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신동빈 시대’ 막전막후

장자승계 없다…형님 제치고 아우가 대권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한·일 롯데 원톱으로 우뚝 올라섰다. 롯데그룹 경영권 승계가 확정된 분위기다. 공식적인 후계자로 낙점된 건 사실이지만 아직 풀어야할 과제가 잔존한다. ‘신동빈 시대’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됐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의 지주회사다.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오른 것은 사실상 롯데그룹의 회장직이나 다름없다. 그룹 후계자로 자리를 굳힌 셈이다.

신동주·신영자
가만히 있을까?
 
이번 대표 선임으로 신 회장은 한국 롯데뿐 아니라 일본 롯데도 함께 경영하게 됐다. 신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현장 중심 경영 지침에 따라 일본 현장경영도 맡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 회장은 지난 15일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참석 이사 전원 찬성으로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신 회장은 이날 오후 주요계열사 사장단회의에서 “이번 이사회 결정을 겸허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인다”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신 총괄회장의 뜻을 받들어 한국과 일본의 롯데사업을 모두 책임지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한편, 리더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17일 롯데케미칼 본사를 찾아 업무 보고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일선 현장을 방문하는 등 바쁜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다. 8월 초에는 일본 롯데홀딩스를 방문해 일본 롯데 대표로서도 행보를 이어 나갈 계획이다. 롯데는 신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선임으로 한·일 롯데의 협력을 통한 시너지가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에게 그룹의 열쇠를 맡긴 것은 그간 신 회장이 보여준 공격적인 경영 드라이브가 주효했다는 평가다. 2013년 기준 한국롯데는 74개 계열사에 매출 83조원을 기록했다. 반면 일본롯데는 37개 계열사에 매출 5조7000억원가량에 머물렀다. 이 같은 경영실적의 차이가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을 낙점했다는 것이다.
 
일본롯데 지주회사 홀딩스 대표이사
한-일 양국 장악…경영권 승계 완료 
 
실적뿐만 아니라 사업적으로 공격적인 신 회장의 면모도 주효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실제로 신 회장은 2006년 롯데쇼핑의 상장을 성사시킨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이후 9조원에 달아는 기업을 인수했다. 올해에는 국내 렌터카시장 1위인 KT렌탈을 인수했고, 미국에서는 130여년의 역사를 가진 더 뉴욕 팰리스 호텔을 사들였다. 올해 투자하겠다고 밝힌 금액은 사상 최고인 7조5000억원에 이른다. 그의 행보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이 해임되기 전까지는 일본롯데는 신 전 부회장이, 한국롯데는 신 회장이 맡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었다. 신 회장은 2010년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롯데는 형님(신 전 부회장), 한국롯데는 저로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다”며 후계 구도가 정리됐다는 식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장남과 차남의 관계는 그리 평화롭지 않았다.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은 지난 2013년부터 경영권 승계 문제로 부딪혔다. 신 전 부회장은 2013년 8월부터 롯데제과 주식을 매달 사들여 지난해 2월 기준으로 신 회장이 가진 주식과 자신이 가진 한국 롯데 계열사 지분을 10억여원 차이로 좁혔다. 한국 내 롯데 계열사 지분 매입은 후계구도를 깨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됐다.


형 누른 아우
광폭행보 나서
 
이후 지난해 12월26일 신 전 부회장이 롯데 부회장, 롯데상사 부회장 겸 사장, 롯데아이스 이사에서 일괄 해임된 데 이어 지난 1월9일 지주사인 롯데홀딩스 부회장직까지 잃으면서 후계구도의 윤곽이 드러났다.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실적에 민감한 신 총괄회장의 마음을 신 회장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신 회장이 진정한 후계자로 올라서려면 부친의 숙원인 제2롯데월드 사업과 부진에 빠진 일본롯데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 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된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그룹 지주회사로 지배구조의 중심에 있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신격호 총괄회장 일가-광윤사-롯데홀딩스-호텔롯데-국내 계열사’로 요약된다. 신 회장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일본롯데의 경영권 획득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 롯데그룹의 정점에 있는 일본법인 광윤사의 지분을 넘겨받아야 한다. 포장재를 만드는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27.65%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일본롯데 핵심 기업으로 꼽힌다. 광윤사의 대표이사 신 총괄회장은 지분 절반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장남 신 전 부회장과 차남 신 회장도 각각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비상장사의 주주를 공개할 의무가 없어 구체적인 지분구조는 알 수 없지만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지분 차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대세 기울었지만…안심하긴 일러
형제 반발 등 아직 풀 숙제 남아 
 
광윤사는 한국롯데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분도 5.45%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신 총괄회장이 대부분 대표를 맡고 있는 L투자회사들은 호텔롯데의 지분 72.65%를 11개로 나눠 갖고 있다. 일본 L투자회사는 롯데알미늄과 롯데리아, 롯데푸드 등 기타 계열사의 주주명단에 올라와 있다.
 
결국 신 회장이 광윤사와 L투자회사의 지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한·일 롯데의 진정한 수장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복누나인 큰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장남과 차남 중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균형이 깨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 상황이 신 회장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맞지만 그룹 전체의 지분 구조를 볼 때 후계구도를 100%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 전 부회장과 이복누나인 신 이사장이 갖고 있는 롯데 계열사 지분을 합칠 경우 신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신 이사장이 ‘캐스팅보트’를 쥔 셈이다. 다만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신 이사장은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닷컴 등의 그룹사에서 적지 않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롯데제과의 경우 신 이사장은 3만5873주를 보유해 지분율이 2.52%다. 6.83%를 보유하고 있는 신 총괄 회장이나 5.34%를 보유하고 있는 신 회장에는 못 미치지만, 3.95%를 보유하고 있는 신 전 부회장과 합치면 적지 않은 규모다.

