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31) '룸살롱 황제' 이경백

몰락한 '밤의 제왕' 가족은 '떵떵'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연재 30번째를 맞아 국세청 기준 100억원 이상을 체납한 '고액체납자 특집'을 두 차례 마련할 예정이다. 31화는 123억7700만원을 체납한 '룸살롱 황제' 이경백씨다.

'룰루랄라'는 유흥업계에서 전설로 회자된다. 2000년대 후반까지 룰루랄라는 '선릉역 룸살롱'의 대명사로 불렸다. 서울 역삼동 인근 한 호텔에서 운영되던 룰루랄라는 여종업원 수만 2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해가 저물면 50여개의 룸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손님 상당수는 술자리가 끝나고 성매매를 했다. 이곳 룸살롱의 대표는 이경백씨(이하 이경백). 이른바 '룸살롱 황제'로 알려진 유명 인사다.

북창동식 히트

이경백은 룰루랄라 외에도 '로데오' 등 서울 강남 일대에 '북창동식 유흥주점'을 확산시켰다. '북창동식'은 여성 접대부와의 퇴폐적인 술자리(나체쇼 등) 및 유사 성행위를 핵심 서비스로 제공했다. 2차인 성매매는 손님이 지불하는 돈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백은 한때 서울 강북과 강남 유흥가에 모두 13~17곳의 북창동식 룸살롱을 운영했다. 전성기 한 해 매출은 1000억원에 이르렀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표현을 빌면 이경백은 소위 '삐끼'라고 불리는 웨이터 출신이다. 이경백은 업계에서 나름 신화적인 존재로 알려졌다. 이경백은 2000년대 초반 서울 북창동에 룸살롱을 개업하면서 획기적인 서비스로 입소문을 모았다.

그는 폐업 위기에 몰린 룸살롱을 헐값에 인수한 뒤 '양주 1병에 맥주 무제한 공짜'라는 영업 방식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손님들로서는 구미가 당길 제안이었다. 맥주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룸TC(방 대여료)는 따로 챙겼다. 룸TC에는 여성 접대부와의 술자리 값이 포함돼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창동식 서비스는 흥행을 거듭했다. 이경백은 다시 전재산을 털어 고급 외제차를 구입했다. 투자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2000년대 중반 강남으로 진출하면서는 '매직미러 초이스'를 도입했다. 매직미러 초이스는 룸살롱에 들어선 손님들이 특수유리를 통해 여종업원 대기실을 둘러보고 '파트너'를 직접 고를 수 있는 서비스를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이경백은 양주 2병을 시키면 한 병을 무료로 주는 '2+1 행사', 낮 시간대 손님에게 가격을 할인해주는 '조조할인 행사' 등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일각에선 그가 틈나는 대로 경영학을 독학했다고 하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이경백이 강남 유흥가를 석권하면서 나온 소문이 일부 와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이경백의 성공비결은 '거미줄 인맥'에 있었다. 조 전 청장은 지난 2012년 이경백에 대해 "평소 경찰, 국세청은 물론 법원, 검찰에도 든든한 인맥이 있음을 과시하였고, 실제로 바지사장들만 수사 대상에 올랐을 뿐 이경백 본인은 단 한 차례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특히 이경백은 지역 경찰과 유착했다. 단속을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경찰관 수십명에게 뇌물을 상납했다.

강남의 '밤거리'와 관련한 정보는 이경백에게 몰렸다. 경쟁업소까지 이경백의 입을 쳐다보는 형세였다. 지난 2006년 H그룹 김모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이 은폐되자 이경백은 일선 경찰에 정보를 흘렸다. 이 사건으로 경찰 수뇌부가 옷을 벗으면서 지방경찰청 차원의 '이경백 수사팀'이 구성됐다. 그러나 몇 달 못가 팀이 해체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수사팀의 룸살롱 접대사실을 쥔 이경백이 검찰을 동원해 반격에 나선 까닭이었다.

경찰 고위 간부에까지 손을 뻗친 이경백은 강남 풀살롱(성매매를 제공하는 룸살롱)을 인수하는 등 날로 사업 외연을 넓혔다. 이경백이 세운 '룸살롱 제국'은 영원할 듯 보였다. 하지만 뜻밖의 계기로 제국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서울 서초경찰서에 실종신고가 접수되면서부터다.

