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29)손몽필 한미건업 대표

미국인 명의로…수상한 부동산 매입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29화는 584억1100만원을 체납한 손몽필 한미건업 대표다.


지난 17일 오후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도심을 달궜다. 메르스의 여파에도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골목은 장을 보러 나온 주민들로 북적였다. 시장 골목과 연결된 샛길로 들어서자 생각지도 못한 한옥촌이 모습을 드러냈다. 좁은 인도 좌우로는 옛날식 가옥이 빽빽했다. 듬성듬성 큰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가구는 낡고 초라했다. 한눈에도 평범한 서민들이 모여 사는 그곳엔 '회장님'이 있었다. 올해 나이 78살의 손몽필씨다.

이제는 서민?

손씨는 매년 고액체납자 명단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2005년 언론에 첫 등장했을 당시 체납액수(국세)를 기준으로 전체 7위를 차지했다. 현재도 손씨는 국세청 명단에서 14위를 지키고 있다.

한미건업의 대표이사로 소개된 손씨는 1998년부터 종합소득세 등 30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확인된 체납액은 398억2200만원이다. 2001년 3월까지가 납부기한이었지만 15년째 체납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

손씨보다 체납액이 많은 체납자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그의 아들인 보근씨, 한근씨 또는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등 이른바 '재계 거물'이다. 그런데 손씨는 무슨 이유인지 이들과 '세금 안내기'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손씨의 체납 사유로는 '한미산업개발㈜로부터 파생된 인정상여 자료 등 과세'가 명시됐다.

세법상 인정상여는 종합소득세와 관련 있다. 예를 들어 한 회사가 회계장부상 10억원을 매출로 기재했고, 실제 매출액은 11억원인 경우 남은 1억원에 대해 대표자 명의로 세금을 물릴 수 있다. 실제 대표자가 1억원을 유용(또는 은닉)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축소신고(또는 누락)의 책임을 물어 '상여금'을 썼다고 인정하자는 취지다.

한미산업개발㈜의 대표로 알려진 손씨는 부동산 개발로 챙긴 이익금을 사업 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의심됐다. 또 국세청이 그의 직장으로 적시한 한미건업과 한미산업개발㈜은 사실상 하나의 회사로 파악됐다. 이들 가운데 주력회사였던 한미건업은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 법인 명단에 등재돼 있다.


한미건업은 1996년부터 법인세 등 7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액은 152억2900만원이다. 납부기한은 2003년 2월이었지만 손씨는 이를 지키지 못했다. 손씨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도 올라있다. 1994년 7월부터 주민세 등 17건의 지방세를 내지 않았다. 체납액은 33억6000만원이다.

한미건업의 법인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회사 설립일은 1984년 2월9일이다. 자본금은 7억원, 등록 주소지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소재 한 빌딩으로 나와 있다. 부동산의 매매 및 임대업, 주택 건설업을 사업 목적으로 신고한 한미건업은 1998년 3월 임원들이 줄사퇴하며 사실상 폐업수순을 밟았다. 상법에 따라 2006년 12월 해산됐고, 2009년 12월에는 청산종결됐다.

회사가 문 닫을 때까지 대표이사는 줄곧 손씨였다. 등기상 대표이사 자리에선 1998년 3월 물러났다. 한미건업은 이보다 앞선 1995년 여름부터 위기를 맞았다. 한미건업의 당좌거래 및 손씨 개인의 당좌거래 모두 같은 해 6월 정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무렵 손씨는 서울 서초구 소재 한 고급 빌라에 거주하고 있었다. 회사 부도와 함께 손씨가 주택을 떠나자 해당 토지와 건물은 경매를 거쳐 A씨로 소유주가 바뀌었다.

서울시 33억6000만원
국세청 550억5100만원
사람 사는데 번번이 수취인불명

손씨의 새 거주지는 서울 서초구 방배2동의 다가구주택에 마련됐다. 해당 건물의 소유자는 강모씨였다. 등기상 강씨는 손씨와 같은 집에 살았다. 손씨 명의의 차명 재산이라면 압류가 가능했지만 강씨는 관련 소유권을 1980년부터 갖고 있었다. 즉 손씨는 이 기간 전세나 월세 형태로 자택에 거주한 셈이다.

2000년대 들어 손씨는 다시 한 번 거주지를 옮겼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에 있는 목조기와 주택이 손씨의 세 번째 주소지가 됐다. 하지만 종로 소재 부동산 역시 손씨 소유는 아니었다. 2002년 9월 김모(1961년생)씨는 전임 소유자 B씨와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매입자 김씨는 한미건업의 이사로 등기됐던 또 다른 김모(1960년생)씨와 혈연관계로 알려졌다.
 

또 정황상 김씨는 손씨와 친인척관계 내지는 그에 준하는 사이로 추정됐다. 만약 손씨(또는 아내)가 가옥의 실거주자라면 증여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38세금징수과 담당 직원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확인해 줄 수 없다"라고 언급을 꺼렸다.


손씨 자택의 문을 두세 번 두드리자 그의 아내로 보이는 70대 노인이 문을 열었다. 그는 '손몽필씨를 만날 수 있겠느냐'라는 물음에 "할 말이 없다"라며 문을 닫았다. 이어 "남의 집 앞에서 뭐하는 짓이냐. 계속 있으면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대화를 요구했지만 방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만 들렸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는 일은 없었다.

문제의 부동산과 관련해 미국 국적을 가진 C씨(1958년생)의 존재가 흥미롭다. 재미동포인 C씨는 지난 2010년 10월20일 김씨로부터 해당 토지와 건물을 매입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C씨는 한국인 김씨와 혈연관계로 의심됐다.

상식선에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C씨가 시장 골목에 있는 허름한 기와집을 사야할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김씨는 C씨로 소유권이 넘어간 시점인 2010년 12월15일 해당 부동산을 담보로 금융권에 근저당을 설정했다. 채권 최고액은 2억1600만원으로 나타났다. 정리하면 C씨는 종로구 저택을 점유하지 않았을 뿐더러 소유권 행사마저 자신의 전임자에게 위임했다. 추징을 피하기 위한 편법을 동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전남 신안군 출신으로 알려진 손씨는 1990년대까지 재경 향우회에서 활동했다. 대학교수부터 판사까지 두루두루 어울렸다. 당시 향우회가 쓰던 서초동 사무실은 세입자가 없는 상태다. 손씨의 행방을 아는 이는 찾기 어려웠다. 손씨 앞으로 보내진 우편물은 모두 수취인불명으로 처리됐다.

과거 손씨는 비교적 명망 있는 사업가였다. 중소주택사업자협회에서 임원을 역임할 정도로 업계의 신임을 받았다. 본사는 서울이었지만 인천에서도 D빌딩 등에 진출해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영자로서 손씨는 실패했다. 그에게 남은 건 거액의 세금이다. 인천시 지자체는 건축물에 대한 재산세 명목으로 손씨에게 2100만원의 세금을 별도 부과했다. 손씨는 이 또한 내지 않고 있다.

곳곳에 체납

과세 당국은 "받을 방법이 없다"라며 사실상 손을 놓은 모습이다. 국세청은 단 한 차례도 체납자와 관련한 정보를 갱신하지 않았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 담당 조사관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며 "나머지는 개인 신상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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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