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옛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씨의 지인 이세민씨가 사기 혐의로 피소됐다. 이씨는 관련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씨가 만났다는 유력 인사의 면면 등 사건 정황을 살펴보면 어느 한쪽의 말만 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학자' 이씨에겐 왜 돈과 사람이 몰린 것일까.
현 정부 비선 실세로 의심 받았던 정윤회씨의 지인 한학자 이세민(본명 이상목)씨가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22일 "이씨가 피소된 사기 사건을 형사8부에 배당했다"라고 알렸다. 이씨는 올 3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 재판에 출석해 "세월호 참사 당일 정씨와 점심식사를 했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
식사자리 주선?
지난달 21∼22일 <동아일보> 등에 따르면 이씨는 유력 인사들과의 친분을 앞세워 사업 편의를 봐주겠다고 한 뒤 모두 11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피소됐다. 이씨를 고소한 여인 최모씨는 고소장에서 "남편 회사가 대기업 협력업체에 선정되는 대가로 이씨에게 투자금을 건넸지만 사업이 전혀 진행되지 않고, 돈도 돌려받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최씨는 지난해 8월 이씨가 주도하는 이른바 '진선미 공동체운동'에 참여했으며, 제자로 인정받아 서울 평창동 이씨의 사무실 겸 자택에 약 1년간 머물렀다.
반면 이씨는 "내가 오히려 폭행 피해자"라며 잇따른 언론 보도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최근 한 언론을 통해 "지난달 10일 최씨가 용역업체 직원들과 평창동 집에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며 자신을 폭행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쌍방 폭행 혐의로 최씨와 이씨를 각각 입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가 연루된 사기 사건은 관련 고소장에 전직 고위관료 등이 거론되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최씨는 "지난해 10월 이씨의 지시로 전직 차관급 인사에게 직접 500만원을 건넸고, 이씨를 통해 5000만원을 줬다"라는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했다. 또 최씨는 "이씨가 자신과 친한 대기업 조선업체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면 협력업체가 될 수 있다고 해 7억5000만원을 건넸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최씨는 "평창동 집을 드나든 유력 인사들을 봤을 때 이씨의 영향력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라는 취지로 거래 동기를 설명했다. 2014년 8월부터 이씨의 집을 드나든 인물로는 전·현직 장·차관급 인사와 대기업 조선업체 부사장, 전직 대통령 아들 등이 지목됐다.
이씨를 찾은 사회 고위층 가운데는 현직 부장검사도 있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2일 “현직 부장검사가 인사철에 직접 이씨를 찾아 자기소개서와 직무수행계획서를 맡겼다”라고 보도했다. 해당 부장검사는 “인사 청탁이 아닌 검찰 조직의 발전 방향을 상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최씨 등 사건 관계인들을 차례로 소환해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이씨는 헙력업체 알선 대가로 금품을 받은 적 없다는 입장을 언론에 밝혔다. 단 이씨는 최씨가 자신의 채무를 일부 변제해줬으며, 평창동 집 임대료를 대납해 준 사실을 인정했다. 금전거래가 있었다는 것만큼은 부인하지 않는 상황이다. 최씨의 측근은 최씨가 대납한 평창동 집세가 억대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TK출신' 이세민 10억대 사기혐의 피소
이희호 양아들 사칭?…알선수재 실형
서울 종로구 평창7길에 있는 이씨의 집은 미국 국적을 가진 A씨가 소유하고 있다. 이씨는 법률상 임차인이다. 이씨는 9월27일 기준 삼각산(북한산) 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동 자택인지는 불명확하다. 지난 4일 평창동 자택을 찾았을 때 건물 관리인은 "이씨가 병원에 있다"라고 주장했다. 사기 사건에 대한 해명은 들을 수 없었다. 삼각산에서 이씨는 '진선미 군자 교육'이란 활동을 통해 매일매일 새로운 내용의 글을 자신의 지인에게 발송하고 있다.
정씨는 이씨가 주목한 '지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씨는 앞서 밝힌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명예훼손 재판에 출석해 "정씨와는 한 달에 한두 차례 정도 만나 군자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식사도 했으며, 통화도 자주 했다"라고 증언했다.
그런데 이씨는 최근 앞선 증언과 사뭇 다른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지난달 22일 MBN과의 전화통화에서 이씨는 "정윤회씨와는 2014년 4월 이전에 두 번 정도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고, 사주관상을 보러오는 게 아니라 시대흐름 이런 걸 예리하게 본다고 이야기해 온 거다"라고 말했다. '한 달에 한두 차례 정도 만나 식사를 했던' 사이가 '두 번 정도 이야기만 나눈' 사이로 바뀐 것이다.
이씨의 인맥과 관련해서는 온갖 '설'이 난무한다.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 측근의 '입'을 통해 여러 차례 노출됐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내방할 예정이다" "지만(박근혜 동생)이가 나를 신처럼 받든다" "정윤회도 내 말이면 죽는 시늉까지 한다" 등이다. 얼핏 여권 핵심과의 친분을 과시한 언사로 보이지만 실제 이들과 '접점'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씨가 일우생명문화융합센터 총재 자격으로 주최한 '프뉴마터치 코리아'가 작은 단서다. '프뉴마터치 코리아'는 일종의 철학 포럼으로 당시 경희대학교가 후원했다. 공교롭게도 정씨는 경희대 경영대학원 출신이라는 게 정설이다. 또 일우생명문화융합센터의 법인 등기일은 2013년 5월8일인데 '프뉴마터치 코리아' 행사일은 2013년 3월10∼12일로 두 달 가량 빠르다. 아울러 '프뉴마터치 코리아'를 기사화한 언론 중 일부는 정부로부터 취재 요청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씨가 그간 몇몇 정치권 인사를 관리하려 했던 건 사실이다. 정의화 국회의장, 한화갑 전 의원은 각각 이씨와 안면이 있다고 밝혔다. 육영수 여사 생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주를 봤다는 설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1957년생인 이씨는 당시 중학생 내지는 고등학생이었다.
이씨가 이름값을 높이기 시작한 때는 노태우정부 말기로 보인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민자당 당시 대선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경북 영천이 고향인 이씨는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김대중정부 탄생 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도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의 인연으로 청와대를 출입했다는 것이 측근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씨는 권력의 감시를 받았다. 가토 전 지국장의 변호인은 지난 3월 "이씨가 2000년께 김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이희호 여사의 양아들로 사칭하며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해 수사선상에 올랐다"라고 말했다. 당시 이씨는 약식기소됐다. 또 이씨는 지난 2006년 한 여성 사업가로부터 경찰관 파면 등 사건 청탁과 함께 4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알선수재)로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청와대 출입
물론 과거의 전과로 현재의 혐의를 단정할 수는 없다. 이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씨와의 만남이 언론에 보도된 후 '고객'이 줄었다는 취지로 억울함을 토로했다. 정씨가 총재로 있는 일우생명문화융합센터는 두 차례 주소지가 바뀌었다. 현재 사무실 소재는 불분명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31일 기획재정부는 각종 세제 혜택이 제공되는 지정기부금단체 명단을 공고했다. 관련 명단에는 '일우생명문화융합센터'가 포함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