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리포트 - 그들이 궁금하다’ ②그들은 어떻게?

“한번 죽이면 또 죽이고 싶다”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경찰청 범죄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913건의 살인범죄가 발생했다. 이 중 총기, 칼, 독극물 등을 이용한 소지범죄가 771건, 미소지범죄가 142건으로 조사됐다. <일요시사>에서는 범행 강도가 높은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유형별로 정리해봤다.
 

살인은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말한다. 치정, 원한, 재물(강도), 정신병으로 인한 살인이 일반적이나 장기간에 걸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인도 더러 발생한다.

대한민국 발칵 연쇄살인

연쇄살인은 장기간에 걸쳐 여러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말한다. 살인범과 피해자 사이에 원한, 치정, 채무 등의 특별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에 행해지는 살인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은 ‘외딴집 일가족 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대구동구연쇄살인사건’ ‘정두영연쇄살인사건’ ‘유영철연쇄살인사건’ ‘서울서남부연쇄살인사건’ ‘경기서남부부녀자연쇄살인사건’ 등 7건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쇄살인은 1975년에 발생한 ‘외딴집 일가족 연쇄살인사건’이다. 살인범 김대두(당시 27세)는 8월13일부터 10월7일까지 55일간 전남 광산군민 안종현(당시 63)씨를 시작으로 경기도 평택, 양주, 시흥, 수원 등 전국 9개 지역의 외딴집에서 17명을 살해했다.

가장 참혹한 살인으로는 평택의 외딴 초가집에 살던 할머니(당시 71)와 손주(당시 5·7·11세)를 장도리로 가격해 살해한 사건과 시흥군의 20대 여성을 강간한 후 부엌칼로 가격해 살해한 사건이 꼽힌다. 시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서 피해여성의 자녀인 생후 3개월 된 아기도 발로 짓밟아 내장 파열시켜 살해하기도 했다. 피해자의 혈흔이 묻은 청바지를 세탁소에 맡겼다가 세탁소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힌 김대두는 1976년 12월28일에 사형됐다.


다음으로 알려진 연쇄살인은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재조명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이다. 1986년 9월19일부터 1991년 4월3일까지 여성 10명이 살해된 이 사건은 2006년 4월2일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1986년 9월19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에서 하의가 벗겨진 노인(당시 71세)이 목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된 데 이어 불특정 다수 여성 9명이 강간 살해됐다.
 

피해자 전원이 태안읍 반경 2km 이내에서 살해돼 동일범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180만명의 경찰이 동원돼 수사를 벌였으나 3000여명이 용의자로 지목된 채 미제사건으로 분류되고 말았다. 7·9·10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3명이 자살하는 소동이 벌어져 항간에 ‘화성괴담’이 떠돌기도 했다.

1997년 2월20일 대구광역시 동구에서도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살인범 이승수(당시 21세)는 함께 잠을 자던 김(당시 27세)씨가 자신의 몸을 더듬는데 격분해 흉기로 살해한 후 도주했다. 50m 근방의 분식점에 들러 식사를 하려다 “식사 안 된다”는 종업원 이모양(18세)의 말에 또 다시 격분해 이양을 살해했으며 새벽기도를 가던 60대 여성도 살해했다. 총 4명을 살해한 이승수는 사형을 선고받아 현재도 복역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86년 불심검문 중인 방범대원 김찬일(당시 43세)씨를 살해한 혐의로 11년간 복역한 정두영(당시 32세)은 출소 직후인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16번의 강도짓을 하고 9명을 살해했다. 부산과 울산 등 경남 일대에서 살인강도 행각을 벌인 정두영은 충남 천안에서 인질강도를 저지르다 체포됐다.

1999년 6월2일 부산 서구 부민동의 한 부유층 주택에 무단침입한 정두영은 가정부의 머리와 얼굴이 으스러질 정도로 가격해 살해했으며 2000년 3월11일 부산 서구 서대신동 고급 주택에서 두 명의 여성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살해했다. 같은 해 4월8일에는 DCM철강 정진태 회장의 자택에 침입해 정회장과 가정부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유영철(당시 34세)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했다. 유영철은 주로 80대 이상의 노인을 범행대상으로 삼았으며 8월13일 구속 기소돼 ‘이문동살인사건’을 제외한 20명 살인범죄의 유죄가 인정, 사형 선고를 받았다. 미국 잡지 <라이프>의 ‘20세기 대표 연쇄살인자 30인’에 선정돼 역대 최악의 살인마로 통한다.

