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철학적인 작가 권여현

"캔버스 거울삼아 세계를 비춰보죠"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서울 소공로 금산갤러리에서 다음달 20일까지 서양화가 권여현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전시 제목은 '오필리아의 연못'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구상작가로 알려진 그는 데뷔 이래 다양한 예술 언어를 선보이며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이번 '오필리아의 연못'전에서는 '숲'과 '오필리아' 등 작가가 지난 10여 년간 작업해 온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권여현 작가는 지난 1988년 개인전을 연 후 국내를 대표하는 구상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실존적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자아에 대한 탐구를 바탕에 둔 그의 그림은 종종 주제를 압도하는 조형성으로 주목 받았다. 화면의 짜임새 있는 구성과 풍부한 색감, 번뜩이는 표현 등에선 동서양 미술사조에 대한 통찰이 엿보인다.

80년대 데뷔

권 작가가 데뷔한 1980년대는 미니멀리즘 계열 작가들이 미술계의 주류로 떠오르던 시기다. 구상회화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적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당대의 구상작가들은 민중미술의 방식으로 억압된 사회와 소통하기도 하고,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을 흡수하는 등 새로운 미학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권 작가는 미니멀리즘과 거리를 뒀던 청년작가군 가운데 젊은 축에 속했다. 서울대 회화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창작미협 공모전 대상을 비롯해 동아미술상과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석남미술상 등을 수상하며 일약 촉망받는 예술가그룹에 편입됐다.

누구보다 빨리 데뷔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다작했고, 매년 빠짐없이 개인전을 열 정도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였다. 특히 권 작가는 평면뿐 아니라 영상, 퍼포먼스, 설치, 콜라주, 사진 등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그 재능을 드러냈다. 글쓰기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뽐냈는데 권 작가의 언어관은 그의 작업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국내 대표하는 구상작가
관객·평단의 찬사 한몸에

권 작가의 작업은 '성찰'에서 시작한다. 그의 자의식에 관한 성찰은 신화·역사·철학·종교·심리학·사회학 등 인문학 여러 담론을 조합한 데 뿌리를 뒀다. 외부에서 들여다본 내면의 초상은 사회가 빚어낸 복합적인 구조와 맞물려 다층적인 의식의 흐름을 만들었다. 그의 작업은 주로 거울에 비유되는데 캔버스에 비친 세계는 스스로 정립한 사고의 총체다. 평단은 권 작가를 일컬어 '철학적인 작가'라고 정의한다.

그의 그림은 숲과 나무, 이리저리 뻗은 가지와 덩굴로 묘사된 리좀을 닮아있다. 이분법적 세계관에 대한 안티테제인 리좀은 미학자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한 포스트모던시대의 철학 모델이다. 그의 작품에 표현된 벌거벗은 여성, 울창한 수풀,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각각 독립된 네트워크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이들은 철학적 레퍼런스, 과거와 현재, 시공간을 넘나드는 '심벌'이다.

이번 '오필리아의 연못'전에서는 '숲'과 '오필리아'가 상징체계의 두 축을 이룬다. 숲과 오필리아는 지난 10여 년간 작가의 작품 속에 가장 빈번하게 노출된 '기호'다. 권 작가가 그린 숲은 악몽의 공간 혹은 망각의 장이다. 고요한 숲 안에는 거꾸로 떠다니거나 덤불 사이로 걷거나 덩굴에 사로잡힌 '이미지'가 긴장감을 조성한다.

모든 이미지의 중심인 오필리아는 햄릿의 복수를 완수하기 위해 죽은 희생적 존재이자 덫 혹은 미끼요, 끊임없는 유혹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고, 동시에 그 욕망에 의해 파괴된 희생물을 나타내기도 한다. 낯설고 괴이하며 위험한 인상을 풍기는 오필리아는 현실과 유리된 숲이란 공간에서 다른 존재와 결합해 색다른 의미를 생성한다.

불편한 그림

생명을 상징하는 숲에서 발견된 기호의 향연. 이곳저곳에 도사린 욕망의 꿈틀거림은 관객의 마음속에 공명을 일으킨다. 예술은 사라지고 상술만 남은 시대. 거부하고 싶은 불편함이 작가가 의도한 바이자 이 시대에 필요한 미술의 힘이다.



<angeli@ilyosisa.co.kr>

 

[권여현 작가는?]

▲서울대 회화과 졸업 및 동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
▲개인전 37회 - 예술의전당, 북촌미술관, 씨떼데자르(프랑스), Faculty gallery(미국) 등
▲그룹전 350여회 - 한국, 미국, 일본, 중국, 태국, 홍콩, 인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제9회 창작미협 공모전 대상(1984), 제1회 한국일보 청년작가전 우수상(1995), 제5회 하종현미술상(2005) 등 수상다수
▲작품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후쿠오카 문화재단 등
▲출판- 생동하는 미술 총서 <Art Vivant-26 권여현>
▲레지던시- Residency Cite Internationale des Arts(2007, 파리)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