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닮은' 생사불명 도망자들

"돈만 있으면 잡히지 않는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을 둘러싼 온갖 미스터리가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그의 위장사망 의혹이 재점화되고 있다. 조희팔은 살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유족들의 주장대로 무덤에 묻힌 것일까. 조희팔처럼 해외로 도피한 뒤 행방불명된 '도망자들'의 사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봤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의 주인공, 조희팔과 관련한 미스터리가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조희팔을 둘러싼 여러 미스터리 가운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부분은 위장사망 의혹이다. 앞서 경찰은 지난 2012년 5월 중국 공안으로부터 전달 받은 서류를 근거로 조희팔이 2011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조희팔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사기꾼 조희팔
살았나 죽었나

각종 매체를 중심으로 조희팔의 생존 가능성이 부각되자 경찰도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지난 13일 오전 강신명 경찰청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도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할 만한 과학적 증거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또 강 청장은 "경찰이 별도 수사인력을 붙여 확인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강 청장은 "살아있다면 주변 발언, 중국 측의 첩보 등으로 어떻게든 생존반응이 감지 됐을 텐데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라고 부실 수사 의혹을 해명했다. "조희팔을 목격했다"라는 일부 제보자의 주장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이번 조희팔 수사의 '키맨'으로 꼽히는 배상혁(구속)씨 역시 "조희팔의 생사 여부를 모른다"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배씨는 "2008년 10월 말 회식자리에서 조희팔을 만난 뒤 현재까지 연락하거나 만난 적이 없다"라고 진술했다.


조희팔은 2008년 12월 측근들과 함께 중국으로 밀항했다. 경찰은 2009년 6월에야 인터폴과 공조해 적색수배를 내렸다.

이른바 '조희팔 생존설'은 2014년에도 사정기관 주변을 떠돌았다. 조희팔이 중국 산둥성에서 조직폭력배 출신인 한국인 사업가와 만났다는 등의 내용이다. 조희팔 사건 피해자 모임인 바른가정경제실천을위한시민연대(바실련)는 조금 더 구체적인 제보를 축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희팔 위장사망 여부 재점화
중국·필리핀·캄보디아서 목격담

각종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조희팔은 중국 또는 라오스에서 골프를 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위조여권을 제작해 필리핀, 캄보디아 등으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영렬 대구지방검찰청장은 지난달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공식 확인된 상황은 아니지만 조씨(조희팔)가 살아 있는 것을 전제로 수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 지검장의 이 같은 언급은 조희팔의 사망 여부를 우리 정부가 직접 확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해외에 잠적한 도피사범을 찾아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희팔처럼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혹은 용의자)가 정부 당국의 추적으로 검거된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이 대검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출국을 이유로 기소중지돼 있는 해외도피사범은 5503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경제사범의 비중은 57.2%(3148명)에 이르렀다.

또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지난달 24일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해 6월30일까지 해외도피를 이유로 징역형이 중지된 미집행자는 355명이었다. 도피사범은 각각 중국(97명), 필리핀(58명), 미국(40명), 태국(28명), 일본(19명), 호주(10명) 순으로 출국했다. 이밖에 인도네시아, 캐나다, 베트남, 몽골도 다수의 도피사범이 출국한 나라로 확인된다.


기자는 지난 8월 한 중견기업 회장의 해외도피를 도운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A씨는 회장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뒤 도피생활에 필요했던 여러 편의를 제공한 인물이다. A씨의 증언을 요약한 해외도피 준비 과정은 다음과 같다.

도피자 5000명
행방 오리무중

먼저 해외도피를 위해선 현지 숙소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A씨가 수행한 회장은 미국 괌·뉴욕 등 여러 곳에 차명 오피스텔을 갖고 있었다. A씨는 "아마 다른 대기업 회장들도 다들 몇 채씩은 갖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이들 주거지를 단시간 내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조여권 등 도피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국내 협조자를 통해 공급받는다. 단 국내와 접촉이 어려운 경우는 현지에서 제작을 의뢰한다.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도피 협조자는 현지 영사관과 가까운 관계자들을 포섭해 정보를 얻는다.

도피자금은 해외 은행계좌에서 자유롭게 인출한다. 거액의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것은 오히려 독이다. 이들은 수년 전부터 차명계좌를 만들어 조금씩 예금을 저축해 놨기 때문에 급작스런 송금으로 당국의 추적을 받을 리 없다.

외출 시에는 변장을 통해 정체를 숨긴다. 가급적 외출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숙소에만 머무는 도피사범은 없다. 단 가족과 직접적인 통화는 금물이며, 제3자를 통해 접촉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설 병원을 알아두면 큰 도움을 받는다. 잠적도 용이할 뿐더러 의사가 발급한 진단서를 근거로 각종 출입국 과정에서 신분 노출을 피할 수 있다. A씨는 의사의 협조를 얻어 입국 과정에서 회장을 이송할 구급차를 호출한 바 있다.

