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킹 파문' 5163부대 극비임무

'2012년 비밀지령 내렸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실시간 감청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4일 국정원은 "프로그램을 국민에게 사용하지 않았다"라고 밝혔지만 해명을 뒤집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 사찰 의혹은 더해지고 있다. 특히 '5163부대'란 이름으로 가장한 국정원은 대다수 국민이 즐겨 쓰는 스마트폰인 삼성 갤럭시, 채팅 어플리케이션인 카카오톡, 모바일 게임인 애니팡 등을 겨냥해 전방위 해킹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불어 해킹의 숨은 대상으로 정치권이 지목되는 등 파장은 점차 확대될 조짐이다.


사건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현지시간 5일 밤 밀라노에 본사를 둔 IT기업 '해킹팀'은 메인컴퓨터를 탈취당해 400기가바이트(GB)에 이르는 내부 자료를 유출시켰다. 관련 자료는 국가 비밀문서 폭로사이트인 위키리크스 등에 공유됐다. 해킹팀이 각국 정보기관과 주고받은 이메일, 음성파일, 해킹프로그램 소스코드(프로그램 설계도)는 온라인을 통해 그대로 노출됐다.

400GB 자료유출
국정원 거래확인

해킹팀의 주요 고객 가운데는 한국에 주소지를 둔 '5163부대'가 있었다. 공개된 이메일에서 5163부대의 주소지는 국정원이 사용해 온 우편함 번호와 일치했다. 국내에서 국가 정보기관의 해킹 의혹이 처음 불거진 날은 지난 7∼8일이다. <보안뉴스>, <전자신문> 등 IT전문지가 중심이 돼 보도했다.

각 일간지도 취재에 나섰다. 10일을 전후해 이들 언론은 '국정원 해킹 파문'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10∼14일 쏟아진 기사의 내용은 국정원이 일반 국민을 상대로 불법 감청을 했다는 의혹과 연결됐다. 논란이 커지자 국정원은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14일 국회 정보위원회(이하 정보위)에 출석한 이병호 국정원장은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은 있으나 북한이 대상"이라고 사찰 의혹을 부인했다. 현재까지 국정원이 인정한 부분은 '5163부대란 이름으로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20개의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정원이 어떤 이유로 실시간 감청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구입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국정원 위장조직 해킹프로그램 구매 확인
국내 정치권 겨냥…무차별 정보수집 했나


국정원이 관련 거래에서 신분을 감추기 위해 사용한 이름은 5163부대다. 5163부대의 어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쿠데타로 알려져 있다. 박정희 당시 소장이 쿠데타를 위해 한강철교를 넘은 시각인 5월16일 새벽 3시를 기릴 목적으로 작명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위장이름 쓴
5163부대 들통

<한겨레>에 따르면 5163부대는 해킹팀과 모두 6번 거래했다. 총 거래대금은 10억2172만원이다. 이 원장은 정보위에서 "2012년 1월과 7월 각각 10명씩 20명분의 원격제어시스템(RCS)을 구입했다"라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위키리크스 등에 공개된 자료를 살피면 5163부대(SKA란 이름도 혼용)는 2014년에도 해킹팀과 거래했다.

RCS는 해킹을 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에 링크(혹은 파일)를 보낸 뒤 상대가 이를 클릭하면 '스파이웨어'에 감염되는 방식을 가리킨다. 원리는 보이스피싱 업체가 즐겨 사용하는 '스미싱'과 유사하다. RCS에 공격당하면 해킹을 한 당사자는 상대의 통화내역, 메시지, 사진, 위치정보, 은행거래내역 등 거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휴대폰 전원을 끄지 않는 한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된다.

그런데 5163부대는 이 원장이 밝힌 2012년 1월과 7월은 물론 같은해 3월과 12월에도 이메일을 통해 수십개의 '해킹 회선 사용권' 구입을 시도했다. 3월은 총선을 앞둔 시기이며, 12월은 대선을 목전에 둔 때이다. 이 가운데 12월6일 보낸 메일 제목에는 '긴급'이란 문구가 선명하다. 메일 발신자이자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 대행한 무역업체 나나테크는 "30개의 회선 사용권을 한 달간 임시로 사용하게 해 달라"라고 해킹팀에 주문했다.

또 나나테크는 2012년 9월 국정원을 대신해 '어노니마이저(ANM)'라는 프로그램을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킹팀은 자신의 고객들에게 ANM을 RCS에 딸린 보조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 관계자로 알려진 아이디 'devilangel1004@gmail.com'(이하 데빌엔젤)은 이외에도 2014년부터 해킹팀과 수시로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데빌엔젤이 지난해 11월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은 'RAS'로 기존 RCS와는 다른 형태의 스파이웨어다. 당시 이메일에서 데빌엔젤은 RAS가 안드로이드 폰(삼성 갤럭시 등)을 해킹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또 "상대가 해킹을 눈치채선 안 된다"라고 당부했다.


데빌엔젤은 지난해 3월 일부 외신을 통해 '해킹팀의 고객 중 한국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보안이 생명"이라며 "(추적이 불가능한) 가상사설서버(VPS)로 프로그램을 옮겨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해킹팀은 내부 이메일에서 "SKA(한국)가 우리에게 중요한 고객"이라고 언급했다.

