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빛과 그림자'

'검찰 최정예' 여당엔 충견 야당엔 맹견?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서울중앙지검 특수부(특별수사부) 인력이 대폭 확대됐다. 지난 26일 검찰은 "특수부 검사 7명을 충원할 것"이라고 알렸다. 사실상 특수부에게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역할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검찰 안팎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수사력이 증강된다는 점은 기대 요인이지만 그 수사력이 어디 쓰일 것인지를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거린다. '검찰 최정예'로 불리는 특수부의 화려한 이면에는 늘 그림자가 드리웠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검찰 내 최정예 조직으로 꼽힌다. 박근혜정부 들어 중수부가 폐지되면서 특수부가 갖는 무게감은 남달랐다. 청와대는 정권 최고 스캔들로 비화될 뻔했던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맡겼다. 불거진 혐의만 놓고 보면 '대형사건'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특수부를 투입한 것이다.

가중된 업무
수사력 한계

특수부는 그간 청와대의 '하명수사'를 처리하면서 동시다발적인 대기업 수사를 병행했다. 지난 봄 개시된 포스코그룹에 대한 사정작업도 특수부의 몫이었다.

그러나 제한된 인력으로 하명·고발·인지 사건을 모두 벌리다보니 그 한계가 뚜렷했다. 요란하게 시작한 '포스코 수사'의 경우 그룹 수뇌부에 대한 영장 청구가 기각되면서 체면을 구긴 특수부다.

언론은 검찰의 수사력에 의문을 표했다. 내부적으로는 정권 차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우려했다고 한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던 검찰은 특수부 인력을 대거 보강하는 쪽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이번 개편안은 김진태 검찰총장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나온 터라 의외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특수부는 4개 부서를 기반으로 총 8팀 체제가 가동된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는 특수1∼4부가 있다. 검찰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팀 체제로 개편되기 이전의 특수부는 다음과 같이 운영됐다.

특수1∼4부에는 각 부서마다 한 명의 부장검사가 있다. 이들 부장검사는 또 한 명의 부부장검사를 지휘한다. 각 부부장검사에 딸린 평검사는 4∼5명 수준이다.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차장검사다.

그런데 검찰은 이번 개편에서 각 부서에 부부장검사를 한 명씩 더 투입했다. 부서당 2팀을 만든 셈이다. 이 같은 개편의 이유는 부서 간 인력 이동을 자유롭게 하고, 필요에 따라 '특정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함으로 파악된다.

예를 들어 기존 1팀 체제에선 특수1부와 특수2부의 공조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각 부서마다 진행 중인 사건이 달라 맡은 일을 처리하기도 빠듯했다. 하지만 2팀 체제에선 1팀이 빠지더라도 남은 1팀이 공소유지 등을 담당하면 된다. 또 지휘체계의 정점에 있는 차장검사가 특정 사건을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특수1∼4부의 동시 투입을 고려할 수 있다.

인력 대폭 확대…1∼4부 2팀 체제로
사실상 중수부 역할 '기대반 우려반'

특수부가 이처럼 팽창하게 된 원인을 놓고 일각에선 '차기 권력'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특수부의 '몸집 불리기'는 김 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언급한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식 수사'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최근 특수부에 정통한 한 검찰 관계자는 "중수부가 없는 이상 이를 대체할 특수부 인력 보강이 절실하다"라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번 결정이 수사력 증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적인 특수 수사의 경우 피의자가 지능범일 때가 많은데 우리 입장에선 핵심 증거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라며 "검찰이 경찰과 다른 점은 수사에 착수했을 때 증거 확보뿐 아니라 공소 유지까지 내다보고 사건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특수부 출신들은 수사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김 총장 재임 시기 단행된 '하방 인사'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앞서 김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을 상위기관인 법무부나 대검에 올리던 관행을 깨고 지방으로 발령 냈다. 대형 수사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칼잡이(특수수사에 정통한 검사를 지칭하는 은어)'들 역시 지방으로 떠났다.

몸집 불리기
중수부 부활?

김 총장의 의도는 중앙과 지방, 특수와 형사 등을 두루 경험해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부 평가는 좋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검찰 문화는 '상명하복'과 '엘리트주의'인데 끗발이 안서는 검사가 중앙에 있으니 조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특수통의 공백은 결과적으로 검찰의 기획력과 정보력을 떨어뜨렸다. 그런데 수사력 저하가 대다수 국민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검찰 조직에서 중수부는 신화적인 존재다. 수사력만 떼어놓고 보면 근접한 부서가 없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출범 초 중수부를 폐지하는 데 합의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이유였다.

지난 2009년 대검 중수부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 아직도 검찰 안팎에선 "그때 노무현이를 구속했으면 이런 사단은 나지 않았을 텐데…"라는 말이 나온다.

안대희 전 대법관 등 대부분 특수통이 수장을 꿰찼던 중수부는 공안통의 비약과 함께 서서히 영향력을 잃었다. 참여정부 시절 '대선 자금' 수사로 살아있는 권력을 겨눴던 중수부는 이명박정부 들어 권력을 지키는 '충견'으로 변해갔다.

