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발목 잡을 초대형 악재 넷

지금은 잘나가는데…앞날은 안갯속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잘나가는 수입차 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형 악재들이 돌출했기 때문이다. 연비와 탈세, 결함 논란이 그것. 거기에 ‘강력한’ 국산 새 모델이 속속 출시되고 있어 수입차에 제동이 걸릴 지 주목된다.

 
수입차 판매가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악재에도 수입차 비중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간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승용차 등록대수 기준)는 지난해 같은 기간(1만7803대)보다 36.4% 증가한 2만4275대로 집계됐다. 

사상 최대 기록 
못 웃는 사정은?
 
이는 지난 3월 기록한 2만2280대보다 1995대 많은 월간 기준 역대 최다 판매기록이다. 지난 5월과 비교해서도 32%나 늘었다. 상반기 누적 수입차 판매대수 역시 지난해(9만4263대)보다 27.1% 증가한 11만9832대로, 반기 기준 역대 최다 판매기록을 경신했다.
 
브랜드별로 보면 BMW가 6월 한 달간 5744대를 팔아 압도적으로 1위다. 폭스바겐(4321대), 메르세데스-벤츠(4196대), 아우디(2150대), 포드(1150대) 등이 2∼5위를 차지했다. 이어 랜드로버(825대), MINI(785대), 렉서스(727대), 도요타(711대), 푸조(678대), 크라이슬러(602대), 포르셰(479대), 혼다(464대), 닛산(461대), 볼보(316대), 인피니티(254대), 재규어(253대) 등의 순이었다.
 

모델은 폭스바겐 티구안 2.0 TDI 블루모션이 1062대가 판매돼 6월 가장 많이 팔린 수입차로 꼽혔다. 폭스바겐 골프 2.0 TDI(1006대)와 BMW 520d(863대) 등도 인기가 많았다. 배기량별로는 2000cc 미만이 1만3886대(57.2%), 2000∼3000cc 8176대(33.7%), 3000∼4000cc 1630대(6.7%), 4000cc 이상 557대(2.3%)로 나타났다. 
 
 
수입차 관계자는 “적극적인 마케팅과 신차 효과, 물량 확보 등에 힘입어 수입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며 “올해 수입차 판매대수는 역대 최다인 20만∼25만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잘나가는 수입차 시장. 앞으로의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대형 악재들이 돌출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악재는 연비 논란이다. 제조사나 소비자에게 모두 민감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연비는 판매와 직결될 수 있어 더욱 더 그렇다. 논란은 일부 수입차들이 연비를 실제보다 10% 넘게 ‘뻥튀기’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시작됐다.
 
최근 수입차 업체들은 유로6 모델의 공인 복합연비를 일제히 내렸다. 유로6 환경기준에 맞춰 출시한 폭스바겐, 푸조, BMW 등의 신차 연비가 기존 모델보다 낮아진 것.
 
폭스바겐은 골프 1.6 TDI 블루모션의 연비를 리터당 16.1㎞라고 표기했다. 기존 연비가 리터당 18.9㎞였던 것을 감안하면 14.8%나 떨어진 것이다. 지난 5월 국내 시장에 출시한 뉴 푸조 308 1.6도 이전 모델의 연비는 리터당 18.4㎞였지만, 새 모델은 16.2㎞로 11% 줄었다. 
 
