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검찰총장 내정설 내막

선거용 교체카드 빼든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 선정과 관련해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이라 청와대도 그 어느 때보다 신중을 기할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7월까지 검찰 안팎에는 '김수남 대세론'이 힘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경쟁 후보 3인이 치고 올라온 모습이다.

김진태 검찰총장(52년생·사법연수원 14기)의 임기는 오는 12월1일까지다. 전임인 채동욱 전 검찰총장(59년생·14기)에 이어 40대 검찰총장에 오른 그는 비교적 무난히 조직을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11월 초에는
차기총장 윤곽

현역 의원들이 잇따라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야권은 '정치적 중립성'을 시비 삼고 있다. 하지만 김 총장이 직접 수사를 챙겼다고 보는 시각은 야권 내에도 많지 않다. 김 총장의 뒤에서 때로는 김 총장 모르게 하명을 내릴 곳은 청와대 외에는 상상하기 어렵다.

검찰 내부에선 지난 6월께부터 차기 검찰총장과 관련한 정중동 행보가 감지됐다. 한 검찰 관계자는 "올해 검사들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해도 무방하다"라며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저마다 줄을 대는 사람이 있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지난 9월 초에는 "개점휴업"이란 표현이 나왔다. 특정 시기, 특정 사건을 수사할 경우 특정 후보자가 유리할 수 있는 까닭에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당연히 까다로운 사건은 김 총장의 후임이 맡게 될 것이란 관측이 더해졌다.

올 상반기만 해도 41대 검찰총장 1순위는 김수남 대검 차장(59년생·16기)이었다. 검찰 일각에선 청와대에 충성하지 않는 김 총장을 거르고 대구 출신인 김 차장을 올려보냈다는 해석이 나왔다. 검찰 안팎에선 "야당이 지금은 검찰을 욕하겠지만 김 총장이 물러난 뒤에는 오히려 김 총장 시절이 그리울 거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들렸다. 옛 안기부처럼 권력기관은 정권에 자발적으로 충성할 때 무시무시한 '괴력'을 발휘한다.


내부적으론 쉬쉬하던 차기 검찰총장의 윤곽이 이달 들어 조금씩 베일을 벗고 있다. 김 총장의 남은 임기와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고려하면 늦어도 11월 초에는 차기 총장 후보자가 나와야 한다. 빠르면 이주 내로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가 꾸려질 예정이다. 추천위는 검찰 고위직 출신 위원장을 포함해 민간위원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된다. 추천위는 3명(혹은 3명 이상)의 총장 후보자를 법무부장관에게 추천해야 한다.

추천위 제도가 처음 도입된 때는 이명박정부 말기인 2013년 1월이다. 같은 해 2월 추천위는 당시 직책 기준 김진태 대검차장, 소병철 대구고검장(58년생·15기), 채동욱 서울고검장을 후보자로 추천했다. 법무부장관은 추천위가 꼽은 세 후보 가운데 한 명의 후보를 택해 청와대에 제청하게끔 돼 있다. 당시 황교안 법무부장관(57년생·13기)은 최총 추천할 후보자로 채 전 총장을 선택했다. 문제는 청와대가 채 전 총장을 탐탁지 않아 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첫 검찰총장으로 점찍었던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56년생·14기)은 추천위 단계에서 배제됐다. 인사권자의 의중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셈이다. 때문에 김 총장을 뽑을 때는 만장일치 형태로 네 명의 후보자를 천거해 구색을 맞췄다.

총장 선임 과정에서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법무부 관계자는 "검찰총장은 물론 서울중앙지검장조차 BH(청와대)와 교감 없이는 임명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채 전 총장은 '권력 공백' 상태에서 뽑힌 이례적인 케이스다.

김진태 후임
김수남 등 3파전

그렇다면 세 번째 추천위가 고를 세 명의 총장 후보자는 누구일까. 그간의 언론 보도와 검찰 관계자의 설명 등을 종합하면 대체적으로 세 명의 후보가 입길에 오르내린다. 가장 앞서있는 후보는 김 차장이다. 이를 추격하는 후보는 박성재(63년생·17기)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여기에 최근 경합 후보로 이름을 올린 이득홍(62년생·16기) 서울고검장이 '3파전'의 축을 이룬다.

김 차장은 지난 이명박정부 당시 '미네르바 전기통신기본법위반 혐의 수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었던 그는 수원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이른바 'RO' 사건을 지휘하며 이번 정부에서 가장 신임 받는 검사로 거듭났다. 이석기 옛 통합진보당 의원은 유죄(내란음모는 무죄)를 확정 판결 받았다. 바통을 이어받은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냈다.


지난해에는 사실상 검찰 '넘버2'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올라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를 매듭지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옛 측근과 친동생이 연루된 중요한 수사를 해결해준 셈이다.

대구 청구고를 졸업한 그는 TK·서울대 출신으로 검찰이 선호하는 출신 배경을 두루 갖췄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김 차장의 청구고 후배다. 단 판사로 법조 경력을 시작했고, '공안통'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점은 불안요소다.


법조계 특정인 내정설·좌천설 돌아
하마평 오르내리는 인사들 누구?
청와대와 붙은 반박계 바짝 긴장

청와대는 내년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권분립을 어겨서라도 국회를 장악하고자 '연막'을 피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연일 주고받는 설전은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다툼의 한 단면이다. 야권은 물론 일부 '반박'을 움켜쥐기 위해선 자연스레 정치사범을 다루는 '공안통'에 대한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다.

