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냐 추락이냐’ 갈림길 선 LS그룹 속사정

10년간 잘 굴러갔는데…앞으로 10년이 문제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LG그룹에서 분리된 뒤 LS그룹은 승승장구 했다. 그러나 최근 3년 사이 실적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각종 악재가 따라 다니면서 전사적으로 부진한 모습이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위기를 맞은 LS그룹의 현재 모습을 살펴봤다.

 
LS그룹은 LG그룹의 형제기업이다. LS그룹의 회장은 고 구평회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열 회장이 맡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 전 회장의 동생으로 2003년까지 LG그룹에 속해 있다 계열분리를 통해 홀로서기에 나섰다. LS그룹은 홀로서기에 나선 후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LG그룹에서 나온 첫해 7조400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한 뒤 해마다 고속성장을 이어가며 2011년 29조3151억원을 시현한 것이다. 10년도 채 안 돼 3배가 넘는 외형 성장을 나타냈다.
 
원자재 값 하락에 
주력 계열사 몸살
 
매출이 성장함에 따라 LS그룹의 식구도 늘었다. 2003년 LS전선과 LS니꼬동제련, E1, 극동도시가스(예스코) 등 4개에 불과하던 계열사 수가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46개사, 해외 46개사 등 총 92개사로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모범적인 가족 기업의 분리 사례라며 LS그룹을 치켜세웠다. 경영권을 두고 형제끼리 다투는 일이 흔한 재계에서 보기 드문 미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LS그룹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최근 3개년 매출이 급감하면서 재계의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2012년 정점을 찍은 LS그룹의 매출액은 2013년 26조9685억원, 2014년 25조5080억원으로 3개년동안 5조원 가까이 급감했다.
 

LS그룹의 매출이 급감한 데는 주력 계열사의 부진이 자리잡고 있다. LS그룹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는 LS니꼬동제련의 경우 2011년 9조1845억원에서 2014년 6조8664억원으로 25.2% 급감했다. E1의 매출액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E1은 2012년 6조7344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3년 6조4059억원, 지난해 5조9121억원으로 내림세를 기록 중이다. LS전선도 2011년 4조7983억원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2012년 4조814억원, 2013년 3조5357억원, 2014년 3조4251억원으로 고전하고 있는 양상이다.
 
LG그룹서 분리 이후 줄곧 ‘승승장구’
최근 3년 사이 실적 고전 면치 못해
 
당기순이익 역시 부진한 모습을 나타냈다. LS니꼬동제련의 경우 2011년 2747억원에서 지난해 1089억원으로 절반에도 못 미치는 부진을 기록했다. E1은 역시 2012년 717억원에서 지난해 437억원으로 40% 가까이 영업이익이 축소되면서 부진한 모습을 나타냈다.
 
맏형 격인 LS니꼬동제련은 실적 부진인 상황에서 초대형 악재를 만났다. 지주사인 ㈜LS가 소유하고 있는 LS니꼬동제련의 지분은 50.1%로 다른 계열사에 비해 높은 지분율은 아니지만 LS그룹의 매출 비중이 가장 큰 회사이기 때문에 주목 받았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LS니꼬동제련은 특별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LS니꼬동제련은 2010~2013년 사이 도시광산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자회사에 값싸게 물품을 주고, 비싸게 매입하거나 직거래처가 있는데도 자회사를 거쳐 물품을 공급받는 방식으로 수천억원 규모의 매출을 부풀리는 과정에서 세금을 탈루한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도 이 회사에 대한 부당 내부거래를 조사하고 있어 혐의가 확인되는 대로 과징금을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부 언론은 이미 세무조사가 끝났다며 1500억원 가량의 추징금을 LS니꼬동제련이 부과받았다고 보도했다. 언론에서 보고 있는 추징금 규모는 1000억∼2000억원 규모다.
 

전사적으로 부진
세무조사도 겹쳐 
 
LS니꼬동제련이 쥐고 있는 현금 수준은 지난해 기준 3500억원 수준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지난해 영업이익(1970억원)과 순이익(1089억원)을 감안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이번에 받고 있는 세무조사의 성격이 특별 세무조사로 알려져 더욱 부담스럽다. 일반적으로 특별 세무조사는 비리나 탈세의 혐의가 포착될 경우 실시한다. 조사 결과 비리나 탈세가 드러날 경우 전체 계열사로 세무조사가 번질 위험이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세무조사다.
 
LS니꼬동제련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세무조사의 성격은 부인하는 모습이었다. LS니꼬동제련은 “현재 받고 있는 세무조사는 2011년 이후 실시되는 정기 세무조사”라며 “현재 세무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추징된 세금은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LS니꼬동제련의 ‘특별 세무조사 설’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두고 최근 하락한 기업이미지를 꼽는다. 비리·횡령 등 부정적인 소식으로 기업 이름이 언론에 지속적으로 오르내리면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LS그룹의 경우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최근 4개년(2010∼2014년)동안 대기업 집단 가운데서 가장 많은 불공정 거래행위를 한 기업으로 꼽히며 구설에 오른 바 있다.
 
