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쥐락펴락 증권가 슈퍼개미들 정체

대박 아니면 쪽박 ‘중박은 없다’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주식시장에서 개미는 약한 존재다. 기관에 치이고 외국에 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개미 중에는 기업의 주가 흐름을 바꿔 놓을 만한 ‘머니파워’를 가진 개미도 있다. 이들을 시장에선 ‘슈퍼개미’라고 부른다. 그들을 조명했다.

지난달 주식시장에 눈길을 끈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박영옥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슈퍼개미 박영옥씨(현 스마트인컴 대표)가 투자한 기업들에 주가조작설이 돌면서 해당 기업들이 줄줄이 하한가를 맞았다. 

잇단 불패신화 
투자처에 관심
 
급락을 맞은 종목을 살펴보면 조광피혁, 대한방직, 디씨엠, 삼양통상, 아이에스동서 등 박영옥씨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기업에서 큰폭 하락했다. 금융조사 당국은 공식적으로 ‘박영옥 주가조작설’에 대한 소문에 사실무근이는 입장을 밝혔다.
 
거래소 시장감시본부 관계자는 “관련 종목에 대해 모니터링 중인데 시장 루머처럼 세무조사 등 불공정거래 관련 특이사항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시장 심리가 워낙 안 좋고, 악재에 민감한 코스닥 종목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다른 종목 대비 과도하게 빠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박영옥 사태는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슈퍼개미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됐다.
 

주식시장 판을 쥐고 흔든 박영옥씨는 전형적인 개미의 성공사례로 평가된다. 그는 가난했다. 그래서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는 중졸이었던 학력을 극복하기 위해 방송통신고등학교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장을 딴 후 중앙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라는 학력은 자연스럽게 주식시장으로 그를 인도했다.
 
졸업 이후 대신증권, 교보증권 등을 거치며 주식시장에서 전문가로 거듭났다. 1997년에는 교보증권 압구정 지점장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IMF 여파로 사글세를 전전하는 등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그는 회사를 나와 개미가 됐다. 그가 가지고 있던 종잣돈은 4500만원. 전업투자자의 길로 들어선 그는 2001년 9·11 대테러로 주가가 폭락했을 당시 주식을 사들여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이후에도 그는 연 수익률 50%(지난해 기준)의 연 평균 수익률을 꾸준히 기록하면서 슈퍼개미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있는 자산은 2000억원 수준으로 그는 기업 ‘사냥꾼’의 심정이 아닌 ‘농부’의 마음을 기본으로 하는 투자법을 설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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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수 카이스트 교수도 슈퍼개미로 통한다. 김 교수는 지난 3월 25일 부산방직의 주식을 5%이상 매수하면서 최고주주에 올르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가 주식을 처음 시작한 것은 교수의 월급으로 생활이 빠듯하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교수 월급으로 자녀들의 결혼자금과 자신의 노후자금 그리고 생활비까지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 주식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그는 주식관련 책 200권을 구입해 6개월 동안 연구했다고 한다.
 
 
그가 책을 통해 내린 결론은 국내 주식시장이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산대비 시가총액의 수준이 현저히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기본 투자원칙으로 삼았다. 김 교수는 이 같은 투자 철학을 바탕으로 지인과 은행대출을 통해 3억원의 종잣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10년만에 500억원의 자산가가 됐다. 이 때문에 그는 '한국의 워렌버핏'으로 통한다.
 

손명완씨도 슈퍼개미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사다. 경리일을 하던 손씨는 외환위기 때 주식을 시작해 숱한 실패를 맛봤다. 여기까지는 개미들이 겪는 흔한 주식 실패담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손씨는 실패를 바탕으로 투자원칙을 세우면서 상황을 반전시켰다. 장기간 보유한 주식이 수익률이 높다는 것을 발견한 것.
 
가치투자에 눈을 뜬 손씨는 5000만원의 초기 자본금을 1000억원대로 불렸다. 그가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는 18곳이다. 동원금속의 경우는 22.7%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단순 투자목적으로 이들 기업에 자금을 투입했지만 그가 지분을 사고파는 것을 시장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손씨의 입김도 상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성훈씨도 로만손의 지분 8.3%(6월30일 기준)을 쥐고 있는 슈퍼개미다. 2003년 처음 주식을 시작한 정씨는 여느 개미와 마찬가지로 감에 의한 투자를 고수했다. 그 감이 처음에는 통한 듯 했다. 초기 자본금 400만원을 처음 투자한 ‘현대상선’은 이라크 발 이슈로 3배 가까이 폭등했다.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확고한 투자철학
성공투자 밑거름
 
가족들의 돈 1억원을 끌어모은 자금으로 그는 더 큰 수익을 내려했지만 30%에 가까운 돈을 날렸다. 이후 그는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세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기업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한 투자철학을 구축했다. 결국 그는 슈퍼개미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현재 쥐고 있는 주식의 평가액은 대략 260억원(7월 기준)이다. 중소형 기업들에게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서울대 명예교수 한상진 교수의 아들 한세희씨도 슈퍼개미다. 그가 주식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포항제철 주식을 손주의 명의로 7주를 사주면서 그에게 주식시장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본격적으로 주식시장에 참여한 것은 대학 3학년(1998년)부터였다. 당시는 IMF로 바닥을 알 수 없던 시기였다.
 