서울시 2억9900만원 국세청 120억원
성매매 알선·세금포탈·불법카지노 운영

지난 2010년 2월 A양(당시 18세로 미성년자)의 부모는 '딸이 몇 달째 소식이 없다'라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로데오라는 룸살롱에서 A양을 찾아냈다. A양은 경찰 조사에서 "(업주로부터) 성매매를 강요받았다"라고 진술했다. 로데오의 실소유주는 이경백이었다.


조 전 청장(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여종업원들의 진술을 차례로 확보했다. 조 전 청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경백은 모든 룸살롱에 바지사장을 채용하고, 세무사와 회계사를 고용해 수익금 추적을 회피했다. 또 판·검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수사를 방해했다. 2010년 7월 이경백은 42억6000만원의 세금을 포탈하고 미성년자를 고용해 룸살롱 내에서 유사 성행위를 하도록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경찰 조사결과 이경백은 이중장부를 만들어 306억원가량을 유용하고, 이 돈 상당수를 접대비 등으로 사용했다. 또 가족이 있는 호주로 일부 돈을 송금하고, 장인·처제 등의 명의로 반포동·광장동·동부이촌동의 고급 아파트를 사들였다. 국세청은 전방위 세무조사로 이경백을 옥좼다. 업계에서조차 이경백의 재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경백은 보란 듯이 구속 두 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배경을 놓고 전관예우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경백은 법원을 빠져나오자마자 잠적했다. 지명수배를 당하면서도 룸살롱 호객행위는 계속했다. 북창동에선 이른바 '방석집' 2~3곳을 운영했다. 경찰은 수배 8개월이 지나서야 이경백을 체포했다. 이마저도 이경백의 경쟁업체가 그를 검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란 소문이 돌았다.

이경백은 1심에서 징역 3년6월에 벌금 3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무렵 '이경백 사건'의 여파는 메가톤급으로 확대됐다. 검·경 수사권 갈등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앞서 경찰은 이경백과 접촉한 직원 39명을 자체 징계했으나 검찰은 이른바 ‘이경백 리스트’를 확보는 데 이르렀다. 검찰은 2012년 3월부터 전·현직 경찰관 18명을 구속시켰다. 당시 이경백은 여종업원을 통해 경찰에게 상납한 돈을 회수한다는 명목으로 일종의 함정을 팠다고 전해진다.

때문인지 이경백은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벌금은 5억5000만원까지 줄었다. 경찰은 검찰의 '플리바게닝'을 의심했다. 이어 불법 대출 등의 혐의로 이씨를 재소환하는 등 검찰과 신경전을 벌였다. 이경백은 이들 틈에서 구속과 석방을 반복했다.

경찰은 이경백이 집행유예 기간 동안 북창동 소재 유흥업소 업주를 협박해 3000만원을 뜯어낸 혐의와 도곡동 한 건물에서 판돈 10억원 규모의 불법 카지노를 운영한 혐의를 밝혀냈다. 2013년 5월 구속된 이경백은 같은 해 12월 구속기간 만료로 보석이 허가됐다. 그러다 다음해 9월 도박장개설죄가 인정돼 또다시 수감됐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성매매 알선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이경백을 기소했다. 현재 이경백은 수감 상태로 모두 3건의 형사재판을 진행 중이다.

또다시 구속

이경백은 변호인을 선임해 재판을 받고 있지만 세금은 내지 않고 있다. 2007년부터 종합소득세 등 139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액은 120억7800만원이다. 이경백은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있다. 2009년 8월부터 지방소득세 등 9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서울시가 거둘 체납액은 2억9900만원이다.

업계에 따르면 룸살롱 영업은 중과세 부과 대상이다. 세금을 다 내면 마진이 남지 않는 구조다. 십중팔구는 탈세에 노출된다. 그런데도 이경백은 세무조사 없이 돈을 벌었다. 당국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으로 의심된다. 역삼동 인근에선 아직 다수의 성매매 업소가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