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검찰, 문체부-대한체육회 갈등 내사 '왜?'

정부 숟가락 얹기 시작됐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검찰이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대한체육회와 관련한 폭넓은 내사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전 회장은 지난 4월까지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을 지냈다. 박 전 회장을 겨냥한 내사지만 그 이면에는 통합체육회 출범에 반발하고 있는 일부 체육계 인사를 손보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또 합의 과정에서 '실세 차관'으로 알려진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대한체육회 측에 서명을 압박했다는 주장이 나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일 국민생활체육회가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대의원들은 국민생활체육회와 대한체육회간 통합을 지지하기로 결의했다. 총회에 앞서 열린 '체육단체 통합 설명회'에서는 '통합체육회'가 추진된 배경과 일정 등이 공유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김홍필 서기관을 보내 '체육단체 통합의 절차와 과제'에 대한 발제문을 낭독했다.

개정안 통과
논란은 여전

체육단체 개편을 위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은 지난해 10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안민석 의원이 발의했다. 올 3월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은 달 27일 정부는 국민생활체육회와 대한체육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통령령을 공포했다. 법안에 따라 양 단체는 2016년 3월27일까지 통합을 완료해야 한다. 가칭 통합체육회 출범이 가시화된 것이다.

그간 박근혜정부는 의욕적으로 체육단체 통합을 추진했다. 새정치연합 역시 통합체육회 출범을 지지해왔다. 체육단체 이원화로 생긴 ▲전문체육의 저변 약화 ▲은퇴선수의 일자리 제공 한계 ▲생활체육 서비스 수준 미흡 등의 문제점에 서로 공감대를 이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찬성하고 있는 통합체육회 추진에 우려하는 쪽은 대한체육회다. 원론적으로는 찬성이지만 각론에서 정부·국회와 이견을 보이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연간 2000억원이 넘는 국고를 지원받는 사실상의 이익단체다. 그 중심에는 KOC(대한올림픽위원회)가 있다. 대한체육회의 산하기구인 KOC는 올림픽에 출전할 국가대표선수들을 발굴·육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KOC의 존재 때문에 대한체육회는 체육계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문제는 초기 개정안에서 KOC를 통합체육회로부터 분리하는 방안이 검토됐다는 것이다. KOC가 없는 통합체육회는 비 올림픽 종목과 생활체육만 관장하는 까닭에 위상이 격하될 수밖에 없다. 통합대상인 대한체육회의 반발로 KOC 분리는 개정안에 명시되지 않았다. 남은 쟁점은 크게 두 가지, 통합준비위원회의 인적 구성과 초대 통합체육회장의 선출 방안이다.

동상이몽
통합체육회

지난달 28일 대한체육회는 자체 뉴스레터를 통해 체육단체 통합과 관련한 첫 번째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주요 경과를 살피면 대한체육회가 주장하고 있는 '체육계 자율성 보장'이 곳곳에 적시돼 있다.

먼저 대한체육회는 지난 3월27일 문화체육관광부 쪽으로 건의서 전달 및 장관 면담을 요청했다. 이들은 양 단체가 통합되는 과정에 당사자끼리 협의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율성'은 정부와 국회가 개입을 자제해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4월21일 '수용 불가' 입장을 대한체육회에 통보했다. 장관 면담 요청에 대해선 회신하지 않았다.

앞서 대한체육회는 수차례에 걸쳐 통합준비위원회의 인적 구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세부 훈령에 따르면 통합준비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천하는 3인, 대한체육회가 추천하는 2인, 국민생활체육회가 추천하는 2인,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추천하는 2인 등 모두 11명을 위원으로 두도록 구성했다.

하지만 이기흥 대한체육회 부회장은 "대한체육회가 7인, 국민생활체육회가 7인, 문화체육관광부가 1인을 추천해 통합준비위원회을 꾸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대한체육회 내부 회의에서도 "체육단체 통합에 왜 정치인과 장관이 끼어드느냐"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또 그는 "(정부 안대로 되면) 내년 2월 선출되는 통합체육회장도 사실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명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박용성 수사 중 돌연 대한체육회 내사
대한체육회·정부 주도 체육단체 통합에 반발


실제로 체육계에선 대한체육회를 이끄는 김정행 회장이 정권 눈 밖에 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김 회장이 밀려난다면 이 부회장을 비롯한 수뇌부는 옷을 벗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 부회장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공식 질의서를 발송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IOC는 각 NOC(국가올림픽위원회)에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도록 했는데 정부가 이를 어기고 있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서기관은 지난 4일 통화에서 "김정행 회장이 정부는 물론 국회와도 합의한 부분인데 이제 와서 법안을 반대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라며 "대한체육회의 '7+7안'은 중간 조정자가 없어 의견절충이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 달라"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11월6일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당시 국민생활체육회장), 김 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과 비밀 회동을 갖고, '체육단체 통합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 자리에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한 안 의원도 함께했다. 주요 합의 내용에는 ▲2017년 2월까지 양 단체를 통합하고 ▲국민생활체육회를 법정법인화하며 ▲KOC 분리 문제를 19대 국회에서 차후 논의하기로 한 조항이 담겼다.

