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씨티은행 ‘호화 관사’ 논란

직원도 모르는 '성북동 아방궁' 가보니…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기업은 목적에 따라 다양한 부동산을 소유한다. 기업이 회장의 사택으로 500평 규모의 저택을 구입하는 것도 문제 삼기 힘들다. 하지만 수익구조 악화를 이유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각종 논란으로 당국의 제재를 받는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씨티은행의 현재 상황이 그렇다. 씨티은행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씨티은행은 구 씨티은행 시절인 1996년 성북구 성북동의 487평의 땅을 매입해 외국인 대표이사의 관사로 사용했다. 2004년 한미은행과 합병한 뒤에는 관사 및 주요 고객 초대 만찬 등의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몰랐던 저택
직원은 부글
 
뱅크하우스를 직접 방문한 결과 주변에 있는 저택들과 비교해도 외형상 뒤지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였다. 뱅크하우스를 낮에 방문해 몇 차례 초인종을 눌러보았지만 응답은 없었다. 다만, 내부 잔디가 잘 정돈돼 있는 것으로 미루어 정기적인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인근 부동산을 찾아 기업이 회장의 사택이나 연수원 또는 업무용으로 부지를 매입해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있느냐고 질문했더니 과거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기업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거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부동산 중개인은 뱅크하우스의 매매가를 주변 시세와 비교해 대략 60억원 가량으로 판단했지만, 규모가 커 매매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뱅크하우스의 존재는 일반직원들에게 20년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재무제표 상 뱅크하우스는 기재가 안 돼 있어 뱅크하우스의 존재를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씨티은행 노조는 “뱅크하우스는 그동안 개인 사저처럼 썼기 때문에 그 존재를 경영진 측근 일부만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씨티은행이 서울 중구 본점을 매각하는 등 자산을 줄이고 있는 시기에 굳이 뱅크하우스를 보유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 나왔다.
 
회사 어렵다면서…끝까지 소유 왜?
대규모 구조조정에도 건재함 과시
 
씨티은행이 뱅크하우스를 소유한 2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씨티은행은 지난 2013년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전체 직원 가운데 15% 가량인 650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내면서 내홍에 시달렸다. 점포는 190개 지점 중 56개점을 통폐합하면서 외형은 크게 축소됐다.
 
뱅크하우스의 존재가 알려지자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호화사택 논란’이 일면서 상당한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노조 측은 “대다수의 직원들이 뱅크하우스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뱅크하우스의 존재가 알려져 많은 불만을 나타냈다”면서 “점포 축소 및 구조조정에 대한 위기감이 직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가운데 60억원 상당의 사택은 상당한 위화감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뱅크하우스에 대해 “뱅크하우스는 1996년 한미은행과 씨티은행이 통합된 뒤 주요 고객 초청 만찬 및 승진자를 축하하는 장소로도 사용됐다”고 설명했다.직원들의 불만에 대해서는 “직원들 입장에 대한 설문이나 구체적인 조사가 없어 답변을 하기 어렵다”면서도 “직원들의 내부반발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택으로 사용
지금은 파티용
 

