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닮은' 생사불명 도망자들

"돈만 있으면 잡히지 않는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을 둘러싼 온갖 미스터리가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그의 위장사망 의혹이 재점화되고 있다. 조희팔은 살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유족들의 주장대로 무덤에 묻힌 것일까. 조희팔처럼 해외로 도피한 뒤 행방불명된 '도망자들'의 사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봤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의 주인공, 조희팔과 관련한 미스터리가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조희팔을 둘러싼 여러 미스터리 가운데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부분은 위장사망 의혹이다. 앞서 경찰은 지난 2012년 5월 중국 공안으로부터 전달 받은 서류를 근거로 조희팔이 2011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조희팔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사기꾼 조희팔
살았나 죽었나

각종 매체를 중심으로 조희팔의 생존 가능성이 부각되자 경찰도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지난 13일 오전 강신명 경찰청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도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할 만한 과학적 증거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또 강 청장은 "경찰이 별도 수사인력을 붙여 확인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강 청장은 "살아있다면 주변 발언, 중국 측의 첩보 등으로 어떻게든 생존반응이 감지 됐을 텐데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라고 부실 수사 의혹을 해명했다. "조희팔을 목격했다"라는 일부 제보자의 주장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이번 조희팔 수사의 '키맨'으로 꼽히는 배상혁(구속)씨 역시 "조희팔의 생사 여부를 모른다"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배씨는 "2008년 10월 말 회식자리에서 조희팔을 만난 뒤 현재까지 연락하거나 만난 적이 없다"라고 진술했다.


조희팔은 2008년 12월 측근들과 함께 중국으로 밀항했다. 경찰은 2009년 6월에야 인터폴과 공조해 적색수배를 내렸다.

이른바 '조희팔 생존설'은 2014년에도 사정기관 주변을 떠돌았다. 조희팔이 중국 산둥성에서 조직폭력배 출신인 한국인 사업가와 만났다는 등의 내용이다. 조희팔 사건 피해자 모임인 바른가정경제실천을위한시민연대(바실련)는 조금 더 구체적인 제보를 축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희팔 위장사망 여부 재점화
중국·필리핀·캄보디아서 목격담

각종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조희팔은 중국 또는 라오스에서 골프를 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위조여권을 제작해 필리핀, 캄보디아 등으로 도주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영렬 대구지방검찰청장은 지난달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공식 확인된 상황은 아니지만 조씨(조희팔)가 살아 있는 것을 전제로 수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 지검장의 이 같은 언급은 조희팔의 사망 여부를 우리 정부가 직접 확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해외에 잠적한 도피사범을 찾아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희팔처럼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혹은 용의자)가 정부 당국의 추적으로 검거된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이 대검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출국을 이유로 기소중지돼 있는 해외도피사범은 5503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경제사범의 비중은 57.2%(3148명)에 이르렀다.

또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지난달 24일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해 6월30일까지 해외도피를 이유로 징역형이 중지된 미집행자는 355명이었다. 도피사범은 각각 중국(97명), 필리핀(58명), 미국(40명), 태국(28명), 일본(19명), 호주(10명) 순으로 출국했다. 이밖에 인도네시아, 캐나다, 베트남, 몽골도 다수의 도피사범이 출국한 나라로 확인된다.


기자는 지난 8월 한 중견기업 회장의 해외도피를 도운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A씨는 회장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뒤 도피생활에 필요했던 여러 편의를 제공한 인물이다. A씨의 증언을 요약한 해외도피 준비 과정은 다음과 같다.

도피자 5000명
행방 오리무중

먼저 해외도피를 위해선 현지 숙소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A씨가 수행한 회장은 미국 괌·뉴욕 등 여러 곳에 차명 오피스텔을 갖고 있었다. A씨는 "아마 다른 대기업 회장들도 다들 몇 채씩은 갖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이들 주거지를 단시간 내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조여권 등 도피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국내 협조자를 통해 공급받는다. 단 국내와 접촉이 어려운 경우는 현지에서 제작을 의뢰한다.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도피 협조자는 현지 영사관과 가까운 관계자들을 포섭해 정보를 얻는다.

도피자금은 해외 은행계좌에서 자유롭게 인출한다. 거액의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것은 오히려 독이다. 이들은 수년 전부터 차명계좌를 만들어 조금씩 예금을 저축해 놨기 때문에 급작스런 송금으로 당국의 추적을 받을 리 없다.

외출 시에는 변장을 통해 정체를 숨긴다. 가급적 외출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숙소에만 머무는 도피사범은 없다. 단 가족과 직접적인 통화는 금물이며, 제3자를 통해 접촉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설 병원을 알아두면 큰 도움을 받는다. 잠적도 용이할 뿐더러 의사가 발급한 진단서를 근거로 각종 출입국 과정에서 신분 노출을 피할 수 있다. A씨는 의사의 협조를 얻어 입국 과정에서 회장을 이송할 구급차를 호출한 바 있다.