LS그룹은 2010∼2014년 9월 사이 검찰고발 11건, 과징금 11건, 시정명령 1건, 경고 64건의 행정조치를 받으며 불공정 거래를 가장 많이한 대기업 집단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실제 LS그룹의 지주사인 ㈜LS가 불공정 거래 최다 기업으로 꼽힌지 얼마 안 돼 특별 세무조사를 받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당시 언론에 따르면 구자홍 LS미래원 회장의 장남인 구본웅씨가 대표로 있는 미국 벤처투자사 ‘포메이션8’와 ㈜LS간 자금 이동 흐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돼 조사에 나섰다. ㈜LS는 지난해 정기세무조사를 받은 바 있어 특별 세무조사 성격이라는 것이 당시 보도 내용이었다.
 
앞서 LS그룹은 기업 이미지 실추로 홍역을 치른바 있다. 2012년 그룹 계열사 JS전선이 한국수력원자력에 불량 케이블을 납품하다 적발된 것이다. ‘윤리경영’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워 기업을 이끌어온 LS그룹의 명예가 단숨에 땅에 떨어진 순간이었다. 그 후 2년간 LS그룹은 검찰 조사, 세무 조사 등을 받아야 했다. 업계에서 JS전선 비리 사건을 계기로 LS의 실적이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엎친 데 덮친 격
업황부진의 늪
 
결국 구자열 LS그룹 회장은 JS전선을 정리해야 했다. JS전선을 상장폐지하고 모든 사업을 정리한 것이다. 상장 폐지에 따른 후유증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LS전선 매출액이 크게 감소한 것. 지난해 LS전선은 매출액 4조310억원, 영업이익 1018억원, 당기순이익 64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약 5000억원, 영업이익은 300여억원 급감했다.
 
JS전선을 정리하는 것으로 논란을 피하는 것은 쉽지 않은 모습이었다. 시간을 다시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JS전선을 정리하는 시점으로 되돌려 보면 구 회장은 2014년 1월 “국민과 정부에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속죄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며 JS전선 정리를 약속했다. 구체적인 계획도 발표됐다. 대주주가 소액주주의 피해를 막기 위해 대주주의 사재를 출연해 소액 주주의 지분을 매입한 뒤 JS전선을 상장폐지하는 방식이다.
 

JS전선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212억원 가량이 소요됐다. 또, LS그룹 차원에서 1000억원 상당의 원전 안전 및 관련 연구·개발 지원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구 회장이 보여 준 ‘준법경영’의 또 다른 모습이라며 긍정적인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JS전선이 가져다 준 부정적인 이미지는 오래갔다. LS그룹은 얼마안가 고배당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과거의 영광…현재의 위기
잇단 악재에 성장세 ‘뚝’
 
논란의 원흉은 JS전선이었다. JS전선 정리 비용을 메꾸려고 무리한 배당을 실시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실제 LS그룹은 급감하는 매출과 순이익에도 불구하고 배당액을 올리는 모습을 보여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지난해 LS그룹 계열사 가운데 오너일가의 지분이 많은(45%) E1의 경우 전년보다 63% 줄어든 당기순이익에도 불구하고 배당액을 25% 늘리며 고배당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업계에서는 JS전선 정리 비용을 고배당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LS그룹은 이미지 반전에 실패하는 모습이었다.
 
LS그룹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업황부진도 한 몫 했다. LS그룹의 주력 산업 분야는 전선·소재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이 2012년 이후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LS그룹의 실적은 직격탄을 맞았다. 문제는 향후에도 원자재 가격의 상승 반전을 기대하기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증권업계의 한 전문가는 “LS그룹의 주력사의 실적은 원자재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며 “하지만 미국의 금리인상이 올해 예정돼 있고, 중국 경기가 불황에 접어들면서 원자재 가격이 상승 반전으로 돌아서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LS그룹 관계자는 “최근 매출이 부진했던 것은 맞지만 주력회사들의 매출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모습이다”며 “다만 원자재 가격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하반기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LS그룹은 현재의 위기를 해외 쪽 사업으로 눈을 돌려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습이다.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LS산전의 2분기 실적이 전분기의 부진을 딛고 영업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36%가 개선됐다. 업계에서는 LS산전이 글로벌 경쟁력을 꾸준히 강화한 결과 2분기 해외 사업을 중심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 낸 것으로 평가했다.
 
JS전선 저주?
위기 탈출할까
 
LS전선도 해외에서의 역량 강화가 힘을 받는 모습이다. LS전선은 글로벌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지난 1분기 매출 9746억원, 영업이익 242억원을 기록하며 전분기보다 5.6%, 100% 증가했다. 특히 당기순이익은 125억원에 시현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베트남과 중국 출자 법인 등과의 공조 전략 등이 주효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LS그룹은 지난 3년간의 악재 끝에 나름대로 내성을 기르고 있는 모습”이라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지 부진에 늪으로 깊숙이 빠질지 갈림길에 선 LS그룹이다”라고 평가했다.
 
<donky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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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