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직속' 새판 짜지는 법무-검찰라인 대해부

'까라면 까는' 본격 공안통 시대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청와대는 황교안 국무총리를 선택했다. 공안검사 출신인 그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이어 '부패와의 전쟁'을 추진할 예정이다. 검사출신 총리를 임명해 지금의 공안정국을 강화하겠다는 속셈이 읽힌다. 후임 법무부장관에도 왕년의 공안검사가 대기 중이다. 그러나 이들의 손발이 돼야 할 사정기관은 정권 초만큼 '충성'하지 않는 모습이다. 사정기관의 중추인 검찰총장 교체론이 나도는 배경이다.

'슈퍼특검'이 물밑 추진되고 있다. 지지부진한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이른바 슈퍼특검 도입을 여당 측에 제안했다. 지난 11일 여야 원내수석부대표는 6월 임시국회 일정을 합의하면서 특검 등 성완종 리스트 후속 대책을 의논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같은 날 취재진과 만나 "우리당은 원칙적으로 상설특검이 아닌 슈퍼특검을 제안했다"라며 "새누리당에서는 (슈퍼특검이 아닌) 상설특검 형태라면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라고 말했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은 지난 4월 특검 전환과 관련해 "'미니특검' 대신 '슈퍼특검'이 수사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부실한 수사
슈퍼특검 도입?

문무일 대전지검장을 정점으로 한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은 현재 15명의 인력(수사관 등 실무진 제외)이 파견돼 있다. 문 지검장은 특별수사팀장으로서 청사를 지켜왔다. 주말도 없이 직원들을 독려하며 수사에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방대한 수사 분량에도 인력이 보충되지 않아 '윗선'의 방해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실제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18대 대선자금 의혹에 이르러 한 달 가까이 진전 없는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이대로라면 특검법이 통과해도 진실 규명은 요원한 모습이다. 현행 특검법에 따라 특검 수사팀 인력은 5명 이내로 제한된다. 사실상 '미니특검'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야당은 15명 이상의 수사 인력이 가동되는 슈퍼특검 도입을 주장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슈퍼특검 도입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별수사팀은 금명간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 짓고 늦어도 19일 이내에는 수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사건은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봉합될 전망이다.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등 친박 실세들에 대해선 불기소 방침이 확정됐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의혹에 휩싸인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지난 8일 소환조사로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 이날 홍 의원은 취재진과의 대화에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수수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다음날 홍 의원은 훨씬 여유로운 모습으로 청사를 빠져나왔다.

유야무야된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은 서병수 부산시장과 유정복 인천시장의 서면답변서를 끝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지난 12일 기준 모두 2차례에 걸쳐 질의서가 오갔고, 검찰은 이들에게서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으로부터 2012년 2억원을 전달받은 혐의로 소환 통보된 새누리당 김모 전 수석부대변인은 불구속 기소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일각에선 현재 수사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김 전 대변인의 '입'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회유에 넘어갈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특별수사팀은 김 전 대변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하며 체면을 구겼다. 김 전 대변인의 침묵으로 대선자금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정권의 도덕성과 직결된 대선자금 수사가 성역 없이 진행될 것이라 기대했던 이는 드물다. 문 지검장조차 성완종 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받은 심리적 압박이 상당했다고 한다. 앞서 문 지검장은 "양심을 지키겠다"라며 '검사직'을 내건 듯한 인상을 내비쳤다. 이른바 '채동욱 찍어내기' 논란을 일으킨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성완종 수사 사실상 종결…슈퍼특검 추진
특검 도입 앞두고 검찰총장 교체설 고개

김진태 검찰총장은 아예 수사팀으로부터 직보를 받고 수사를 지휘했다. 외부의 개입과 방해를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다. 수사 착수를 앞두고는 '진인사대천명'이란 당부로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했다. 그런데 잠재적 수사 대상자인 청와대는 김 총장을 믿지 못하고 여러 안전장치를 만들었다고 한다.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현 국무총리 내정자)은 청와대가 내세운 안전장치 가운데 하나였다.

황 장관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당시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선거법 적용을 놓고 마찰을 빚었다. 황 장관은 공직선거법을 적용한 기소에 반대했으나 채 전 총장은 선거법 적용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수사까지 요구했다. 당시 두 '장관급 검사'는 서로 통화도 안 할 만큼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들의 갈등은 원 전 원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봉합됐다. 하지만 채 전 총장은 불과 석 달 만에 석연찮은 이유로 옷을 벗었다. 같은 맥락에서 김 총장이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했다면 채 전 총장의 전철을 밟았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 검찰에 출두하는 풍경은 정권에 큰 부담이다.

지난달 14일 <일요시사>는 '성완종 게이트 대선자금 수사 막힌 진짜 이유'라는 기사에서 황 장관의 국무총리 발탁 소식을 최초로 전한 바 있다. 당초 청와대는 개점휴업 상태인 '부패와의 전쟁'을 황 장관에게 맡기는 방안을 고려했다.

하지만 황 장관은 이 전 총리에 대한 수사 막바지까지 법무부에 남아 있었다. 국무총리 내정 발표를 서두르지 않은 것이다. 성완종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황 장관의 역할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때문인지 수사팀도 모르는 정보가 외부로 새어나왔다. 야당 의원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조선일보>의 '성완종 장부' 보도가 대표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황 장관을 겨눠 "수사에서 손을 떼라"라고도 했다.

특검 무마할
구원투수 고심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퇴진은 김 총장의 힘을 약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검찰은 인사철을 앞두고 빠르게 권력이 재편되고 있다. 지난 2월 김수남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대검 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RO사건의 주역이었던 김 차장은 차기 검찰총장 '0순위'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김 차장의 이른 승진은 김 총장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됐다.