‘불티나는 외제차’ 상반기 역대 최다 판매
전망이 그리…“제동 걸린다” 비관론 고개
 

하반기 국내 출시될 푸조 508 2.0 블루HDi 역시 연비가 리터당 13㎞로, 이전 모델(14.8㎞)보다 떨어졌다. 지난달 출시된 BMW 118d는 연비를 18.7㎞에서 7% 감소한 17.4㎞로 조정했다. BMW의 경우 일부 모델의 연비를 실제보다 작은 타이어로 측정해 연비 향상을 위해 꼼수를 부린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들 차종은 유로6 기준을 적용한 국내 모델 연비에 못 미친다. 현대차의 2016년형 쏘나타 1.7과 기아차 신형 K5 1.7의 연비는 각각 16.8㎞다. 이제 ‘유럽 차들이 연비 좋다’는 말은 옛말이 된 셈이다. 특히 수입차들이 그동안 연비를 과장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수입차 업계는 “신 모델을 출시하면서 엔진과 변속기 등 주요 부품들이 구 모델과 달라 연비가 떨어졌다”고 주장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그동안 연비를 부풀리다 국내 연비 검증 강화를 앞두고 수정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 정부는 오는 11월부터 국내 연비 검증을 강화할 예정이다. 수입차 업계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교통부는 기존 연비검증대상인 자기인증적합조사의 차량과 함께 안전도평가 대상 차량까지 연비 검증을 확대하기로 했다. 자기인증적합조사는 제작사가 자동차관련 법규와 안전기준에 적합한지 여부를 스스로 인증해 판매하는 자기인증제도를 정부가 사후관리 차원으로 보완하는 제도.
 
현재 자기인증적합 대상 수입차는 아우디 A7 50 TDI, 렉서스 ES 300h, 재규어 XF 2.2D, 푸조 3008, 지프 컴패스, 모토스타코리아 이륜차 등 6종이다. 여기에 추가로 5종이 늘었다. 안전도 평가 대상 수입차는 폴크스바겐 폴로, 미니 미니쿠퍼, 인피니티 Q50, 포드 토러스, BMW X3 등 총 11종이 연비검증에 들어간다.
 
검증 방식도 까다로워 진다. 자동차 연비 사후검증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가 각각 하다 지난해부터 국토부가 독자적으로 맡고 있다. 기존엔 도심연비와 고속도로연비를 합산한 복합연비만 따졌다. 앞으론 개별연비로 판정한다. 

연비 속속 내려
‘뻥튀기’ 의혹
 
국토부와 산업부, 환경부의 연비 공동고시에 따라 도심연비와 고속도로연비 모두 제작사 신고연비와의 차이가 허용 오차범위(5%) 안에 있어야 한다. 조사 차량은 1대로 하되 1차 조사에서 연비 부적합이 의심되면 3대를 추가 조사해 평균값으로 연비를 산정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1차 조사는 국토부 산하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이, 2차 조사는 산업부와 환경부 산하 5개 기관이 맡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동차 업체들이 연비를 부풀리는 꼼수를 막기 위해 차종을 늘리고 판정 기준을 강화했다”며 “관련법은 오는 11월부터 시행되므로 변경안은 내년 연비 조사 때부터 적용된다”고 전했다.
 
 
탈세 문제도 수입차 업계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 오너나 경영진이 고가의 수입차를 법인 명의로 구입해 세금을 탈루하는 편법이 도마에 올랐는데, 관련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수입차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판매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사업자 업무용으로 팔린 차량은 10만5720대로 조사됐다. 이렇게 팔린 찻값만 모두 7조4700억원에 달한다. 1억원 이상 수입차 1만4979대 중 83.2%(1만2458대), 2억원 이상 수입차 1353대 중 87.4%(1183대)가 업무용으로 판매됐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포르셰,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이른바 ‘슈퍼카’의 90% 이상이 업무용 차량으로 등록된다. 업무용 차량은 현행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에 따라 차량 가격은 물론 취득세 등 각종 세금과 보험료, 기름값 등 유지비를 5년간 무제한으로 사업자 경비로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오너나 그 일가, 또는 경영진이 고가 수입차를 회사 명의로 구입해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데 있다. 대부분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 명의로 수입차를 구매한 뒤 개인용도로 타는 것은 결국 세금 탈루란 지적이다. 경실련은 “수입차에 주어지는 세제혜택이 해마다 2조5000억원에 이른다”며 “고가 수입차가 무늬만 법인차로서 사실상 탈세의 도구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경실련은 대안으로 ‘캐나다 모델’을 제시했다. 캐나다는 업무용 차량에 대해 3만 캐나다달러(약 2700만원)까지만 경비처리를 해준다. 경실련은 “무제한인 업무용 차량 경비처리 기준을 3000만원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000만원 초과금액에 대해선 세금을 징수해야 한다는 것. 이 경우 연간 약 9266억원의 세금징수가 가능하다는 게 경실련의 계산이다.
 