경영수완 발휘

꾸준히 인정받아
 
롯데쇼핑, 롯데닷컴, 롯데칠성음료, 롯데정보통신에서 신 이사장의 지분율은 각각 0.47%, 2.66%, 1.3%, 3.51%다. 롯데쇼핑 지분율은 신 회장(13.46), 신 전 부회장(13.45%)과 격차가 크지만 신 회장이 각각 5.71%, 2.35%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롯데칠성음료, 롯데닷컴에서는 격차가 좁아진다.
 
이밖에도 신 이사장은 롯데 오너 일가로서는 유일하게 대홍기획의 지분 6.24%를 갖고 있다. 신영자 이사장이 이끄는 롯데복지장학재단도 롯데제과(8.69%), 롯데칠성음료(6.28%), 롯데푸드(4.1%) 등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신 이사장이 경영에 전면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신 이사장은 롯데백화점이나 호텔롯데에서 사장직을 맡으며 경영에 직업 관여했지만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을 맡은 뒤로는 롯데복지장학재단의 봉사활동에만 참여하며 롯데그룹의 사회공헌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신 이사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지 말란 법은 없다.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재계에서는 신 이사장이 부친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신 총괄회장이 첫 번째 부인인 고 노순화 여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신 이사장을 지극히 아꼈고, 현재 신 이사장의 딸인 장선윤씨가 지난 4월 호텔롯데 해외사업 개발담당 상무로 발령 받으면서 경력을 쌓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신 회장이 이끌 롯데를 바라보는 재계의 관심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955년 2월14일 신 총괄회장과 일본인인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아오야마가쿠인 유치원, 초·중·고등부를 거쳐 77년 아오야마가쿠인대 경제학부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81년 일본 노무자증권에 입사해 런덤 지점에서 근무하면서 수년간 금융 실무와 글로벌 감각을 익히고 88년 4월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취임하면서 한국롯데에 발을 들여놓았다.
 
91년에는 침체하는 롯데 오리온즈의 지원조치로서 구단 사장 대행으로 취임하고 팀의 홈구장을 가와사키 구장에서 지바 마린 스타디움으로 옮겼다. 구단 이름도 롯데 오리온즈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로 고쳤다. 그해 11월에는 구단주 대행으로 취임했고 95년에는 구단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바비 발렌타인 감독을 불러들여 팀을 인기 구단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95년에는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을 거쳐 97년 롯데그룹 그룹기획조정실 부회장에 올랐다. 2004년부터는 그룹 정책과 전략을 총괄하는 정책본부 본부장을 지냈다. 이후 입사 20년 만인 2011년 2월 롯데그룹 회장 자리에 앉게 됐다.
 
신 회장은 그룹에서 요직을 맡으며 신격호 회장의 후계자로 일찌감치 점쳐졌으나 언론 앞에 나서지 않고 공식 석상에서도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과묵한 성격으로 ‘은둔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혼자 잡아타는 일이 없고 해외출장에도 여행가방을 직원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챙기는 등 겸손한 회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신 회장은 부친의 현장경영 정신을 물려받아 시간이 날 때면 근처 백화점이나 마트, 편의점 매장을 수시로 돌아보며 현장을 챙긴다고 알려져 있다. 또 신 회장은 조용하지만 거침없는 추진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신 회장이 정책본부 본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주력사업인 힉품과 유통뿐 아니라 석유화학, 금융으로 그룹을 확장했고 굵직굵직한 기업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미도파백화점, 현대석유화학, 우리홈쇼핑, 두산주류BG, AK면세점, 바이더웨이, GS리테일 백화점·마트부문 등 인수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각 계열사들의 외형을 키웠다. M&A는 국내에 머물지 않고 아시아로 뻗어나갔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대형마트 마크로, 벨기에 초콜릿 회사 길리안,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기업 타이탄 등을 인수했으며 현지 법인과 공장을 설립하는 등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신 회장은 정책본부장 당시 ‘2018 아시아 톱 10 글로벌 그룹’ 비전 달성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 결과 롯데그룹은 나날이 덩치를 키우면서 매출을 올려 매출 기준으로 삼성-현대기아차-SK-LG에 이어 국내 재계 5위 그룹의 자리를 확고히 굳혔다. 현재 신 회장은 그 여느 때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서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계 지배구조 개편작업 '관전포인트'
일단 경영승계…그리고 안정적 지배
 
삼성그룹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정점을 찍은 가운데 삼성 외에도 재벌그룹들의 구조개편에도 관심이 쏠린다. 경영권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재벌그룹들의 가장 큰 화두는 지배구조 개편이다.
 
삼성 필두로 SK·LG 움직임
부진한 실적 개선에도 효과
 
우선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성사시켰다. 삼성의 합병에 눈길이 쏠린 사이 롯데는 조용하게 후계구도 개편을 마무리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일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 합병을 끝내며 자산규모 31조원의 거대 철강회사를 탄생시켰다. SK는 지난달 그룹 지주회사SK와 지주회사를 지배하는 옥상옥 회사 SK C&C를 합병해 총자산 13조 규모의 통합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LG 역시 상반기 구본무 회장 장남 구광모 상무의 지주회사 지분율을 1%포인트 이상 늘렸다. 최대 재벌그룹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경영권 승계 내지 총수 일가의 안정적 지배력 확보가 주목적이다. 어려운 대내외 경영환경 속에서 단행된 총수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이 부진한 실적의 개선에도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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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