현재 김 차장은 김 총장을 거르고 청와대와 직접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자금 수사가 가로막힌 배경에는 김 총장의 약화된 장악력이 몫을 했다고 전해진다. 한 검찰 관계자는 "요즘 들어 김 총장의 짜증이 부쩍 늘었다"라며 "검사들도 어디에 줄을 대야할지 고민하는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임기는 비록 6개월이나 남았지만 법무부 장관이 곧 바뀔 터라 김 총장의 자진 사퇴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차례 공개된 채널로 '특사(특별사면) 수사'를 압박했다. 지난 4월28일 "성완종 특별사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라고 말한데 이어 5월4일에도 "사면제도를 전면 개선하라"라고 지시했다. 특사 카드는 성완종 메모가 발견된 직후 국정원이 기획하고 제공한 작품으로 전해진다. 국정원은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난 4월9일 정치개입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특사 수사는 처음부터 무리한 '하명 수사'라는 지적이 많았다. 청와대의 메시지는 지난 2007년 성 전 회장이 사면을 받는 과정에 참여정부 실세나 이명박대통령직인수위 인사가 로비를 받고 개입했으니 이를 입증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특사 로비는 청와대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이를 입증할 증거는 무엇도 없었다. 메모와 인터뷰가 있는 성완종 리스트와는 시작점부터 달랐다.

더구나 이명박대통령직인수위 비서실에 있던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MB 측 핵심인사가 성 전 회장의 사면을 특별히 챙겼다"라고 증언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청와대가 너무 나갔다"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정치권의 '민원'이야 어찌됐든 김 총장은 청와대의 하명을 처리해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검찰은 참여정부 당시 사면 업무를 담당했던 박모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을 서면조사하는 선에서 수사를 중단했다. 마땅한 혐의가 없는 까닭이었다. 그렇지만 청와대는 김 총장의 '충성도'를 의심하는 눈치다. 수사 결과에 따라 김 총장의 거취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란 분석이 잇따른다.

정치권이 논의 중인 특검법도 김 총장의 입지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 또한 성완종 특검법에 찬성하는 모습이다. 나아가 특검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면 수사를 지휘한 김 총장의 책임론이 불가피하다. 청와대로서는 특검 도입과 동시에 법무부-검찰 라인을 재정비할 가능성이 크다. 만에 하나라도 성완종 리스트의 불씨가 불법 대선자금 의혹으로 번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황 장관의 후임이 될 법무부 장관을 찾고 있다. 언론은 길태기 전 서울고검장과 곽상욱 감사원 감사위원 등을 유력 후보군으로 보도했다. 길 전 고검장은 사법연수원 15기이며, 곽 위원은 14기이다. 두 전직 검사는 청와대에 인사검증동의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교안과 호흡 맞출 공안출신 법무장관 거론
힘 빠진 김진태 총장…떠오르는 김수남 차장

김 총장의 사법연수원 기수는 14기이다. 조직 관례상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보다 낮은 기수가 임명된다. 다시 말해 14기 이하의 장관 임명은 김 총장에겐 용퇴 압박과 다름없다. 덧붙여 국무총리 지명자인 황 장관의 기수(13기)와 나이를 고려하면 후임 법무부 장관은 2기수 아래인 15기에서 나올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조건에 부합하는 후보군은 길 전 고검장이다. 길 전 고검장은 황 장관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이다. 그런데 길 전 고검장에게는 꼬리표가 있다. 채 전 총장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는 과거다.


길 전 고검장은 당시 대검 차장으로 채 전 총장이 사퇴하자 2개월간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이후 서울고검장으로 사실상 좌천돼 옷을 벗었다. 때문에 길 전 고검장이 재신임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분위기다. 특히 길 전 고검장은 지난해부터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를 맡아 고액 수임료 문제가 지펴질 수 있다.

또 다른 15기인 소병철 전 법무연수원장은 당초 유력 후보군으로 분류됐다. 소 전 원장은 길 전 고검장과 함께 40대 검찰총장 최종 후보군에 오른 바 있다. 지난해 소 전 원장은 대형 로펌행을 거부하며 박근혜정부 임명직을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경합 후보군으로 강등되며 차기 권력에서 멀어지는 모습이다.  소 전 원장이 강등된 배경으로는 불리한 출신 지역(전남 순천)이 꼽히고 있다.

의외의 다크호스는 곽상도(15기)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다. 박근혜정부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을 지낸 곽 이사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당시 황 장관과 호흡을 맞춘 공안 검사다. 곽 이사장은 '채동욱 찍어내기'에도 개입한 의혹을 받았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공신'이라 요직에 중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15기 가운데는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검장과 김홍일 전 부산고검장이 경합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공안통 심고
레임덕 막아

만약 14기로 눈을 돌린다면 곽 위원이 유력한 후보로 떠오를 수 있다. 곽 위원은 지난 2012년 4월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임명됐고 현재 그 직을 유지하고 있다. '전관예우 논란'에서 자유로워 여권의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14기인 안창호 헌법재판관과 노환균 전 법무연수원장도 경합 후보로 거론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른바 '공안통'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떤 인물이 법무부 장관이 되더라도 전임자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공안수사를 강화하고 사정정국을 확대해 레임덕을 막겠다는 것이 정권 차원의 '의지'로 해석된다. 덤으로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야당을 겨냥한 기획수사까지 성공하면 금상첨화다. 최근 야당 중진 의원이 연루된 부동산 비리 수사가 터져 나온 것이 한 예다. '황교안-000-김수남'으로 이어지는 공안라인의 마지막 퍼즐에 관심이 쏠린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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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