종잣돈은 그동안 모아둔 400만원 남짓. 이 돈은 83억원(7월 기준)으로 불어났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가 처음 산 ‘나산’의 주식은 매수한지 하루만에 상장폐지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한씨는 모든 생활을 주식에 맞췄다. 온라인 주식투자 모임에 꾸준히 참여했고, 여기서 만난 인연들과 합숙을 하기도 하면서 ‘내공’을 쌓아갔다. 결국 수많은 인연들을 통해 기업을 보는 눈을 키운 한씨는 하이트론씨스템즈를 24.5%(6월 기준)를 보유하면서 이 회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그는 또한 자신에게 수익을 안겨준 회사의 일부 주식(평가가치 3억원)을 해당 회사 임직원들에게 기부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주식의 소유주가 일부 임원급에 주식을 나누주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직원들에게까지 주식을 나눠주는 사례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주식을 기부하면서 “돈은 버는 것 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지한씨도 슈퍼개미다. 그가 보유한 주식 평가액(24억원)이 큰 규모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국일제지를 7.19% 보유하면서 3대주주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배씨의 직업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반찬가게를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관련 커뮤니티에 반찬가게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면서 ‘반찬가게 슈퍼개미’라는 애칭이 붙었다.
 
부실기업 투자해 수백억원 차익
이면에 투자 기법·의도 논란도
 

이주영씨도 젊은 나이에 투자를 시작해 슈퍼개미로 발돋움했다. 그의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그의 나이 열일곱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의 유산을 어머니가 주식에 투자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그렇지만 그는 어머니로부터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연스레 투자에 대한 지식을 익혔다. 결국 이씨는 스무살 무일푼에서 10년만에 100억대의 자산가로 성장했다. 현재 그는 방송 등에 출연하며 주식시장에서 개미들의 선생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격투가 출신 슈퍼개미도 있다.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는 고명환씨. 고 씨는 연간 10억원이 넘는 투자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잘나가던 파이터였다. 프로무대에서 그는 총 11번 싸워 10승(1패)을 거뒀다. 하지만 그는 군대를 다녀온 뒤 본인의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고 판단해 과감히 격투가의 삶을 접었다. 그는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 대한통운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직장 생활 중에 결혼을 하는 등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나갔다.
 
직장 생활 중 우연히 알게 된 주식시장은 그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주식을 통해 하루에 수십만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의 ‘파이터 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그에게 초심자의 행운이 따랐다. 그가 투자에 나선 시기는 리먼 사태 이후 주식시장이 평가절하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가 감으로 찍은 주식은 우상향했다. 고씨가 투자한 자본금은 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초심자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작전주, 테마주 등 감에 의존한 투자가 원인이 됐다. 어느새 그는 3억원에 가까운 빚을 져야했다. 그는 위기의 순간 기본으로 돌아갔다.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을 기초로, 글로벌 경제에 대한 흐름을 접목시켜 이른바 ‘수급단타매매기법’이라는 자신만의 투자철학을 세운 것이다. 결국 그는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고씨는 연 수익률 10억원을 올리는 슈퍼개미로 성장했으며, 현재 증권투자 아카데미의 스타강사로 개미들에게 투자 노하우를 가르치고 있다.
 
전주의 ‘목포 세발낙지’ J모씨는 몰락한 슈퍼개미로 통한다. 90년대 중후반 증권사에서 잘나가던 목포 세발낙지는 이후 개인투자자로 전업했다. 전업 초기 그는 승승장구 했지만 이후 시장의 흐름을 읽는 데 실패하면서 개미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최근 그는 무리하게 지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아 고소를 당했으며, 법원은 기소된 J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몰락한 개미들
의혹의 개미들
 
최근에는 B씨가 슈퍼개미 사칭 논란에 휘말렸다. 그는 인기 케이블 방송 등에 출연하며 국내 최연소 애널리스트라는 점과 자신의 소유하고 있는 건물을 자랑했다. 하지만 A 신문사가 그의 최연소 애널리스트 기록과 그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개미투자자들 사이에 의혹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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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