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빛과 그림자'

'검찰 최정예' 여당엔 충견 야당엔 맹견?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서울중앙지검 특수부(특별수사부) 인력이 대폭 확대됐다. 지난 26일 검찰은 "특수부 검사 7명을 충원할 것"이라고 알렸다. 사실상 특수부에게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역할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검찰 안팎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수사력이 증강된다는 점은 기대 요인이지만 그 수사력이 어디 쓰일 것인지를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거린다. '검찰 최정예'로 불리는 특수부의 화려한 이면에는 늘 그림자가 드리웠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검찰 내 최정예 조직으로 꼽힌다. 박근혜정부 들어 중수부가 폐지되면서 특수부가 갖는 무게감은 남달랐다. 청와대는 정권 최고 스캔들로 비화될 뻔했던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맡겼다. 불거진 혐의만 놓고 보면 '대형사건'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특수부를 투입한 것이다.

가중된 업무
수사력 한계

특수부는 그간 청와대의 '하명수사'를 처리하면서 동시다발적인 대기업 수사를 병행했다. 지난 봄 개시된 포스코그룹에 대한 사정작업도 특수부의 몫이었다.

그러나 제한된 인력으로 하명·고발·인지 사건을 모두 벌리다보니 그 한계가 뚜렷했다. 요란하게 시작한 '포스코 수사'의 경우 그룹 수뇌부에 대한 영장 청구가 기각되면서 체면을 구긴 특수부다.

언론은 검찰의 수사력에 의문을 표했다. 내부적으로는 정권 차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우려했다고 한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던 검찰은 특수부 인력을 대거 보강하는 쪽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이번 개편안은 김진태 검찰총장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나온 터라 의외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특수부는 4개 부서를 기반으로 총 8팀 체제가 가동된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는 특수1∼4부가 있다. 검찰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팀 체제로 개편되기 이전의 특수부는 다음과 같이 운영됐다.

특수1∼4부에는 각 부서마다 한 명의 부장검사가 있다. 이들 부장검사는 또 한 명의 부부장검사를 지휘한다. 각 부부장검사에 딸린 평검사는 4∼5명 수준이다.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차장검사다.

그런데 검찰은 이번 개편에서 각 부서에 부부장검사를 한 명씩 더 투입했다. 부서당 2팀을 만든 셈이다. 이 같은 개편의 이유는 부서 간 인력 이동을 자유롭게 하고, 필요에 따라 '특정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함으로 파악된다.

예를 들어 기존 1팀 체제에선 특수1부와 특수2부의 공조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각 부서마다 진행 중인 사건이 달라 맡은 일을 처리하기도 빠듯했다. 하지만 2팀 체제에선 1팀이 빠지더라도 남은 1팀이 공소유지 등을 담당하면 된다. 또 지휘체계의 정점에 있는 차장검사가 특정 사건을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특수1∼4부의 동시 투입을 고려할 수 있다.

인력 대폭 확대…1∼4부 2팀 체제로
사실상 중수부 역할 '기대반 우려반'

특수부가 이처럼 팽창하게 된 원인을 놓고 일각에선 '차기 권력'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특수부의 '몸집 불리기'는 김 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언급한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식 수사'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최근 특수부에 정통한 한 검찰 관계자는 "중수부가 없는 이상 이를 대체할 특수부 인력 보강이 절실하다"라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번 결정이 수사력 증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적인 특수 수사의 경우 피의자가 지능범일 때가 많은데 우리 입장에선 핵심 증거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라며 "검찰이 경찰과 다른 점은 수사에 착수했을 때 증거 확보뿐 아니라 공소 유지까지 내다보고 사건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특수부 출신들은 수사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김 총장 재임 시기 단행된 '하방 인사'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앞서 김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을 상위기관인 법무부나 대검에 올리던 관행을 깨고 지방으로 발령 냈다. 대형 수사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칼잡이(특수수사에 정통한 검사를 지칭하는 은어)'들 역시 지방으로 떠났다.

몸집 불리기
중수부 부활?

김 총장의 의도는 중앙과 지방, 특수와 형사 등을 두루 경험해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부 평가는 좋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검찰 문화는 '상명하복'과 '엘리트주의'인데 끗발이 안서는 검사가 중앙에 있으니 조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특수통의 공백은 결과적으로 검찰의 기획력과 정보력을 떨어뜨렸다. 그런데 수사력 저하가 대다수 국민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검찰 조직에서 중수부는 신화적인 존재다. 수사력만 떼어놓고 보면 근접한 부서가 없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출범 초 중수부를 폐지하는 데 합의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이유였다.

지난 2009년 대검 중수부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 아직도 검찰 안팎에선 "그때 노무현이를 구속했으면 이런 사단은 나지 않았을 텐데…"라는 말이 나온다.

안대희 전 대법관 등 대부분 특수통이 수장을 꿰찼던 중수부는 공안통의 비약과 함께 서서히 영향력을 잃었다. 참여정부 시절 '대선 자금' 수사로 살아있는 권력을 겨눴던 중수부는 이명박정부 들어 권력을 지키는 '충견'으로 변해갔다.

