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쥐락펴락 증권가 슈퍼개미들 정체

대박 아니면 쪽박 ‘중박은 없다’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주식시장에서 개미는 약한 존재다. 기관에 치이고 외국에 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개미 중에는 기업의 주가 흐름을 바꿔 놓을 만한 ‘머니파워’를 가진 개미도 있다. 이들을 시장에선 ‘슈퍼개미’라고 부른다. 그들을 조명했다.

지난달 주식시장에 눈길을 끈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박영옥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슈퍼개미 박영옥씨(현 스마트인컴 대표)가 투자한 기업들에 주가조작설이 돌면서 해당 기업들이 줄줄이 하한가를 맞았다. 

잇단 불패신화 
투자처에 관심
 
급락을 맞은 종목을 살펴보면 조광피혁, 대한방직, 디씨엠, 삼양통상, 아이에스동서 등 박영옥씨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기업에서 큰폭 하락했다. 금융조사 당국은 공식적으로 ‘박영옥 주가조작설’에 대한 소문에 사실무근이는 입장을 밝혔다.
 
거래소 시장감시본부 관계자는 “관련 종목에 대해 모니터링 중인데 시장 루머처럼 세무조사 등 불공정거래 관련 특이사항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시장 심리가 워낙 안 좋고, 악재에 민감한 코스닥 종목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다른 종목 대비 과도하게 빠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박영옥 사태는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슈퍼개미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됐다.
 

주식시장 판을 쥐고 흔든 박영옥씨는 전형적인 개미의 성공사례로 평가된다. 그는 가난했다. 그래서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는 중졸이었던 학력을 극복하기 위해 방송통신고등학교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장을 딴 후 중앙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라는 학력은 자연스럽게 주식시장으로 그를 인도했다.
 
졸업 이후 대신증권, 교보증권 등을 거치며 주식시장에서 전문가로 거듭났다. 1997년에는 교보증권 압구정 지점장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IMF 여파로 사글세를 전전하는 등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그는 회사를 나와 개미가 됐다. 그가 가지고 있던 종잣돈은 4500만원. 전업투자자의 길로 들어선 그는 2001년 9·11 대테러로 주가가 폭락했을 당시 주식을 사들여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이후에도 그는 연 수익률 50%(지난해 기준)의 연 평균 수익률을 꾸준히 기록하면서 슈퍼개미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있는 자산은 2000억원 수준으로 그는 기업 ‘사냥꾼’의 심정이 아닌 ‘농부’의 마음을 기본으로 하는 투자법을 설파하고 있다.
 
코스피·코스닥 미다스 손 ‘누구냐 니들’
주식시장 스타들…베팅 천재? 먹튀 본좌?
 
김봉수 카이스트 교수도 슈퍼개미로 통한다. 김 교수는 지난 3월 25일 부산방직의 주식을 5%이상 매수하면서 최고주주에 올르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가 주식을 처음 시작한 것은 교수의 월급으로 생활이 빠듯하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교수 월급으로 자녀들의 결혼자금과 자신의 노후자금 그리고 생활비까지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 주식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그는 주식관련 책 200권을 구입해 6개월 동안 연구했다고 한다.
 
 
그가 책을 통해 내린 결론은 국내 주식시장이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산대비 시가총액의 수준이 현저히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기본 투자원칙으로 삼았다. 김 교수는 이 같은 투자 철학을 바탕으로 지인과 은행대출을 통해 3억원의 종잣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10년만에 500억원의 자산가가 됐다. 이 때문에 그는 '한국의 워렌버핏'으로 통한다.
 

손명완씨도 슈퍼개미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사다. 경리일을 하던 손씨는 외환위기 때 주식을 시작해 숱한 실패를 맛봤다. 여기까지는 개미들이 겪는 흔한 주식 실패담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손씨는 실패를 바탕으로 투자원칙을 세우면서 상황을 반전시켰다. 장기간 보유한 주식이 수익률이 높다는 것을 발견한 것.
 
가치투자에 눈을 뜬 손씨는 5000만원의 초기 자본금을 1000억원대로 불렸다. 그가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는 18곳이다. 동원금속의 경우는 22.7%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단순 투자목적으로 이들 기업에 자금을 투입했지만 그가 지분을 사고파는 것을 시장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손씨의 입김도 상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성훈씨도 로만손의 지분 8.3%(6월30일 기준)을 쥐고 있는 슈퍼개미다. 2003년 처음 주식을 시작한 정씨는 여느 개미와 마찬가지로 감에 의한 투자를 고수했다. 그 감이 처음에는 통한 듯 했다. 초기 자본금 400만원을 처음 투자한 ‘현대상선’은 이라크 발 이슈로 3배 가까이 폭등했다.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확고한 투자철학
성공투자 밑거름
 
가족들의 돈 1억원을 끌어모은 자금으로 그는 더 큰 수익을 내려했지만 30%에 가까운 돈을 날렸다. 이후 그는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세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기업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한 투자철학을 구축했다. 결국 그는 슈퍼개미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현재 쥐고 있는 주식의 평가액은 대략 260억원(7월 기준)이다. 중소형 기업들에게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서울대 명예교수 한상진 교수의 아들 한세희씨도 슈퍼개미다. 그가 주식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포항제철 주식을 손주의 명의로 7주를 사주면서 그에게 주식시장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본격적으로 주식시장에 참여한 것은 대학 3학년(1998년)부터였다. 당시는 IMF로 바닥을 알 수 없던 시기였다.
 