며칠 뒤 해킹팀은 나나테크로 이메일을 보냈다. 자체 개발한 해킹프로그램인 TNI를 무료로 테스트해보라는 내용이었다. TNI는 해킹 상대방이 와이파이에 접속하면 악성코드가 설치되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해당 프로그램을 2014년 5월부터 사용하다가 같은해 7월께 반납했다. 공교롭게도 5월과 7월 사이엔 6·4지방선거가 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을 종합하면 국정원은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감청 프로그램을 돌렸다. 감청 대상은 내국인으로 의심됐다. 위키리크스는 지난 15일 트위터를 통해 "해킹팀이 한국 정보기관(국정원)을 도와 변호사를 타깃으로 감청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라고 폭로했다.

카톡도 감시
국정원 타깃은?

그러나 국정원은 일부 언론과의 접촉에서 "감청 대상은 대공 혐의가 있는 외국인이며, 위키리크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말했다. 또 국정원은 "감청당한 변호사의 국적이 몽골"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국정원의 해명은 일관되게 북한을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오고간 이메일 내용을 살피면 국내 감시용 쪽으로 무게추가 기운다.

먼저 국정원은 삼성 갤럭시 모델 해킹에 수차례 관심을 보였다. 새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감청이 가능한지를 해킹팀에 구체적으로 질의했다. 물론 북한 간첩이 갤럭시를 쓰고 있을 확률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국정원이 갤럭시와 함께 카카오톡 서버 해킹(검열)에 대해서도 문의했다는 것이다.

데빌엔젤은 개별 감시 대상자에 대한 해킹뿐 아니라 카카오톡 자체에 대한 해킹 연구 진행상황을 물었다. 사실상 1대1 감시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 대한 검열이 가능한지 물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6·4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에는 '안드로이드 폰'에 대한 공격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 한 가지 의미 있는 사실은 '나나테크 외에도 국정원의 구매 대행사가 3곳 더 있었다'는 해킹팀의 언급이다. 국정원이 '특정시기' 각 업체를 동원해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시도했다면 증거가 남아있을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 원장은 이번 해킹 프로그램의 구입 배경과 관련해 "원장이 아니면 이런 일을 하기 어렵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매시점(2012년 1월~12월) 당시 책임자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책임을 돌린 셈이다. 반면 원 전 원장은 자신의 측근을 통해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원장과 원 전 원장, 둘 중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정부 들어 국정원은 해킹팀 쪽에 '악성코드를 심어 달라'라며 링크(URL)를 건넸다. 데빌엔젤은 '떡볶이 맛집 소개' '금천구 벚꽃축제' '메르스 Q&A' 등 자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법한 주제를 사용해 스파이웨어 링크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은 '포르노 사이트'를 링크로 걸어 스마트폰 해킹을 시도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12월부터 약 7개월간 블랙엔젤이 주문한 가짜 URL이 195개에 달했다고 전했다.

박정희 5·16 쿠데타서 유래
총·대선 때 감청·사찰 의혹

이와 별도로 국정원은 국내 이동통신가입자들의 스마트폰 해킹을 시도했다. 국정원은 지난 2012년 8월 SK텔레콤에 가입된 갤럭시 한 모델을 특정해 해킹을 해 달라고 업체 측에 의뢰했다. 또 기자로 사칭한 5163부대 관계자는 천안함 사건 의혹을 제기한 재미 연구자의 컴퓨터에 접근, 해킹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기 국정원은 해킹팀과 접촉해 '서울대 공대 동창회 명부'라는 워드 파일에 악성코드를 심어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언급한 재미 연구자는 서울대 공대 출신이다.


아울러 국정원은 미국 스마트폰 메신저인 바이버에 대한 해킹도 해킹팀에 의뢰했다. 바이버는 '사이버 검열'을 피해 주로 야당 정치인들이 쓰고 있는 메신저로 알려졌다. 국내 유력 인사를 겨냥한 불법 감청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대북용이라는 국정원의 해명이 궁색해지는 증거는 모바일 게임을 대상으로 한 해킹 실험이다. 해킹팀은 SKA의 의뢰로 국내 인기 게임인 '애니팡2' '모두의 마블' '드래곤 플라이트' 등에 대한 악성코드 생성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해명대로라면 북한 간첩은 애니팡 서버에 접속해 국내 유저들에게 하트(게임 내 아이템)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의 해킹 대상으로 거론되는 유력 후보군 가운데는 야당 정치인, 학자, 언론인 등이 있다. 실제 정치인 A씨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사정기관으로부터 사찰을 받았다는 풍문에 휩싸였다. A씨를 뒷조사한 여러 문건이 존재했고, 선거가 끝난 후 해당 문건이 소각됐다는 내용이다. 국정원이 직접 연관됐다는 증거는 없지만 이들이 대선개입을 시도한 만큼 '비밀지령(원장님 말씀)'의 이행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이다.

국내 정치권
전방위 사찰?

지난 17일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안철수 위원장은 국정원에게 RCS 사용내역 제출을 요청했다. 안 위원장은 이날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악성코드를 보낸 아이피(IP) 주소나 휴대전화 번호 등 타깃의 식별정보가 남아있을 것"이라며 "국정원이 떳떳하다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보안상의 이유로 해당 정보를 공개하지 않거나 사전 삭제했을 가능성 또한 제기된다.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해킹팀은 국방부 국방사이버TF팀 소속 중령의 연락처를 가져갔고, 경찰청으로 추정되는 국내 정보기관과도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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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