최근 경쟁 대열에 합류한 이 고검장은 공안통은 아니다. 그렇지만 선거 국면에서 활용도가 높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고검장은 지난 2005년 첨단범죄수사부의 초대 부장을 맡았으며, SNS 등 온라인에서 나도는 '정치적인 글'을 잡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박근혜정부가 유독 '괴담 유포자 색출'에 집착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 고검장의 첨단범죄 수사 경력은 강점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이 고검장은 서울 관악고를 나왔지만 대구 출신이다. 검사 생활의 상당기간을 대구와 부산에서 보냈다. ▲부산지검 울산지청 ▲대구지검 부부장검사 ▲대구지검 강력부 부장검사 ▲대구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부산지검장 ▲대구지검장 ▲부산고검장 등 부산·대구의 거의 모든 요직을 거쳤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는 사촌동서 사이다.

지난 7월21일 법무부는 이 고검장을 서울고검장으로 깜짝 전보 조치했다. 서울고검장은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인천지검 등 수도권 모든 권역을 관할하는 수석 고검장이다. 검찰총장에 이르는 한 관문이기도 하다. 이 고검장의 발탁을 놓고 일각에선 '저돌적인 스타일의 박 지검장을 견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당시 <한겨레> 등은 이 고검장의 합류를 놓고 'TK출신 검찰총장 후보들의 충성 경쟁을 유도했다'는 분석을 전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 이 고검장이 '모발 감식' 기법을 도입, 마약사범을 잡아들이는 데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 이 고검장은 대검 과학수사기획관에 재직하며 '마약사범의 1년 전 대마 흡입 사실을 밝혀내는 수사기법'을 강구했다고 전해진다.

총선 앞두고
공안통 필요

물론 이 고검장에게도 약점은 있다. 이 고검장은 검찰총장을 지휘하는 김현웅(59년생·16기) 법무부 장관과 사법연수원 동기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보다 더 낮은 기수를 임명해 온 것이 검찰의 관례다.

그럼에도 김 장관보다 나이가 3살 어린 것은 후보자 추천 과정에서 어느 정도 반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과 나란히 사법연수원 동기인 김 차장은 1959년생으로 감 장관과 나이가 같다.

3파전의 남은 한 축은 박 지검장이다. 박 지검장은 사법연수원 17기로 기수 안배를 고려하면 가장 유리하다. 박 지검장의 임명은 16·17기의 '전원 물갈이'를 의미한다. 검찰 내에는 사법연수원 동기생 혹은 후배가 총장이 되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관습이 있다.

최근 검찰 안팎에선 박 지검장을 김 차장의 대항마로 띄우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출입 기자들을 통해 "요즘 BH가 박 지검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박 지검장에 대한 신뢰가 상당하다"라는 등의 소문을 흘리는 식이다.

박 지검장은 박근혜정부가 국정과제로 삼은 '부패와의 전쟁'을 추진해 온 책임자 가운데 하나다.
포스코 수사를 비롯해 자원외교 수사로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구속기소했고, 중앙대를 손보는 과정에선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잡아넣었다. 대한체육회·농협·KT&G 비리 수사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모두가 지난 정권을 노린 사실상의 '하명수사'다.

이외에도 박 지검장은 야당을 겨냥한 대대적인 공세로 청와대의 환심을 사고 있다. 무소속 박기춘 의원은 일사천리로 구속됐고,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의원 역시 기소를 피하지 못했다. 같은 당 문희상 의원에게도 1차 서면조사를 통보하며 서서히 목을 죄는 형상이다.


여권에서조차 "박 지검장이 자리 욕심에 일을 너무 벌이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가 나온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6일 칼럼을 통해 우회적으로 박 지검장을 비판했다. 포스코 비리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5일 오후 'MB 형님' 이상득 전 의원을 소환할 계획이다.

박 지검장은 경북 청도 출신으로 대구고를 나왔다. 현 정권 실세 가운데 한 명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그의 고교 선배다. 박 지검장이 요즘 '대세'로 불리는 건 든든한 배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단 고려대 출신이란 점은 '양날의 검'이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정부 때 권력을 가졌던 고려대 출신을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고검장 역시 고려대 출신이란 점은 최종 후보 선정 과정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공안통'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영향력을 미친다면 박 지검장에게는 불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박 지검장은 '특수통'으로 분류되며, 정무적 감각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구나 박 지검장과 같은 고려대 출신으로 서울중앙지검장에서 검찰총장으로 직행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59년생·13기)은 '검란' 사태로 낙마한 바 있다.

소위 '빅3' 외에 물망에 오른 또 한 명의 법조인은 임정혁 법무연수원장(56년생·16기)이다. 임 원장은 앞선 세 명의 후보와 달리 '공안통'로 분류된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과 대검 공안부장 등을 역임한 그는 18대 대선 당시 공안부장을 맡아 선거를 관리했다.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은 그의 고교 후배다. 단 서울 출신으로 지역색이 흐릿하다는 것은 '단점'으로 꼽힌다.

유승민 변수
끝까지 혼전


당초 독주체제를 구축한 김 차장은 흔들리는 모습이다. 양강, 3파전, 4파전 양상으로 후보군이 점차 확대된 건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란 변수가 작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박 대통령이 직접 '배신의 정치인'으로 매도한 유 의원은 김 차장과 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김 차장은 부인하고 있지만 유 의원과의 친분이 드러날 경우 박 대통령의 선택은 달라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