종잣돈은 그동안 모아둔 400만원 남짓. 이 돈은 83억원(7월 기준)으로 불어났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가 처음 산 ‘나산’의 주식은 매수한지 하루만에 상장폐지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한씨는 모든 생활을 주식에 맞췄다. 온라인 주식투자 모임에 꾸준히 참여했고, 여기서 만난 인연들과 합숙을 하기도 하면서 ‘내공’을 쌓아갔다. 결국 수많은 인연들을 통해 기업을 보는 눈을 키운 한씨는 하이트론씨스템즈를 24.5%(6월 기준)를 보유하면서 이 회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그는 또한 자신에게 수익을 안겨준 회사의 일부 주식(평가가치 3억원)을 해당 회사 임직원들에게 기부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주식의 소유주가 일부 임원급에 주식을 나누주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직원들에게까지 주식을 나눠주는 사례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주식을 기부하면서 “돈은 버는 것 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지한씨도 슈퍼개미다. 그가 보유한 주식 평가액(24억원)이 큰 규모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국일제지를 7.19% 보유하면서 3대주주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배씨의 직업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반찬가게를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관련 커뮤니티에 반찬가게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면서 ‘반찬가게 슈퍼개미’라는 애칭이 붙었다.
 
부실기업 투자해 수백억원 차익
이면에 투자 기법·의도 논란도
 

이주영씨도 젊은 나이에 투자를 시작해 슈퍼개미로 발돋움했다. 그의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그의 나이 열일곱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의 유산을 어머니가 주식에 투자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그렇지만 그는 어머니로부터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연스레 투자에 대한 지식을 익혔다. 결국 이씨는 스무살 무일푼에서 10년만에 100억대의 자산가로 성장했다. 현재 그는 방송 등에 출연하며 주식시장에서 개미들의 선생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격투가 출신 슈퍼개미도 있다.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는 고명환씨. 고 씨는 연간 10억원이 넘는 투자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잘나가던 파이터였다. 프로무대에서 그는 총 11번 싸워 10승(1패)을 거뒀다. 하지만 그는 군대를 다녀온 뒤 본인의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고 판단해 과감히 격투가의 삶을 접었다. 그는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 대한통운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직장 생활 중에 결혼을 하는 등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나갔다.
 
직장 생활 중 우연히 알게 된 주식시장은 그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주식을 통해 하루에 수십만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의 ‘파이터 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그에게 초심자의 행운이 따랐다. 그가 투자에 나선 시기는 리먼 사태 이후 주식시장이 평가절하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가 감으로 찍은 주식은 우상향했다. 고씨가 투자한 자본금은 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초심자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작전주, 테마주 등 감에 의존한 투자가 원인이 됐다. 어느새 그는 3억원에 가까운 빚을 져야했다. 그는 위기의 순간 기본으로 돌아갔다.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을 기초로, 글로벌 경제에 대한 흐름을 접목시켜 이른바 ‘수급단타매매기법’이라는 자신만의 투자철학을 세운 것이다. 결국 그는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고씨는 연 수익률 10억원을 올리는 슈퍼개미로 성장했으며, 현재 증권투자 아카데미의 스타강사로 개미들에게 투자 노하우를 가르치고 있다.
 
전주의 ‘목포 세발낙지’ J모씨는 몰락한 슈퍼개미로 통한다. 90년대 중후반 증권사에서 잘나가던 목포 세발낙지는 이후 개인투자자로 전업했다. 전업 초기 그는 승승장구 했지만 이후 시장의 흐름을 읽는 데 실패하면서 개미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최근 그는 무리하게 지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아 고소를 당했으며, 법원은 기소된 J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몰락한 개미들
의혹의 개미들
 
최근에는 B씨가 슈퍼개미 사칭 논란에 휘말렸다. 그는 인기 케이블 방송 등에 출연하며 국내 최연소 애널리스트라는 점과 자신의 소유하고 있는 건물을 자랑했다. 하지만 A 신문사가 그의 최연소 애널리스트 기록과 그가 소유하고 있는 건물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개미투자자들 사이에 의혹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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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