유영철과 살인수법이 비슷한 살인범 정남규는 2004년 2월26일부터 2년간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1월14일 경기도 부천시의 한 공터 놀이터에서 놀던 초등학생 2명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후 인근 야산에 암매장한 데 이어 20대 여성 두 명도 둔기로 가격해 살해했다.


또 조선족 김모씨는 옆구리와 가슴 등 4곳을 칼에 찔렸고, 군포시 산본동에서 우유배달을 하던 김모씨도 20차례 칼에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당시 영화 <살인의 추억>의 유행으로 ‘서울판 살인의 추억’으로 주목받은 정남규는 2006년 4월22일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정남규는 2009년 11월21일 독방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 7명이 연쇄적으로 납치·살해된 ‘경기서남부부녀자연쇄살인사건’도 발생했다. 강호순은 납치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한 후 인근 절벽 및 농가에 암매장했다. 

길가다 ‘푹’ 묻지마살인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살인을 저지른 연쇄살인범들이 있는가 하면, 동시간대에 불특정 다수를 무차별 살해한 묻지마살인범들도 최근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특히 군부대의 총기난사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다.

1982년 4월26일, 청와대 근무요원을 지낸 우범곤 순경(당시 26세)이 지방 발령 및 동거녀와의 불화에 인근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2정과 실탄 180발, 수류탄 7발을 훔친 후 62명을 살해하고 33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우범곤은 우체국에 들러 집배원과 전화교화원을 살해해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시킨 후 경남 의령군 궁류면 일대 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트렸다. 이튿날 새벽 5시 평촌리의 한 가정집에서 자고 있던 일가족 5명을 깨워 함께 자폭했다.

1991년 10월17일,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의 한 나이트클럽에서는 농부 김정수(당시 29세)가 무대 위에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 16명이 사망했다. 그는 옷이 누추하다는 이유로 출입을 제지 받자 격분해 범행을 일으킨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아동황산테러사건’은 1999년 5월20일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에서 김태완(당시 6세)군이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황산 테러를 당한 사건이다. 황산테러를 당한 김태완군은 실명과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49일 만에 숨졌다. 경찰은 2013년과 2014년에 재수사를 벌였으나 용의자를 좁히지 못했다. 이 사건은 2014년 7월7일부로 공시시효가 만료됐다.

최대 참사로 꼽히는 ‘대구지하철화재참사’는 지난 2003년 2월18일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했다. 이 화재참사로 192명이 사망하고 21명이 실종됐으며 151명이 부상당했다. 방화범 김대한(당시 56세)은 경찰 조사에서 뇌졸중으로 오른쪽 상·하반신의 장애 및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게 되자 삶을 비관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대한은 이듬해인 2004년 8월30일 지병 악화로 사망했다.
 

2005년 6월19일에 발생한 ‘연천군부대총기난사사건’으로 28사단 소속 GP 간부 1명과 병사 7명이 사망했다. 김동민 일병이 내무실에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기관단총 44발을 난사해 현장에서 8명 모두 즉사했다. 당시 연천군총기사건유가족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마련해 김동민 일병의 단독 범행이 아닌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현재 김동민 일병은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다.

지난 5월13일에는 서울 서초구 소재의 한 예비군훈련장에서 사격훈련 도중 한 예비군이 동료 예비군 4명에게 총기를 난사해 3명이 사망했다. 사건 직후 자살한 가해자에게서 범행 계획을 적은 유서가 발견됐다.

벌레 취급하는 엽기살인


살인범들은 살해 대상자에게 독극물을 먹이거나 살인 후 사체를 토막 내는 등 극악무도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발생한 ‘파주전기톱살인사건’과 ‘시화호토막살인사건’, ‘상주농약사이다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2012년 4월1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거주하던 조선족 오원춘이 28세 여성을 납치한 후 목 졸라 살해했다.

