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39)조혜진 아성에이치디 대표

회사 살리려다 빚더미 앉았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39화는 212억9900만원을 체납한 조혜진 아성에이치디(주) 대표다.

아성에이치디(주)는 2003년 11월19일 설립됐다. 아성에이치디(주)의 전신은 자동차 수입 판매업을 주업종으로 신고한 에이원씨엠코리아(주)다. 무역회사로 출발한 아성에이치디(주)는 전체 직원이 10명 남짓한 중소기업으로 소개됐다. 건설회사로 전환한 뒤에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연매출은 500억∼800억원에 달했다. 매출 대부분은 수도권 아파트 개발 사업에서 얻은 분양 수익에 집중됐다.

잘나가다…

회사 법인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아성에이치디(주)의 사업 목적으로는 ▲주택건설업 ▲부동산 분양 및 매매업 ▲부동산 임대업 등이 명시됐다. 회사 자본금은 5000만원에서 2억원을 거쳐 3억원까지 늘었다. 사무실은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 일대를 전전했다. 에이원씨엠코리아(주)의 임원들은 아성에이치디(주)가 건설사업에 뛰어들자 일제히 사임했다. 주식은 회사 대표이사인 조혜진씨와 이사 전모씨, 이들과 특수관계인으로 추정되는 전모씨가 각각 나눠가졌다.

하지만 주식은 곧 휴지조각이 됐다. 아성에이치디(주)는 2011년 사실상 폐업 수순을 밟았다. 개발 과정에서 생긴 거액의 채무를 변제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같은 시기 세무당국은 아성에이치디(주)에 세금을 부과했다. 아성에이치디(주)는 국세청과 서울시, 경기도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다. 체납한 세금의 합은 212억9900만원으로 집계됐다.

아성에이치디(주)는 2010년부터 근로소득세 등 3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국세청이 거둘 세금은 145억2200만원이다. 아성에이치디(주)는 2010년 7월부터 지방소득세 등 15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서울시가 징세할 체납액은 60억6800만원이다.


아성에이치디(주)는 경기도가 지난해 12월 각 관할 지방자치단체로 발송한 공고에서도 이름이 발견됐다. 같은 달 공개된 지자체 시보에는 아성에이치디(주)가 취득세 등 654건의 세금을 체납했고, 밀린 지방세는 7억900만원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세금을 받지 못한 고양시는 아성에이치디(주)의 사무실로 수차례 공시송달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60억6800만원 국세청 145억2200만원
연매출 500억 건설사 부동산 담보신탁 소송

하지만 조씨 등은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발송한 우편은 수취인불명으로 처리됐다. 현재 아성에이치디(주)의 사무실은 강남구 삼성동을 떠나 영등포구 문래동에 자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의 자택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이현로에 있는 한 고급 아파트다. 아성에이치디(주)의 전 대표이사 김모씨도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는 김씨로부터 2006년 12월 아성에이치디(주)의 대표직을 물려받았다.

아성에이치디(주)가 본격적으로 분양사업을 벌인 시기는 2007~2009년이다. 주무대는 경기도 일산 신도시였다. 시행사 아성에이치디(주)는 사업 파트너로 진흥기업과 임광토건을 선택했다. 2007년 6월 진흥기업이 낸 공시를 보면 진흥기업은 아성에이치디(주)로부터 총 공사비 731억2600만원에 이르는 일산 탄현 임광·진흥아파트 신축공사 계약을 수주한 것으로 돼 있다. 731억2600만은 진흥기업의 당시 매출 대비 14.8%에 해당하는 액수다.

아성에이치디(주)가 시행한 아파트 신축공사는 정부 정책으로 추진된 공공주택 공급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공동 시공사인 임광토건은 자사 브랜드 아파트인 '그대家' 905세대를 분양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채권은행인 경남은행은 일산 탄현 임광·진흥아파트 신축공사와 관련 ABS(자산유동화증권)를 발행해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경남은행 측은 당시 "분양부담이 적어 원리금 회수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시공사인 진흥기업은 솔로몬상호저축은행 등 금융권 6곳으로부터 280억원을 대출받아 시행사에 안겼다. 당시 진흥기업은 아성에이치디(주) 외에도 여러 중소시행사에 주택PF 보증, 중도금 보증 등을 서주면서 수천억원의 채무를 떠안았다. 진흥기업은 2011년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아성에이치디(주)도 같은 시기 진흥기업과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2010년 12월 기준 작성된 결산보고서를 보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억300만원으로 전년대비(300억7000만원) 99%가 줄었다. 토지와 건물 등을 포함한 유형자산 역시 89억9000만원에서 49억2000만원으로 감소했다. 진흥기업, 임광토건 등에서 빌린 단기차입금은 275억4000만원으로 매달 이자를 갚아나가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성에이치디(주)는 아파트 분양계약 해지와 미분양이 잇따르면서 2010년 한 해 동안 239억88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계약을 완료한 수분양자들은 분양대금을 반환하라며 아성에이치디(주)를 상대로 원고소가 85억원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아성에이치디(주)가 소유한 재산에는 빠짐없이 가압류 처분이 들어왔다. 조씨 등에게 남은 건 채권자들이 보낸 독촉장뿐이었다.

아성에이치디(주)가 채무를 갚을 수 없게 되자 채권자들은 2011년 1월 한국토지신탁을 상대로 '한국토지신탁과 아성에이치디(주) 사이에 체결한 토지신탁 계약을 취소하라'는 내용의 사해행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금액은 199억5000만원이었다.

아성에이치디(주)는 회사 자금압박이 심해지자 2009년 11월 한국토지신탁과 부동산담보신탁 계약을 맺고 아파트 부지 등을 위탁했다. 채권자들은 아성에이치디(주)가 재산을 빼돌려 빚을 갚지 않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소송은 2014년 6월에야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됐다. 법원은 한국토지신탁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아성에이치디(주)가 사해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성에이치디(주)가 일산 아파트 분양사업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 문제의 부동산을 한국토지신탁에 위탁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 같은 결정이) 주식회사의 체무변제력이나 자력을 회복하고, 관련 금융기관, 대다수 수분양자, 시공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란 판단 아래 이뤄졌다"라고 판시했다.

비록 누명은 벗었지만 아성에이치디(주)는 법인 소유의 재산을 모두 빼앗겼다. 서울 영등포구 소재 3억원대 오피스텔은 법원 경매에 넘어갔다. 차명으로 관리하던 임차인은 1억여원의 보증금을 강제로 빼앗겼다. 시공사로부터 선분양 받은 5억원대 아파트 서너채도 각각 경매 절차를 밟고 있다. 우선순위 채권자가 많아 세무당국이 세금을 환수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쫓기는 신세

서울시 38세금징수과 관계자는 "체납 기록이 있는 법인의 경우 대부분 폐업한 회사들인데 조사를 해도 세금이 나오지 않는다"라며 "남은 건 법인 대표자에 대한 2차 납세자 지정인데 이 또한 쉽지 않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망해가는 회사를 그래도 자기 돈을 들여 살리고자 한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손가락질하기 어렵다"라며 "대다수 사주들은 회사가 어려우면 법인 돈부터 빼돌려 은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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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