A씨는 "일단 해외로 나가면 잡힐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라며 "돈이 있으면 잡히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부분 돈이 떨어지는 시점에 일을 벌이다 현지 당국에 의해 적발된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이는 조희팔을 포함한 해외도피사범들의 향후 행적을 이해할 수 있는 한 단서다.

돈 있으면
안 잡힌다

조희팔의 유족 측이 촬영했다는 장례식 동영상, 응급진료기록부, 화장기록 등이 '조희팔 사망설'의 증거로 꼽힌다. 하지만 조씨 사망 발표 당시 시신은 이미 화장된 상태였고, 동영상 역시 조작 논란이 불거졌다. 최근에는 사망증명서와 화장기록 등이 위조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됐다. 또 조희팔의 유가족은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희팔의 경우처럼 상세한 증거는 없지만 사망 보도가 논란이 된 도피사범이 있다.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다. 장 전 회장은 지난 4월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장 전 회장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는 확인서를 발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장 전 회장의 사망 보도를 놓고 주중대사관은 이례적으로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다"라는 언급을 내놨다. 장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해외도피 기간 중 캄보디아 국적을 취득하면서 대한민국 국적이 상실됐다. 캄보디아에 있을 것으로 추측된 장 전 회장은 도피 10년 만에 중국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정태수·정용욱·유혁기 행방 오리무중
호화 도피생활에도 정부 당국은 뒷짐

일각에선 '측근과 연락했다'는 등의 위장 사망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6월 중국대사관이 공증한 사망진단서와 주중 한국대사관 측의 진술을 인용해 "장 전 회장이 사망했다"라고 확인했다. 검찰은 장 전 회장의 800억원대 배임 사건 등을 모두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했다. 장 전 회장의 오랜 측근은 지난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다 확인해주지 않았느냐"라며 "그런 건 묻지 마시라"라고 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생사여부가 불분명한 케이스다. 올해 나이 92세인 정 전 회장은 지난 2007년 일본을 경유해 카자흐스탄으로 날아간 뒤 행방불명됐다. 특히 정 전 회장은 그가 설립한 강릉영동대학교의 교비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 재판 중 '치료를 받겠다'며 해외로 도피했다.

지난 8월 세무당국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이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며 살아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보그룹에 정통한 관계자 역시 "정태수가 해외자원개발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의 신병 확보를 위한 관계 당국의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전 회장의 4남 정한근씨는 아버지보다 일찍 행적을 감췄다. 그는 1998년 미국으로 도피한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한근씨를 봤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 소재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전윤수 전 성원건설 회장도 해외도피사범의 대표 사례로 지목된다. 전 전 회장은 지난 2010년 3월 100억원대 임금 체불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지만 미국으로 도피했다. 언론을 통해 전 전 회장의 호화 도피생활이 공개됐지만 전 전 회장의 국내 송환은 번번이 무산됐다.

기업인은 아니지만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며 수억원대 금품 수수 혐의를 받았던 정용욱씨도 도피생활을 잇고 있다. 정씨는 지난 2009년 9월 김학인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으로부터 EBS 이사에 선임되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2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씨는 2011년 12월 태국으로 도피한 뒤 이듬해 말레이시아로 거처를 옮겼다고 전해진다.

정씨는 지난 2008년 최 전 위원장의 지시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의원 3~4명에게 3500만원을 전달했다는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정씨에 대해 참고인 중지 처분을 내렸으며 아직까지 강제 구인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정씨의 마지막 행적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곳은 미국이다.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지난 2013년 미국 현지에서 그를 만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정부는 범죄 혐의자가 해외로 도피했을 때 사실상 사태를 관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각 정부 대사관 직원 혹은 국정원 요원들을 투입해 행방을 수소문할 수도 있었지만 실제 지침이 하달됐는지는 미지수다.

관망하는 정부 
퍼지는 설설설

정권이 사활을 걸고 덤벼든 유벙언 수사에서도 핵심 용의자는 체포하지 못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차남 유혁기씨의 소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미국 뉴욕 거주설, 프랑스 파리 이주설, 멕시코 멕시코시티 은신설 등 온갖 설만 무성하다. 실제로 그를 목격했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각국 치안·수사당국은 우리 정부의 수사 협조 요청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의무가 없다. 외국 공문서로 발급됐다는 문서가 재판에서 조작된 문서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조희팔 미스터리의 핵심은 이 같은 '신뢰의 부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만약 2012년 우리 수사당국이 적극적으로 조희팔의 생존 가능성을 조사했더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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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