범행 직전 여성에게 두 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경찰이 주변을 수사하던 중 스패너로 여성을 내려친 후 목 졸라 살해했다. 이후 오원춘은 사체를 358점으로 토막내 여행용 가방과 비닐봉지에 담아 팔달산에 버렸다. 검찰은 오원춘이 장기매매 목적으로 여성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원춘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지난해 5월26일, 파주에서 핸드폰 채팅어플로 성매매를 해온 A(당시 37세, 여)씨가 모텔에서 성매수자 B(당시 50세, 남)씨의 신체 41곳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A씨는 B씨의 사체를 전기톱으로 토막 낸 후 인천 남동구의 한 공장 앞과 파주시의 농수로에 상·하반신을 나눠 버렸다. A씨는 범행 직후 B씨의 신용카드로 귀금속을 구매하고 다른 남성과의 성매매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A씨에 대해 3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같은 해 12월4일, 수원시의 팔달산에서 얼굴과 팔, 다리가 없는 상반신 사체가 비닐봉투에 담긴 채 발견됐다. 당시 신장으로 추정되는 장기 일부만 있고 심장, 간 등의 주요 장기는 없었다. 사체 발견 지역은 오원춘 사건 발생 지역에서 1km도 채 되지 않은 곳이었다.

일주일 후 수원천 매세교 인근에서 검은색 비닐봉투에 담긴 살점과 속옷이 추가 발견됐다. 두 장소에서 발견된 사체 일부가 동일인이라는 국과수 감정결과가 나오자 경찰은 피해자와 동거한 박춘봉을 살인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2월4일,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일대에서 토막 사체가 발견됐다. 인근 거주자 박(당시 67세, 여)씨의 실종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박씨의 별채에 불이 난 점 등을 수상히 여겨 별채에 세 들어 살던 김(당시 58세, 남)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조사 결과, 김씨가 내다버린 육절기(고기뼈를 자르는 기계)에서 박씨의 혈흔과 인체 조직이 발견됐으며 인터넷에 ‘인체해부학’ 등을 검색한 사실을 확보해 김씨를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박씨가 김씨의 구애를 거절하고 방을 빼라고 한 데 앙심을 품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7일, 조선족 김하일이 토막 사체를 유기하다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경기도 시흥시 시화방조제에서 토막난 김하일의 부인 사체가 발견된 지 이틀이 지난 후였다. 김하일은 부부싸움에 우발적으로 아내를 망치로 때린 후 목 졸라 살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하일은 아내의 사체를 화장실에서 부엌칼로 토막낸 후 시화방조제와 조카의 집 등 4곳에 유기했다.

지난 7월14일,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금계1리의 한 마을에서 초복 잔치를 하던 7명의 할머니가 사이다를 마신 후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태에 빠졌다. 3일 후 초복 잔치에 동석했으나 유일하게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박모(당시 82세) 할머니가 긴급 체포됐으나, 직접적인 증거가 확보되지 않아 오는 12월7일부터 11일까지 5일간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기사 속 기사> 살인사건 최다 발생지역 "역시 살인의 추억"
경기 화성시 태안읍 불명예, 10건 중 4건 '집안'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 연쇄살인, 존속살인 및 여성살인 범죄자를 중심으로’연구자료에 따르면, 살인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는 ‘집안’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10년간 살인사건의 발생장소를 취합한 결과, 집안 발생이 41∼45%의 비율로 나타났으며, 이어 노상(16∼19%), 기타(12∼18%), 숙박 및 유흥업소(8∼10%), 상점 및 시장(2~5%), 야외(1∼5%) 순으로 나타났다. 이외 사무실과 공사장·창고·공지, 기관의 살인범죄 비율은 1∼3%대였다. 10년간 평균치는 집안(43.4%), 노상(18.3%), 기타(15.1%), 숙박·유흥업소(9.2%), 야외(3.5%), 상점·시장(3.4%), 사무실(2.3%), 공사장·창고·공지(2.1%), 기관(1.9%), 교통수단(0.8%) 순이다.

살인범죄를 포함한 전체 범죄 발생도가 가장 높은 장소는 노상(60.8%), 기타(11.1%), 집안(10.4%), 숙박·유흥업소(5.1%) 순으로 나타나 살인범죄 발생 장소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의 최다 발생 지역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으로 나타났다.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에서 3명, 안녕리에서 2명, 황계리·병점리에서 각 1명씩 살해돼 총 7명이 살해됐다.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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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