검찰 안팎에선 특수부에 대해 "주인도 물 수 있는 개"라는 표현을 쓴다. 한마디로 맹견이다. 공안부에 대해선 '권력을 바라보는 꽃'이란 말을 주로 쓴다. 이는 해바라기를 가리킨다. 정치 감각이 남다른 공안부와 달리 특수부 출신들은 범죄 혐의가 확인되면 좌고우면하지 않는 성향이다. 검사로서의 프라이드(자부심)가 강한 탓이라고 한다.

야당은 이 잡듯이
여당은 티 안나게

그러나 이들은 특수부이기 이전에 검찰에 소속된 검사다. 중수부와 마찬가지로 특수부는 목표 설정 과정에서 정치적인 편향성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수사다. 한명숙 수사는 특수부가 갖고 있는 '빛과 그림자'를 극명하게 나타낸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수사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말'에서 시작됐다. 당시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에게 5만달러를 건넸다"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곽 전 사장에게 '플리바게닝'을 제안하는 등 사건에 의욕을 보였다. 수사팀은 한 전 총리를 기소했을 때만 해도 유죄를 확신했다.


그런데 곽 전 사장은 진술을 바꿨다. 검찰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명숙 수사팀' 관계자는 "곽 전 사장이 한명숙 얘기를 꺼낸 건 자신을 봐달라는 의미였는데 수사팀 입장에서 무작정 봐줄 수는 없었다"라며 "우리보단 야권에서 여러 경로로 회유가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1심 선고를 앞둔 검찰은 두 번째 카드를 빼들었다. 건설업자 한만호씨로부터 한 전 총리가 거액의 수표를 받았다는 이른바 '9억원 수수' 사건이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조차 반대한 이 사건을 특수부는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들은 한 전 총리 주변을 샅샅이 털었다.

당시 검찰은 한 전 총리 차량의 하이패스 기록, 통장 입출금 내역 등은 물론이고, 그가 갔던 식당, 골프장, 백화점 등을 모조리 뒤졌다. 버려진 자필 영수증과 카드 사용기록 등을 모아 증거로 활용했다. 단종된 돈가방을 수소문해 한씨 진술과 맞추는 한편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까지 조회했다.

결정적으로 검찰은 한씨가 건넨 수표 중 1억원이 한 전 총리의 동생에게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다. 한 전 총리의 동생은 문제의 1억원을 자신의 전세 보증금으로 썼다. 수사팀 관계자는 "나는 속일 수 있지만 '200개의 눈(100여명의 특수부 인력)'을 모두 속일 수는 없다"라며 "밖에서 보기에는 편파 수사로 보여도 증거 없이 아무나 기소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약해진 수사력 포스코 한계
정치적 중립성 논란도 여전

지난 5년간 특수부는 조직의 명예를 걸고 한 전 총리와 싸웠다. 궁극적으로는 유죄 판결을 받아냈다. 특수부는 한번이라도 검찰의 타깃이 되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렇지만 특수부는 야당과 달리 정권에게 불리한 내용의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 든 기억이 가물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재임 시기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한 것이 마지막이다. 당시 채 전 총장은 특수부 검사들을 대거 투입해 진상 규명을 지시했다. 불행히도 채 전 총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지 석 달 만에 옷을 벗었다.

'채동욱호' 검찰은 출범 초기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을 상대로 나름 공정한 수사를 진행했다. 전두환 일가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친인척인 박영우 대유신소재 회장까지 수사 선상에 올렸다. 특수부에 대한 검찰 안팎의 기대가 커졌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채 전 총장이 잘려나가고 김 총장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진태호'가 나름 비중 있게 다뤘던 사건은 동양그룹 수사와 강덕수 STX그룹 회장에 대한 수사다. 이들 모두 채 전 총장이 있었던 때와 비교하면 파괴력 면에서 떨어진다는 평가다. 정치적인 사건에서는 '정윤회 문건' 수사처럼 청와대가 내려준 가이드라인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검찰은 올 2월 '부패와의 전쟁'이 선포된 직후 특수1∼4부를 모두 사건에 투입했다.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가 선창했지만 실제 주문은 더 윗선에서 이뤄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후 특수1부는 ▲자원외교 비리와 농협 대출 비리, 특수2부는 ▲포스코 비자금 수사, 특수3부는 ▲방위사업 비리와 KT&G비자금 수사, 특수4부는 ▲중앙대 특혜 의혹 수사와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의원에 대한 수사를 맡았다.

청와대 하명
지키기 급급

'부패와의 전쟁'은 대부분 지난 정권 당시 있었던 비리를 타깃으로 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물을 보인 수사는 중앙대 특혜 의혹 수사와 KT&G비자금 수사에 그쳤다. 그나마 KT&G비자금 수사는 전임인 채 전 총장 때 시작된 사건이다.

특수부는 이번에도 야당 정치인이 연루된 수사에서는 금품 수수 혐의를 밝혀내는 '신묘함'을 보였다. 박근혜정부는 임기 절반이 남은 상황에서 대대적인 사정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당장 대기업 L사에 대한 사정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쯤 되면 특수부의 인력 보강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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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