네 사람의 합의 직후 체육인 출신인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체육계가 자율적으로 통합을 추진해야 하는데 정치인과 해당 부처가 깊숙이 관여한 꼴"이라며 "이 합의문을 IOC로 보내면 어떻게 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실제 김 회장은 대한체육회 대의원들의 동의 없이는 서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주변에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세 차관'
서명 압박?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 회장은 합의문에 날인했다. 이를 두고 한 체육계 관계자는 "김 차관이 서명 당일 김 회장을 불러 ‘내가 책임질 테니 사인하세요’라고 했다”라며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처리하면 되지 않냐. 2017년까지 있을지도 모르는데…’라고 했다는 소문이 체육계에 파다하다”라고 말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체육단체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셈이 된다.

그렇지만 관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우리가) 압력을 넣을 이유가 어디 있느냐"라며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다. 협상에 참여한 안 의원 측 역시 "(압력이건 아니건)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설사 강요했다고 하더라도 체육단체의 수장으로서 그때 거부했어야 맞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 측 역시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면 법안 통과 이전에 했어야 한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 차관이 한 '발언'의 진위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체육계 일각에선 "나도 그 말을 들었다"라고 했고, 반대편에선 "유언비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소문이 나온 배경은 한 갈래로 모였다. 바로 '실세 차관' 의혹이다.

지난해 12월 안 의원은 국회 본회의 긴급 현안질의에서 김 차관의 인사개입 의혹을 폭로했다. 당시 안 의원은 "우상일 체육국장이 임명되는 과정에 김 차관이 개입했다"라고 밝혔다. 김 차관은 '문고리 권력'으로 지목된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 인사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당시 김 차관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김 차관은 국민생활체육회 사무총장을 추천하는 등 일부 인사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국민생활체육회는 대한체육회와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단체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김 차관이 초대 통합체육회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김 회장은 소극적인 행보로 의심을 사고 있다. 대한체육회 회장이면서도 대한체육회의 입장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럴 만한 사정도 있다. 김 회장과 각별한 사이로 전해진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 나란히 검찰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 2차관 합의 압박설 “근거 없는 유언비어”
'정치권 개입' vs '밥그릇 챙기기' 논란 계속


김 회장은 2013년 2월 대한체육회장 선거 당시 박 전 수석을 통해 박 전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박 전 회장은 투표권이 있는 선수위원장에 김 회장 쪽 인사를 임명해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됐다. 현 대한체육회가 사실상 '박용성사단'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부회장 역시 박용성사단의 일원으로 '제30회 런던올림픽 대한민국 대표선수단' 단장을 역임했다.

논란이 지펴지자 김 회장은 수술을 핑계로 국회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지난 4월 김 회장은 체육단체 통합 문제와 관련해 이 의원 측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며 병원에 입원했다. 이날이 4월8일이다. 입원 직후 김 회장은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했다.

그런데 김 회장의 올 4월 업무추진비 내역을 확인하면 수상한 구석이 눈에 띈다. 김 회장은 같은 달 15일 '언론사 업무협의'란 명목의 식대를 지출한 것으로 돼 있다. 수술 중이라던 김 회장이 누군가와 대면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김정행 회장이 수술을 받은 것은 맞다"라면서도 "업무추진비 지출은 우리도 처음 듣는 얘기"라고 언급을 꺼렸다.

지난 5월20일 대한체육회는 이사회를 열고 새누리당 문대성 의원(IOC 위원)을 선수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또 조현재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을 전국체육대회 위원(행사추진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조 전 차관은 대한체육회 내부의 통합추진위원회 부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이는 정치권의 '입김'에 맞서 체육계가 내놓은 고육지책이라는 해석이다.

9일 대한체육회는 대의원총회를 앞두고 있다. 총회에서 대의원들은 '7+7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만약 대의원들이 정부 안(3+2+2+2)을 거부하기로 결의하면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경우에 따라선 대한체육회를 겨냥한 정권 차원의 사정작업이 벌어질 수 있다.
 

최근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대한체육회와 관련한 검찰의 내사가 끝났다"라며 "수사 착수시기를 저울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취재 결과 검찰의 칼날은 박용성사단으로 분류된 김 회장과 이 부회장을 겨냥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행은 뒷짐
이기흥 전면에

앞서 검찰은 박 전 회장에 대한 소환을 앞두고 대한체육회 선거 과정을 포함해 국가대표 선발 비리, 협찬계약 특혜 의혹 등을 광범위하게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박 전 회장은 명예회장일 뿐이고, 현 회장과 관련한 검찰의 자료협조 요구는 없었다"라고 밝혔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이 부회장의 거취 문제다.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감사원에서 16억원 상당의 수의계약에 대한 시정권고를 받았다. 지난달 중순에는 대한수영연맹 이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국가대표 코치와 학부모들로부터 2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사정기관 관계자는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가능성을 조심스레 언급했다. 현재 이 부회장은 대한체육회가 자체 추진하고 있는 통합준비위원회(정부 주도 위원회와는 별개)의 업무를 총괄·지휘하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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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