경실련 측은 “국내 법인차 증가와 수입차 판매 증가는 무관하지 않다”며 “업무용 차량에 지원되는 세금혜택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김동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법인이 구입·리스·렌트한 업무용 차량에 대해 법인세법상 필요경비 인정액(손금산입)을 3000만원 한도로 제한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수입차 시장의 판매 감소가 불가피하다. 수입차 10대 중 8∼9대가 법인에 팔리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김 의원은 “업무용 자산취득에 대한 손금산입제도를 악용, 법인 명의로 최고급 승용차를 구입해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마치 절세의 수단으로서 잘못 인식되고 있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법인의 업무용 차량에 대해 찻값은 물론 유지비까지 전액을 비용처리 해주는 과도한 세제혜택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비·탈세·결함 잇단 논란 ‘삼중고’
‘강력한’ 국산 새 모델들 출동 대기
 
해외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업무용 차량 구입비용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미국은 차량값이 1만8500달러(약 2000만원)를 넘으면 세금공제를 차등적으로 적용하고, 일본은 차량 가격 300만엔(약 2600만원)까지만, 호주는 5만7466호주달러(약 5000만원)까지만 비용으로 처리해 준다.
 
김 의원은 “선진국처럼 세금공제의 한도를 정함으로써 최고급 차량을 법인 명의로 구매해 사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수입차 업계엔 두 가지 악재뿐만 아니라 결함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16일 혼다코리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포드세일즈서비스코리아, 한국지엠에서 수입·제작·판매한 승용자동차에서 제작결함이 발견돼 자발적으로 시정조치 한다고 밝혔다.
 
 
리콜 규모는 ▲혼다의 CR-V 2730대(2003년 3월14일∼2006년 12월28일 제작), ACCORD 1647대(2003년 10월6일∼2007년 6월29일) ▲재규어의 재규어XK 44대(2011년 7월2일∼2015년 1월13일), 디스커버리4 947대(2014년 8월21일∼2015년 2월12일), 레인지로버 1094대(2005년 3월14일∼2012년 7월26일) ▲포드의 이스케이프 24대(연료펌프 결함·2014년 2월14일∼2014년 3월7일), 이스케이프 311대(계기판 결함·2014년 3월13일∼2014년 12월10일), 익스플로어 1171대(2011년 2월1일∼2012년 11월30일) ▲지엠의 말리부 1358대(2013년 9월3일∼2014년 2월19일) 등 8개 차종 총 9326대다.
 
혼다 CR-V와 ACCORD는 충돌로 인한 에어백(일본 타카타 부품) 전개시 과도한 폭발압력으로 발생한 내부 부품의 금속 파편이 운전자 등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규어XK는 시동이 꺼진 후에도 전면 차폭등이 꺼지지 않아 배터리가 방전될 가능성이, 디스커버리4는 ABS 자기진단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안전운행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레인지로버는 전륜 브레이크호스 균열 또는 파열로 인해 브레이크액이 누유돼 제동성능이 저하될 가능성이 발견됐다.
 