A씨는 "일단 해외로 나가면 잡힐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라며 "돈이 있으면 잡히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부분 돈이 떨어지는 시점에 일을 벌이다 현지 당국에 의해 적발된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이는 조희팔을 포함한 해외도피사범들의 향후 행적을 이해할 수 있는 한 단서다.

돈 있으면
안 잡힌다

조희팔의 유족 측이 촬영했다는 장례식 동영상, 응급진료기록부, 화장기록 등이 '조희팔 사망설'의 증거로 꼽힌다. 하지만 조씨 사망 발표 당시 시신은 이미 화장된 상태였고, 동영상 역시 조작 논란이 불거졌다. 최근에는 사망증명서와 화장기록 등이 위조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됐다. 또 조희팔의 유가족은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희팔의 경우처럼 상세한 증거는 없지만 사망 보도가 논란이 된 도피사범이 있다.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다. 장 전 회장은 지난 4월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장 전 회장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는 확인서를 발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장 전 회장의 사망 보도를 놓고 주중대사관은 이례적으로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다"라는 언급을 내놨다. 장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해외도피 기간 중 캄보디아 국적을 취득하면서 대한민국 국적이 상실됐다. 캄보디아에 있을 것으로 추측된 장 전 회장은 도피 10년 만에 중국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정태수·정용욱·유혁기 행방 오리무중
호화 도피생활에도 정부 당국은 뒷짐

일각에선 '측근과 연락했다'는 등의 위장 사망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6월 중국대사관이 공증한 사망진단서와 주중 한국대사관 측의 진술을 인용해 "장 전 회장이 사망했다"라고 확인했다. 검찰은 장 전 회장의 800억원대 배임 사건 등을 모두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했다. 장 전 회장의 오랜 측근은 지난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다 확인해주지 않았느냐"라며 "그런 건 묻지 마시라"라고 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생사여부가 불분명한 케이스다. 올해 나이 92세인 정 전 회장은 지난 2007년 일본을 경유해 카자흐스탄으로 날아간 뒤 행방불명됐다. 특히 정 전 회장은 그가 설립한 강릉영동대학교의 교비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 재판 중 '치료를 받겠다'며 해외로 도피했다.

지난 8월 세무당국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이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며 살아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보그룹에 정통한 관계자 역시 "정태수가 해외자원개발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의 신병 확보를 위한 관계 당국의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전 회장의 4남 정한근씨는 아버지보다 일찍 행적을 감췄다. 그는 1998년 미국으로 도피한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한근씨를 봤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 소재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전윤수 전 성원건설 회장도 해외도피사범의 대표 사례로 지목된다. 전 전 회장은 지난 2010년 3월 100억원대 임금 체불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지만 미국으로 도피했다. 언론을 통해 전 전 회장의 호화 도피생활이 공개됐지만 전 전 회장의 국내 송환은 번번이 무산됐다.

기업인은 아니지만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며 수억원대 금품 수수 혐의를 받았던 정용욱씨도 도피생활을 잇고 있다. 정씨는 지난 2009년 9월 김학인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으로부터 EBS 이사에 선임되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2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씨는 2011년 12월 태국으로 도피한 뒤 이듬해 말레이시아로 거처를 옮겼다고 전해진다.

정씨는 지난 2008년 최 전 위원장의 지시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의원 3~4명에게 3500만원을 전달했다는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정씨에 대해 참고인 중지 처분을 내렸으며 아직까지 강제 구인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정씨의 마지막 행적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곳은 미국이다.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지난 2013년 미국 현지에서 그를 만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정부는 범죄 혐의자가 해외로 도피했을 때 사실상 사태를 관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각 정부 대사관 직원 혹은 국정원 요원들을 투입해 행방을 수소문할 수도 있었지만 실제 지침이 하달됐는지는 미지수다.

관망하는 정부 
퍼지는 설설설

정권이 사활을 걸고 덤벼든 유벙언 수사에서도 핵심 용의자는 체포하지 못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차남 유혁기씨의 소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미국 뉴욕 거주설, 프랑스 파리 이주설, 멕시코 멕시코시티 은신설 등 온갖 설만 무성하다. 실제로 그를 목격했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각국 치안·수사당국은 우리 정부의 수사 협조 요청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의무가 없다. 외국 공문서로 발급됐다는 문서가 재판에서 조작된 문서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조희팔 미스터리의 핵심은 이 같은 '신뢰의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만약 2012년 우리 수사당국이 적극적으로 조희팔의 생존 가능성을 조사했더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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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