뱅크하우스와 관련 직원들의 불만 정도는 사측과 노조 측의 의견이 엇갈려 정확한 판단은 어려웠지만 뱅크하우스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관심은 상당히 높았다. 노조 측이 직원 내부 전산망을 통해 뱅크하우스의 존재를 처음 알린 지난 11일, 해당 게시물은 2700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통상 직원들의 최대 관심사인 인사 관련 게시물의 조회수가 2000 초반대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뱅크하우스의 존재가 회사 일반 직원에 알려진 것은 박진회 씨티은행장의 막말발언 논란이 일면서부터다. 씨티은행은 지난 6월부터 뱅크하우스에서 ‘CEO와 함께하는 비즈니스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박진회 행장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박 행장은 노동조합과의 임단협 진행상황에서 이견을 보인 것과 관련 노조를 ‘깡패’, ‘X놈’으로 지칭했다는 것이다. 당시 워크숍에는 노조 조합원도 다수 참석해 이같은 내용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은행 측은 “당시 워크숍을 기획하고 진행한 경영혁신부 직원들의 기억에는 박 행장이 은행 경영과 관련한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의견이 다르다고 말한 적은 있었으나 박 행장이 부적절한 표현을 한 사실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반면, 노조 측은 이와 관련 “당시 워크숍에서 조합원을 앞에 두고 박 행장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라며 “워크숍에 참여한 직원들 가운데 조합원들이 많아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은행 측과 노조 측 간 임단협이 결렬되는 등 파행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논란이기 때문에 향후 노사간 대립이 확대되는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노조 측은 사측의 임단협 제안에 반발해 91%가 파업에 찬성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양측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논란은 박 행장 개인의 리더십에 치명타로 작용할 전망이다. 씨티은행의 노조 가입률은 타 은행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씨티은행은 지난해 12월 기준 2878명의 정규직 가운데 2704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 전체 직원 가운데 95% 가량이 노조에 가입된 셈이다. 통상 은행권 노조 가입률 7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이런 점이 향후 박 행장이 운신의 폭을 제한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행장의 막말 논란은 최근 그를 압박하고 있는 주변 상황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취임 초부터 노조 측이 주장해온 국부유출 논란에 시달려온 박 행장이 최근 금융당국마저 제재에 나서자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실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논란이 되기 시작한 씨티은행의 ‘국부유출’ 논란은 그의 행보에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국부유출 논란은 씨티은행이 해외용역비(경영자문료) 명목으로 미국 본사에 거액을 지속적으로 송금하면서 불거졌다. 경영자문료는 각 나라 순이익 상황에 맞춰 더치페이 형식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통상적인데 순이익의 절반에 달하는 비용이 미국 본사로 빠져나가면서 국부유출 논란이 생겼다. 세율이 높게 책정되는 배당금 대신 상대적으로 세율이 낮은 경영자문료 명목으로 미국 본사에 자금을 보내 편법으로 국부를 유출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직원은 희망퇴직
오너는 호의호식
 
노조 측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씨티은행이 미국 본사로 송금한 경영자문료 등의 명목으로 1조원 규모다.국부유출 논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슈화 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는데 현재 금융당국까지 제재에 나서면서 국부유출 논란은 더 이상 논란이 아닌 해결해야할 과제가 됐다.
 
금융감독원이 씨티은행에 제재한 내용을 살펴보면 씨티은행은 국세청이 비용이 아니라고 부인한 항목에 대해 경영자문료를 지속적으로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1년 당시 국세청은 출처가 불분명한 내역에 대해 230억원의 세금을 씨티은행에 부과한 바 있다. 국세청은 매출에서 비용을 차감한 순수익에 대해 세금(법인세)를 부과하는데 씨티은행이 경영자문료 등의 명목으로 비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해 세금을 낮췄다는 지적이다.
 
 

법인세의 경우 24.2%의 세금을 내야하는데 경영자문료 등으로 비용처리하면서 법인세보다 낮은 10%의 세율을 적용받아 미국 본사로 자금을 송금했다. 금감원은 “본사 등으로부터 제공받은 용역을 국내에서 대체했을 때 비용을 분석해 본사에서 받을 필요성이 낮은 용역은 서비스 중단 등 노력을 해야 한다”며 “‘경영유의’ 제재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500평 규모 시세 60억 안팎
“너무 커 매매 쉽지 않을 것”
 
씨티은행의 국부유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금융당국의 제재가 강해지고 있는 현재도 미국에 과다용역비를 지급하면서 논란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에는 씨티은행이 국세청으로부터 해외용역비 과다지급 명목으로 190억원의 세금을 부과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 당시 국세청이 조사한 씨티은행의 사업연도는 2011~2014년까지로 과다지급한 자금의 규모는 850억원에 달했다. 
 
씨티은행 내부에서는 지난해 구조조정을 단행한 이후 철수 위기감이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해외용역비가 과다하게 지출되고 있는 상황은 철수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씨티은행 본사로 편법 송금되는 자금으로 한국 씨티은행의 기업가치가 부당하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깊어진 노사반목

각종 의혹 제기
 
은행측은 지난해 실시된 구조조정 이후 더 이상 인원감축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국부유출 논란이 종식되지 않는 한 철수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씨티은행은 지난해 일본, 엘살바도르, 이집트, 헝가리, 과테말라, 니카라과 등 11개국에서는 소매금융(개인고객 대상 영업) 부문을 정리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donky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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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