검찰 안팎에선 특수부에 대해 "주인도 물 수 있는 개"라는 표현을 쓴다. 한마디로 맹견이다. 공안부에 대해선 '권력을 바라보는 꽃'이란 말을 주로 쓴다. 이는 해바라기를 가리킨다. 정치 감각이 남다른 공안부와 달리 특수부 출신들은 범죄 혐의가 확인되면 좌고우면하지 않는 성향이다. 검사로서의 프라이드(자부심)가 강한 탓이라고 한다.

야당은 이 잡듯이
여당은 티 안나게

그러나 이들은 특수부이기 이전에 검찰에 소속된 검사다. 중수부와 마찬가지로 특수부는 목표 설정 과정에서 정치적인 편향성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수사다. 한명숙 수사는 특수부가 갖고 있는 '빛과 그림자'를 극명하게 나타낸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수사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말'에서 시작됐다. 당시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에게 5만달러를 건넸다"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곽 전 사장에게 '플리바게닝'을 제안하는 등 사건에 의욕을 보였다. 수사팀은 한 전 총리를 기소했을 때만 해도 유죄를 확신했다.


그런데 곽 전 사장은 진술을 바꿨다. 검찰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명숙 수사팀' 관계자는 "곽 전 사장이 한명숙 얘기를 꺼낸 건 자신을 봐달라는 의미였는데 수사팀 입장에서 무작정 봐줄 수는 없었다"라며 "우리보단 야권에서 여러 경로로 회유가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1심 선고를 앞둔 검찰은 두 번째 카드를 빼들었다. 건설업자 한만호씨로부터 한 전 총리가 거액의 수표를 받았다는 이른바 '9억원 수수' 사건이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조차 반대한 이 사건을 특수부는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들은 한 전 총리 주변을 샅샅이 털었다.

당시 검찰은 한 전 총리 차량의 하이패스 기록, 통장 입출금 내역 등은 물론이고, 그가 갔던 식당, 골프장, 백화점 등을 모조리 뒤졌다. 버려진 자필 영수증과 카드 사용기록 등을 모아 증거로 활용했다. 단종된 돈가방을 수소문해 한씨 진술과 맞추는 한편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까지 조회했다.

결정적으로 검찰은 한씨가 건넨 수표 중 1억원이 한 전 총리의 동생에게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다. 한 전 총리의 동생은 문제의 1억원을 자신의 전세 보증금으로 썼다. 수사팀 관계자는 "나는 속일 수 있지만 '200개의 눈(100여명의 특수부 인력)'을 모두 속일 수는 없다"라며 "밖에서 보기에는 편파 수사로 보여도 증거 없이 아무나 기소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약해진 수사력 포스코 한계
정치적 중립성 논란도 여전

지난 5년간 특수부는 조직의 명예를 걸고 한 전 총리와 싸웠다. 궁극적으로는 유죄 판결을 받아냈다. 특수부는 한번이라도 검찰의 타깃이 되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렇지만 특수부는 야당과 달리 정권에게 불리한 내용의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 든 기억이 가물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재임 시기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한 것이 마지막이다. 당시 채 전 총장은 특수부 검사들을 대거 투입해 진상 규명을 지시했다. 불행히도 채 전 총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지 석 달 만에 옷을 벗었다.

'채동욱호' 검찰은 출범 초기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을 상대로 나름 공정한 수사를 진행했다. 전두환 일가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친인척인 박영우 대유신소재 회장까지 수사 선상에 올렸다. 특수부에 대한 검찰 안팎의 기대가 커졌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채 전 총장이 잘려나가고 김 총장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진태호'가 나름 비중 있게 다뤘던 사건은 동양그룹 수사와 강덕수 STX그룹 회장에 대한 수사다. 이들 모두 채 전 총장이 있었던 때와 비교하면 파괴력 면에서 떨어진다는 평가다. 정치적인 사건에서는 '정윤회 문건' 수사처럼 청와대가 내려준 가이드라인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검찰은 올 2월 '부패와의 전쟁'이 선포된 직후 특수1∼4부를 모두 사건에 투입했다.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가 선창했지만 실제 주문은 더 윗선에서 이뤄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후 특수1부는 ▲자원외교 비리와 농협 대출 비리, 특수2부는 ▲포스코 비자금 수사, 특수3부는 ▲방위사업 비리와 KT&G비자금 수사, 특수4부는 ▲중앙대 특혜 의혹 수사와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의원에 대한 수사를 맡았다.

청와대 하명
지키기 급급

'부패와의 전쟁'은 대부분 지난 정권 당시 있었던 비리를 타깃으로 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물을 보인 수사는 중앙대 특혜 의혹 수사와 KT&G비자금 수사에 그쳤다. 그나마 KT&G비자금 수사는 전임인 채 전 총장 때 시작된 사건이다.

특수부는 이번에도 야당 정치인이 연루된 수사에서는 금품 수수 혐의를 밝혀내는 '신묘함'을 보였다. 박근혜정부는 임기 절반이 남은 상황에서 대대적인 사정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당장 대기업 L사에 대한 사정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쯤 되면 특수부의 인력 보강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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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