포드 이스케이프는 연료펌프 내부 모터 불량으로 연료압력이 낮아져 주행 중 시동이 꺼질 가능성과 속도, 엔진회전수, 연료량, 냉각수온도 등을 표시하는 계기판이 내부 프로그램 오류로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안전운행에 지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익스플로어의 경우 차문 잠금 스프링 장치의 결함으로 차문이 정상적으로 닫히지 않거나 주행 중 열릴 위험이 있다. 지엠 말리부는 연료장치를 제어하는 연료컨트롤 유닛 내부 회로 부품 불량으로 엔진시동 불량 또는 주행 중 시동이 꺼질 수 있어 리콜 조치했다.
 
 
차시장 관계자는 “7월 들어 국내에 리콜된 차량은 1만3421대로 크게 늘었다”며 “이중 국내 생산된 한국지엠 차량(1358대)을 제외할 경우 수입차의 리콜 비중은 90% 이상에 달한다”고 말했다.
 
업무용 지원 제한
판매 급증에 제동
 
수입차 리콜은 올 들어 급증하는 추세다. 교통안전공단 자동차결함신고센터에 따르면 1∼6월 상반기 리콜된 수입차는 202개 차종 9만17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E시리즈 등 3만4756대로 가장 많았다. 이어 BMW가 1만238대, 포드가 5094대, 크라이슬러가 3867대, 닛산이 3827대였다. 제작사는 한국GM이 가장 많은 21만7884대를 리콜했다. 크루즈, 라세티 프리미어, 올란도 등 3개 차종 9만9985대를 브레이크호스 누유로 리콜하고, 말리부와 알페온 등 7만8615대를 안전벨트 결함으로 시정조치한 바 있다.
 
수입차 시장에 빨간불이 켜진 사이 국내차들은 전방위 공세에 나설 태세다. ‘강력한’국산 새 모델이 속속 출시될 예정이라 수입차 판매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올 하반기 창사 이래 최대 수량인 11종의 신차를 국내외 시장에 출시할 방침이다. 가장 많이 팔리는 준중형과 중형을 비롯해 대형차, SUV, 상용차, 친환경차 등도 선보인다. 자동차 업체는 보통 분기당 1∼2개 신차를 출시한다. 11종이나 되는 많은 모델이 쏟아지는 것은 극히 이례적. 승부수를 걸었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우선 7월 LF쏘나타 1.6 터보, 1.7 디젤 등 쏘나타 2016년형 모델과 신형 K5를 동시에 출시했다. 이들 중형차가 선봉에 선 모양새. 국내 중형차 시장의 입지를 굳힌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쏘나타의 엔진 모델을 7개, K5는 5개로 만들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높였다. 
 
특히 연비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현대기아차가 새로 내놓은 디젤 모델의 연비는 ℓ당 16.8㎞(16인치 기준). 독일의 대표 디젤 세단인 BMW 520D(16.1㎞), 폭스바겐 파사트(14.6㎞)보다 높다.
 
3분기엔 아반떼의 신형 모델도 나온다. 아반떼는 지난해 한국 단일 차종 중 최초로 1000만대 판매를 돌파한 ‘베스트셀러’다. 세계 판매 모델 중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먼저 국내에 출시한 뒤 내년 상반기 미국시장에 내보낼 계획이다. SUV도 출격한다. 현대차의 크레타는 7월 인도 출시를 시작으로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판매를 확대한다. 상반기 국내 출시된 신형 투싼은 8월 미국, 9월 유럽 시장을 공략한다. 기아차의 신형 스포티지는 3분기 먼저 국내에 선보인 뒤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다.
 
대형차와 상용차, 친환경차도 등장한다. 현대차는 대형 플래그십 모델인 신형 에쿠스를 연말에 선보인다. 현대차의 미니버스 쏠라티와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기아차의 K5 하이브리드 모델 등도 하반기 출시된다. 

리콜도 악영향
토종 11개 출시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에 다양한 신차들이 출시될 계획”이라며 “판매 확대 및 수익성 향상을 동시에 해결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인 수입차 업계에 악재들이 돌출해 브레이크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불거진 논란과 문제, 국내차 공세 등으로 발목을 잡힐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khlee@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