룹은 외부의 우려를 일축했다. '돈 되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들은 골프장 사업을 벌인다는 명목으로 리츠칼튼CC의 지분 30%를 인수해 대주주가 됐다. 인수 발표 당시 가오닉스그룹의 공동대표로는 황씨와 김씨가 기재됐다.

황씨는 한류 열풍의 진원지인 중국을 상대로 국내 유명 연예인과의 동반 라운딩 상품을 기획했으나 실패했다. 이 같은 기획이 가능했던 것은 황씨가 문화·연예계에 발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가오닉스그룹은 영화 제작사 마이필름(지분율 70%), 음반기획·제작사인 솔로몬뮤직(100%), TV드라마 제작 프로덕션인 JS픽처스(51.5%)를 잇따라 인수했다. 유명 가수 A씨는 솔로몬뮤직의 후신인 가오닉스뮤직 소속으로 활동했다. 

서울시 11억7500만원 국세청 95억1300만원
A&D 테마주 IHIC 후신 문어발식 확장끝 폐업

 


황씨 소유의 디오원은 의류 캐릭터 제작 회사로 변신했다. 3D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오콘의 지분(49%)도 인수했다. 증권가에선 이 같은 문어발식 기업 인수를 일컫는 신조어마저 생겼다. 인수 후 개발, 이른바 A&D다.

가오닉스그룹의 전신인 IHIC는 A&D 테마주로 분류돼 한때 주가가 100만원까지 폭등했다. 그러나 거품이 꺼지자 주가는 100원대까지 추락했다. 가오닉스그룹도 마찬가지다. 주가 부양의 모멘텀을 찾던 이들은 2002년 3월 영상전문회사인 스타맥스와 합병했다. 영화마을, 랜트렉코리아, 스타맥스미디어 등 3개 회사가 계열사로 추가 편입됐다. 가오닉스그룹의 주가는 일시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A&D는 더는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오닉스그룹은 기업 인수 과정에서 현금을 쓰지 않고 주식을 발행해 지분을 맞교환하는 형태로 각 회사의 경영권을 획득했다. 또 현금을 들여 기업을 인수한 후 다시 증자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운용했다. 발행주식 수는 8000만주를 넘겼으며 주가는 다시 300원대로 곤두박질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2년 가오닉스그룹의 당기순손실은 759억원을 기록했다. 최대주주조차 주식을 전량 매도하고 손을 털었다. 그나마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두 회사는 JS픽처스와 가오닉스스포츠다. 이중 JS픽처스는 2005년 11월 가오닉스그룹으로부터 독립해 나간 뒤 성공을 거뒀다.

가오닉스스포츠는 가오닉스빌딩을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던 스포츠·레저업체다. 주된 수익모델은 헬스클럽 운영이지만 부동산 임대업에도 관심을 드러냈다. MB정권 실세로 불렸던 B씨는 가오닉스스포츠클럽의 회원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가오닉스스포츠는 경기 안산 소재 부동산에도 투자했다. 황씨는 가오닉스스포츠 주식 19%를 갖고 있었으며, 스타맥스는 81%를 보유했다.

가오닉스스포츠는 가오닉스그룹의 간판인 스타맥스로부터 수차례 자금을 차입했다. 최대 융통한 돈은 138억여원으로 확인된다. 삼성영상사업단의 자회사로 출범한 스타맥스는 비디오 및 DVD 유통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국내외 유명 영화의 판권을 사들여 DVD를 공급했다. 스타맥스는 어려운 회사 여건 속에서도 2003년 흑자를 기록했다. 스타맥스가 거둔 수익은 가오닉스그룹 계열사로 흘러갔다.

당초 스타맥스는 우회상장을 위해 가오닉스그룹과 합병했으나 주식시장에서 거둔 효과가 미미했다. 2003년 6월 가오닉스그룹은 옛 스타맥스 계열사인 영화마을과 렌트랙코리아를 분리했다. 2005년 12월에는 신사업에 뛰어든다며 맥스창업투자를 설립했지만 3년도 못가 매각했다. 맥스창업투자의 회사 자본금은 70억원, 투자 업종은 환경·에너지 분야였다.

가오닉스그룹은 공중파 출신 이사를 영입하며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디오원, 가오닉스스포츠, 가오닉스매니지먼트 등 핵심 계열사가 모두 수십억원대 당기순손실로 경영난을 가중시켰다.

적자폭이 커지자 회사는 차례로 문을 닫았다. 가오닉스스포츠 역시 영업권과 스포츠센터 시설을 B그룹에 넘기고, 관련 부동산은 부동산신탁회사에 소유권을 이전 등기했다.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신탁한 부동산 가액은 345억원, 회원 보증금은 332억7400만원으로 추산됐다.

잇단 투자 실패

가오닉스스포츠는 회사 정리를 전후로 얻은 수익에 대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가오닉스스포츠는 2011년 6월부터 지방소득세 등 3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거둘 세금은 11억7500만원이다. 국세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가오닉스스포츠는 2009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5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징세할 세금은 95억1300만원이다.

스타맥스 또한 2009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24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국세청이 과세한 세금은 86억4100만원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회사의 법인 등기상 대표는 모두 황씨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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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